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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버리니 편하다. 덧글 0 | 조회 15,466 | 2009-04-17 00:00:00
정동철  


확 버리니 편하다.


실성한 듯 17층 꼭대기를 지나 옥상계단의 빨간 <방수용기구함>을 보고 허허 웃었다. 더 오를 수 없는 계단, 앞이 막힌 것이다.
버릇대로 산책 뒤 15층을 향해 계단으로 오르고 있었다. 크고 빨간 기구함을 두 개(10층과 14층)지나면 나의 집이다. 한 개, 아니 두 개를 다 보지 못했다. 할딱거리는 숨 때문에 놓진 것이 아니다.
마음 안과 몸 밖이 너무나, 너무 모두 편했기 때문이었다.

새벽 5시 좀 지나 집을 나설 때 승강기가 고장 난 것을 알았다. 승강기가 15층까지 오는 동안 계단난간에 팔 굽히기 25번을 하면 틀림없이 열리던 것이 올라오지 않은 것이다.
제주의 아침해변(칠순을 온 가족과 함께 제주에서 이틀 전까지 즐겼다.)을 연상하며 탄천으로 내려왔다. 북두칠성이 몇 년 만에 선명했다. 나만의 3가지 팔운동을 차례로 끝낼 지움 조급증이 해변의 파도처럼 밤하늘에 하얀 거품을 일구며 들락거렸다. 하탑교 다리 밑을 지날 때 그것은 해일로 변했다.
반사적으로 두리번거렸다. 다리건너 관행(목운동과 ‘제비’의 노래)을 생략한다 해도 고장 난 승강기가 연상되자 급해졌다. 견딜 것 같지 않았다.
<긴급타전?>
아내는 이미 새벽기도에 나섰을 터라 손전화도 무용지물이다. 설사 타전이 통한다 해도 웃기는 일, 번개처럼 ‘목장갑’으로 대신할까 번지자 결국 해괴한 웃음만 터졌다.
‘새벽 운동에 웬 날벼락, 제기랄! 그나저나 어쩐담....’
뚝 방의 간이 화장실을 지나 발 거름이 빨라지는데 아침서리사리로 그 문소리가 들렸다. 몇 발자국인가 더 망설이다 냅다 뛰어들었다. 벗기가 무섭게 왈칵 토해냈다. 확 버린 것이다. 숨을 돌리자 밖의 희끄므런 종이-분명치는 않다-를 스친 것이 아쉬웠다.
그러자 놀랬다. 자세히 보니 거기 화장지가 준비되어있었다.
‘세상에...‘
이어 다리에 힘이 빠졌다. 출산과 동시에 잠든 진통, 욕되나 감히 견주며 주저앉을 듯 일어서니 눈앞에 거울까지 붙었다. 어두워 보이진 않았지만 좌변기에 길들여진 자신을 감히 진통에 비유한 흉측한 모습과 뿌듯한 고마움이 뒤섞여 반사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세상에 살다니, 정말 편하구나!-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자랑스러웠다.
버스와 승용차들이 뜀박질하는 도시의 한복판 화장실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뿌듯하게 느끼는 것은 국민의 소중함을 간이 화장실이나 근엄한 헌법재판소에서 두루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자랑스럽고 엄숙했던 것은 ‘국민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문구(文句)에서다.

사십년 전, 하와이에서 생각했었다. 잘사는 미국인, 그러나 다리에 힘이 없다는 그들과 한국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푸라기나 신문지로 밑을 닦는 우리의 빈곤과 화장지를 사용하는 그들의 여유, 쭈그린 우리의 뒷간과 달리 좌식변기 때문에 그만큼 다리의 힘이 없어졌을 것이라고 여겼다. 어느새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그렇게 변했다. 다리의 힘이 빠졌다는 것은 별로나, 작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까지 혹여 투정을 부리는 사람 있다 해도 두루 국민의 소중한 뜻을 감싸고 있음에 긍지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산고(産苦) 후의 평온과 나의 편함은 결코 비교될 수 없다.
한 생명을 출산하기 위한 진통 뒤의 평온과 독한 욕심을 버리고 난 후의 후련함은 워낙 거리가 크다. 같은 과(科)가 아니다. 다만 인생손바닥에서 보노라면 어딘가 돌고 도는 맥이 통한다는 점에서 나는 편한 김에 멋도 모르고 17층까지 신나게 올라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출산을 돕는 의사, 식중독에 <제 하제(下劑)>대신 배설을 강조하는 의사의 처방이 정치인과 다르다는 점에서 왠지 자부심이 함께 밀려온다. 문법이 있어 말을 하게 된 것이 아니며, 길이 있어 걷기 시작한 게 사람이 아니다. 그 반대라는 사실을 의사는 처방에 철저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아! 편안함이여!

-버리니, 것도 화끈하게 버리니 정말 편하고 또 편 하구나!-
다만 타전할 곳이 없어 그것이 아쉽고 아쉬울 따름이다.
(‘04-10-22 0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