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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삯과 기술료 덧글 0 | 조회 15,705 | 2009-04-17 00:00:00
정동철  


<품삯과 기술료>
참고: 1980대 초의 글(2006년이라고 나아진 것은 품삯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도 올해는.....”
기대를 하며 늑장을 피웠다.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환풍기를 설치하기로 작정을 했다. 도무지 석유난로로(연통 없는) 겨울을 지나려니 폐를 찌르는 냄새와 머리를 어지럽히는 그 탁한 공기를 감당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딴에는 온풍기(溫風機)로 이번 겨울을 보내야 되겠다 했지만 내심의 결정이 무너지고 말아 사뭇 서운함을 어쩔 수가 없었다.
목공소의 사람을 불러 돈이 얼마나 들겠느냐고 하니 대답이 아리송했다.
“별로 일거리도 아닌데 적당히 알아서 주시면 되겠구먼요, 한 10여분이면 되겠네유.”
하기야 품삯으로 칠만큼 큰 일거리가 안 된다는 것은 나도 알만했다. 이미 뚫려진 유리문을 옆으로 밀고 거기 겉살로 댄 나무를 몇 개 톱질을 하고 나서 환풍기를 끼워 규격에 맞도록 고정을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말할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짜로 해주겠다는 얘기 는 아닐 터이고 몇 푼 알아서 주면 좋겠다니 그 몇 푼이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하시는 양반이 그래도 얼마라고 해야 알아서 드리는 거지 무작정 요량을 할 수야 없지 않겠수, 얼마나 드리리까?”
“원, 사장님, 아니 원장님두, 좌우간 달아 놓겠어유 몇 푼 주세유.”
몇 푼이라!
분명히 푼의 단위가 천원 일터이고 그렇다면 일천 원은 아니고 오 천 원을 말하는 것일까? 그건 너무 비싼 것 같다. 아무개 얘기를 듣자하니 종로통에서 손 한번 까딱하면, 그리고 사람이 한 번 왔다 가면 일만 원이라고 했는데 혹 그런 뜻인가?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는, 예컨대, TV가 고장났다든가 에어컨이 어떻게 되어 말하자면 왕진을 한 격이 되니 그 기술료가 있어서 이해가 가지만, 지금의 형편은 나무 몇 개에 톱질을 하고 또 윤곽을 맞도록 잘라서, 못질만 하면 되는 것이므로 사정이 다른 게 아닐까? 나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러나 그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지. 그렇군, 그럼 오천 원 이상을 줘야 되는 것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시지 말고 말해요. 사람은 크고 적고 간에 매사가 분명해야 좋은 거요.”
“원……, 한, 사천 원 주시구려.”
나는 예정했던 것 보다 일천 원이 싸다라는 생각에, 그리고 혹 만 원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염려까지 했던 터라 냉큼 그러라고 대답을 해 버렸다.
일은 정말 번개처럼 끝났다.
옆 가게에서 별도로 사온 환풍기를 끼어 뚝딱하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20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짐작했던 것에 비하면 정녕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역시 기술은 기술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나 그러고 보니 왠지 허전했다. 너무 비싼 것이 아니냐는 속물적 심리가 작동한데다가 난데없이 나의 기술료가 불현듯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채 10분도 안 되는 목공의 품삯이 일금 사천 원인데 그 돈은 약 40분에 걸쳐 정신분석 치료를 하고 받아내는 우리의 기술료 3.460원보다 무려 15%가 더 비싼 것이다.(주-1) 만일 목공의 품삯을 한 시간으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16.000원이 되므로 그 격차는 4배가 넘는다.
정신분석 치료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의과대학 6년을 마치고 인턴, 레지던트의 수련기간 5년을 성공적으로 끝낸 정신과 전문의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 해도 정신치료를 했다 해서 그 기술료를 인정해 주지 않는 아주 고귀한 그런 기술이라고 의료보험법은 명시하고 있는 정도다.
말을 바꾸어 그럼에도 신경정신과 의사의 한 시간 기술료는 3.360원인 셈이다.
환풍기를 시험해봤다. 순간 방안의 잡다한 찌꺼기들이 일시에 빨려 나갔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수고했어요.”
“네, 원장님 고마워유. 안녕히 계시유, 혹 이상이 있으면 봐 들이겠어유”

나는 환풍기의 끈을 잡아당길 때마다 생각한다. 시간당 몇 만 원씩 하는 각종 예능계의 레슨비와 달리「마음의 레슨비」3천 60원을 받는데 그나마 2개월의 외상 기술료를 찾아야 하는 것은 고사하고 목공의 품삯만도 못한 이 기술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품삯이든 기술료이든 그 대상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액수가 달라지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예능계의 레슨비가 높은 것은 그 대상이 단순히 피아노나 바이올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이 대상인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정신분석 치료는 그 대상이 전적으로 인간이다.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고 있는 내면의 갈등을 의식화(意識化)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치료다. 말하자면「마음의 레슨」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감히 그 기술료를 그토록 낮게 책정한 의료보험 급여 정신은 어떤 철학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일까? 목공이나 미장이의 품삯이 낮은 것은 그 대상이 나무요, 흙이란 점에서 이해를 한다고 하지만 그보다 훨씬 낮아야 하는「인간 레슨비」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옳은지 알 수가 없다. 철학은 고사하고 기준을 어디다 두었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행하게도 나는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된 지 15년이 되었건만 정신분석 치료의 기술료를 인정받지 못한다. 종합병원이 아닌 의원에서 그런 품삯으로 그와 같은 고도의 진료 행위를 할 이치가 없지 않겠느냐는 보험 측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주-2)
답답하다. 후덥지근하다. 허탈하다. 껄끄럽다. 열이 치받치는 것이다. 그리고…….
차라리 그래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인간의 실존 그 자체가 무시당하고 있는 마당에 품삯이나 기술료를 따져 말할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환풍기를 잡아 당겨본다.
답답하고, 후덥지근하고 그리고 그렇고그런 끈적끈적한 심기(心氣)들이 일시에 탁한 방안의 찌꺼기들과 더불어 빨려 나간다.
시원하다. 환풍기의 소리만 들어도 벌써 후련해진다.
이 겨울에 내가 한 일 중에 스스로 잘 했다고 자부하기는 아마도 이 환풍기를 미리 단 것이 아니었나 싶다.

(주-1): 의료보험은 통상 기술료에 해당하는 것을 行爲料라고 부르는데 40-50분 정도의 정신분석 치료비는 1981년 당시 3,460원이었다.
(2) 2002년 2월 현재는 인정하지만 횟수를 제한한다. 동시에 계속 斜視的으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하지도 않고 과잉 청구를 한다는 것이다. 역시 믿을 수 없다는 의심은 늦추지 않고 있다. 의원급에서 받는 심층 精神치료비는 2만 7천 원쯤이다. 한 시간 의사가 행하는 품삯이다. 만일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하면 하루에 8명 이상은 볼 수가 없다. 한 사람의 專門인력이 8명의 환자만 봐도 괜찮은지 반문하고 싶다. 나머지 20~30명은 어떻게 해야하나. 그들이라고 면담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