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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2가로등, 지금은... 덧글 0 | 조회 15,593 | 2009-04-17 00:00:00
정동철  


-가로등, 지금은..... -
(2001. 9. 9.)

내가 살고 있는 동래의 상가 네거리엔 하늘을 찌를 듯 네온 십자가가 7개나 몰려있다. 하늘나라에 더 가깝다는 듯 빨간 색이 모자라 파란 네온과 교차하며 뽐내고 있다. 마치 교차로의 정객들이 철저한 신호 약속과는 달리 이리 몰리고 저리 쏠리듯 하여간 저마다 세상의 <햇볕>과 <햇빛>이 되겠다는 주장인가 보다.(주-1)
사람은 네거리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로등이 몰려있으면 그럴수록 당연히 후미진 어둠의 거리가 더 많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독하게 밝은 곳에 사는 사람이야 좋겠지만 칠흑 같은 어둠을 헤매야 할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어야 할까?
해가 다 간 것도 아닌데 21세기 원년(元年), 가을로 접어드는 문턱에 불쑥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연은 아니다. 그것은 세무 조사라는 이례적 경험을 하면서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20대와 다를 바 없는 철부지 같은 구석이 있어 비로소 세상을 알 수 있게 깨우치기에 이르렀다는 일종의 어리석은 우화(偶話) 때문이다. 햇빛은 고사하고 가로등이 아니니 말이다.
뒤를 되돌아보는 일은 나에겐 다소 병적일 만큼 끈적거린다. 강박적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필경 그래서 이름을 날릴 기회가 와도 결국은 잡지 못한다.
어떤 지상파 TV가 <아침 프로>를 구상할 때 제의를 했었다. PD의 자존심을 건드릴 만큼 행여 오락 프로가 아니냐고 깐깐히 물었다. 출연료까지 묻는 바람에 비켜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명예롭지 못한 아쉬움으로 후회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럴 정도라 앞으로 나아가는 발자국이 머뭇거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박력은 고사하고 돌다리를 두드리다 정작 해야 할 일에 엉뚱한 시간을 보내는 형편이라 공연한 정력의 낭비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으로 이어진다.
한데, 때를 맞추어 격에 가당치 않게 황금빛 들판이 출렁거리듯 나의 뇌에 그려진 수확(收穫) 세 거지가 떠올랐다. 좀스럽고 구질구질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음은 참으로 묘하다. 남들은 돈을 벌었다던가, 출세를 했거나,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대단한 일로 야단스러운 터라 사실 멍청한 얘기다. 하나 본시 나의 머리가 새대가리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우화(偶話)라 부르게 됐다. 교훈적 우화(寓話)가 아니다. 어리석은 우화(偶話)라는 얘기다.
웃기는 것은 그런 대도 마음이 편하니 모를 일이다. 아마도 제멋에 산다는 말의 어원을 대표할 별종일지 모르겠다. 하니 그게 나의 그릇이겠다고 자위를 한다. 이미 도요(陶窯)에서 그렇게 구어 나온 바에야 변신을 노린다고 될 일이 아닌지라 달리 방법도 없는 터다. 만족할 뿐이다.
하필 인지, 겨우 인지 세 가지 수확이란 것은 바로 그 그릇 때문이지만 실상 내용인즉 매우 간단하다. 정말 별것이 아니다.

