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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비리 덧글 0 | 조회 14,379 | 2009-04-17 00:00:00
정동철  


-밝은 내일을 향하여-학교 비리를 보면서

때는 지금인가 싶다.
무차별 공격이 시작됐다. 포격이 여기저기서, 그것도 다양한 목표를 향해 요란스럽게 터지고 있다. 결과는 일방적이다. 그건 처음부터 예정된 시나리오인 것이다. 아니 시나리오가 아니라 현실이다. 시원하다. 뭔가 신선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무겁다. 어딘지 답답하다.
전쟁 얘기가 아니다.
존경하는 일부 교수님과 위대한 일부 국회 의원님들에 대한 돈 거래가 사회면이 모자라 일면 톱기사로 실리는 신문을 보면서 스쳐 가는 모두의 마음들이다. 분명히 여기저기 난리가 난 게 틀림없다. 불난 데 부채질한다고 투서와 전화가 쏟아진다니 한이 맺힌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던 모양이다.(주: 1991년 전교조 문제, 및 굥육법 개정으로 조용할 날이 없던 1993. 4. 아들의 대입 부정과 관련 崔炯佑 사무총장의 사표가 金영삼 대통령에 의해 수리됐고 그 해 2월엔 교육부에서 광운대 부정 입학 사건과 한양대, 덕성 여대 등의 대리 시험과 관련 「대학 입시 부정 방지 종합 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지만 결코 조용할 수가 없었다. 실력보다 권력과 돈이 우선하는 울분이 터져 나온 것이다.)
자조적 의문이 뇌리를 스치게 된다.
일종의 비애다.
부정 사건은 분명히 의기투합된 양쪽 모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워낙 그 경쟁 또한 심해 단위가 높아지고 거기서 패배하면 쓴잔을 마시고도 하늘만 쳐다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자업자득이라 위로하며 멍든 가슴을 안고 고행 길에 부모와 자녀는 허덕인다. 오죽하면 병이 생겨 상담실에 무수한 비밀을 저장하게 할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에 가겠다는 수요자의 변칙적 방법이 관행으로 되어, 그렇지 못할 때 바보가 된다는 불문율 속에 묻혀온 기막힌 사연들일 것이다.
교수를 변호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어떤 분들은 광고에 나가서 돈을 벌망정 부정은 안 하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있을 뿐 아니라 이것도 저곳도 일체 타협하지 않는 교수가 대부분이란 것이 사실이기에, 우리들 수요자의 끈질긴 공략전(攻略戰)이 오히려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번 짚어보게 한다.
미국 교포들의 얘기다. 미국의 교통순경이나 선생님들은 처음 교포들의 사례나 뇌물에 눈 쌀을 찌푸리고 오히려 창피를 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그들도 인간인지라 한국의 교통 아저씨(일부지만)나 선생과 교수처럼 역전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겨울 방학이 되어 네 분 교수에게 인사를 했다. 세분에겐 일금 10만원씩, 한 분 여 교수님께는 스웨터를 선물했다. 네 분은 한결같이 미국에서 갓 영입된 교수였다.
여 교수님은 선물이 너무 크다고 찜찜해 했고, 남자 교수 한 분은 아예 돈을 돌려주겠다고 통보해 왔다. 사실 당황했다. 돈을 돌려준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그것을 학생들에게 공개하고도 남을 위인(偉人, 주: 나중에 알게 된 그의 독선적 성품은 안하 무인격이었다. 불행하게도 바람과는 달리 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일찍 떠났다.)이라 다급했다.
“오해가 있었다면 철저하게 저만 탓해 주십시오. 딸에겐 물론 강의실에서 일체 거론하지 않기만을 부탁드립니다. 교수님이 아시다시피 제가 아이 점수를 부탁 드린 것도 아니고 무슨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비록 이곳 외래 교수이긴 하지만 학교는 달라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개업 의사로서 사과 궤짝 대신 혹시 온천에라도 다녀오시는 데 보탬이 되어 드리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의심하시진 않으시겠죠.”
그도 그럴 것이 나의 딸은 이미 “올A를 받은 장학생이었다. 10년 지기가 아니라 그 이상의 젊은 교수에 머리를 조아린 것은 참으로 기막힌 일이었다. 물론 순전히 딸에게 영향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가 존경하며 형이라고 부르는 전 연세대 부총장 김동길 교수에게 의논을 하니 받으라고 했다며 본래의 뜻을 거두어 넘어갔다.(주: 나의 신분을 밝히지도 않았고 그럴 의사도 없었다. 김동길 교수는 실제 교양 강좌나 방송국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 형편이라 밝히고 말고 할 계제가 아니었다.)
