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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가까이 덧글 0 | 조회 14,872 | 2009-04-17 00:00:00
정동철  


-사랑은 가까이-

좌선(坐禪)을 하듯 앉아 샤워를 하고 있었다. 아침 7시쯤. 추석 바로 전날이다.
아내는 떡방아 깐에 쌀을 찌러 갔고 나는 그 사이에 청소기를 돌렸다. 땀방울이 샤워 물줄기에 이내 씻겨졌다. 시원했다. 정말 상쾌했다. 반(半)가부좌(跏趺坐)를 틀고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감긴 눈이 좀처럼 떠지지를 않는다. 그때였다.(주1)
갑자기 잡다한 상념(想念)들이 머리 속을 뒤흔들었다. 폭풍 후 남지나해(南支那海)의 유리알 같은 바다 위를 떠오르는 날치처럼 거의 돌발적이었다.(주2)
“공원에 대추나무가 있는 줄 몰랐어요. 오는 길에 떨어진 대추가 있기에 몇 개 주었지요. 아저씨에게 하나 주려고 골랐어요. 아저씨를 졸라 산에 밤 따러 가자고 했거든요. 젊은 여자와 살려니 힘들다면서 가더군요. 밤은 없고 밤송이가 있어 주어다 조그만 소쿠리에 둥근 호박을 옆에 곁들여 가을을 방에다 장식했죠. 레이스를 바쳐놓으니까 아저씨도 보기가 좋다고 그래요. 요즘 저는 생에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어요. 선생님 덕분이죠, 백화점에도 못 가던 제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40대 주부, 겪어서는 안 될 숫한 어려움 속에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오로지 돈 모으는 재미로 살다, 난생 처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고, 컴퓨터까지 배우게 된 그녀는 노래 교실과 주부 대학, 그리고 수영장에 다니며 외로운 할머니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심부름도 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 줄을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면담(面談)이 시작된 후의 일이다.
“그땐 사람들이 밉고, 무섭고, 의심스럽기만 했었어요. 왜 그랬는지 참 이상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렇지가 않대요. 아저씨 아들이 회사에서 컴퓨터를 싸게 산다고 해서 부탁했어요. 팬티엄 586 정도면 2-3백만 원 하는데 백 삼십 만원이래요. 사달라고 했어요. 큰 회사니까 그렇게 살 수 있나 봐요.”
난 왜 이리 가난할까? 나 보다 훨씬 풍요로운 부인
PC통신으로 월 평균 2백만 원 정도는 번다.(주3) 인터넷에 웹 사이트를 비롯하여 아들의 것이긴 하지만 동문회(同門會) 회보(會報)(주4)를 올려놓고 여기저기 정보(情報) 사냥을 하면서 구식 컴퓨터를 개비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가 벌써 반년은 실히 넘었다. 아직도 망설이며 선 듯 사지를 못하니 하는 말이다.
“여보 참 웃기더라구요. 당신 방의 침대 같은 것은 사가는 사람이 없대요. 만원을 주고 사정(事情)해서 갖고 가라고 했더니 한 마디 하고 갑디다. 우리 집에서 쓸만한 것은 소파 하나 뿐이래요. TV와 전축을 보더니 지금도 이런 구식을 쓰냐면서 참 착한 아들을 뒀다고 하지 뭐예요. 훈이 새삼 자랑 스럽디다. 근데 거실 탁자를 보고 어디서 주어온 것 아니냐는 말에 쇼크를 먹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서울의 베버리힐즈라고 하는 아파트에 사는 덕분에 그나마 중고품상(中古品商)이 득달 같이 뛰어왔던 모양이다.(주5) 워낙 좋은 물건이 헐값에 나오기로 소문났다는 것이다. 한데 실망이 컸다는 눈치였다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예상외로 가난한 것이었다.
아파트와, 병원 건물의 경비 아저씨들, 청소 아줌마, 그리고 허드레 일을 하는 또 다른 아저씨며 관리실의 이런저런 아저씨들에게 줄잡아 30여명을 생각하며 아내와 나는 추석빔을 마련하곤 했다. 그리고 그밖에 밝히고 싶지 않는 배려(配慮)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빼놓은 것이 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를 않는다.
나의 발상은 사랑인가? 아니면 품위 때문인가? 곰곰 생각하니 마음이 가난하다는 점을 뒤미처 깜빡 했다.
벽암록(碧巖錄)의 ‘삼종병’이라는 대목이 순간 머리를 때렸다.
요즘 포교(布敎)다, 선교(宣敎)다 하면서 난리인데 세 가지 병을 갖은 장님과 귀머거리, 그리고 벙어리가 불쑥 찾아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내용이다.(주6)
바로 날 두고 하는 말 같다. 눈이 있으되 사랑을 보지 못하고, 귀가 열려있으되 동요(童謠)를 듣지 못하는 데다 말뿐 사랑은 먼 곳에 있을 따름 헛소리가 고작 이라, 정말 사랑을 해 봤는지 의문스럽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가슴을 예이는 사랑을 못해 본 것은 아니다. 지금에 와보니 그게 과연 사랑이었나 하는 것이다. 소유욕에 불타는 열정을 사랑으로 위장했을 뿐이었지 싶다.
놀랍게도 날 사랑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들은 날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師)”자 돌림의 나는 나와는 관계없는 까마득하고 아득히 먼 「사랑」을 겨우 모방했다. 다행일까? 그것은 바로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환갑을 넘어서야 겨우 어렴풋 알게 되었다.
“선생님 오래 사셔요.”
옥수수기름 한 병을 내밀며 컴퓨터 아줌마가 한 말이다.
도대체 난 준 것이 뭐란 말인가? 불행한 것은 그러고도 아직 행동으로 말없이 베풀지 못하고 있으니 세 가지 병을 갖은 사람은 바로 자신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벌거벗은 알몸이 거울 속에서 꼬집고 있다.
아, 가난한 자여! 공짜를 좋아하는 대머리가 우습구나
아내의 눈망울을 통해 겨우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은 내 곁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풍요롭게 사는 그 주부, 열 세평에 마음 가득히 계절을 안고 웃는 그녀에게 배운 것은, 그러고 보니 온통 내 주변엔 선생들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세상은 그래서 살만한 곳인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웃으며 삽시다.”
아내는 조용히 웃었다. 눈가엔 산대리어 불빛에 한 방울 이슬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듯 이웃을 그렇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이제 소망일뿐이구려
받을 뿐 언제나 빈손이었으니까.