첫째, 비슷한 증상을 구분하여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하는 의사 최대의 일 중의 첫째가 되는 감별(鑑別) 진단으로 한 젊은이를 도와줬다는 일이다.
의약 분업 후 특히 조작된 누명을 무수히 뒤집어쓰게 된 의사(醫師)라는 이유로 회의(懷疑)를 달랠 길 없어 차라리 그만두는 게 도리라고 수없이 되풀이하였지만 막상 그렇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주-2) 나만 바라보며 매달린 수많은 환자 때문이다. 의사라면 늘 하던 일을 하고 있던 터라 전화 속의 진솔한 젊은 친구의 말로 특별히 감동될 일이 아니건만 그래서 버티고 있는 이유를 찾았노라 우쭐대려 했다. 구차하게 말이다.
봄이지 싶다.
넉넉한 인상에 대체로 건강해 보이는 30대 초반의 젊은 친구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소상한 내용을 밝힐 수 없는 의사의 입장이라 결과만 말하지만 부부 관계가 나이답지 않게 잘 안 된다는 이유였다. 모 대학병원 비뇨기과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와 연이 닿은 것은 입 소문으로 해서였다.
혈액검사를 했다. 결과 의문이 생겼다. 세밀한 면담을 하고는 또다시 검사를 했다. 분명 정신과 의사의 부부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혈액 검사에 나타난 수치들은 두 번 다 범상하지가 않았다.
“일단 종합병원 내분비(內分泌)과에 가서 정밀 검사를 다시 받도록 합시다. 이상이 없다는 판정이 되면 그 때 도와줄 수 있으니 그렇게 해도 늦지 않을 거요...”
“아니, 뭐가 잘 못 되었습니까?”
권고대로 그는 했다. 3주 후인가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뇌하수체 암이래요. 다행히 빨리 발견하게 되어 생명이나 생활에 지장은 없다고 합니다. 수술을 하기로 했어요. 선생님 덕택이죠. 정말 감사드려요. 수술 후 찾아뵈겠습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충격을 어떻게 해서든 줄이려고 대체적인 상태를 설명해 준 까닭에 그는 비교적 잘 견뎠다.
전화를 받고 보니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생각뿐이지만 기억에서 소멸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의사의 도리이면서 이런 일로 기뻐하는 마음이 왜 있어야 하느냐는 생각에 이르자 조금은 마음이 썰렁했다. 티를 내고 있었다는 그런 생각이었던가 보다.
보람이긴 하다. 그래서 의사가 있다. 그러나 난데없이 창 밖의 공기에 감사하는 기분과 다를 것 없다는 생각에 비유되자 비릿했다. 전문화된 현대 의학에서 자만심과 권위를 내세워 역설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일이 혹시 없었는지 더듬어본다.
마음이 편한 것이 아니었다. 몰라서면 그래서, 알면서 몇 푼 돈을 벌겠다고 했다면 그것은 이러나저러나 죄이기 때문이다. 결정적 죄에 해당한 기억은 없는 듯 하지만 세태(世態)가 인감(印鑑) 대조 필처럼 떠오르면서 스쳐 가는 생각들이 내내 씁쓸했다. 의사의 책임이든, 환자와 공모한 책임이든 하여간 맛은 텁텁했다. 당연한 것으로 우쭐해야 하다니, 그래서 우화(偶話)일 뿐이라 여겼다.(주-3)

둘째, 무심히 뒤쫓던 짐차를 황급히 따라붙어 기를 쓰고 세우게 했던 일이 있었다.
나는 퇴근길을 무척 즐긴다. 정말 나 아니고는 느낄 수 없는 나만의 안락한 생각이 함께 어우러지는 매우 소중한 나만의 시간이 거기에 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자유를 마음대로 즐기는 시간, 뒤미처 아내와 식탁에서 마실 시원한 맥주 한 잔, 그런가 하면 깊은 사색에서 세상을 확 바꿀 것 같은 기발한 생각들,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뉴스와 국악(國樂)과 서양 고전음악을 내키는 대로 골라들으며 집을 향하는 고속화 도로엔 짜증스런 신호등(信號燈)이 없다는 점에서 절반의 피로를 늘 풀곤 했었다. 90년만의 더위라고 떠들썩한 2001년 8월의 계절을 냉방으로 완벽하게 차단하고 달리는 것이 어쩌면 더 기막힌 즐거움이었을 것이라 보지만 어쨌거나 하루 중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다.
분당으로 향한 복정리 진입 차들을 따돌리자 1톤 짜리 트럭이 3차선 앞에 달리고 있었다. 여유를 즐기며 무심히 따랐다.
한데 별안간 눈앞에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짐을 얽어맨 고무줄이 탁 끊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음료수며 생활 용품의 박스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것들을 얽어맨 로프가 뜨거운 햇볕에 퉁겨져 짐들이 조만간 쏟아지게 될 위기에 있었다.
타이어를 잘라 만든 고무줄 같은 연상에서 매우 강인하다고 여겼던 그 줄이 끊어진 사연이 무엇인가에 앞서 거의 반사적으로 다소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2차선으로 끼어 들었다. 트럭 운전사를 향해 클랙슨을 눌러대며 소리를 질렀다. 조수석의 유리창을 내리고 고함쳤지만 들릴 리 없었고 오히려 운전사는 웬 늙은이가 귀찮게 간섭을 하느냐는 투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트럭을 세울 수는 있었다. 80km의 흐름 앞으로 끼어 들어 막으면 간단한 일이다. 문제는 브레이크와 동시에 짐이 와르르 쏟아질 것이 뻔했고 뒤따르던 차들이 날벼락을 피하느라 뒤엉킬 것이라 생각하니 앗질 했다. 그가 알아차려 속도를 서서히 낮추어 갓길에 서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나의 끈질긴 손짓과 클랙슨에 그는 의미를 알아차렸다.
백미러 속의 그 트럭은 갓길에 섰고 아무 사고도 없었다. 차들의 흐름 속에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집으로 내처 달렸다. 차 속의 음악과 에어 콘 찬바람이 열기를 식혀주었다. 너무 시원했다. 했어야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았던 것이 두 번째 우화(偶話)다.

