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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릉지와 위스키 덧글 0 | 조회 14,794 | 2009-04-17 00:00:00
정동철  


<누릉지와 위스키>
(04.10.10.17:49)


마란즈에 연결된 아메리칸 어쿠스틱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가 마구 심장을 두드린다. 서재 건너편 의자에 앉아 파란 유리잔의 네모진 어름을 타고내리는 로열 살루트향을 입속 점막에 담는다. 드디어 잊혀진 자극이 강열하게 되살아난다.
용평으로 방금 떠난 아내가 만든 누룽지를 앞 이로 씹으며 일상의 피로와 함께 어우러지는 맛, 다리를 탁자위에 올려놓으니 알딸딸 上界眞人? 천국이 따로 없다.

나이키 골프공에 사인을 했다.
아들 이름, 내 한글 사인, 그리고 ‘04.10.15.을 그려 넣는다.
파란 잔은 입안에서 깊고 웅장한 음악을 통해 혀 속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든다.
다시,
첫째사위, 둘째사위를 위해 유성 사인 팬은 역시 같은 방식으로 그림 그리듯 진행된다.
한 목음 위스키와 누룽지가 사이사이 기묘하게 이질적인 듯 독특한 궁합이 되어 조형예술처럼 입안에서 목구멍을 촉촉이 적신다.
이어 큰 딸, 한 목음, 둘째딸, 또 한잔, 그리고 며느리의 이름이 DDH 골프공에 그려진다. 여섯 개의 공에 그려진 사인을 보면서 입안에 녹아든 위스키가 씹을수록 어름 속에 선율을 섞으니 나만의 미묘한 칵테일이 기묘하게 음미되자 딸딸해지는 정신은 결국 파란 하늘을 향해 퍼득퍼득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치즈였다면 있을 수 없을 신세계. 빠삐용의 절벽 같은 제주의 파란 잔디와 바다, 그리고 세찬 바람이 유화처럼 펼쳐진다. 서재의 모니터는 스킨스쿠버 다이버의 눈으로 제주의 바다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현란한 장면이 사실적 동화상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문막’을 지났겠지.
미안해하는 아내의 골프백을 향해 퉁명스럽게 던진 말이 걸린다.
“그래, 잘 다녀와!”
사용된 단어와 현장의 필, 말하자면 억양은 내 속내와는 달랐다. 다정 할 걸.....

어름을 녹일 양 다시 술병을 기운다.
누룽지는 계속 입안에서 오물오물 이리 씹히고 저리 굴러간다.
입안에 시바스보다 누룽지의 맛,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고소한 맛이 더 짙은 향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내 때문일까? 음악이 주는 환상의 세계 때문인가? 훨훨 날아가는 무드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인지라 잠옷을 벗었다.
하얀 긴 다리와 팬티,
나만의 공간을 위해 연주는 계속되고 있다. 비발디 알레그로....

까만 사무실용 스탠드의 불빛이 방안을 점점 가득 채우고 있다. 어두워질수록 더욱 밝아진다.
차분한 할로겐 아래 바흐의 알레그로가 쉼표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다시 누룽지를 입안에 오물거리며 씹는다.

편안함!

손녀는 끝내 오지 않았다.
둘째의 심술스런 표정도 결국 볼 수 없었다.

술잔이 입안에서 다시 사르르 녹아난다. 누룽지와 함께, 아내와 함께.
나는 나의 잡식성을 즐긴다. 격식을 무시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러나 스피커의 잡음을 불허하는 민감한 고막을 가지고 있다. 후각은 아내가 짜증스러우리만큼 예민하다. 책상은 한없이 어지럽지만 소파의 위치, 화장실의 작은 카펫의 배치는 자로 재야한다.

가득한 빛과 선율, 전연 어울리지 않게 스피커사이 정면에 해금강의 叢石亭
絶景 복사 그림이 있다. 오른편 어쿠스틱 뒤에 셋째 사돈이 보내준 환갑 두 폭 가리게, 天生四時春作首 人間五福壽爲先이 날 보며 말을 건다. 거기 왜 있는지 웃긴다고 여겼다. 봄으로 시작하는 바 오복중의 으뜸은 장수라, 오래 살아야할 이유가 있나?

선율은 피아노로 바뀌었다.
생각은 물 아래로 가라앉고 다시 술잔을 드는데 또 하나의 가리개가 대각선으로 의자 옆에 버티고 있다. 萬物靜觀皆自得 四時楏興與人同. 역시 나에게 뭔가 일러 줄 양 말을 건넨다.
만물을 조용히 보노라면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 있고, 춘하추동 사계절도 인간과 더불어 흥을 즐긴다.
첫째 사돈은 진즉 왜 이런 가리개를 보냈을까?
과연 나에게 어울리는 것인가. 알길 아득하지만 나름의 흥을 즐겨본다.
누룽지는 여전히 살루트보다 더 강렬했다. 위스키보다 기가 센가? 마치 등 뒤에 있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동양화 속의 독수리보다 결코 기로 치면 만만치 않다. 아내의 잔영? 대견한 손들의 마음과 마음들?

웅장한 선율이 다시 방안 가득해진다.
비하여 마음이 점점 비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바닥에 깔린 살루트 마지막 잔이 천천히 고소한 목구멍을 넘어간다.
마구 심장을 쿵쾅거리며 뒤흔들던 스피커가 잔잔한 너울로 변했다.

모래 있을 강의준비가 끝났다.
월말 수필집 원고 또한 애벌이 끝났다.
닷새 후면 제주도, 종착역의 가족 골프가 밤하늘의 불꽃처럼 터지겠지?
칠순!
내 생일을 위해 그들에게 줄 공, 아니 나의 상징.
대체 그것은 의미가 있는 것인가? 과연 뜻이 있을까? 하나, 나 좋아 가득 찬 감회, 이제 불빛 재우고 탄천으로 나가 보자.
종착역 다음까지 생각할 일은 아니니까. 설사 한들 알 수도 없는 일이다.
어차피 송장을 끌고 어디까지 가야 할 것인지 그것을 알지 못하는 바에야 그저 위스키 끝잔에 모든 생각을 떨치고 걷기나 할 일이다.

코끝의 술 냄새를 지우고, 입안의 고소한 누룽지의 질긴 여운으로 방안 가득했던 온갖 선율과 잡다한 생각을 둘러매고 걷다보면 더욱 송장은 혹 麻三斤처럼 가벼워지지나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바램,

아내는 무사히 가고 있겠지? 아내의 진한 마음이 담긴 누룽지의 고소한 맛을 잊지 않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