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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삶 덧글 0 | 조회 15,917 | 2009-04-17 00:00:00
정동철  


미완의 삶
―멋과 재미―

반드시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에겐 미완(未完)의 멋이 있고 그래서 그것을 조금은 즐긴다.
동양화의 여백, 창(唱)의 소리 없는 목 떨림, 그런가 하면 파격(破格)의 도자기들, 그런 것들이 한국의 멋이라고 할 때 나에게도 비슷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서이다.
난 이발소에 가지 않은 지 어언 10년이 넘었다. 가서 깎을 머리도 없지만, 넥타이를 싫어하고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절호의 이유다.(주-1) 마음대로 생긴 터라 내키는 대로 살수가 있다.
늙을수록 깔끔 하라는 아내의 충고가 통하지 않는 내게 있어 멋이란 아예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솔직히 멋스러운 구석이 없는 것이 바로 특징이다. 이상한 것은 그런 나를 더러 멋이 있다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대학 시절부터 같은 반 여학생에게 남겨진 인상, 말없이 무뚜뜩한 것이 멋이라는 그 이미지는 이미 50고개를 넘은 지 제법 되어 가는 지금도 간간이 들려오는 것이다. 멋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으니 멋쩍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란 것을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그것은 와전된 착시현상일 뿐 멋이란 나와 인연이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재미라는 어휘와 나, 이건 더욱 황당한 기분이 들뿐이다. 재미라는 것은 그나마 아예 뭐라고 생각 자체가 미치는 곳이 없다.
「삶 속에 깃 든 나만의 재미와 멋」, 그것은 너무나 딴 나라의 얘기다. 그래서 어지간히 인생을 멍청하게 살아왔다는 고백을 강요당하는 숙제를 풀지 못하고 곤혹스러운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허다하다.
재미라는 단어 자체는 늘 들어 익숙하긴 하다.
<재미있게 써주세요>, <재미있게 말해 주세요>, <재미있는 소재를 주세요>…. 각종 대중매체나 강연에서 으레 강조되는 말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참담하게도 이「재미」라는 것이 나에겐 질색이다. 오락프로를 외면하는 것이 철칙으로 된 이유 중의 하나다. 쉽게 말해서 재치와 재미는 전연 인연이 없는 까닭이다. 혹 멋있는 사람이란 얘기는 엉겹결에 듣게 되는 수가 있다했지만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평은 비슷하게라도 들은 경우가 없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주-2)
왜 나는 삶의 멋을 모를까?
왜 나는 삶의 재미를 모를까?
직업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정신적 고뇌와 좌절과 싸우며 사는 나의 삶에서 멋과 재미를 찾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시작된다. 재미로 정신 치료를 하는 사람은 없다. 멋으로 상담을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삶은 어차피 인간들 사이의 끊임없는 문제 해결의 연속일진대, 거기에 멋과 재미가 끼어든다는 것이 적어도 나의 직업에선 어울리지가 않는다. 물론 나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직업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24시간 치료만 한다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왕왕 환자들은 노골적으로 나를 부러워한다. 정신과의사가 되었으니 불안이 없을 테고-불안을 치료하는 사람이니까-또한 문제도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모르는 얘기다. 문제가 있다. 불안도 있다. 좌절도 있으며 괴로움도 당연히 있다. 재미는 고사하고 멋도 없지 않은가. 내담자(來談者)와 그런 점에서 차이는 별반 없다. 있다면 문제를 대하는 태도상의 차이일 뿐이다.
괴롭고 슬픈 것은 있는 대로 수긍한다. 다만 노력하면 어떤 문제이건 해결될 거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다를지 모르겠다. 그것은 그만큼 현재의 내가 아직 미숙(未熟)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을 다스리며 치료하는 것, 그러기에 내게 재미와 멋이 있다면 그건 바로 미완성의 삶을 인정하면서 풀어가고 있는 바로 그 현실일 뿐일 것이다.
퍼펙트게임(Perfect Game)을 생각해 본다.
예상된 것이라면 얼마나 멋없고 재미없는 것인가. 미남도 아니고, 재담(才談)도 없고, 그래서 멋이나 재치도 없는 미완(未完)이 전부일 진데 그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것인지 나는 알고 있다. 엉뚱하게도 그것을 고맙게 여기기도 한다. 가야할 곳, 해야 할 것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태도가 나의 멋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 같은 정신과 의사는 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멋에 산다하지 않았던가?

(주-1): 개원을 하고 80년으로 접어들면서 선친을 닮아 대머리가 되기 시작했다. 이발소라고 간들 깎을 머리도 없는 터에 음탕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 않아 거울을 보고 스스로 가위질만 한다. 그것은 87년 이 글을 쓸 때뿐이 아니라 지금 2002년에 이르기까지도 마찬가지다. 아마 餘生 내내 이발소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주-2): 이상한 것은 그렇게 재미없는 나에게 방송, 강연, 원고 의뢰는 초인적 분량을 강요(?)하고 있다. 그것은 2002년에도 횟수는 줄었지만 이어진다. 2002년 11월 분 강연이 예약된 정도이니까. PC 통신상담까지 합치면 그건 장난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