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게시판 > 수상수필
내 마음에 너무도 많은 나 덧글 0 | 조회 16,045 | 2009-04-17 00:00:00
정동철  


<내 마음에 너무도 많은 나>
2005.09.16.


“어디에요?”
“비행장이야...”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좀 지친 퇴근길, 일상보다 30분쯤 늦었지 싶다. 분당행 고속화도로는 밀리고 있었다. 어떤 경우라도 차 속에서만은 언제나 편안함 바로 그것이었는데 목소리가 피로와 여유(?)로 서로 엉켜 미묘한 심리적 갈퀴에 걸려들어 갈라졌든가 보다.
“비행장이라니까!”
“당신 무슨 얘기 하는 거야, 비행장이라니?”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갈라진 목소리와 간밤의 꿈이며 ‘트리플 Smile’이 여과 없이 끼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 비행장이라니까. 잘~ 있어!”
“비행장? 어디? 잘 있으라니,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에요?”
“인천비행장이지, 떠나야지, 잘 있으라고....”
오른쪽 귀 구멍 가까이 있는 이어폰의 꼭지를 눌렀다.

연거푸 벨이 울렸다.
받지 않았다. 10분 안에 들어서 놀려줄 참이라 받지 않았다.
집 가까이 수서에서 분당으로 가는 고속화 도로 오른 쪽의 비행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 같아 그냥 말했던 ‘비행장’이 노인 특유의 쉰 목소리로 아물거린 탓인지, 매사 빠르기로 뒤질 리 없는 아내가 깜빡한 모양이다. 내 말의 뜻을 놓진 것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면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지금의 행복이 고령화로 마음속 어딘가에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잠재의식이 가동 중이라는 의미다. 거의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들만의 ‘트리플 보기’에 처음으로 역시 예외가 없는 ‘트리플 S라는 단어를 붙여놓고 한바탕 웃고 난 다음 날의 그 아리송한 ‘비행장’이 바로 잠재된 호사다마의 그림자를 끌어낸 결과가 된 것이 분명하다. 환희 뒤의 공허, 불안, 뭐 그런 것 말이다.
아름마을로 꺾어지려는데 빨간불에 걸렸다. 다시 벨이 울렸다. 혹시 하면서 받지 않았다.

아파트 15층, 조용히 도어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살짝 들어서려는데 벨이 또 울렸다. 중문이 있어 아내가 번호가 눌리는 소리를 듣지 못해 놀려주기 딱 이라 싶었는데 벨소리로 어쩔 수 없이 들통이 날 찰나라 받아야 했다.
“아버님 어디세요? 지금 인천공항이라고요? 미국을 가신다니 어찌된 일이에요? 거기 공항 맞아요?...”
며느리였다. 뭔가 말로서라도 느닷없는 출국을 막아야 될 어떤 위력을 발휘해야겠다는 듯 다급히 숨차게 다가왔다. 적어도 자기 말은 들어줄 것이라는 그 어떤 기가 어려 있었다.
혹시 했더니 역시였다. 놀란 아내가 며느리에게 전화를 하자 비상회로가 반사적으로 작동된 셈이다.
“여기 집인데... 지금 막 들어오고 있는 중이야... 아, 서울공항 있지 않아, 그 비행장 옆이라 했는데.... 장난 좀 하려했더니........”
안도의 한숨이 들려오는 듯, 아내가 전화를 뺏었다. 놀란 며느리에게 사실증명을 떼 주기라도 하듯 깔깔거리며 한바탕 수다가 터졌다.
“글쎄 너의 아버님 이러신다니까, 여기 비행장을 내가 깜빡했지 뭐냐... 그래 걱정하지 말고.... 하~!하, 하~..... 끊자!”

예고 없이 다가올 죽음?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노천유황천이 볼록볼록 치밀듯 그 후의 상황에 대한 그림들이 준비된 듯 솟았다.
우선 똑 같은 연결고리가 작동될 것이다. 두 딸보다 가장 가깝고 영향력이 있는 며느리? 물론 아들이 있기에 그렇게 되겠지만 하여간 아내는 고부간이라는 것을 잊은 지 오래라 비상망은 그렇게 움직일 것이다.
그 다음이 문제다.
내가 생각해 둔 대책과는 다르게 우왕좌왕할 것이 뻔하다. 대체 뻥긋한 적도 없던 ‘미국행’이라는 단어가 며느리 입을 통해 돌아왔으니 말이다.
이미 유서는 은행금고에 있다. 거기까지 접근하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디스켓에 나의 모든 비밀번호를 일목요연하게 담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참에 빨리 만들어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그나저나 나는 왜 인천출국장을 연상했을까?
우연은 준비된 마음을 선호한다는 사실, 이미 잠재된 마음을 늘 의식화하고 다니지 않았을 뿐 이별이 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있음일 것이다. 아내처럼.
죽음은 필연이 아닌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나, 아니 반듯이 죽어야 한다. 손들의 기쁨이 대기 중이다. 그들의 기쁨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겠다는 것뿐이다. 그 원칙은 그들도 어느 훗날 예외 없이 나와 똑같이 겪어야 할 족음인 까닭이다.

