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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서와 마삼근(麻三斤) 덧글 0 | 조회 16,238 | 2009-04-17 00:00:00
정동철  


스트레스와 마삼근(麻三斤)

창경궁 아흔 아홉간 장락문(長樂門)에 들어서면 한 나라의 왕궁 역내(域內)의 집치고는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다. 수원의 민속촌이 뽐내고 있는 99칸 집에 비해서도 비좁고 어딘지 청승이 지나쳐 그저 고개가 갸웃갸웃 흔들릴 뿐이다.(주-1)
건축 양식이야 어찌됐던 우측에 장양문(長陽門)이나 좌측의 수인문(修仁門)이라는 글귀에서 내면의 뜻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몇몇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참뜻을 알 길이 없는 글이고 보니 초라한 집이라 여길 수밖에 없다.
그게 마땅치 않아서일까.
지금 사람들은 이리 뛰고 저리 설치며 법석이다. 내일 당장 산수갑산(山水甲山)을 간다해도 한 푼을 아껴 더 벌고 모아 크고 화려하고 안락한 저택을 위해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 한다는 얘기가 보강(補强) 장수하고 보자는 마음들이다.
그러나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죽고 싶어요. 살면 뭘 합니까. 꼼짝할 수가 없으니 이미 죽은 목숨이죠. 겉보기야 이리 멀쩡해 보이니 더욱 기가 막힙니다. 아내도 모릅니다. 자식들이 알 리가 없죠. 오히려 용돈 좀 주면 덧나느냐는 볼 맨 소리인 걸요. 정말 만사 귀찮습니다. 의욕은 고사하고 입맛도 없습니다. 아내 등살에 병원에 오기는 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조용히 잠들어 고통 없이 죽는 약이나 있으면 주시지요. 할 말은 그 뿐입니다....”
종로 어디다 개축을 하다가 그만 일이 생긴 게 화근이었다. 준공 검사가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경우를 벗어나 살지 않기로 소문난 사장님이 병을 얻게 된 연유다.
허가 없이 시작한 일이 아니다. 법적 하자가 없는 건설 회사를 선택하여 개축 허가증을 갖고 설계에 따라 빌딩을 지었다. 문제는 설계보다 커졌다는 것이었다. 준공(竣工) 필증(畢證)을 해 줄 수 없다는 관청의 태도가 완강했다. 그들의 말인즉 자신의 땅이라도 보도 쪽으로 작긴 해도 튀어나왔다는 것이 문제라 했다. 돈 좀 쓰면 될법한 눈치였다. 하나 그럴 일이 아니라 여겼던 것이 착각(?)이었다. 그건 설계와 관계없이 건설회사가 한 것이므로 그들의 책임이었다고 본 것이다.(주-2)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건설 회사는 계약서를 휴지로 만들었다. 돈만 받아 챙기곤 함흥차사가 됐다. 돈 띠이고 빌딩은 죽어버렸다. 그간의 체면 또한 말이 아니라 속이 상해 회사마저 넘겨버리고 말았다.
먹고살기가 급한 사람은 물론 아니다. 굴착기를 몇 대 끌고 공사장을 왔다 갔다 착실하게 돈을 모았다. 그게 이렇게 썩혀 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그만 주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억장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내과(內科)를 갔다. 물론 아내가 강제로 이끌었다. 온갖 검사를 다해 봤지만 병은 없었다. 덜컥 겁이 밀려왔다. 의사도 모르는 괴이한 병이라면 그건 죽을병이 틀림없다고 판단됐다. 차라리 빨리 죽어 버렸으면 고통이나 면하지 않겠느냐는 결론이 그를 지배하고 말았다.
의욕 상실, 무력감, 무원(無援)고립의 고독감, 재미라는 것 자체가 멀고 먼 옛 얘기로 우울한 마음뿐이다. 딱 세상 모든 것 안 봤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면담결과 원인은 성격과 스트레스였다.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정신과의사의 판단이다. 적응장애(適應障碍)라고 부르기도 한다.
애당초 내과적으로 이상 소견이 발견될 까닭이 없다. 더 확실하게 말하면 스트레서(Stressor,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인자)가 나타난 3개월 이내에 대응하는 조치가 적절하지 못해 정서와 언행(言行)상에 평소답지 않은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를 두고 내리는 진단명이다.
준공 검사가 나오지 않으면 나올 수 있도록 하여간 들러붙었어야 했을 것이다. 건설 회사가 계약 위반을 했다면 돈을 준만큼 사생결단을 냈어야 했다. 한 두 해 사업한 사람도 아닌 마당에 자신의 무능을 탓하고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손가락질을 해댈 것에 초라해야 할 일이 아니다. 아니면 포기를 하면 그뿐이다.
물론 그가 그런 처세쯤 모르는 바는 아니다. 상황이 달랐다. 오죽하면 준공 검사가 끝나야 완불한다는 계약에도 불구하고 돈을 내주었겠는가. 벌 떼처럼 노무자를 시켜 기물을 집어던지고 소란을 피는데 질려 버려 할 수 없이 지불하다보니 기가 찼던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스트레서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 그렇다고 건물이 도망가는 것은 아니고 당장 빚으로 도산하는 형편도 아닌데 그런 것 하나 칠칠치 못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손상된 체면만을 소중히 여기면서 그것을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느냐고 주저앉아버린 것은 스트레서에 대한 일종의 항복과 같은 것이다. 그것이 더 존심이 상했다. 사람들의 눈총이 두려워진 것이다.
