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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하는 마음 덧글 0 | 조회 16,009 | 2009-04-17 00:00:00
정동철  


-낙서(洛書)하는 마음-

끝까지 읽고 잡아가던가 말던가.

전쟁이 터진 3일 후, 1950년 6월 28일 아침이다.
갑자기 세상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친구 한 명과 신작로로 나갔다. 남들은 집으로 기어드는 판국에 어린 소년의 호기심은 거꾸로 가고 있었다.
서울시 용산구 삼각지.
남영동에서 삼각지를 향해 신작로 양편의 미군 부대를 끼고 가다보면 지금의 상명여고 쪽에 다리를 건너서자마자 오른쪽으로 골목이 있다. 개울 뚝 모퉁이에 숨어서 거리의 정황을 살피기는 안성 마침이었다. 정말 조용했다. 전차(電車)가 다니고 그래도 차가 오가던 곳이다. 결코 한산한 곳이 아니었다. 한데 움직이는 물체가 하나도 없었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웬 일일까? 왜 이렇게 조용할까?
찰나의 일이다. 굉음이 들려오더니 놀랍게도 탱크가 포신(砲身)을 이쪽을 향한 채그때 난 우리를 겨냥한 것으로 착각했다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줄달음질쳤다.
친구와 인사할 틈도 없이 집으로 뛰어 들었다. 모두는 겁에 질려 있었다. 바로 그때다. 드디어 탱크의 포신(砲身)이 터지기 시작했고 따발총과따발총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소총 소리들이 뒤섞여 콩 볶듯 볶아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반사적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뜨거운 여름에 어디서 나왔는지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머리를 틀어박고도 오히려 모두는 죽음이란 공포 속에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긴 암흑이었다. 그러자 진공상태는 잠시, 갑자기 밖의 소리가 요란했다. 환성과 축제의 함성이었다.
나는 탱크를 보고 놀란 바로 그 자리에 황급히 다시 섰다. 놀랐다. 아니 의심스러웠다.
「영롱한 김일성 장군, 위대한 김일성 장군 만만세!!」
언제 어떻게 준비된 것인지 인민군의 깃발을 흔들고, 말 그대로 붉은 파도가 노래에 맞추어 파도처럼 높이, 높이 출렁거렸다.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8․15당시의 환호와 군중들이 지금 눈앞에 되살아나고 있다고 느꼈다.
그때부터의 습관이다.
나는 틈틈이 전봇대에다, 또는 벽에다 그리고 아무 데서나 혼자 있을 때면 습관처럼 낙서(洛書)를 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북한의「위대한」인민군이 들어온 후 죽음을 나는 수없이 보았다. 인민재판에서, 이유도 모르는 총잡이들에 의해서, 그리고 미군의 폭격에서 끔찍스런 죽음을 보았다. 그럼에도 나의 낙서는 계속되었다. 오로지 홀로 써내려 가는 낙서, 그것은 입으로까지 강박적으로 옹알거리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팔십 팔 년 5월의 신문들을 본다. 학생의 죽음을 본다. 서슬이 퍼런 구호들은 본다. 만면의 미소들을 본다. 기세 등등한 사람들을 본다.
무엇인가 변한 것은 역사의 파노라마지만 역시 신문들은 일색이다. 무섭다. 무서운 느낌이 든다. 군중심리에 야합하거나 부추기는 그 어떤 감정적 표출에 초점이 맞추어질 뿐 도무지 원인 규명을 위한 필봉(筆鋒)을 보기란 어려워져 있다. 그들은 벌써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눈치마저 보인다. 또 다른 죽음의 그림자들이 음산한 예감으로 우리들 주변에 안개처럼 감 쌓이는 것을 느낀다. 무서운 것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또다시 10대 청소년기의 그 엉뚱한 낙서 버릇이 움돋고 있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낙서가 그래픽 디자인으로 발전했다는 암스테르담의 어느 감옥 울타리 벽, 그것은 이내 미국을 휩쓸게 된 것을 현장에서 금방 알 수 있었다. 나의 낙서는 그러나 의미가 그런 것과는 멀다.
다시 전쟁 때로 돌아간다.
드디어 압록강까지 국군이 쳐 올라갔을 때 나의 낙서는 이상하게도 그 내용이 달라지고 있었다. 9․28 수복까지 불과 3개월 사이 하루아침에 또다시 서울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짖고 있을 때 나의 낙서는 바뀌고 만 것이다.
「영롱한 장군 김일성 장군!」
그러나「김일성 장군」의 낙서는 오래가지 않았다. 1․4후퇴를 통해 또 다른 죽음을 보면서 피난 생활을 하는 가운데 낙서의 버릇은 소멸되고 말았다.