셋째, 사업자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세무 조사는 일상적 일이다. 하지만 미묘한 마음의 파문과 함께 금년에 했던 세 가지 중에 하나로 가장 큰 자리를 잡았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우화(偶話)중의 대어(大魚)였고 그래서 이렇게 글이 흘러나오고 있지 싶다. 결코 우화(寓話)는 아니었으니까.
열흘간, 2001년 7월 16일부터 7월 27일까지 정기 세무 조사였다. 7월 17일이 제헌절이라 7월 27일까지였다. 왜 이 미묘한 시기에 조사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있었지만 언론(言論)도 받는 마당에 시기(時期)를 미룰 생각은 없었다.(주-4) 당당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준비했다. 아마도 신문들에 대한 세무 조사가 의미하는 정치적 의도가 마음에 걸렸기에 뾰족한 마음이 증폭된 까닭이었나 보다. 이건 전적으로 피해망상을 노상 보고 치료하는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신경 회로가 뒤엉킨 편견일 것이다.
세무 조사를 이렇게 집중적으로 받아본 적은 없었다. 1974년 3월 개원(開院)한 이래 세무 행정에 협조를 잘해주어 감사한다는 공문을 받은 적은 연달아 있었던 조그만 의원(醫院)이라 갑작스럽기만 했다. 과거가 건강하다고 지금도 그렇다는 보장이 없듯 협조가 과거에 잘 되었다고 현재도 세무 협조가 세무서에서 생각하듯 그렇게 잘 되고 있다는 보장이 없는 이상 그것은 의문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이럴 때 생각하는 발상이 왜 지금이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의약 부업으로 지난해 유례없는 의사들의 집단 반발이 있을 때 누차 예고된 경고가 있었다는 점이 번개처럼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상당히 적절하지 못한 글과 연구를 한답시고 반정부적 공격을 날카롭게 쑤셔댔던 사실들이 떠올랐다.
다음과 같은 요약본을 청와대는 물론 언론과 집권당의 몇몇 국회의원에 보냈다. 당연히 거기엔 꼬집는 표현들이 따라다녔다. 전자 메일의 선물이지만 그만큼 웃기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사를 받을 만큼 대단한 존재는 아니라 믿었지만 죽마지우와의 모임을 파기한 이유가 침이 닳도록 ‘김 선생’을 외쳐댄 때문이고 보면 자격지심이 발동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고백성사를 하는 것은 일종의 도리일 것이다. 그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는 소신에 공감하며 믿고 있는 탓이다. 그래서 작정했다.

의료 정책 관련 비서 귀중(청와대)

나라 살림에 정신없이 바쁘시고 힘드실 분들께 국민을 위해 수고하심에 우선 감사 드립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 정동철(65세)입니다.
의료 정책의 핵심은 양질의 진료에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일 것입니다. 당연히 그 주인공은 환자(국민)이죠. 의사도, 약사도, 정책 자도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이익이나 업적을 위해서라면 매우 비관적일 것입니다.
저는 공산치하 당시 모스크바, 베오그라드, 그리고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7월엔 프라하에 다녀왔습니다. 개인 의료보험에 의존한 미국과는 달리 국민 의료보험이 주축이 되어있어 양질의 진료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드디어 최근 <가지치기 정책>을 하여 적자폭을 줄여가고 있음도 이번 방문에서 알았습니다. 영국은 물론 구라파 대부분의 나라가 의약 분업에서 국민 보험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도 잘 알려진 일이고요. 그러나 개인 보험이 병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구호로서 의약 분업에 대한 찬반을 강조할 생각이 없습니다.
조그만 예비 연구를 했습니다.
의료 분업이 환자 치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에 비 의료인을 위한 연구의 <요약>이 정리되어 첨부 파일로 보내드립니다.
시간이 없으실 겁니다. 그러나 참고 자료는 될 수 있다고 봐서 보내드립니다.
필요한 요구가 있으면 성실히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수고하시기 바라오며 맺습니다.

정동철 드림
2000년 9월 15일
cdc35@hananet.net

첨부 파일 내용:
의약분업이 환자치료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예비연구 I-
정동철* 정세훈**

A Preliminary Study of the Therapeutic Effects after the Changed National Medical Services I-
Dong-Chul Chung, M.D.* Sae-Hoon Chung, M.D.**

* 정동철 신경정신과 의원. Chungs Neuro-Psychiatric Clinic, Seoul. Korea. September 2000.
** 지방공사 강남병원 정신과, 전공의 3년차. Resident of Psychiatric Services of Kang Nam General Hospital Public Corporation, Seoul, Korea.


