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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얘기, 버스-2 덧글 0 | 조회 14,501 | 2009-04-17 00:00:00
정동철  


마을버스와 벤스

5월 18일, 초파일 하루 전의 토요일 오후다.
“내일 기승이 생일을 메이(분당에 있는 중국 식당)에서 한데요. 금년부터 사위들에 대한 생일 축하 금을 안 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내와 나는 15층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안방 베란다 창문 아래에 임시 번호판을 단 차가 있었다. 네게의 문이 열린 채 뭔가 인수인계 작업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기왕이면 하얀색이 나을 거라고 아내에게 말했었는데 맞추기라도 한 듯 하얀 차였다. 거의 큰딸의 차가 분명하다고 직감했다.
“다섯 시에 온다고 했대요. 보고 갑시다.”
“보긴, 그냥 갑시다.”
“아니, 딸이 차를 인수한다는데 보고 가면 안 되요? 아버지가 되어 시기하는 것도 아니고...... 아! 알겠어요. 당신은 그냥 정거장으로 가요. 나만 잠깐 들러보고 갈게요.”

우리는 ‘닭 한 마리’라는 식당을 향해 나섰다. 반바지에 낡은 골프 모자를 쓰고 강연 때 기념으로 준 하얀 운동 잠바를 입고 나서는 나와는 달리 아내의 차림은 반듯했다.
사실 아내는 환갑을 넘었지만 모델로 족할 만큼 예쁘고 젊었다. 50대가 샘을 내는 몸매라 청담동(靑潭洞) 고급 옷 집에 가면 으레 남들을 위해 모델 노릇을 할 정도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사온 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 갔다가 마침 사장을 만났단다.
“아무리 세일이지만 사모님에게 어찌 이런 옷을 권했지, 미안해요. 오신 김에 몇 가지 옷을 입어보시고 조언을 해 주세요. 모델료를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정식으로 예우를 해 드리도록 하죠.”
종업원을 나무라며 모델이 되어달라는 얘기였다. 그럴만하다고 나도 인정했다. 한 수 더 떠 남편이 안 된다며 값을 올리라고 치켜세웠다. 승강기에서 둘이는 한참 웃으며 내려왔다.

“차를 보고 갈 테니 먼저 가요.”
“아니야, 그건 다른 차야. 아니라니까, 그냥 갑시다.”
버스 정거장으로 산책하듯 걸었다. 가로등엔 쌍 날개 허리띠에 화분이 보기 좋게 올려져 있었다. 며칠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보기 좋군. 모두가 파란 가로수인데 꽃이 돋보이지 않아 흠이지. 그나저나 관리비가 적지 않을 터인데.... 겨울엔 어떻게 하지. 더 썰렁하지 않겠어.”
“당신 걱정도 팔자구려, 뭘 그런 것까지 생각해요?”
“무슨 얘기야. 내 세금인데.......”
정거장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눈비를 가릴 수 있도록 된 정거장엔 의자도 있었다. 자리 하나가 비어있었다. 늙은이가 먼저 앉으라며 아내가 말했다.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흘깃 보면서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귀에 꽂힌 이어폰으로 보아 뭔가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개의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늙은이들 때문에 식상한다는 표정이다. 아내도 옆에 앉았다. 제법 다섯 시치곤 더웠다.
4백 원짜리와 6백 원짜리 버스가 차이도 없으니 8백 원으로 가자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에 3번 버스가 왔다. 4백 원짜리 마을버스였다.
마음먹은 대로 들어맞자 활짝 웃으며 올라탔다. 빈자리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서서 한 정거장을 가는데 마침 앞의 여학생이 내렸다. 우리는 또 웃었다. 앉아가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공감의 표현이었다.
당연히 먹자골목으로 가리라 여겼던 차의 방향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랐다. 조금 걷기로 하고 내렸다. 6백 원짜리 버스를 탈 걸 2백 원 상관에 낭패를 만난 기분이었다.
사실 우리는 늙은이가 아니었다. 70을 바라보는 나와 4살 아래인 아내가 그런 나이로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나이답게 대머리지만 모자로 덮였기 때문에 주름 없는 이마로 그러했고 아내는 워낙 젊고 예쁘고 날씬하게 생겨 그렇다. 게다가 마음은 그야말로 청춘이다.

