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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누굴 위해 내리나? 덧글 0 | 조회 15,668 | 2014-01-09 14:13:10
관리자  

, 누굴 위해 내리나?

2013.12.12.

정 동철

 

딱히 오백 원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모두 구백오십 원을 아끼려는 이유도 아니었다. 돌아올 눈길을 생각하며 새벽길을 택한 것이 소득으로 챙겨졌을 뿐이다. 새벽길이 거의 일상이긴 하지만 유독 오후의 일기가 걱정돼 더 일찍 나선 것이다.

오늘따라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다. 깨우지 않았다. 아침으로 사과주수, 프라이 결안 하나 그리고 선식이라 거르기로 했다. 대신 바나나 하나와 야쿠르트를 목구멍에 넘기곤 찻길로 들어섰다. 여느 날과 달리 조금은 긴장이 된다.

 

판교 톨게이트입니다. 요금은 천-유별나게 악센트가 붙은, 원입니다.”

네비 아가씨의 말에 하이패스는 즉시 응답한다.

오백 원이 결제되었습니다.”

얄밉다는 투다. 틀렸다고........ 마치 앞뒤 사원 같다.

 

청계산 톨게이트에 이르러 펼쳐질 예의 장면, 꼭 사진에 담고 싶어 언젠가는 그렇게 하리라 기회를 보고 있던 이른 아침의 힘찬 모습이 빠르게 재생되자 뒤미처 그 장면이 밀려든다.

오른 쪽 반대편 적당한 곡선의 내리막 차도에 캄캄한 새벽이 뭉쳐진 전조등으로 찬란하게 펼쳐진다. 백 개미들의 용트림, 장장 1km로 뻗어있는 불빛, 고속화 도로 그것은 멈추어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였다. 일종의 도발적 저항을 느낀다. 화려한 도전? 마치,

-, 고속화도로는 청춘이다.-

거기 수많은 세력들이 함께하고 있다. 촛불시위와는 전연 격이 다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생동감-카레라에 담으려다 위기일발 그러나 반드시 찍을 것이다, 이어 안현 분기점에 이른다. 오른 쪽으로 들어서자,

왼쪽 11시 방향입니다. 400m... 300m앞에서 우회전하여 왼쪽 11시 방향 인천방면입니다.”

마치 옆의 앉아 안내를 하는 여인 아침 이슬 같다. 거리의 오차를 수정하는 실수가 오히려 정겹다. 기계음을 잊는다. 그마져 없는 스포츠카는 달리는 것으로 상쇄되긴 하나 '콰이어트 Quet-Susan Cain ' 바로 그 자체다. 외로울 것이다. 거기 사람이 있다는 착각, 이미 로봇세상과 섞여 사는 자신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 그것은 사람이 몰고 있지만 실상 장난감기계일 뿐 더욱 그렇다.

쇠 덩이 기계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그럴까? 도로가 축지법처럼 달려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쇠붙이 괴물들은 고요 속에 묻혀 제자리에 서있는 건지 분간되지 않는다. 때에 하나의 영상이 화면을 바꾼다.

 

어스름 1230분 방향에 은은한 연인의 미소를 닮은 보름달이 환하게 맞는다. 바로 제2경인고속화도로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다가서는 감격스런 만남,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찰나를 노치지 않으려는 망령, 결국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연인처럼 아련한 달빛은 머릿속으로 깊이 저장된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년이면, 아니 봄이 되면 그날이 오겠지...-

페인 마음의 구덩이를 달랜다. 나의 뇌가 그때까지 활동할지 의문이라서.

바로 그 길이다. 늦은 여름 어느 날 아침, 해돋이가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에 동시성으로 나타났다. 황홀한 유혹, 경포대 눈부신 해돋이가 겹친다. 오픈카이기에 가능했던 잊지 못할 장면 백미러와 사이드미러에 동시영상의 벅찬 만남, 대종상 배경화면 같다. 감탄과 함께 힘이 솟구친다. 미러 속은 그러나 차분했다. 대칭성과 보존법칙이란 양자물리학을 비웃는 가운데 어둑어둑 네비양도 모르는 감시 카메라가 번쩍번쩍 붉은 색깔로 부라리는 통에 아름다운 연인들 해와 달과의 이별은 이내 남인천 톨게이트 속으로 묻혀버린다.

“.... 통행료 구백 원-원에 힘이 실린다, 입니다.”

그러나 하이패스는 판교톨게이트에서처럼 또다시 비웃는다.