병은 바로 그것이다. 적응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증상은 사람에 따라 우울증이나 불안증과 같은 정서장애로 나타나는가 하면 발작적 과격한 행동이나 하던 일을 포기하고 팽개치는 형태로 나타난다. 예의 사장은 우울증을 중심으로 일을 포기하는 쪽을 선택한 셈이다. 날이 갈수록 유사한 사람은 태산같이 늘어가고 있다.
왜 이런 병들이 생길까?
성격이 문제가 된다. 뇌 손상으로 인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주된 것은 성격이 늘 문제다.(주-3)
승부욕(勝負慾)이 강하다. 책임감이 투철하다. 시간관념이 명확하다. 바람 부는 데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빈틈없이 딱 떨어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끝장을 보아야 성질이 풀리고 경계심이 별나게 발달되어 있다. 불가능이 없다는 나폴레옹 식으로 자신의 사전엔 실패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미 소개한 바 있는 프리드만(Friedman)은 이런 성격을 “A”형이라 불렀다. 혈액형과 전연 상관없는 것은 물론이다.
태풍에 수양버들은 잘도 견딘다. 꼿꼿한 잣나무 가지는 부러지기 쉽다. 틀림없는 성격이 틀림 있는 사태에 직면하니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존심의 손상은 메가톤 급 폭탄과 같다.
의사의 고민은 이 때「어떻게 치료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말(馬)을 물가에 몰고 갈 수 있을지 모르나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매우 다양한 고가(高價)의 검사를 통해 병이 없다고 위로하면 나을 거라고 믿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과잉 검사를 위장하려는 합리적 임기웅변에 불과하다. 이것저것 약이나 주면서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한다고 병이 나을까? 의사의 권위가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필 때의 착각이다.
「마삼근(麻三斤)」이란 말이 있다.
도(道, 부처)가 뭐냐고 물으니 선사(禪師)가 답한 말이다.
제아무리 부귀영화에다 세상을 손아귀에 넣은 권력가라도 일단 죽으면 베로 만든 수의(壽衣) 석 근으로 감싸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수의에 주머니가 없다는 속담을 곁들인다면 과연 살아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예의 환자를 치료하는데 필요한 것은 정신치료다.
착각 속에서 허둥대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 그 자체가 착각인데 더욱 버둥거리며 한 푼이라도 가져야겠다고 아귀다툼을 하는 것은 더 말할 여지가 있겠느냐는 점을 인식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반드시 돈만이 아니다. 그에게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체면이라는 것이 매양 돈으로 환산되면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 알량한 자존심이 대체 무엇인가?
아흔아홉 칸이 서양의 궁전과 비교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분수를 아는 안분(安分)의 슬기였다. 사람이 집을 다스려야지 집이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그런 대궐에서 사는 것은 바보로 본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자연 속에서 그와 더불어 사는 것이 분수라는 것이다. 창덕궁 안채를 루이 14세 식으로 지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애쓰지 말라는 것과는 전연 의미가 다르다. 그렇기로서니 열심히 땀 흘려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다 하면서 물 흐르듯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자세만이 우리가 지녀야할 덕목이라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단 한 가지 길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주-1): 마치 2002년 초 도곡동 超고증 아파트 단지의 찌부러진 한옥이 붙어있는 그런 느낌이 연상될 정도다. 루이14세의 그 궁궐을 비교한다는 것은 문화권의 차이라 치고 東洋圈의 궁궐에는 기하학적 르네상스식의 그런 집이 없다. 일본이 자연을 장난감처럼 만들어 공원을 만드는 것은 예외지만 역설적으로 그것들이 우리의 ‘安分의 美’를 더해주고 있다.
(주-2): 빌딩 하나 짓고 나면 우환이 뒤따른다는 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워낙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이 관청인데다 건설 회사의 무지막지한 노가다 근성으로 염병을 앓아야 끝날 정도라는 것이 관례다. 2002년 현재까지 그 관행은 지속되고 있다.
(주-3): 나는 1980년을 전후해서 성남 상대원 계곡에 땅이 있었다. 만평이 넘었다. 사촌형이 수영장을 만들고 놀이 공원을 짖는다며 나의 땅을 빌렸다. 형은 부도를 내고 노무자는 나의 병원으로 몰렸다. 땅을 몽땅 내 놓으라는 것이다. 당시 시가 5억 이상의 재산을 주지 않으면 병원을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집으로까지 왔다. 당연히 경찰서에 연락을 했다. 診療방해라는 것은 적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양보했다. 병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변이 생길 위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말했었다. 명예가 있으므로 억지인 줄 알지만 행패를 부렸고, 나의 심약한 마음을 알았기에 쳐들어왔다는 것이다. 훗날 光州에서 강연을 끝내고 상경하는 길에 食堂칸에서 그를 만났을 때 한 말이다. 그때 나는 병이 생기지 않았다. 재산은 빼앗겼지만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하였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