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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의사-1 정신과의사의 25시 덧글 0 | 조회 15,373 | 2009-04-17 00:00:00
정동철  


<정신과 의사의 제25시>

“박사님이시죠? 도와주세요! 너무 힘들어요. 꼭 상담하고 싶어 전화했어요. 저…”
“잠깐, 직접 만나서 얘기 줄 수는 없을까요?”
“선생님! 알아요. 너무 늦은 시간이죠.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요. 상담료는 온라인으로 보내드리겠어요. 들어주세요. 네!”
전화의 주인공은 의외로 아주 차분했다. 아니 수화기를 울리는 까라진 목소리가 차갑게 느껴졌다. 30세 전후의 여성, 기왕(旣往)의 등록(登錄)된 환자가 아니라 처음 상담 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이다.
경주 힐튼호텔, 새벽 2시 35분, 97년 8월 6일, 화요일이다.
“무척 급한 것 같군요. 돈 문제가 아니라 전화 상담으로 얼마나 그쪽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하여간 어떤 거죠? 상황보다 우선 문제가 무엇인지 그것부터 얘기해 주겠어요?”
“감사합니다. 막상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남편이 저를 배신했습니다. 뜻밖의 여자와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제 알았어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어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죠. 이대로 죽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죠. 분명 저에게 뭔가 실망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삶의 의미가 없어졌어요. 그러나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왠지 누군가와 최종 결론을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선생님을 택한 것은 평소 TV나 책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판단은 잘 된 것일까요?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대로 죽는 것이 최선이겠죠? 박사님…”
그날 아침의 일이다.KAL 801(보잉 747)이 추락한 직후, 바로 그 시간에 나는 생면부지의 젊은 여인으로부터 잠을 빼앗겼다. 괌 아가나 공항 착륙 직전 추락한 그 잔인한 생사의 갈림길이 진행되고 있던 아비규환의 시간(주-1)에 나는 전화 속의 다급한 방황(彷徨)을 수습(收拾)하려고 고심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청소년의 투신 자살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에게 단 한 사람만이라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대로 넘길 형편이 아니었다. 같은 시간대에 지구상에 참담한 비극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거기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기막힌 죽음과의 싸움이 가득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문화를 놓고 미개와 문명화된 사회를 비교한다는 자체가 모순인 것처럼 모두가 유아독존적(唯我獨尊的) 특성을 지닌 비극의 아픔이 또한 비교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밤중에 다이얼을 돌렸을까?
나는 환자를 위해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통화(通話)할 수 있도록 전화를 열어두고 있다. 내가 이동 중에도 핸드폰으로 연결된다.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지만 병원의 대표전화만 알면 하여간 통화가 가능해진다. 기왕의 치료를 받거나 호전됐다가도 급할 때 자신의 문제를 직접 의논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다는 점을 알게된 그들은 대단한 위로가 되고 있다. 이미 익숙한 환자들은 그래서 안심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웬만해선 밤을 피해주려고 애쓴다.(주-2)
나의 주간(週間) 계획표엔 늘 외부(外部) 활동이 먼저 차지해버린 경우가 많은 편이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만나지 못할 때가 있다. 진찰이든 전화든 처음 얘기를 끝낼 때 그래서 꼭 24시간 전화 시스템을 말해 주고 있다. 결과 그날 병원에 오면 만날 수 있는지 확인할 때 굳이 간호사가 나오는 시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급할 때는 전화로 상담을 하고 적절하게 처방된 약을 낮에 찾아갈 수도 있다. 40-50분의 면담시간이 진행된다해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출국했을 때는 간접적으로 연결이 가능하도록 해 놓기도 한다.
