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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얘기-버스 3 덧글 0 | 조회 15,097 | 2009-04-17 00:00:00
정동철  


- 서울의 좌석 버스 -
1980년대 후반의 글임

한동안 잊었던 일이지만 오늘따라 유심히 관찰할 수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
어정쩡하게 신통한 대답도 없이 앉게 된 자리가 바로 승강구 건너편이었다.
“어서 오세요.”
“……”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
꼬박 꼬박, 한 사람도 빼지 않고 인사를 하는 운전기사에 대해 아무런 대답 없는 승객들이 올라탄다. 어른, 아이, 신사, 숙녀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도 인사를 하는데 승객들은 스틸 칼라같이 도무지 표정이 없다. 벽창호들인가?
그러나 내가 오늘따라 유심히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로봇 같은 무표정 속에 이상한 표현들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한 아주머니가 탔다. 바리톤 같은 인사에 반사적으로 외면을 하고 통로로 들어섰다. 얼굴엔 울긋불긋 여드름이 있었는데 몸 매무새가 머쓱하게 흐트러졌다. 적어도 편안한 기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어 여자 대학생이 탔다. 역시 예의 인사에 기사와 얼굴을 마주치는 듯 머리를 획 제치는 모습이 글세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가 힘들었지만 머리채가 철렁하는 것을 보아 반응이 컸던 것만은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뒤미처 숨을 헐떡이며 남자 고등학생이 탔고 그는 인사 소리를 들었는지 아닌지 후닥닥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더니 좀 있다가 신사 한 사람이 탔다. 인사 소리에 얼굴 표정은 변화가 없었는데 목의 모습은 자못 뻣뻣해지고 말았다. 어쩌면 상놈한테 받은 절값으로 오히려 턱을 어깨 위로 치켜세워 상체를 뒤로 제키는 모양이 양반 같았지만 그러나 별반 재미가 없어 보였다.
같은 곳을 출퇴근하는 나에겐 이 아저씨와 만나는 경우가 몇 번은 됐다. 나는 스스로 운전하는 나만의 차를 갖고 있기 때문에 늘 이 좌석 버스를 타진 않는다. 대학 강의와 그리고 방송국 출연 날을 제외하곤 자가용을 타지 않게 되는 그 시점에 맞추어 우연히 이 아저씨와 만나게 될 때가 더러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난 좌석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편은 아니다. 좀 걷는 길이 있긴 해도 전철을 이용하는 특별난 기분이 있기에 좌석 버스는 어쩌다 타는 셈이다. 그렇지만 같은 노선을 달리는 좌석 버스의 기사 중에서도 유독 이 멋쟁이 기사만은 인사를 꼬박이 하는 바람에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어떤 손님이 탔다. 아이를 옆에 낀 허름한 아주머니가 힘겹게 올라탔고 기사 아저씨는 예의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몸이 무거웠던 아주머니는 숨이 턱에 걸렸는지 역시 말이 없었다. 대신 얼굴 표정은 밝게 웃었다. 다만 그 웃음이 기사의 인사에 응답한 것인지 아니면 그런 인사를 의외로 받게 된 자신이 멋쩍다고 생각하여 자기를 향하고 있는 승객들에 별 뜻이 아니라고 강조하려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았다. 한편 바짝 밀어 올리기라도 하듯 회사원치고는 좀 지체가 있어 보이는 30대의 빳빳한 신사가 밀치듯 올라탔다. 기사의 바리톤이 역시 울려 나왔다. 그런데 정말 이 신사는 표정이 하나도 흐트러지질 않았다. 시종 당당한 표정으로 승강구를 올라 통로로 들어갔다. 귀먹은 벙어리일까?
결국 삼십 몇 명이 타는 이 버스에서 기사의 인사에 응답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관찰 보고다. 이제 버스는 만석이 되어 내릴 사람들의 정류장만 찾아 서기만 하면 된다.
아저씨는 아침 출근길을 신나게 달린다. 표정은 그저 흐뭇해 보인다. 정류장마다 이 차를 기다리던 승객들에게 손짓을 하며 바로 뒤에 차가 온다고 미안하다고 알려준다. 그들이 들을 수가 없으련만 하여간 그렇게 하고, 또 다음 정류장에서 그렇게 반복하면서 결국 복잡한 청계로를 비집고 들어섰다.

일 년 전인가, 지금의 이 대형 좌석 버스의 전신인 이른바 마이크로 버스가 다닐 때의 어느 날 퇴근길이었다.
퇴근 때 버스를 탄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탔다해도 또 몇 정거장은 당연히 고개를 수그리고 비틀린 몸으로 서서가다 목적지에 가까워질 때 겨우 앉게 된다.(주-1) 그날도 그랬던지 겨우 자리를 정돈할 때 앞의 손님이 불쑥 돈 바구니를 건네주었다. 나는 갑자기 당황했다.
바구니엔 천 원짜리 지폐가 쌓여 있었고 오백 원짜리 동전이 그득했다. 하와이 어떤 한인 교회의 연보 쟁반형 바구니 같은 그런 생각이 찰나적으로 스치며 눈치 빠른 서울 사람의 센스에 따라 천 원짜리 지폐를 놓고 거스름돈을 세어 손에 쥐었다. 주머니에 무심히 넣으려다 다시 손을 벌렸다간 한동안 쥐고 있었다. 마치 옆 사람에게 내가 계산한 것이 틀림없다고 확인이라도 시킬 그런 양으로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부끄럽던 나의 마음에 비해 그 기사는 어떤 마음으로 돈 보따리를 승객들에 내맡기며 돌렸는지 의아했다.

