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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침표, 그 기쁨 덧글 0 | 조회 17,850 | 2014-07-19 13:04:28
관리자  

 

삶의 마침표, 그 기쁨

-엄마! 아빠 이름을 정동철이라 하면 할아버지가 싫어하시겠지?-

2002.1.

정 동 철

 

 

침이 까맣게 타 들어간다는 산고(産苦)가 조용한 환희로 다가왔다.

정신과(精神科) 의사의 아들이 정신과(精神科) 의사가 된다는 것은 적어도 그의 아버지인 나에겐 감회가 컸다. 2002124일 목요일 오후의 일이다.

길고 긴 인고(忍苦)의 세월, 돌이켜보면 오늘을 위해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이고 몸짓을 절제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의과대학 6, 그리고 수련기간 인턴/레지던트 5, 긴 긴 세월은 이날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래서 기쁨은 차라리 하나의 드라마, 감동 그 자체였다.

전문의는 입장이 다르다. 박사학위는 정신과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자격과 상관없다. 있고 없는 것은 관계가 없다. 전문의는 말 그대로 정신과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절대적 관문이다.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면 정신과 환자를 치료할 수 없음이다. 정신의학적 전문용어를 사용하며 父子가 함께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신경전달물질의 전달체계가 일부이긴 하나 유전적으로 父子사이에 구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침표가 있다면 시어(始語)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역사의 단절과 반대어가 된다.

 

둘은 오랜만에 마음 놓고 산행(山行)에 나섰다. 앞으로 없을 유언과 같은 걸음걸음이었다.

실제로 우린 말로 나누는 대화보다 더 많은 얘기를 주고 받았다.

숨을 고르며 오르다 마침 북한산 어귀에서 사온 아이젠을 채우니 새삼 감탄이 터졌다. 눈과 뒤섞인 얼음을 별다른 쉼표 없이 오를 수 있었던 이유다. 이윽고 대동문(大東門)에 올랐다. 숨을 내쉬고 적당한 자리를 잡으니 며느리가 싸준 유부 초밥이 일미였다. 맥주를 곁들이자 입춘(立春, 2002. 2. 4.의 전날)답지 않게 봄 같은 운무(雲霧)가 몰려왔다. 그 위에 올라앉아 꽉 찬 상쾌함을 한 것 들이켰다. 상계(上界)진인(眞人)이 따로 았을까?

그끄저께구나, 큰 고모님이 다녀가셨지. 나를 몰라보시더라. 얼마 후에야 알아보고는 반색을 하셨지만 이내 표정은 癡呆라는 마스크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 마음이 안 좋았어. 무척 잘 해주신 누님이셨는데.......... 한데, 난데없이 이런 생각이 드는 거 있지. 내 자리에 네가 있고 고모 자리에 내가 멍청히 앉아있게 될 그 어느 날의 면담실(面談室)..........”

아들은 이내 말을 막고 그 동안 했어야 할 도리들을 챙겨야겠다는 얘기로 방향을 틀고는 맥주를 비웠다.

능선(稜線)을 타고 평창동으로 내려오는 길은 지루했다. 배가 불러 숨이 턱에 걸렸다. 아이젠을 풀 때부터는 재미가 없어졌다. 둘은 크게 웃었다.

인생이 이런 거지. 오를 때는 힘들긴 해도 지루하지 않지. 버겁고 숨통이 막혀 정신을 앗아가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니까. 내려오는 길은 그러나 이렇게 재미가 없어. 내가 걸어온 얘기야......... 올라가는 너의 얘기이기도 하고......”

 

마침표를 찍는 것은 행운이었다.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 뜻에서가 아니다. 생물학적 삶의 의미도 아니다. 나와 함께 같은 전문적 단어를 터놓고 나눌 수 있는 부자간(父子間)의 이어지는 대화가 neuro-synapse를 건너뛰는 신경(神經) 전달 물질처럼 릴레이가 정확하게 이루어진 까닭이다.

 

그래서였나, 지난해의 마지막 강연이 불연 듯 비집고 들어왔다. 물론 금년 11월분(2002년도) 까지 강연이 예약되어 있어 결코 마지막 연설은 아니지만 지난해의 끝자락에 있었던 강연은 왠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둘러싸였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나이도 그렇지만 아들이 이어갈 버튼을 생각하고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2002년이 삶의 분수령 같은 획을 결정할 것이라 여긴 이유다. 때에 또 다시 끼어든 상념.

