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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그것이 진실 덧글 0 | 조회 15,390 | 2009-04-17 00:00:00
정동철  


봄,
자연의 사계는 거짓이 없다.
인간,
인간 사이의 일은 거짓이 아닌 것이 없다.
거짓,
거짓말이 진실이어야 하는 것일까?

수필 한 편을 소개한다.


거짓말

‘가짜 수출입 상품 전시회’가 있었다.
전시회(展示會)의 의도는 간단했다. 비싼 것일수록 가짜가 판을 친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것인데 진품(眞品)과 구분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사족(蛇足)을 달았다. 한데 가짜라는 것이 어디 상품뿐인가?
영화 <거짓말>을 큰맘먹고 간 적이 있었다. 선전 간판이 신문광고의 <거짓말> 그대로였었다. 한데 너무 황당했다. 베니스 영화제까지 갔다는 영화가 이 정도 일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이가 없어 나올 때, 표 밭는 아저씨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거 정말 <거짓말>이에요?”
“아! 시중의 <거짓말>이요? 이건 그게 아니라 다른 <거짓말>이죠.”
<거짓말>을 진짜처럼 거짓말을 하는데 넘어간 자신을 생각하니 입가의 웃음이 썼다. 환자와 나누게 될 얘기를 헛 짚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가짜 사람들이다.
터미네이터 같은 가짜 사람도 문제지만 그것은 차라리 우직하다. 불사신(不死身) 같은 그 무시무시한 지조(?)가 거기엔 있다. 그러나 가짜 대학생, 가짜 연예인, 가짜 사회사업가, 가짜 기자, 가짜 경찰, 가짜 의사, 가짜 선생, 가짜 목사 …… 표방하는 얼굴마다 철저하게 상대방을 속여 나락(奈落)에 몰아넣는 사람을 가려낼 방법이 없으니 문제다. 가짜 양주처럼 한바탕 흔들어 물방울이 오래 남아있으면 식별(識別)이 되는 그런 방법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가짜 사람들은 그게 아니다. 흔들어도, 달래도, 윽박질러도 아무런 표정이 없으니 당하는 사람만 꼴이 우습게 된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몽땅 서민(庶民)들의 몫이라 더욱 기가 막힐 뿐이다.
권력층(權力層)의 가짜들은 더욱 끔찍하다. 사회는 물론 나라를 들어먹을 판이지만 그들에게 감히 <가짜>라는 단어를 썼다간 영락없이 시궁창에 코를 박아야 한다. 감히 엄두를 낼 여지가 없으니 기가 찰 뿐이다.(주-1)
그래서 천지신명께 비는 도리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 우리네 소시민의 현실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나라를 다스리는 3권 분립의 거인들 마음속에 한 줌 자비로운 측은심(測隱心)을 깃 들게 하소서. 백성은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어리석은 백성은 허리가 휩니다. 천지신명께 정안 수 떠놓고 그저 빌고 비오나니 소원일랑 제발 저버리지 마옵소서…… 하루를 살아도 거짓말 없이 편히 잘 수 있는 그런 마음일랑 제발 짓밟지 마소서……”
그 엄한 조선조에도 <상소(上疏)>라는 제도가 있었다.
지금은 시중에 맴도는 가짜를 보고 가짜라고 해선 안 되는 아주 높고 높은 사람들의 부라림이 너무 엄청나다.(주-2),(주-3) 감히 뻥긋할 엄두가 나지 않아 숨만 몰아쉰다. 하지만 풀뿌리 민초(民草)들이 이대로 죽어 가기만 할까? 밟히고 짓이겨진 잔디는 더 질겨진다던데.........
그러나 그래봤자 허무함이 음산하게 공동묘지의 칙칙한 밤을 감돌고 있으니 거짓말 없는 세상은 가짜 <거짓말> 영화처럼 달라지리라는 가능성이 없으니 그저 희망 사항일 따름이겠지?