요 약

연구 목적은 의약 분업에 대한 단순 찬반 조사가 아니다. 1개월의 계도 기간을 거친 후 2000.8.1.부터 전국적으로 일시에 시행된 의약 분업 후 치료 효과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 연구하여 국민 건강을 위한 양질의 치료 대책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얻으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조사 대상 및 방법은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면접 조사를 통해, 2000.8.1.-8.31.사이의 정동철 신경정신과 외래환자 115명(여성 47.0%, 남성 53.0%)을 대상으로 했다. 저자들이 정신과에 종사하고 있는 의사였으며, 원외 처방 후 재원 율이 84.4%(97명, 조사 기간 이후 재원 또는 전화 호소는 제외한 것임)에 달하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방 건수(총 303건 중 원외 186건-61.4%, 원내 117건-38.6%)중심이 아니라 환자 수(115명)로 한 것은 환자의 치료 효과 추이를 보기 위해서였었다. 원외 처방이 조사 대상 115명의 61.4%로 나타난 것은 약을 구하지 못한 13명이 원내 처방으로 전환되었던 이유다. 편견을 최소화하기 위해 저자들은 기간 중 재 폐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높은 재원 율은 특히 <정동철 신경정신과 의원>의 특수성과도 관련이 있다. 이미 5년 전부터 표시 된 진료 시간외 야간 및 공휴일 응급 초, 재진 환자들은 필요에 따라 언제나 저자(정동철)와 24시간 전화 면담이 가능한 <착 발신 전화 연결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무료로 운영되었으며 환자는 그러므로 항상 치료자 곁에 있다는 안도감을 갖고 있었다. 본래 정신과의 특수성에 따라 환자-의사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치료의 기본인 점이 철저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본 예비 연구를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요인이 되었다. 반대로 그런 이유로 치료자 의견에 동조할 소지가 크므로 그것을 극소화하려 했다. 질문 내용 중 그들 스스로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을 이용한 것이다. 예컨대, 원내 처방이 필요하다면 구조화된 응답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래야 하나요? 느낀 데로 얘기해 주세요"라든가, 의약 분업의 참 뜻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94.7%)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여 찬성할 수가 없는지 편하게 생각되신 데로 얘기 해 주실까요?" 하는 식이었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수시로 의견 교환을 하였으며 공식적 평가를 적어도 5차례 이상 가져야 했다. 조사 내용은 1) 원 내,외 처방에 따른 치료 효과의 변화, 2) 원외 처방과 대체 조제의 실태와 약사의 태도에 따른 치료 효과, 3) 의약 분업에 대한 환자들의 찬반 태도와 치료 효과에 미쳐진 영향 등이 핵심이었다. 연구 결과 조사 기간 중 전체 환자(115명)의 원외 처방 환자 수는 78.3%(90명)이었으며, 원내 조제는 21.7%(25명)이었다. 저자들은 중요한 결과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었다.
1. 의약 분업 전의 치료 효과에 비해 원외 처방 결과 증상이 악화된 환자는 78.8%(72명)였었으며, 전과 동일한 경우가 14.4%(13명) 였다. 좋아진 경우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최초의 증상으로 되돌아간 경우는 물론 공황 상태에 이르기도 했으며(환자들의 서면 진술 내용), 아예 치료를 포기하겠다는 사례도 있었다. 반면 원내조제(25명)의 경우 증상 호전은 88.0%(22명)에서 유지 또는 개선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2. 환자들의 원내 조제 희망이 95.6%(110명) 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우려(불신에 대한 불안 72.2%)처럼 대체 조제는 원외 처방 90명중 90.0%(81명)에 이르렀으며, 약사의 통지 의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48.1%(39명)였다. 한편 원외 처방을 약국에 제시한 때를 기점으로 대체 조제나마 받을 수 있는 평균 시간은 10시간(최소 30분, 최대 48시간)이 소요되었다. 한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경우는 7명에 불과했으며, 많게는 16곳을 헤매야 했었다. 아예 처방 약품을 구하지 못한 경우가 14.4%(13명) 였다. 따라서 환자 치료의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3. 환자들은 현재의 의약 분업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90.3%((90명)가 반대했다. 그 내용은 시기상조(38.2%), 환자의 선택권을 강조하겠다는 뜻에서의 임의 분업(52.1%)이 주된 것이었다. 그들의 의약 분업 이해도는 의약품 오, 남용 방지를 위해서라고 익히 알고 있었다.(94.7%, 109명). 국민의 의사 존중을 위해 비록 100대사업으로 검증된 것처럼 되어있다 해도(대선 당시 실제 지지율은 국민 전체의 40%미만으로 추정됨) 국민 건강이라는 매우 중요한 의료 정책을 단계적 방법이 아니라 일시에 시행한다면 당연히 환자가 주체이므로 국민투표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76.5%(88명)였다. 그 이유로 환자들이 자유롭게 서술한 내용을 그대로 정리한 결과국민적 주요 정책 결정에 국민의 의사가 철저하게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36.3%, 32명)과, 의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면서까지 지지율을 고려한 정책(62.5%, 55명)이 부당하다고 강하게 지적되었다. 역시 치료 효과에 부정적 요소가 되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4. 한편 현 의약 분업 시스템에 대한 언론 보도와 시민 단체의 태도에 대해 환자들은 부정적이었다. <환자의 심정을 아는 언론과 시민 단체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언론의 편파 보도는 73.9%(85명)였으며, 시민 단체는 68.6%(79명)의 불신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시민>이라는 단어를 누가 인정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으며,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그 깊숙한 속사정을 이해하고(?)있는 표현도 많았다.

