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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한잔 덧글 0 | 조회 15,824 | 2014-01-07 19:59:11
관리자  

우유 한잔

2011.03.20.

정동철

 

없었던 일이다.

아침 6시 전후 샤워를 하고 이내 병원을 향하는 아들의 관행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먼저 병원으로 가야겠다는 말에 예상을 깨고 힘없이 동의를 한다. 응급실 때문이다. 병원의 응급사태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고통, 찢어질 듯 숨을 조이던 가슴의 통증으로 응급실로 가야했던 어제 밤 지쳐버린 것이다.

CCTV가 뇌에 재생된다. 미궁에 빠졌던 아픔의 극치가 지나간 새벽 응급실에서 나와 일단 안도, 하지만 의문은 커지고 있다. 며칠 후면 캐나다의 처자식을 향해 떠날 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다. 이럴 때에 일어나지 못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간밤 11시가 좀 넘어서의 일이다.

~ 아파요, 응급실로 가야겠어요....”

2011312. 허둥지둥 119를 돌렸다. 먹통이다. 왜 우리병원의 구급차를 두고 119를 돌렸을까. 병동실장에 연락을 하곤 황급히 옷을 챙긴다. 찢어질 듯 아프다는 현상이 거울신경에 확대되어 나의 가슴으로 파고든다. 아프다. 없었던 일이고 없어야 할 일이었다는 증거다.

 

응급실에 도착하면서 겨우 한숨을 돌린다. 지난 해 6월 정확하게 내가 누었던 바로 이 응급실-당시 나는 돌발적으로 심전도가 잡히지 않는 긴박한 상태,에서 아들이 우겨 심장 전도의 갓길제거(AV Nodal Reentrant Tachycardia에 대한 Ablation)로 위기를 넘겼었는데 이제 역할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응급실의 심리적 효과는 잠시였다. 의문이 몰려온다. 심전도를 포함해 채혈과 동시에 관행적으로 꼽아진 수액, 명치의 통증이 조금 가시는 듯 숨을 내쉰다. 대체 무엇이 원인인가. 심전도는 여전히 이상이 없다.

우린 의사가 맞나? 며칠 전 이미 같은 증상으로 심혈관조영술을 제외하곤 답차검사treadmill test까지 모두 마친 결과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의 주치의였던 황 교수는 분명 걱정할 일이 아니라 했고 그걸 믿고 있었기에 헷갈린다. 예상되는 병명들이 마구 스쳐간다. 다양한 병명들 그러나 결론은 거부되고 만다. 채혈결과 트로포닌troponin을 포함해 효소 수치 또한 이상이 없다. 결국 다시 황 교수의 진단으로 돌아간다. 명치주변 어딘가 다른 문제가 꼬이고 엉킨다. 위 상부에? 젊은 응급실 담당의사 역시 나의 의견에 따라 위내시경을 다음날 잡자고 한다. 망설이다 아들이 그의 친구병원을 염두하고 일단 퇴실하기로 했다. 오피스텔 밤 1시 반. 기진맥진이다. 차라리 권하는 대로 입원하여 내시경, 그리고 심혈관조영술을 할 걸 그랬나..... 비행기표가 알람시계처럼 똑딱거린다.

시간이 없다. 금요일 밤 아니 토요일 새벽 오밤중의 난리로 수요일까지 3일뿐이다. 그 안에 확진을 얻어내야 한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우리병원은 이미 행정적으로 의사 한 명이 보충되었다. 남은 것은 실로 오랜만의 만남, 기쁨만이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답답하다.

자는 둥 마는 둥 아침 6시 쯤 변기에 앉아 정황을 가늠한다. 토요일이다. 분당 집으로 가기 위한 짐을 챙기면서 옳게 정하는 짓인가?

 

나 먼저 갈 터이니 뒤에 나오지... 아니면 가급적 쉬는 것이 좋고....”

희미한 응답이 불안했다. 스트레스? 발리움Valium주사는 어떨까?