기회주의적 소수 선동 세력이 민주주의를 앞세워 언제나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 있다면서 색깔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어른들에 어지간히 기만당했다는 어린 마음에서 시작된 나의 낙서는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유가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 그리고 어느 곳 어느 상황에서건 어떤 결과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원인을 알았을 때만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몸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서는 길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아니면 어린 시절의 무의식적 낙서 심리의 표현일 수도 있다. 5․16 쿠데타 이후 제 5 공화국이 막을 내리려는 지난해까지 줄기차게「서울의 봄」을 활자화(活字化)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나의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얘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수 선동 세력이 모양새를 달리할 뿐 향하는 목표는 같아 보이고 있다.
어떤 신문은 때를 만난 듯 한 술 더 떠 부추기는 낌새를 보인다. 어떤 신문은 다행하게도 1노 3김에게 공평하게 그리고 따끔하게 할 말을 하기도 한다.
낙서는 반항심을 뜻한다.
낙서 심리는 그러나 진실을 말한다. 낙서 내용 자체의 진실이나 진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이나, 자기 주장, 또는 인간적 본능의 표현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솔직한 그런 표현인 것이다.
구호는 그런 점에서 다르다. 그것은 주장이라는 점에선 같으나 목적을 쟁취하기 위한 위장된 표현이라는 사실에서 다르다. 대중 선동을 목적으로 한 선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낙서 심리에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홀로 즐기는 낙서는 곧 대중심리와 결탁될 때 여지없이「떼 짓거리」로 발전할 수 있다. 홀로 뒷간에서, 또는 홀로 밀폐된 방에서 내뱉던 형이하학적 욕구가 대중 모두가 일체감을 가질 때 형이상학적 인간 특유의 사유(思惟)는 자리를 잃고 말기 때문이다.
무리를 지어 걸핏 잔인한 범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파괴적 충동이나 성적(性的) 폭력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고상한 철학과 사상을 전제하더라도 그것을 쟁취하는 방법에서 집단 폭력이나「붉은 피」를 통한 혁명으로써만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 발상과 심리적 기전은 낙서 심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과연 우리의 삶을 낙서처럼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낙서처럼 내뱉고 낙서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에 나라의 운명을 맡겨도 되는 걸까?
낙서는 적어도 혼자만의 만족으로 그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신문이 낙서 같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정치가가 모두 낙서 꾼 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운동권 선두 주자들의 행동이 낙서 심리에 좌우되는「삐리」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낙서 심리는 나의 얘기지만, 나 개인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눈여겨봄직 함이 어떻겠느냐는 것뿐이다.
우리는 투표를 낙서하듯 그렇게 한 국민은 아니다.
나와 같은 소시민은 그러기에 그 점을 소중히 간직하고 지켜본다. 그리곤 벼른다. 투표로서 신중한 주권을 행사할 그 날을 위해 결코 잊지 않으리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은 과연 위대한 장군인가?

주: 시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위대한 사람들일까?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정말 법적으로 한 점 부끄럼 없는 평화 신봉자들일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바웬사가 망하고 만델라가 승한 것은 바로 정치와의 관계를 정확하게 구분한 결과일 것이다.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