‘닭 한 마리 집’에 앉았다.
감자가 유난히 맛이 있었다. 둘이는 버스로 온 것을 즐기고 있었다. 맥주와 소주를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음주운전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일종의 특혜라 여긴 것이다. 반찬 타령이 나왔다. 아내는 쌈 밥집의 쏟아지는 찬이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한 번은 아저씨가, 그리고 한 번은 원하시는 한식당으로 가면 되겠네요.”
젊은 아낙이 듣고 찍어먹는 장을 달랑 내려놓으며 웃었다.
“교수가 본이 돼야 하는데...., 그것도 타지에서 서울의 여교수가 괜찮을까.....”
“그러게 말이에요. 걱정인데 말합디다. 쓰고 살겠다던가.. 뭐......... 그나저나 신랑이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을 뭐라 할 수 있겠어요?”
국수사리 대신 감자사리를 시켜먹고는 다시 버스 정거장에 섰다.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도 안 오던 1111번이며 1005번이 들이닥쳤다. 서울이 생활권인 우리는 종종 이용하지만 무척이나 짜증스럽던 그 차가 웬일로 그렇게 빨리 오는지 오히려 기다리는 2번 버스는 오지 않았다. 6백 원짜리는 그러나 무언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곧 탈 수 있었다. 다행히 앉았다.
시원했다. 지하 주차장엔 에쿠스와 소나타 III이 앞뒤로 서 있었지만 버스의 맛이 이리 좋다는 것을 새삼 즐겼다.
내려야할 한 정거장 전에서 걷기로 했다. 어느 외국의 아름다운 거리와 별 차이가 없었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거리, 무성한 가로수 사이의 가로등 허리엔 예의 화분들이 보기 좋게 색색의 꽃을 뽐내고 있었다. 단지로 들어서자 직감적으로 이미 알고 있던 곳으로 갔다. 거기 벤스가 정말 있었다.

떠날 때 아내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생각한 바가 있었지만 이제 들어오는 마당에 딸 내외가 없을 것이라 여겼던 터라 자연스럽게 차를 발견하게 되었다. 흰색이 아니라 은색이었다. 멋졌다. 역시 벤스다웠다.
“생각보다 좋내요.......”

부른 배를 삭힐 겸 상가에 들렸다. 고기를 사들고 현관에 들어서니 후끈한 방안의 공기가 맞이했다.
버스와 벤스, 벤스와 버스, 모두 기차게 시원하다. 그 점에선 차이가 없다. 하지만 따진다면 하늘과 땅이다. 그것은 세대간의 차이를 일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식당과 우리 집 냉방의 차이이기도 했다.

나는 이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대통령 아들 김홍걸씨가 구속 집행되었다고 인터넷 뉴스가 왕왕 거렸다.
억 단위가 용돈이라는 대통령의 아들들과 나의 자녀 사이에 차이가 무엇일가 궁리했다.
모두가 버스는 질색일 것이다. 그 점에선 같다. 돈의 성격은 다르다. 용돈도 아니고 검은 돈은 더욱 아니다. 그런 점에서 사위는 떳떳했다. 그러나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리스라는 제도를 통해 소유개념이 아닌 저렴한 <선진 인생 경영>은 젊은이답다. 이해한다. 지방대학의 교수로 주말마다 오르내려야하는 아내의 안전을 위해 사위에겐 사치가 아니다. 장모와 장인으로서 오히려 감사해야 할 따름이다. 따라서 위화감에 의한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확실한 소신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버스를 즐기는 나와 아내, 아직도 그것을 비웃는다고 여기는 벤스, 나는 나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었는지 나의 행적을 추적하게 된다. 지독한 외제 거부반응이 그들의 저항 의식을 자극한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먹통 같은 고집의 결과였지 싶다. 잘못은 소유 개념의 경영 방식에 집착했던 나에게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6 시그마 경영 시대>에 확실히 맞는 얘기라 여기고 싶다.
그렇지 않을까?
200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