금년 들어서 일이다. 딸은 그 동안 석사를 끝내고 박사 과정에 있다. 시집도 가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러나 다시 문제가 생겼다.
때가 되면 선물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나의 입장에선 다시는 같은 바보짓을 할 생각이 없었고 또 그들의 의식구조가 존경(?)할만해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젠 참을 수가 없어요. 그만 둘까봐요. 후배(後輩)들이 무섭게 선물 공세를 하는 데다 교수님이 정식으로 투정을 하니 어쩌면 좋아요. 아빠한텐 얘기하지 말아요. 엄마”
눈물을 흘리며 가난한 나의 딸은 몸으로 때우기 위해 학교 근처로 전세를 옮겨야겠다고 했다. 미국식 교수님들이 언제부터인가 한국식 교수님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예의가 없다고 미움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 시설이 부족해서 자문을 구할 때 5백 만원을 기부했었다. 그것은 나로서도 떳떳한 영수증을 받는 일이기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의 선물을 보면 인색하지 않다는 것은 나의 기준 일뿐 참으로 쩨쩨하여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어쩜 그 때 그 반환건(返還件)도 내가 내민 액수가 너무 시시했다는 뜻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요컨대 우리의 교수님을 병들게 만든 것은 수요자들의 끈질긴 공략과 유혹이 문제라는 것이다.
국회의원을 나무랄 것도 없다. 이해 집단이 돈을 쓰겠다는 것은 특혜를 보겠다는 속셈이고, 또 국민은 지역 감정이나 무슨 연고자라고 인물 평가 없이 무작정 뽑아 놓고 보니 결과가 좋을 수가 없는 게 뻔한 일이 아닌가 한다. 지금으로선 지방 자치제(自治制)도 별 기대가 안가는 형편이고 보면 결국은 우리들 시민(市民)정신이 모든 책임을 걸머져야한다는 것으로 귀결(歸結)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러나 정말 화살을 겨냥하고 싶은 곳이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쏘아 상처를 입히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래 예측적(豫測的) 사고방식을 위해 겨냥한다는 소박한 마음에서다.
그들은 바로 언론인(言論人)이다.
과연 그들이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는 내용들은 「91년 1월」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것일까? 그게 사실이라면 모두 기자직(記者職)에서 사퇴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 본다. 적어도 기자라면 그렇게 까막눈일 수는 없어야 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예능계 입학 문제는 한 두 해의 얘기가 아니다. 면담실(面談室)의 비밀을 지켜져야 하기에 거론할 순 없지만 이미 그 정도의 사실들은 많은 학부모가 입버릇처럼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이 몰랐을 리가 없다는 의미이다.
국회의원의 돈줄에 관해서도 언론은 매우 정밀한 정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을 것이다.
언론의 속성상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관행에 따라 함께 오염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부분 국민들이 알고 있는 심증에 침묵을 지키다가 여론에 따라서인지 융단 폭격을 가하고 있는 것은 씁쓸하다.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그 막강한 제4의 권부(權府)를 십분 활용했다면 피해자인 쌍방 모두에게 도움이 컸을 것이다.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고 본다. 기왕에 거론된 학교의 비리 문제는 교수나 선생으로 하여금 오염되지 않을 수 있는 시민 의식을 강화하는 쪽으로 지혜를 가다듬는다면 더 많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딸이 여고 2학년 때 피아노 전공을 할 것인가 인문대학에 갈 것인가 기로(岐路)에 있었다. 어느 교수님의 제자를 통해 실력 평가를 받으면서 어려운 결정을 한 적이 있었다. 피아노를 포기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엄청난 돈이 들어야 한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선 엄청난 수단이 필요하며, 그러고도 확실성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나와 같은 결단을 내린 사람은 무척 많을 것이다.
언론이 유독 이런 실정을 모르고 지금까지 방관(?)했다는 것이 끝내 아쉽다. 그것은 치외(治外) 직무 유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폭로를 통해 죄인(罪人) 양산(量産)보다는 예방(豫防)이 더 중요한 게 그들의 사명이라 보여지기 때문이다.
내일을 위해서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