사백 오십 원이 결제되었습니다.”

천 구백 원이 새벽길이라 950, 저비용 빠른 출근길이 된 셈이다.

 

분당으로 갈 오후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가려는 병동과 병동들 240명의 환자들의 눈빛들, 나의 시신경 중추 하드에 부호화된 이전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과 몸짓, 그리고 식사량을 스캔을 하며 인사를 한다.

박사님, 식사하셔야죠? ..... ..., 잘 잤어요.... 괜찮아요....”

외곽순환도로와 제2경인고속화도로를 오가며 앞과 좌우롤 스치는 장면 하나하나를 감정하듯 블랙박스로 뇌신경경로를 통해 입수된 정보 분석을 이용 한마디씩 찔러준다. 허를 건드리거나 용기를 넣어준다. ‘적시타’, 화려하게 포착되는 전조등의 도발적 모습과 해와 달에 저장된 시신경중추를 뒤지며 적시적소 느닷없이 묻고 콕콕 찌른다. 환자는 자신의 문제점을 새삼 되씹는다. 나만의 치료행태다. 그러나 카메라를 찍을 수 없듯 혀로 옮겨지는 전기화학적 장용은 순간 멈칫 걷어 들여지기도 한다. 역시 나만의 재치(?).

 

점심때다. 7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창문, 눈이 내린다. 예보대로, 예상대로 그래서 이미 고정 대리기사에게 315분에 오라 문자를 보냈으나 응답이 없어 이미 집을 나설 때 설정한 대로 스스로 쌓이기 전에 나서는 것이 맞다 여겨 바로 나섰다. 안전도는 내가 더 정확하고 책임감이 있으니까...

 

앞이 분명치 않다. 어두운 도로에 들어서자 거센 눈과 부딪친다. 무섭다. 눈발 하나하나는 솜처럼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아니다. 무섭게 달려드는 눈보라는 쇠 덩이를 몰아칠 기세다. 다행히 마음은 편했다. 4륜구동 SUV로 미리 대비한 것으로 느긋하다. 대리기사에 전화로 오지 말라 주문하려니 눈은 더욱 거세다.

세 개의 차선은 차들로 꽉 차 있다. 그러나 햇볕 나는 날과는 너무 다르다.

우리들 운전자들은 서로를 전연 모른다. 같은 도로에 동승하고 있을 뿐이다. 놀랍게도 서로가 모두 믿을 수 있음을 느낀다. 7~80km의 속도로 끼어들지도 달리지도 나서지도 않고 넉넉한 거리를 유지하며 묵묵히 달린다.

이른바 귀족노조의 서슬 퍼런 데모와 불끈 쥐고 흔드는 주먹들과는 왜 대조적일까? 혼자만의 길이 아니란 것, 서로가 믿을 수 있는 질서, 같이 가는 길 은 사회에서 같은 삶을 위해 동승한 운전자들이 폭언과 폭력, 억지와 꼼수 그리고 허구로 이탈하는 차선위반의 의미를 알아 대조되는 것일까? 귀족노조는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데.... 고속화도로의 눈 내리는 길, 차로정비 폴리스라인을 어기는 마음들을 볼 수 없기에 그래서 험한 눈길이 오히려 편하다.

 

도착한 집 어둠이 기다리고 있다.

창밖에 눈은 거세다. 꽂히는 가운데 위로 휘날리며 뒤엉켜 쏟아지는 함박눈은 멈출 기세가 아니다.

찬란한 전조등의 도발, 해와 달 그들은 나의 기다림보다 훨씬 멀리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만날 날 기약할 수 없으나 왕복 2백 여리 길 매일 오가는 가운데 얻은 뇌 속의 영상들은 그러나 나만의 경험이자 행운이다.

 

눈은 쉬지 않고 내린다.

누굴 위해서가 아니다. 내리고 있을 뿐이다. 무지개며 바다와 빙산으로 번갈아 자연 그대로 자유롭게 옮겨 다닌다. 수소 2%가 대기권 밖으로 증발된들 변할 것 없는 바다, 해석은 그러기에 인간의 몫, 들뜨거나 겁나든, 싫든 좋든, 신나고 움츠리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물에 갈증을 느끼는 생사의 갈림도 눈은 사람을 위해 어떤 뜻도 가지고 있지 않다. 눈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에 유유할 따름이다.

내 마음 또한 창밖의 오르내리는 영상이 무성영화 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