심장 내과적 이상이 없다며 전연 걱정할 상태가 아니라 했기에 정신과의사 특유의 사고방식인 심인성을 끌어 들인 것이다. 어쩜 그러길 바라는 유혹에 이끌렸을지도 모른다. 제발 더 이상의 문제가 없기를 기원했기에...........

 

병동마다 눈여겨야 할 환자들에 정황을 살핀다. 4개 병동 모두를 들러 보고 필요한 조치를 전자차트에 입력하는 때, 9시가 좀 지나 아들이 내방으로 들어선다. 안색에 핏기가 없다.

어떤데..., 쉬지 그랬어..., 연락은 했고?”

아침이라 아직... 이제 하려고요.”

응급실에서 나올 때 내시경을 하기로 정한 약속, 어제의 통증을 들어 보니 차라리 아픔만 없어진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라는 표현, 말이 없는 친구 얼마나 힘들었을까, 무심코 우선 우유한잔 하라 접수에 부탁했다. 맥없이 우유를 쭉 마신다. 내 방으로 오지 않던 친구 실로 힘들었다는 증거다.

키보드를 누르던 얼마 후 연락을 했더니 아뿔싸 그 우유 때문에 오늘 내시경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월요일로 미루고 말았다. 우유로 내시경을 십분 판독할 수 없다는 이유다. 나의 실수. 수요일이면 떠나야할 금쪽같은 시간을 무심코 권한 우유로 잘라먹고 말았다. 어이없다. 처자식 곁으로 가는 일정은 기정사실, 그 전에 알아야 할 중대한 결과, 다시 후회막급이다. 아침을 아예 먹지 않는 관행에서 간밤의 시달림으로 까라진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권한 우유 대체 내가 의사이긴 한가?

그나저나 일단 통증은 그만하다 했다. 괜찮다는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왔다. 아내에게 일절 말하지 않았다. 입 자체가 얼어붙었다. 오만가지 불행한 사태에 대한 연상들, 하루 밤을 잔 다음날 일요일도 조마조마한 마음은 계속 병원에 머물러있었다. 전화를 했다. 받질 않는다. 덜컥, 몇 차례인가 결국 연결이 되고 그만하다는 것과 더불어 밖으로 나왔다는 말을 듣자 쓸어내린다. 면세점엘 들렸을 거라는 짐작을 한다.

 

월요일 아침 7시 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병원에 도착했다. 예의 컴퓨터를 순서대로 열고 잠시 소파에 앉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아들은 다시 응급실로 가야겠다는 것이다. 철렁, 벌떡 일어났다. 아프다는 것이다. 급해졌다. 원무부장에게 우선 응급실로 안내하라하고 나의 주치의였던 황 교수에 연락했다.

다시 attack발작이 와 응급실로 보냈어요. 부탁해야 되겠군요.... 꼭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숨길일이 아니다.

놀래지 말고 차분히 듣구려....... 세훈이 응급실로 갔는데 당신이 와야겠군. 오늘 수경이는? 진이도 간다면서...”

놀람반응이 핸드폰으로 강하게 떨려왔다.

수경이 문제가 아니죠. 어떻게 가면 되죠?"

"택시를 타고 오지..“

큰 딸은 유방암으로 오늘 두 번째 항암치료를 받는 날이다. 주치의가 대학 후배라 편지로 미리 부탁했지만 대부분의 대학병원급 의사들이 그렇듯 응답은커녕 모르세다. 수술건당 얼마의 성과 금에 정신이 팔려있다는 헛소문을 증명이라도 하듯 치밀던 감정은 눈앞에 닥친 아들의 응급상태로 묻혀버린다.

초조한 마음, 월요일 오전의 환자 157명중 120명을 깡그리 수도 없이 층간을 오르내리다 보니 병원 또한 내칠 형편이 아니다. 이달부터 새로 전문의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배 여의사가 나오긴 했지만 때문에 휴가를 받은 기존의 의사에 부탁을 고려한다.