출근길의 버스는 이제 내릴 자리를 택하기만 하면 된다.
“다음은 청계천 7 가 에요. 내리실 분 안 계십니까? 다음은……”
분명 좌석마다 눌러서 신호를 보내는 버튼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기사 아저씨는 목청을 높였다.
내릴 때 기사의 분주함은 필경 누구나 타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 그의 눈과 손은 승객의 거스름돈과 버스의 방향 사이를 번개처럼 왔다갔다한다.(주-2) 그런 와중에서도 이 멋쟁이 기사는 잊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응답 없는 기계적 인간들이 승강구를 내려갈 때 기사 아저씨는 깎듯이 인사를 거르지 않으며 계속한다.
“안녕히 가세요.”
“잘 다녀오세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누구 한사람 그러나 손과 입은 병이 들었는지 반응이 없다. 먹통들인가 보다. 몇 정거장을 가면 나도 내려야 한다.
거스름의 번거로움이 없도록 이쪽저쪽 주머니를 뒤지고 또 찾아 백 원짜리 세 개와 용케도 오십 원짜리 하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손에 지긋이 쥐어잡고 생각을 했다.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수고가 아주 많았어요. 조심하세요.
그러나 말이 좀 길다고 생각했다. 조심하라면 혹시 운전이 거칠었다는 뜻으로 와전될지도 모른다. 다른 표현이 없을까?
아저씨는 참 좋은 분이군요. 고마워요!
그러나 이건 마치 개인 운전기사에게 해주는 것 같아 좀 쑥 같은 냄새가 났다.
즐거웠습니다. 흐뭇한 기분이에요. 수고하세요.
나의 기분과 아주 흡사하지만 어쩐지 미국 사람들이「원더풀」하는 것 같아 그것도 마음에 내키지가 않았다.
“다음은 청계3가 입니다. 내리실 분 계셔요?”
얼결에 돈을 건네주고 조급히 내리다가 그만 그토록 준비했던 인사를 변변히 하지도 못하고 그의 대답만이 귓전에 울렸다.
“네, 고맙습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몇 발자국을 걸어가면서 내가 뭐라고 인사를 해주었었는지 더듬어 봤다.
“아―수고해요!”
문제는 그 악센트다.「아」가 다르고「어」가 다르다고들 하던데 아무래도 어감이 양반의 소리였던 것 같다. 누구를 말하기 전에 자신의 인사성이 얼마나 미숙한 것인가를 새삼 알 수 있었다.

삼십여 년 전의 일이 뇌리를 지나간다.
“여기는 남영동, 남영동입니다. 다음은 동자동, 내리실 분은 미리미리 준비하세요.”
귀청이 떨어져 나가라고 법도 순서도 없이 아귀다툼 속에 살던 부산 피난 생활을 청산하고 환도(還都)하여 처음으로 올라탄 전차 속이다. 안내양의 그 상냥한 말소리에 사실 나는 속이 뭉클한 적이 있었다.
역시 서울, 나의 고향 서울이구나

서울은 지금도 나의 주변에 분명히 있는 것이 틀림없다. 부산에선 엄두조차 기대할 수 없었던 현상이다. 그러나 받을 뿐 줄줄 모르는 나의 인사성은 언제나 해결될 것인지 아득하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용기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쑥이라는 양반적 기질 때문인가, 아예 숫기가 없는 조금은 노이로제 같은 불안기가 있어서인가?
놀라운 것은 그러나 미국에선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주-3)
“하이! 굿모닝.....”
전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도 승강기나 복도에서 반사적 미소와 함께 잘도 했었다. 그 짧은 영어를 구사하면서 말이다.
대체 무슨 연고인가? (1985~1989 사이의 글)

(주-1): 2001년 기준으로 유치원이나 조그만 학원, 또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마이크로버스보다는 크지만 봉고를 기점으로 대량생산되는 멋진 그런 버스는 아니었다. 1979년의 일이다. 손재주가 좋은 우리는 수제품처럼 두들겨 펴서 잘도 조립을 했었던 직후의 차들이지 싶었다. 요즘의 조그만 마을버스와 비슷했을 것이다. 시발택시가 합승으로 발전했던 얼마 후의 일이었을 것이라 본다.
(주-2): 안내양이 없어진 지 얼마 후 1980년 당시의 버스 요금은 탈 때가 아니라 내릴 때 냈다.
(주-3): 1963년 미국에서의 얘기만은 아니다. 그때 일본을 거치면서도 그랬고, 지금 21세기엔 외국에 나가면 그들의 인사성에 신기할 정도로 同化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