복지부는 2000.7.1. 시행하기로 되어있던 의약 분업을 의사의 준비 미비로 1개월간의 계도 기간을 갖는다고 했다. 약국은 모든 준비가 이미 끝났으며 의약 분업으로 환자의 부담은 없다고 강조한바 있었다.(TV, 신문광고 등) 그러나 현실은 위의 결과처럼 달랐다. 무엇보다 연구 목적의 핵심 문제가 되고 있던 치료 효과의 부정적 측면이다. 대체 조제가 약사의 통지 없이(48.1%) 2, 3차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환자에 따라서는 공황에 이르는 정도가 발생되었고 여기에 치료자의 심각한 고민이 뒤따르게 되었다. 환자의 문제 핵심을 이해하고 그에게만 맞는 평가와 정리를 해 줌으로써 도와줄 수 있음에도 치료의 핵심을 약사에게 넘겨야 한다는 것이 그렇다.(현 의약 분업 시행규칙과 약국의 관행) 전부는 아니지만 약사가 많은 대기 환자 앞에서 "왜 이런 약을 먹어요? 뭐가 그렇게 불안한데요? 습관성이 생겨요. 이미 단종 된 약이고요. 대신 이 약을 쓰면 괜찮을 거요"라고 면박을 주는 것이 그 예다. 분을 삼키지 못하고 집에 와서 전화로 항의를 하지만 약국 문을 나서면서부터 숨이 막히고 쓰러질 것 같던 증상은 좀처럼 해소되지가 않는 것이다. 물론 의사가 미리 이런 점에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지만 자칫 약사에 대한 비방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적기는 하지만 어떤 약사는 아주 좋은 처방을 받아왔다고 하기 때문이다) 결국 준비되지 않아 대체 조제가 진행됨에 따라 나침반을 잃은 선장처럼 의사는 다음 처방을 어떤 기준으로 주어야 할지 난감하게 된 것이 환자를 더욱 불안하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계기판 없는 운전을 상상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한마디로 치료 효과에 대한 기준 점을 잃어버린 대체 약물 처방으로 <치료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절감해야 했다.
부득이 의약 분업 취지에 위배되는 원내 처방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했었다.(14.4%, 13명) (물론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정신과에 예외 조항을 만들었으므로 법적 하자는 없다. 하지만 일단 문제가 발생되면 전문가의 의견과 양심은 철저하게 무시된 체 의무만 강요될 소지가 명백한 것이었다. 실제로 조사 기간 중 환자들의 항의를 받은 복지부의 한 사무관은 전화로 힐책하듯 강요했었다. 예외 조항을 왜 적용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인근 약국에 연구자(정동철)가 소지하고 있는 전문 약품을 나누어주어 약국 조제를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그 약품은 보건소에서 주기적으로 숫자 파악을 한다. 만일 문제가 있으면 법적 책임을 저야 하는 약품이다. 공문을 요구하니 그것은 불가능하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결과 악화되었던 환자의 증상을 다시 복원할 수 있었지만 이미 치료의 방향(작품)이 흐트러진 환자의 15.1%는 원점에서 새롭게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문제가 야기되었다. 뿐인가, 계속 원내 처방을 해선 안 된다는 현실과 당장 증상 제거를 위한 조치(원내 처방)는 <의사의 양심과 현실>이 <치료자>의 불안으로 이어져 더 이상 안정된 의사의 자리에 있을 수 없음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아울러 약물 치료의 tapering(의사로부터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약물 복용을 끊어갈 때 증상 호전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른바 소수점 이하의 처방을 내게 되는 과정이며, 이를 의사가 악용하면 의료 과오가 됨)을 위한 미량의 처방은 <의사들의 부당한 트집잡기>라는 약사들의 주장에 언론이 동조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의약품의 오, 남용 방지가 아니라 필요 이상의 과량의 약물을 장기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의료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은 채 지속되는 의약 분업 상태에서 <의사>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바로 <위선>이라는 심각한 자괴감에 빠져들게 되어 폐업 내지는 전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 이기주의>로 오도되므로 진퇴양난에 빠져들게 되어 <치료자> 본연의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결코 정신과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의사> 전체의 공통 숙제가 될 것이다.