나는 아내와 신나게 헐떡이며 놀고 있었다. 마치 교황청 박물관 출구의 미로처럼 된 헤리포터의 마법이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분위기와 엉켜 내가 어린시절에 살던 대궐 같은 기와집이 개조된 겔러리 비슷한 곳으로 바뀌었다. 마법의 제국처럼...........
이화장(梨花莊,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별장)을 끼고 낙산으로 오르는 길에서 밖 앗 문을 지나 10여 미터 우리 집 전용골목 사랑채에서 오른 쪽 대문 문지방을 지나면 중문이 있다. 그 안은 하늘에 솟은 듯 탁 트인 전망대? 이화장이 발아래 펼쳐진다. 넓은 마당 우편엔 높은 안채기와집, 좌편은 절벽이다. 이화장에 뿌리를 두고 자란 커다란 아카시아나무가지가 장독대를 덮어 5월의 향기 듬뿍 베어든 하얀 꽃잎을 훑어 입에 넣는 맛이 생생했던 곳이다.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이화장의 연못, 안채 뒷 켠을 통해 숨바꼭질이 어린시절로 돌아간 아내와 한식 겔러리로 변해 관람인지 놀이인지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천진스레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마법의 제국’의 어떤 악마가 쫓아왔다. 줄행랑을 쳤다. 이미 알고 있던 미로를 요리조리 아슬아슬하게 피해 휙 돌아 덥석 잡힐 듯 뒷짐을 피하는 순간 출구가 마법에 의해 막혀버렸다. 나는 헐레벌떡 어이없게도 승강기 같은 공간에 갇히고 말았다. 그것은 대문과 중문이 별안간 옹벽으로 바뀐 것과 같았다. 아내는 결국 악마의 손으로 넘어갔다. 몸부림쳤다. 얼마였던 가, 나에게도 마법이 작동되었다. 드디어 탈출하여 그 괴물과 다시 맞붙게 되었다. 바티칸 천지창조가 내려보는 넓은 화랑에서 여의주 같은 칼을 휘둘렀다. 놀랍게도 최후의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후려칠 새 그것은 동시에 악마와 나 자신의 목이 땅에 떨어지게 되어있었다. 그것을 알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선과 악은 동시에 죽어버렸다.
“아! 시비를 떠난 세계였구나.“
꿈이었다. 꿈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꿈치고는 재미있었다.
깨자 평상심(平常心-無造作, 無是非, 無取捨, 無斷常, 無凡聖)이 몰려왔다. 물론 돈오견성(頓悟見性)에 견준다는 것은 한 대 얻어터질 얘기다. 무심도인(無心道人)이 아니라 수심도인(水心道人)을 꿈꾸던 나로선 아내의 트리플 ‘보기’나 ‘S’로부터의 이별, 말하자면 다만 식솔과의 작별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본시 마음은 물과 같아 잡을 수 없지만 담을 수는 있다. 감싸 어루만질 수 있으나 고이면 썩는다는 것, 자칭 수심도인을 엿본 셈이다.
마음은 물, 감쌀 뿐 잡을 수 없어라

환하게 웃는 엄마와 아빠,
파란불
뛰어가자!

표정 없는 엄마와 아빠,
노란불
살펴볼까?

어깨 들썩 화난 아빠와 엄마,
빨간불
서! 서자!

빨간불, 노란불, 파란불,
색깔 다르지만
그러나 모두 같은 색
빨간 유리, 노란 유리, 파란 유리
그 뒤엔 모두 하얀 불.

처럼,
엄마와 아빠 표정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그렇겠지?
우리도.
마음 어디에?
물과 같아 잡을 수 없다
손에 담을 수는 있어도
어루만지며 감싸는 마음뿐
그렇겠지?
마음은 하나
모두 같은 것
우리도.

이별은 삶과의 것이 아니었다. 오염된 조작취향(造作趣向, 但有生死心 造作趣向)으로부터 해방되는 그런 별리(別離)를 말해주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어보지 못해 헤아릴 수 없는 피안의 그 세계가 온통 취향에 따라 조작되도록 포장된 평등주의 속에 우격다짐으로 쳐 박혀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어렴풋 알 것 같았다. 30년 어떤 ‘석이(石耳)꾼’의 얘기 쪽이 나에겐 그래서 한결 편하고 친밀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근본은 같지. 행운을 만나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물 한 방울, 흙 한 줌 없는 바위에 자라는 석이버섯이나 삼라만상 뭇 생명체와 다를 것이 뭐 있나. 내가 바위를 타는 것, 설악산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앞마당을 걷듯 자연히 하나가 된 것 뿐이지. 보구려, 이 산에 무수한 생명들, 눈에 안 보이는 것까지 합치면 엄청나겠지만 결국 근본은 같다는 거지. 모양이 다를 뿐....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고, 그래 모양이 달라 힘 있다고 좀 우쭐대는 거, 산에서 보면 그저 그런 것인데.......... 보기 안 좋아....”
카와바다나 헤밍웨이가 그래서 자살을 했을까?
생사의 갈림이 아니라 해도, 그러나 냇물은 잠시 여울져 멈추는 듯 흘러내려갔다. 무척이나 암시하는 것이 큰 양 그렇게 말이다.
내 마음에 너무도 많은 나, 옳거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면서, 이랬다저랬다, 잘난 맛에 비웃는 숫한 나, 그것이 내 취향대로 조작되어야 비로소 직성이 풀리는 왕고집, 노인이 되었건만 현자(賢者)는커녕 비우지 못하고 있음을 알겠다다는 뜻이다.
내 마음에 너무도 많은 나!

나이 들어 장난기를 통해 불쑥 얻게 된 조그만 소득이겠거니, 좌우간 디스켓을 만들어 빨리 아들에게 넘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물정모르는 아내로부터 시작되는 그 황당한 비상망의 아픈 고리를 가능한 한 줄여보기 위해서 말이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게, 빨게는 사과........, 넘고 넘어 결국 백두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