연 전에 뉴욕에선 두 사람의 환자와 면담을 그래서 해 줄 수도 있었다. 나의 환자는 세계 곳곳에 있다. 그들은 나의 처방에 따라 국내(國內)에서와 같은 입장에서 지낸다. 시차(時差)가 있는 곳 어디라도 병원 전화를 이용하면 다급한 어떤 상황이나 공황(恐慌)과 같은 불안도 언제나 의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제 아침만 해도 그랬다. 춘천(春川)에 사는 환자가 경주(慶州)에 있는 나와 통화를 하고는 마음놓고 처방을 받아갈 수 있었다. 병원 전화를 걸면 자동으로 연결이 되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기에 집은 멀어도 늘 나와 더불어 가까이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놓고 있다. 편안한 마음이라며 늘 고맙다고 한다.(주-3)
친구들이 종종 말한다.
병원이나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막상 내가 받는 장소는 거기가 아니라 지방이나 운전 중의 차 속일 때가 있다. 늙은 나이에 쉼표가 없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며 염려를 한다.
“쉬는 시간이 있어야지 스트레스가 크지 않겠어! 밤이고 어디고 간에 전화가 걸려오면 24시간 일하는 기분이 들텐데…힘들지 않아?”
힘들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젊었을 때 보다 오히려 더 삶의 생동감을 갖는 것은 묘한 일이다. 의사만의 현실이자 그것을 보람으로 여길 수 있어서 일게다.
병원 사택에 살던 때가 있었다.(주-4) 퇴근 후 전화에서 병원과 관계된 것은 가급적 피했다. 아내가 오히려 타이르듯 말하곤 했었다.
“얼마나 괴로우면 전화를 했겠어요. 웬만하면 받도록 하세요.”
오밤중에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다. 입원실에 불길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먼저 떠오르는 연상(聯想)이었기 때문이다. 의사(醫師)라는 직업이 갖는 불가피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전화 공포증에 유사한 현상이 있었다. 의사가 아니고선 이런 심정은 알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뀐 것이다.
전화의 주인공은 분명히 서울에 있는 나의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받는 곳이 경주(慶州)라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고, 게다가 호텔이라는 것은 더욱 의외였을 것이다. 내가 경주에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녀의 문제가 촌각(寸刻)을 다투는 것이라면 기왕의 등록된 환자가 아니라도 상담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나, 의사의 역할이다.
응급 사태는 종합병원 수술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과적(精神科的) 응급 사태 역시 생명의 구름다리를 넘나드는 심각한 경우가 허다하다. 자살은 그 대표적 위기 상황 중의 하나다.
나이 들어 불안한 사람들을 전화로나마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문명의 이기(利器) 덕분이지만 나로 해서 마음놓고 잘 수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컴퓨터에 비교적 일찍 눈을 떴던 덕택에 PC통신을 통해서도 어렵고 힘든 마음을 함께 해 주곤 한다. 보람이다. 아쉬운 것은 나의 역량이 한계에 머물러 아무리 인터넷을 뒤지며 정보 사냥을 한다해도 청하는 모든 사람의 아픔을 명쾌하게 어루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에 나의 홈페이지를 준비 한지는 오래 됐지만 벌려놓기만 하고 수습할 능력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뿐인가, 나에게도 아직 영글지 못한 소갈딱지로 가끔 투정이 솟을 때가 있다.
삼복더위로 땀에 절다 겨우 아내와 저녁 식탁에 앉아사실 나는 그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맥주 잔을 부딪히며 더위를 식히려는 순간 다급한 벨소리에 전화기를 들지만 막상 넋두리일 때, 소찬(素饌)이나마 정갈한 식탁이 자동차 구정물로 날벼락을 맞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와락 짜증이 스며드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런 대가(代價)없는 전화 상담을 왜 사서 고생해야 하는가?
기자(記者)들의 태도만 해도 그렇다. 아는지 모르는지 평범한 점심 한 그릇 사먹기도 힘든 한 사람 진찰료로 살아가는 의사에게 곱지 않는 눈총이 크다. 예외 없이 ‘의료보험 수가 또 5% 인상’이라고 대문짝 만한 일면 톱기사가 그런 것이다. 조만간 폐업(閉業)을 하겠다고 설문지에 응답한 뾰두라지가 아프게 불거진다.