양질의 진료만이 의료 정책의 핵심이다. 새롭게 등장한 표어, <처방은 의사에게, 치료는 약사에게>(환자들이 표현한 현실)가 심각한 고민 없이 일방적으로 지속될 때 보건 정책은 물론 <국정 운영> 전반에까지 영향이 미쳐질 가능성이 시사되고 있었다.(주-5) <의사는 국민의 적>이라 오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발사(면도날)의 손이 불안과 위기의식으로 떨릴 때 과연 어떤 결과를 예상해야 하는 것인가? 이발 의지에 편히 앉아 맞길 사람이 보기에 딱할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작용을 고려할 때 그런 이발사는 폐업이나 전업이 오히려 권장되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의약 분업이 곧 선진국>(국무총리 이한동; 2000.8.1.자 중앙일보 광고)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one stop해결(각종 인허가 해결에 관청을 왔다갔다하지 않고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새로운 한국적 paradigm을 바탕에 둔 의료 시스템이 심도 있게 연구 개발되어야 하리라는 점을 저자들은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구는 따라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중심 단어: 의약 분업, 치료 효과, 대체 조제, 의사-환자 관계, 한국적 의료 시스템.

참고: 논문 원본은 학술지에 계제 될 예정이며, 이 요약은 비 의료인을 위한 것이므로 임의 편집,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저자들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Email:cdc35@hananet.net Tel:02-424-5464 FAX:02-424-2059

전자 메일은 나의 조그만 편견(?)을 유혹하곤 했다. 제법 가깝다고 여긴 국회의원에게 같은 메일을 보냈다.

무척 바쁘시죠?

저간의 소식들은 대체로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사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점은 갈수록 이해가 커 지시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 조그만 연구 <요약>을 첨부 파일로 보내드립니다.
역시 생각보다 세상의 민심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넘지 못할 커다란 산이 아니면 건너지 못할 강이 곧 나타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임상 현장에서 그렇게 엄청난 얘기를 하냐고 의아해 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공산 치하 당시 모스크바, 베오그라드, 그리고 헝가리를 방문한 적이 있었죠. 금년 7월엔 프라하에 들렸습니다.
크렘린 궁전을 둘러보고, 레닌그라드(당시의 이름)를 돌아보며 왠지 섬뜩한 모스크바를 떠나면서 이 나라는 곧 망할 거라고 생각했죠. 돌아와 바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공개적으로 말입니다. 결국은 얼마 가지 않아 곧 망했습니다.

불길한 느낌이 듭니다.
워낙 서민적이고, 나라 사랑이 끔찍한 김 의원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캐나다 얘기를 들으면서 장차 나라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야 조그만 의원을 운영하는 하잘 것 없는 의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전국을 돌며 예전만은 못하지만 강연을 하게 되고 이런 저런 민심을 듣게 되죠. 의약 분업이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나쁩니다. 해서 구호가 아닌, 또 찬반이 아니라 실상을 파악해야 되겠다는 점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아시는 바 아들이 정신과를 전공하고 있어 함께 했습니다.
의약 분업이 환자 치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예비 연구-I-이 그것입니다. 물론 학술 논문으로 전문지에 실릴 예정으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급박한 현실에 필요한 분들께 자료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와대를 비롯해서 언론에도 보냈습니다. 순전히 참고 자료용으로 말입니다.

바쁜 일정에 읽어 볼 시간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긴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입니다. 요약된 내용보다 실상은 더 심각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역시 참고 자료로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정감이 가까이 느껴지는 김 의원님께, 원하는 일이 늘 함께 하기를 바라오며 줄입니다.

정동철 드림
(2000.9.16.)

완성된 논문은 좀 방대했다. 2001년 3월 14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정식으로 접수되었다.(접수 번호:2001-033) 그러나 동년 5월 21일 표현의 과격성과 계량화(計量化)에 문제가 있다는 단서를 달아 조건부 또는 계제 불가로 반송되었다. 지역 현장 임상 체험이 없는 심사 위원들의 입장에선 한계라고 여겼다. 계량화는 일찍이 없었던 분업 사태에 대한 연구 논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다 예비 연구라는 점을 그들은 직시하지 못했다. 규정을 어기면서 2개월 이상 고민한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스스로 수정할 의사가 없음을 알려주고 역사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삐딱한(?) 시각이 최근 조선일보 인터넷 독자란에 올려질 정도로 발전했으니 그간의 표현들은 짐작되고도 남으리라 스스로 돌이켰다. 물론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작성자 : 정동철 작성자ID : cdc35 작성일 : 2001-08-19 조선일보