--Where I can find out the identity of Korea? What's the Korea?--

취한 듯 아날로그 가락으로 길고 긴 세월 다져온 >이 디지털 >과 조화를 맞추자니 어지간히 힘들다고 여겨졌다.

아들이 그의 친구들과 교감하고 있는 웹사이트인 Cyber Musicom (www.june90hihome.com)으로 도둑고양이처럼 기어들어 보았다. 터지는 것은 웃음뿐이다.

 

번호 : 391 날짜 : 2002.01.28 (Mon) 14:47:00

게시자 : 정세훈

 

감사하는 마음으로 쏘겠습니다~~

 

, 길게 고맙다는 말 필요 있겠습니까?

그냥 쏘면 되지.

 

하지만, 정말 여러분의 격려에 힘을 얻은 건

사실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근데, 정신과 개원의가 2001년도에 방사선과를

제치고 수입 꼴찌를 한 영광스러운 이야기는

아시는지요? (제가 쏠 때, 이 사실을 참조 바람)

 

from 나비 아빠

 

며칠 후 게시판을 다시 훔쳐보았다.

 

번호 : 394 날짜 : 2002.01.31 (Thu) 16:39:00

게시자 : 정세훈

 

2009 Lost memory - 으으윽.

 

한마디로

 

광복절 기념 뮤직 비디오 + 터미네이터 + 사랑과 영혼

+ 유인촌이 진행했던 일요일마다 하는 3D 다큐먼트

 

정말 너무 너무하다. 진부하기 짝이 없고 차라리

공공의 적을 볼걸...

내가 늙은 건지... 보는 영화마다 왜 다 이러냐...

 

xx는 아직 일본 갔다 안 왔나?

오늘 술 마실 사람 붙어라.

016-xxx-xxxx

 

나비 아빠

다음과 같은 축하에 대한 답변들도 보였다.

 

번호 : 389 날짜 : 2002.01.28 (Mon) 09:36:00

게시자 : oo아빠

 

축하한다! 전문의 정세훈

 

xx가 올려놓은 글을 보고 알았다.

 

고생 많았다.

이제 개업만 남았구나.

"정세훈 정신과의원"이라...하하

 

암튼 축하한다.

더불어 함께 고생했을 나비 엄마에게도

축하를 보냅니다.

 

크게 한번 쏴라~

 

나도 알고있는 그의 친구 xx의 다음과 같은 글은 내 나이를 자극하자 팽그르르 돈다.

 

번호 : 388 날짜 : 2002.01.25 (Fri) 23:09:00

게시자 : xx아빠

세훈이 전문의 되었다!

 

한동안 '과장'이니, '사무관'이니 하는 직급을 가리키는 명칭이나, '석사', '박사' 같이 학위를 가리키는 명칭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전문의'가 되었다는 이야길 들으니, 누구 말 맞다나 확 늙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우리의 친구 세훈이가 전문의가 되었으며, 이제부턴 명실상부한 final decision maker가 되고 말았다는 점 축하합니다.

 

xx

 

결국 아들의 색깔이 나왔다.

 

번호 : 398 날짜 : 2002.02.01 (Fri) 10:51:00

게시자 : 정세훈

 

월팝있던 길에서 쭉 들어간...

 

어느 고기 집에서 BH를 만났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B와 가서 있던 중 H가 왔다.

 

월팝이라... 삶의 지표가 더 이상 현존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인가?

 

친구에 대해서 얘기했고,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개념에 대해 반박했지만, 난 그걸 무척 즐기고

느끼고 싶었다. 식당 같은데서 종업원을 부를 때 나의

역기능적 인지(認知) 오류는 더욱 강화된다. 손 따위를 흔들어

서야 당연하고, 큰 마음먹고 '여기요'를 외쳐도 무시

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종업원이 자신을 쳐다볼 때를 정확히 파악하여 한번의

손짓으로 그들을 부른다. B가 그랬다.

 

번개를 때린 것은.... 그래 B에게는 충동적이었다고

얘기했다. 재미없는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충동적으로 술이 마시고 싶어서 그랬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그게 나의 한계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친구가 둘씩이나 나와줬다.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라는 얘기를

꺼낸 것이다. 내가 말이지.

 

그리고는 이내 취했기 때문에 할 말이라곤 없다.

B의 집은 아늑하고 좋았다. 그리고 취했기 때문에

잘 기억하려고 Bwife에게 한 자씩 또박또박

발음해 달라고 부탁했던 피망 비슷한 빨간 야채(?)