내복약 1회 조제료(調劑料)는 보험 수가 360원이다. 동물(動物) 병원의 개는 1천 원, 사람에 대한 투약 행위료(行爲料)가 개의 1/3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24시간 무료 전화 상담’에 입이 쓰다는 것은 자청한 일이라도 수시로 드나드는 상념(想念)이다.
사람이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다니
방송 매체나 신문마다 한방(韓方)의 지혜를 허준 시대에 맞추어 양의(洋醫)를 수입 상품쯤으로 여기는 발상이 도처에서 판을 칠 때도 그렇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리 만족이라도 하듯 항변(抗辯)의 소리가 높다. 값을 거론하는 경우 놀랍게도 한방은 예외적 대접을 받는다. 수십 만원의 보약에 관해 꼬투리를 잡는 매스컴은 없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보다 수명이 짧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한방의 보약 덕분일까? 그나저나 KAL 참사에 한의(韓醫)를 부르지 않으면서, 우리의 군(軍)은 군의관(軍醫官) 대우로 그들을 불러 가는 것은 무슨 수술(手術)을 위해서인지 알 수가 없다. 총탄이 생사를 가르는 긴박한 전투 지구에서 탕약(湯藥)을 끓여야 하겠다는 주장에 동의할 사람은 필시 없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한방(韓方) 군의관(軍醫官)인가?
과연 편의점도 아닌 무료 24시간 상담 전화선을 왜 연결해두고 있는지 투정이 치솟을 때가 있다는 것은 이래저래 아직도 나이 값을 못하고 있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잠깐의 말 그대로의 투정이다. 나의 25시를 누가 알아준다 해서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 적이 있었던가?
다행한 것은 나의 맥주 잔이 힘없이 내려와도 아내는 결코 짜증을 내지 않고 오히려 밝게 잔을 치켜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화가 끝날 때까지…….
결국 나 역시 이렇든 저렇든 적자(赤子) 도산(倒産)으로 폐업을 하게 될 그날까지 나의 병원 대표전화 하나만 알면 24시간 통화가 가능한 회로(回路)를 닫을 생각만은 없다. 진갑(進甲)을 지내고 보니 비로소 그나마 철이 들어서일까? 난동을 부리든 말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생 끝자락에 선 요지부동의 정해진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생의 의미를 상실했던 여인, 그녀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잠시 옆길로 샌 투정 속에서도 무소식(無消息)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믿고 싶다. 그것으로 위로를 받을 뿐 달리 방법을 찾을 길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그 후 그녀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으니까.

(주-1): 254명을 태운 대한항공 801편 보잉 747-300B 여객기가 97년 8월 16일 새벽 0시 55분 괌 아가나 공항 남쪽 4.8km 밀림 지역 ‘나비나 힐’에 추락 226명이 사망하고 28명 생존.
(주-2): 1996년 초부터 현재까지 병원 대표전화에 착, 발신 자동 연결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그것은 2001년 12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중단될 이유를 아직 찾고 있지 못하고 있다.
(주-3): 2000. 7. 1. 이후 의약 분업으로 전화 상담은 가능하지만 약을 타 갈 수 있는 길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의료 보험 제도는 본래 이런 방식의 것은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과잉 내지는 부당 청구라는 법적 제재를 받아야한다. 환자의 불편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독한 정치 논리로 방해되고 있다. 양질의 진료는 분업과 동시에 더욱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너무 보채는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에 할 말을 무력한 나에게 호소하니 딱하기 때문이다.
(주-4): 1989년 11월부터 1972년 8월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청량리 뇌병원 사택에 있었으며 1974년 3월 퇴직했다. 그때 나는 나의 의무와 권리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후배
성치료에 관심있어 성희학회에 가입하게 된 정신과 의사입니다. 선생님의 홈페이지를 서핑하며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보면서 정신과 의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약간이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좋은 말씀 주시기를 바랍니다. IP:211.37.72.65
[200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