나의 국적은 어디이며, 나의 대통령은 누구인가?
긴말이 필요하지 않다.
대체 나는 국내에 있거나, 해외에 나갈 때 나의 국적을 어떻게 써야할 지 망설여진다.
<대한민국>?, 아니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8.15.(2001년) 평양 발 소식을 듣다보면 요컨대 우리의 대표가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강령에 따라 통일을 해야 한다는 짙은 밑줄이 그어지는 모습을 본다.
남쪽의 대표라는 점, 그리고 그것을 정부가 하루만에 안 된다더니 허락한 사실, 게다가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김일성 주체 사상에 의한 통일 이념을 계승해야 한다고 할 때, 결국 나의 국적은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뜻이 될 것이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항공 운항은 지구인이 이용하기엔 부적당한 것으로 판정을 받았다.
해외 진출과 탈출은 의미가 다르다고 KBS 라디오의 어떤 MC가 말했다. 이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의 심정이 북한에서 탈출하는 것과 양적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질적으론 거의 같다는 내연의 뜻이 있었다. 삶의 질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한 가닥 희망을 갖기는 한다.
나의 세금의 일부를 어떤 형태로든 쓰고 간 남쪽 <대표>가 진정한 대표라는 사실이 검증된 바 없다는 점(시민 단체도 마찬가지지만), 김정일에 대한 정부의 매달리기 식 애원이 애처롭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전체 의사와는 관계가 없으리라는 점, 김대중 대통령의 비극은 이미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들, 그리고 국면 전환을 위한 고도의 수순 속의 하나로 진행되고 있는 언론에 대한 다양한 압박,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서 담세율 26%를 담보로 국민 모두가 편하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못 살고 어렵지만 그 점에서 공평하게 되었다는 사실 등이 아직은 정확하게 검증된 것이 아니고 또 그것은 결코 이 나라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서 위로를 갖는다.
바로 그 때문에 아직은 나의 국적은 <대한민국>이고 나의 대통령은 <김대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여생을 얼마 두지 않은 정신과 의사다.
세무 조사를 받았고, 또 어떤 압박이 올지 모르지만 감히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에 비하랴!
원한다.
나는 대한민국 국적을 당당하게 뻐기고 싶다. 나는 나의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씨라고 자랑하고 싶다. 제발 이 같은 소망을 저버리지 않는 민주당과 최고 수반인 대통령의 기계를 희망한다. 우리 모두의 희망이 아닐까?
이제 우리는 공멸의 문턱에서 갈림길에 있다는 점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노련한 정치학자(특히 게임 이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교수)가 말한다. 변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며, 대한민국이다. 북한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장차 세계는 미국과 중국(2020-30년대)이 주도권 쟁탈전을 다투게 될 것이다. 일본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전쟁이 아니라 패전의 참담함을 조만간 겪게 될 것이다. 그 최후의 발악이 고이즈미를 앞세워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면서 역사를 왜곡하겠지만 먹혀들 형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할 일은 앞의 말한 국민의 소박한 바람이다.
외국의 정치학자들은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에 참으로 바보스럽다는 역설적 조언(?)을 한다. 뒷감당이 너무 어려워 평가받을 결과가 너무나 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적 유지를 위해서 말이다.

얼마 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미치 엘봄 지음)을 읽었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결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없다고 모리교수는 말했다. 이어 하지 말아야 했을 것을 했다는 점에 용서를 구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했어야 할 것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더 큰 용서가 있기를 바란다는 말에 매우 커다란 공명(共鳴)이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준비된 마음이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가로등은 사실 일정한 거리를 지킨다. 몰려있다면 가로등의 의미는 상실될 것이다. 감히 내가 가로등일 거라는 착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은 늘 나의 마음을 얽어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해야 할 것을 한다는 것이 지식인의 도리가 아니겠느냐는 소박한 생각 때문이다.