이름은 또 다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한 자씩 발음

했기 때문에 네 자였던 것만 기억한다.

 

감각과 object에 대해서도 얘기했지만, 쓸데없이 그걸

굳이 말로 하려든 내가 한심하다.

 

편안함과 그런 나머지 약간의 귀차니즘(?)이 엄습해

왔다. 그건 어제 모임이 내게 준 가장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내가 B에게 wife를 잘 '간수'해야 한다는

말은 너무 치명적이었다. 결코 그따위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건 너무나 고지식하고 고리타분

한 단어였다. 하지만 이미 취했기 때문에 더 좋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 뿐이다.

 

-나비 아빠

 

누군지는 모르나 그의 말대로 개원만 하면 되겠지. 쏠 때 참고하라는 정신과 전문의의 수입이 내가 개원(開院)했던 시간으로 역류한다. 그때 나는 창살 없는 외래 정신과를 시작했다. 1974, 정확하게 27년 전이다. 미친 짓이라 걱정이 주변에 번졌다. 입원실 없는 정신과가 되겠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상식이 아니었으니까.......

 

마지막 강연이라 여겼던 생각을 소처럼 되새김질하면서 새삼스런 숙제 하나를 풀려고 아들을 축하하는 친구들처럼 나도 한마디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매달린다. 숙제 하나를 풀려고 그래서 긴 긴 얘기가 지루하게 이제부터 시작된다. 불면증에 걸린 사람을 위해 딱 어울리는 그런 얘기들 말이다. 아무리 지독한 불면증이라도 결국은 잠들지 않고서는 못 백일 것이니까.(참고;수필집 발간위해 김영사와 네고 중, 의견 들으며 정리하는 가운데 재미 더럽게 없을 것이라는 반어법, 포기했지만..)

평창동 예의 단골주막에 앉아 둘은 다시 맥주잔을 조용히 들었다. 마담이 축하한다며 따끈한 계란찜 뚝배기를 서비스로 내놓았다.

우리는 다시 무엇인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말로 다할 필요가 없는 얘기들, 아마도 그래서 이렇게 글들을 모았지 싶다. 나처럼 그렇게 살 수가 없을 것이며 살아서도 안 된다고 여겼기에 그렇다.

정상(頂上)에서 3대 독자인 그는 말했다.

누군가 둘 중 하나는 정신과 의사가 될 거예요. 딸이라고 가업을 이어가지 못할 것은 없지 않을까 해서죠.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어 박사(博士) 학위로 올라가려 해요. 나희(娜熙)를 위해서도 말입니다. 나희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더욱 그렇다. 언젠가 첫째 손녀 나희(娜熙)가 귀엣말로 그의 엄마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 엄마! 아빠 이름을 정동철이라고 하면 할아버지가 싫어하시겠지?.... -

반드시 남겨야 할 글이라 여겼기에 밤을 새가며 주()를 달아야 했다. 결코 나와 같은 삶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리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신화나 전설처럼 유유히 흐르는 심성아래 진득한 혼령처럼 역시 연연히 흐르는 人心-당시 책 제목을 그렇게 할까 했었지,을 본대로 남겨두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2014/5/8

그냥 읽어보렴, 며칠 전 우연히 뭘 찾다가 발견한 것, 웃을 수 있어 좋더라고, 너도 한번 보는 게 어떨까 생각. 닮아도 너무 닮았다고 웃었다. 너의 글 솜씨며, 아내를 통해 인사하는 방식 까지-방금 엄마에 전화하네, 하여간 어머니 카톡을 받았다 하더군... 뇌의학연구소에 글을 올리려니 전문적 searching을 하면서 유전자 발현의 의미를 알 것 같긴 하지만 너무 닮는 것 아닌가 혼자 웃는다. 변하는 것, 난 스스로 모르지만 역시 있겠지? 죽음을 가장 두려워할 것이라는 언젠가의 너의 추궁 같은 확인사살? 그것은 틀렸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까지 사나가 아니라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가 관심, 환자들이 늙은이라고 싫어하면 즉시 알려주기 바란다.

나희는 Celist, 지희는 Painter, 지난 날의 예상들은 모두 달라지고 그러나 그들의 삶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좋아 보이는데 장차 이 병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을 끊어가고 있는 중이라 나는 조금은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지만 너의 입장까지 내가 관여할 마음은 없으나 생각이 지워지진 않네...

2014.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