 

때다. 이럴 수가! 들려온 아들의 결과는 심근경색증Myocardial Infarction이라는 것이다. 청천병력 숨이 콱 멎는다.

원무부장에 의하면 관상동맥에 막힌 곳 두 군데를 봤고 이어서 한꺼번에 두개 모두를 시술할 수 없어 우선 하나만 했다는 것이다. 스탠트stent삽입술이다. 아들과는 연결할 수 없다 했다. 안도의 긴 숨, 오로지 스트레스에 의한 심인성으로 발리움주사까지 생각했던 멍청한 자신이 기가 차다. 원무부장이 왔다. 중환자실로 입원해야 한다 했다. 아내와 바로 나섰다.

 

응급실,

응급실로 갔을 때는 이미 스탠트시술이 끝난 후의 안정된 상항, 내가 누워있었던 그 자리에서 아들의 힘겹던 말을 듣는다.

죽음은 무섭지 않았어요. 죽는 게 낫지... 통증 너무 아팠어요.”

때에 캐나다의 며느리 전화를 받았다. 울먹이는 안타까움을 달래며 위기일발 모든 것이 다행스럽게도 잘됐다 일러주었다. 짓눌리는 내 자신의 무거운 짐은 돌 볼 틈이 없다.

 

구원투수, 휴가 중인 김 선생에 전화를 했다. MI심근경색증라는 말에 놀라며 그러나,

“16~17 양일 취소할 수 없는 약속 때문에 예정대로 18일에나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놀라면서도 도와줄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야속했다. 이제 병원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새로 온 서울대 후배에게 더 맡길 형편이 아니다. 하기야 정형외과의사로 병원을 운영하는 큰 사위에게서도 전하가 없다. 처남이 심근경색증이라면 생명과 직결되는 중대사지만 자신의 아내가 유방암이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가족 간에도 사정이 있거늘 봉직의사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나저나 며칠간 심근이 얼마나 손상됐을까?

 

곧 중한자실ICU-Intensive Care Unit로 들어가야 한다.

눈물을 훔치고 있는 어미에게 응급실에서 아들은 반복한다.

죽는 것은 겁이 나지 않았어요. 너무 아파 그 아픔을 잊기 위해 차라리 죽었으면 했어요.”

가슴이 저민다. 그 아픔의 전이현상은 눈 덩이처럼 켜켜 나의 가슴으로 켜켜 쌓이기만 한다. 중환자실 안의 긴박한 분위기, 생소한 아내는 잠시 얘기를 나누고 아들의 오피스텔로 이동한다.

괜찮겠죠? 중한자실 기분이 안 좋아요.”

큰 딸은 암, 외아들은 심근경색증, 몰아닥친 재앙에서 아내는 자신을 주체하기 힘들 것이다.

 

한숨 돌렸다고는 하지만 황 교수가 보여준 심장필름은 후련하지 않았다.(결국 심전도 상 위험성이 가장 큰 ST형이 확인됨) 금요일 퇴원을 하고 이어 아내와 분당 집으로 온 319일 토요일 오후 7, 조마조마한 마음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다. 내일은 캐나다의 세 모녀가 온다. 반가움 보다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문제가 더 마음을 짓누른다.

 

그러나 일단 위기를 넘겼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애타게 울먹이던 며느리며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던 아내, 그들 모두가 나와함께 소중하고 절대적인 하나의 생명을 다시 생생하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천운과 같은 시간이 준 행운이다. 만일 응급실로 갈수 없었을 때였다면 끔찍한 상상뿐이다.

그뿐인가 예정대로 위내시경을 했었다면 우린 지금 전연 다른 통곡을 하고 있어야할지 모른다. 심근경색증에 위내시경은 치명적이다. 그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확실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내시경을 못하게 된 우유한잔이 이렇게 큰 선물로 바뀌어오다니.

울컥 눈앞이 흔들린다. 슬픔이 아니라 바로 기쁨 바로 그것이다.

    한 잔의 우유, 실수였던 그 우유 한잔의 고마움을 죽음에 이를 때까지 우린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2011.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