주1: 직지사 만덕전에 않아 반가부자를 틀고, 발우공양을 체험한 적이 있었다. 산사의 다실에서 술기가 맴도는 송차를 마시며 돈오 득도한 듯 가짜 자신에 취했던 기억, 이제 생각하니 1111m 황악산 밑의 시원한 냇물이 부끄럽다는 것뿐이다.
주2: 1966년 베트남 파병 1진으로부터 귀국하는 남지나해는 유리알과 폭풍의 언덕이교하고 있었다. 거기 날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이 삶에 안주하고 있음을 보았다. 격랑의 공포는 사람이지 물고기는 아니었다.
주3: 데이컴에 50%, 전자정보 기획사에 25%를 떼 주고 떨어지는 돈
주4: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동문회장이 되면서 회보를 직접 편집 제작했다. 1년간 격월로 6회를 발행하다 보니 회원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인쇄 전문 업체에서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 불만이 컸다. 외화내빈, 이른바 서열을 무시하며 동문의 상하를 고루 기회균등으로 편집함과 아울러 기획기사를 다소간의 학문적 에세이로 엮어가고 있었지만 프린터에 의한 회보는 서울대학 답지 않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나는 2년 임기의 회장을 1년으로 사퇴했다.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입장차가 컸기 때문이다.
주5: 1990년대 후반엔 주상복합주거형태가 없었다. 아시아선수촌은 압구정동 일대의 고가 아파트보다 훨씬 주거환경이 좋았고, 당연히 돈 많은 사람들이 많았다. 걸맞게 새로운 가구와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느라 이른바 폐품은 중고상이 노리는 노른자위가 되었다. 거저 얻다싶은 처지에 고가로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6: 선불교 화두집의 하나로 나에겐 진의를 터득하기에 벅찼지만 무척 배우는 것이 컸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