(주-1): 불과 1년도 안 되어 실제 세인이 다 아는 주필이나 논설위원, 또는 원로 지식인은 정부를 비판하다가 세무 조사를 받고 끌려 다니며 수모를 당하고 있다. 의약 분업을 반대한다고 의사 단체의 집행부 위원들은 실형을 받기도 했다. 마땅히 대처할 방안마저 없으니 과연 이 나라가 언론과 결사의 자유가 있는 민주국가인지 의심스럽다는 외국 학자들의 견해를 듣고만 있다.(2001. 8.)
(주-2): 중앙일보 [취재일기](2001. 9. 17.)에 ‘통일부의 너저분한 거짓말’이 실렸다. 9개 월 만에 재개된 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의 첫 全體회의가 열린 직후인 15일 낮 서울 평창동 올림피아 호텔에서 밝힌 내용을 두고 쓴 것이다.
"그런 너저분한 얘기들은 이번 회담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
회담장을 지키던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전력이나 쌀 지원문제가 거론됐느냐" 는 기자들 질문에 이렇게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들통이 났다.
북한의 관영 중앙통신이 오후 5시쯤 회담소식을 전하면서 "電力제공 문제 등이 거론됐다" 고 보도한 게 외신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회담취재를 맡았던 기자들은 외신기자들에게 귀동냥을 해 기사를 부랴부랴 수정했고, 이 고위당국자의 말만 믿고 電力지원이 논의되지 않았다 고 보도한 통신.방송은 오보를 한 셈이 됐다.
물론 민감한 남북간 협상내용을 어떻게 공개할 수 있느냐 고 통일부측은 항변할 수 있지만, 이번 건(件) 은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 양측은 이미 지난 2월 電力실무협의회까지 열고 북한 전력 실태조사까지 거론한 상태다. 또 이번 회담에서 이 문제를 북한이 들고나올지의 여부에 대해 당국은 물론 언론도 촉각을 곤두세웠던 대목이다.
電力문제는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관련, 다른 어느 안건보다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통일부 고위당국자의 접근자세나 언행은 신중하고 사려가 깊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에 No Comment 등 통상적인 다른 대처방안 대신 노골적으로 부인한 것은 슬쩍 감추면 되지 라는 단선적 사고의 발로였다.
電力지원 문제를 너저분한 얘기 로 표현하는 데서도 이 같은 측면은 내포돼 있다.
특히 이 당국자의 거짓말은 임동원(林東源) 장관 해임안 가결 이후 국민과 함께 하는 대북정책을 펼치겠다 던 통일부의 다짐이 구두선(口頭禪) 이었음을 보여준다.
북한에 너무 퍼주기만 한다 는 목소리가 커져 가뜩이나 대북정책 추진과정에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 처하고서도, 국민의 혈세(血稅)가 들어갈 대북지원 문제를 몇몇 당국자들만 쉬쉬하며 처리하려는 낡은 생각 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의 너저분한 거짓말 은 이것으로 종지부를 찍었으면 한다.
이영종 기자 입력시간: 2001. 09.17. 17:31
(주-3):朝鮮일보 사설 ‘정부 統計 누가 믿나’(2001. 09. 06.)를 대신 소개한다.
노동부 산하기관인 고용안정센터의 취업자 통계 조작은 정부의 行政수준이 아직도 3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政府정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전제돼야 하며, 통계는 바로 그 現實파악을 위한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다. 정부가 就業알선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엉터리로 만들어낸 통계를 기반으로 고용정책을 비롯한 社會보장정책을 입안했을 터이니 그런 정책이 애초부터 효력을 지녔을 리 만무하다.
고용안정센터의 統計조작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노동부는 뒤늦게 25개 고용안정센터에 대한 자체조사 결과 취업자수가 45%나 부풀려진 사실을 시인했다. 서울의 한 고용안정센터는 무려 79%나 숫자를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니 아연할 따름이다. 전국의 167개 고용안정센터 중 아직 조사하지 않은 곳에서는 또 얼마나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노동부가 ꡐ일선기관 및 담당직원들 사이의 경쟁과열 ꡑ을 탓하며 일선 상담원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취업알선의 질(質)을 높이기보다는 實績주의에 급급해 고용안정센터의 취업률 랭킹을 매기면서 과열경쟁을 부추겼을 뿐 아니라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비록 고용안정센터의 엉터리 숫자가 정부의 공식적인 실업 ․취업 통계에는 직접 반영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참고자료로 이용되고 있는 만큼 실업 ․취업 통계의 신뢰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떨어지고 있는 기현상이 그 때문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정부는 국민들의 불신이 더 커지기 전에 전국 고용안정센터의 취업알선 실태를 정확히 조사, 공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아울러 고용관련 통계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