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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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心 덧글 0 | 조회 15,876 | 2009-04-17 00:00:00
정동철  


in-心


십인십고(十忍十考), 침묵은 금이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소 한 마리를 잡는데 백정의 칼날은 그대로다. 순식간에 뼈와 살이 발라진다.
문혜군(文惠君-梁惠王)이 감탄하여 비결을 물었다. 명포정(名疱丁), 백정의 대답이 희한하다.
“19년간 수천마리 소를 잡았습니다. 칼날은 3년째 새것 그대로입니다. 살과 뼈마디엔 본시 틈이 있습죠. 칼날은 두께가 없어 빈틈으로 들어가니 뼈와 살이 다칠 리 없고 칼날 또한 상할 까닭이 없음이 이치입니다.”
민심이 대저 이와 같음을 깨달은 왕이 말했다.
“양생(養生)의 도(道)를 알겠노라.”
장자(莊子)에 있는 얘기다.

정신과의사가 되려고 눈물께나 흘리며 배운 것이 있다.
첫째, 참을 것, 둘째, 참을 것, 그리고 셋째, 또한 참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다고 주절대면 치료자의 자격을 잃는다. 헛짚기 때문이다. 성질이 나서 화를 냈다하면 끝장이다. <왜>라는 과거만 캐묻다 어쩌구리 타이르듯 끼어들다간 <어떻게>라는 미래의 통합을 노치고 마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지고한 사람이다. 치산(治山) 치수(治水), 곧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태풍>을 탓하지 않고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품에 안는 치료자다. 태풍은 해마다 있어왔고 우리의 삶을 통째로 앗아가는 무서운 재앙이지만 <왜>를 묻지 않는다. 지구상 과거사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적 태풍이 없었던 때와 나라는 없다.
문제는 풀기 위해 있다. 태풍을 향해 왜라고 물을 때 그것은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라는 미래를 위해 필요할 뿐이다.
백성은 하소연이 실체다. 찬사는 탐관오리뿐, 불안, 허무, 울분, 그리고 원망이 마음속에 부글거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것이 백성의 속성이다. 몸 안에 뭉클, 몸 밖에 꿈틀거리는 것이 인심(人心)인 것이다. 왕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언로(言路)는 그래서 필요했다. 아픈 환자가 없는데 의사가 있어야 하겠는가? 마르크스 엥겔의 이상주의든 종교적 울타리 안이든 언제나 환자는 있었고, 문제 또한 늘 실존해 왔다. 대체 왜 곪았냐고 화내며 탓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인간의 행동양식은 네 가지 테두리 안에 있다.
반사적 행동, 본능적 행동, 습관적 행동, 창의적 행동이 그것이다.
단세포 아메바 운동은 철저하게 반사적이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것이 인간의 반사적 행동일 것이다. 작금 세종로 네거리에서 벌어지는 <대립적 관계>는 창의적 행동과는 거리가 크다.
대저 아픈 백성은 어디다 하소연을 할 것인지 암담하다. 아프다는 말은 고사하고 겁에 질려있다. 궁궐 밖의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암행어사는 백성들의 아픔을 위해 있었지 고통의 호소를 틀어막기 위함이 아니었다.
찬반과 관계없이 백성은 하여간 다치지 않아야 한다. 칼 또한 갈기만 할 일이 아니다. 왕좌에서 물러나라는 느낌이 감지되었다면 숫돌에 칼만 벼를 일이 아니라 장자(莊子)가 비유한 <백정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일이다. 문혜군의 깨달음처럼.
감히 말하노니 비로소 백성은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백성의 권리이고, 때에 왕은 절로 추앙을 받을 것이다. 그게 인심(人心)이니까.
편히 쉴 권리, 그것은 지구상에 없는 이상향에 불과할까?
마음 안에는 막연한 사람(人)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참고(참을 인,忍), 연을 맺으며(인할 연,因), 이끌어(이끌 인,引), 사랑하고(어질 인,仁), 알아주는(알 인,認) 마음이 두루 있다. 어떤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지 그것을 헤아리는 것이 바로 백정의 귀 뜸이라면 편히 못 쉴 까닭도 없을 것이다. (200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