조선일보 독자마당
작성자 : 정동철 작성자ID : cdc35 작성일 : 2001-07-07

취중 언행은 법적 책임이 있다
지방법원은 물론 대법원에서 정신감정의 증인으로 수십 건의 경험을 갖고 있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작금 x씨의 취중 발언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취중의 얘기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대부분의 인식인 듯 합니다. 민주당 대변인은 그런 말을 신문에 실릴 수 있을 만큼 언론 자유가 보장된 증거라고 자찬하면서 역시 취중의 얘기를 지나치게 확대한다는 뉴앙스를 보였습니다.
추미애씨에게 묻습니다.
형법 제10조 罪라는 항목을 모를 리 없을 것이고, 취중의 언행이 죄의 요건이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취중에 한 언행은 책임이 없다는 해석은 적어도 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닐 것이니까요. 물론 x씨가 그런 점을 인정한 발언은 없습니다. 하지만 암암리에 술기로 한 말에 신문이 예민하게 대서특필한다는 점에 무척 기분이 안 좋아 보입니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냈을 때 취중이라 무죄로 생각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습니다. 크든 작든 그 책임을 전적으로 저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고, 그래서 경찰의 조서에 순순히 응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x씨는 집권당의 국회의원입니다. 언행 하나 하나에 무게가 실린 것이라는 점을 스스로 모를 리가 없을 것입니다. 아니 그러기에 더 그렇게 내키는 대로 말한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국민을 무시한 심각한 착각이죠.
세상 사람들 모두가 권력의 의지(Will to Power)를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왜냐고요? 스스로 경험하고 있는 막강한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고 있듯이 사람들은 그것이 하늘처럼 그립죠.
曲學雅世라 했군요. 학문을 한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죠. x씨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학문을 한 사람입니다. 지식인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싸르트르가 말한 지식인의 회색적 태도는, 스스로 가진 자가 된 까닭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가치관에 얼마나 큰 혼란을 주고 있는지 지적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데 지금 x씨는 깡패도 아닌 형편에 지식인에 속하면서 어찌하여 정의 구현의 잣대를 그렇게 흔들어 놓고 있는지 그것이 매우 불안합니다.
x씨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들 소시민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 정체를 정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말합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핵심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 사랑이 지금 마구 무너지고 있습니다.
2000년의 話頭가 <거짓말>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노래 제목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영화 제목을 두고 하는 얘기도 아니죠. 바로 오늘의 政治가 자의적 해석을 너무 능란하게 하는 것으로 해서 거짓말이 화두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닐 것입니다.
바랍니다.
언젠가는 X같은 놈이라는 올가미에 저 역시 걸려들겠지만 정말 걱정해야 할 일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지역감정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영호남의 대결이 아니라 선의의 호남 사람들이 정권이 바뀔 때(그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다음 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영원히 민주당이 대한민국을 지배할 수 없다는 일반적 개념에서 말하는 것뿐입니다.) 국민적 敵으로 피해를 입게 될 날이 결국 당신들과 같은 취중 발언의 대가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너무 가혹하고 비참한 것이 아닐까요?
국민은 빵으로 살고 정객은 이데올로기로 산다는 것은 모택동의 얘기입니다. 국민의 마음을 일방통행의 TV로 세뇌시키는 것은 간단할지 모르지만 한계를 모를 리 없겠죠. 지식인의 독점적 신문에서 사실 요즘 지식인은 社說마저 잘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독자죠. 그들만 없애면 뜻대로 되리라 볼지 모르지만 국민들이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솔직히 불쾌합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취중에 한 말을 요란스럽게 떠들어댄다며 어깨 위에 턱을 올려놓느냐는 것이죠. 게다가 그만큼 언론의 자유가 있는 증거라고 거들고 있는 모습을 볼라치면 차라리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정하고 싶습니다.
吾等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 민임을 선언하노라..
3. 1.운동의 뜻이 이렇게 무시당해도 좋다고 보나요?
대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거듭 느끼게 된다. 가로등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어둠을 밝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십자가나 정객이 몰려있다는 것은 후미진 곳을 걷기 어렵다는 뒷길이 더 많음을 말한다.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는 점이 얼마나 충실하게 될지 사실 자신은 없다. 그런 말을 할 위인도 아니다. 그래서 우화(偶話)를 통해 위로를 받으며 비참한 자신을 달래는 어리석음밖에 달리 방법이 없나보다.
지방의 모(某)중학교 교장이 쓴 엽서 한 장이 엊그제 조선일보 논설위원 실에 소개됐다고 한다.(조선일보 김대중칼럼-2001.9.8.)

“지금 종전의 학교 분위기는 간 데 없고 참 교육한다는 전교조와 한교조, 교총 등 3파로 분열을 가져와 ꡐ교무실은 싸움판 ꡑ,ꡐ교감은 눈치 판 ꡑ,ꡐ교장은 미칠 판 ꡑ, ꡐ학생은 놀자 판 ꡑ,ꡐ교사는 죽을 판 ꡑ,ꡐ교실은 난장판 ꡑ입니다. 이를 제재하면 보수적인 권위라고 하면서 ꡐ반 통일 ꡑ,ꡐ반 개혁 ꡑ, ꡐ반민족 ꡑ이라는 극단적인 용어로 대항하고 나서니 어찌 교권이 바로 서겠습니까? 특히 (북한의) 노동당 창당 기념 대회에 참석했던 장관이 있으니 어찌 2세 교육이 바로 서겠습니까? 지금 정치 ․경제 ․사회 ․ 교육 등이 총체적인 ꡐ깽 판 ꡑ현상입니다.ꡓ

과연 사실일까?
일기장의 한 토막이 뒤따른다.

9월 4일 7:40 화 맑음

148:119, 임동원(林東源) 통일부 장관의 해임 결의안이 어제 통과되었다.
왜 김대중씨는 이런 패배를 선택했을까?
이미 나의 예상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국면 전환에 능한 그의 묘수가 숨어있으리라는 예상이다. 별안간 북쪽에서 일방적으로 3월에 파기한 남북 장관 5차 회의를 그제 재개하자고 했다. 그것도 8.15 민간 대표의 의미를 이어가자는 뜻에서. 그것은 3대 원칙을 생각하면 김대중씨의 마음과 통하는 것일까?
햇볕 정책, 태양 정책(太陽政策, 일본 신문에선 그렇게 부른다), Sunshine Police가 지니는 뉴앙스는 김일성이 태양(太陽)이였다는 점에서 어딘지 맥이 통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통일부 장관이 생겼고 그것으로 뭔가 바램을 관철하겠다는 의지일까?

우화(偶話)속의 가로등은 제자리에 우화(寓話)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를 바라고 또 원한다. 마음과 마음들이 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 미물(微物)이긴 하나 스스로 함께 하리라 다져본다. 이름도 성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