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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주인은 어디에. 덧글 0 | 조회 15,108 | 2009-04-17 00:00:00
정동철  


마음의 주인은 어디에.

-惡한 자가 잘 된 것을 怨望하고 탓하지 마라, 그저 자신의 일에 담담할 수 있으면 足하리라-
정신과 의사 정 동 철

세상 살아가는데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은 상대적 빈곤감일 것이다.
살기 힘겨워 몰골이 사나운 경우 말할 나위가 없다. 모두가 떵떵거리는데 홀로 추하게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신세가 된다면 죽고싶다. 남보다 궁하다는 것은 치욕이다. 명예나 권력이 없다는 것은 사치라 치고 자존심이 집 밟히면 죽고 싶다는 마음은 그야말로 벼랑 끝의 찰나적 갈림길이다.
마음뿐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그게 인생사라 거들지만 치미는 울화를 견디기 어렵다. 산수 갑산을 가도 마음이나 편할 수 있다면 원이 없으련만 그게 안 된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다스려 공수래공수거 담담하게 살 수 있을까?
직장인은 <38선>(38세가 되면 퇴직의 위협을 받는다)을 넘기가 조마조마하고, 장사꾼은 경기가 땅밑으로 처 박혀 숨이 막힌다. 때에 150억을 도둑맞고도 도둑놈을 잘 봐 달라고 했다는 세상이라(현대 비자금 관련된 이야기) 외계인처럼 기가 딱 막힌다. 대체 불공평하기로 이래도 되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면 <넌 센스>(?)고 있다면 정말 센스가 없어도 보통 없는 정도가 아니다. 치매정도가 아닐까?”
치받치는 화기 때문에 뼈가 시리다. <타워 펠리스>를 폭파하겠단다. 마치 폭동이라도 날 기세다. 대책이 없을까?
마인드 컨트롤을 주장한다. 답답한 얘기다.
입산 수도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메달려야 한다면 그건 너무 한가한 얘기다. 사실 거느릴 식솔이 없고, 구지 등 따스한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스님이나, 목사, 또는 신부라면 수도를 꼭 하지 않아도 걱정할 게 없다. 그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당장 포도청에 거미줄이 문제다.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갈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버스 기사를 마른 하늘에 번개 치듯 칼로 찌르는가 하면, 어린이나 만만한 여자들을 유괴하거나 납치하는 끔찍한 이유가 원수 같은 그놈의 돈이라 하지만 너무 어지럽다. 놀랍게도 가해자는 대개 젊은 사람들이다. 왜 나만 못살아야 하느냐는 반란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클릭>과 <리모콘>에 길들여진 반사적 마인드(행동방식)가 화근이지 싶다.
<클릭>을 하면 화면에 원하는 것이 반드시 뜬다. 땀방울 하나 없이 비스듬히 거드름을 피며 눌러대면 화면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어느새 그놈의 전자제품이 사람으로 바뀌었다. 거리의 관객을 동원한 무대의 주인공처럼 몸짓 하나로 환호성을 들으며 내키는 데로 사람을 조정할 수 있어야 직성이 풀리게 된 것이다. 안 되면 몸살이 난다. 화가 치민다. 뭐라 눈이라도 찡그릴라치면 왜 야리냐는 것이다. 결국 일을 저지른다. 충동적 마음의 제어장치(실제 신경의 신호전달체계는 일단 신경세포가 움직였다 하면 모 아니면 도식에다. 제어가 불가능하다.)가 실종된 증거다.
인생초행길은 어떤가?
놀랍게도 사람들은 갔다 온 길을 익숙하게 가는 착각 속에 산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초행길이라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있다. 지금까지 이래저래 살아왔으니 닥칠 일이 그렇고 그런 것이라 여긴다.
천만의 말씀.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말 그대로 초행길은 생소한 갈림길의 연속이다. 경험된 장단점을 따져 대안을 준비하지 않으면 코 다치기 십상이다. 시체 말로 경영 마인드가 필요한 이유다. 인생관리라는 것이자 마인드 콘트롤의 기본이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던가? 마음의 주인을 찾는 일이다.

불만은 부족에서 오는 게 아니라 욕심에서 온다.
경영관리의 실패는 과한 욕심이다. 당연히 감정이 요동한다. 특히 분을 이기지 못하는 인내심의 결핍이 뒤따른다.
일견 종교적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 한국이다. 야경의 절반은 붉은 십자가가 증명하고 있다. 국민은 마음의 양식이 철철 넘치는 가운데 산다. 그럼에도 사방에서 난장판이 극에 달해 공포 드라마 속과 같다. 청계천을 복구하여 낭만의 도시를 만드는 게 꿈이라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각박해서는 십자가인들 소용이 있겠는가?
본시 인구 조밀한 지역의 사람들은 매우 공격적으로 변한다는 연구가 있다.
원숭이우리에 10마리와 20마리가 있을 때 그들의 행동은 다르다 한다. 10마리의 경우 평화롭고 유유한데 20마리가 되면 으르렁거리며 사소한 일로 날카롭게 싸우고 물어뜯는다. 사람들의 행동양식 역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도 동물이니까?
실제 대도시의 강력범과 성폭행이 그렇다. 전동차를 기다리는 부인을 떼밀어 죽게 하는 아연한 일을 연상하면 원숭이와 다를 것이 없다. 복원된 청계천은 유유할까? 대체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안다는 것, 아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일 거라 한다. 금수만도 못하다는 것은 자주 듣는 얘기다. 욕심을 <물> 막 듯하고 화를 <불>끄듯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금수라는 강력한 메시지인 듯 하다.

다이아몬드 대신 인조 사파이어, 오늘이 아니면 내일도 있다
아이가 말한다.
“엄마 피자 먹고 싶어…..”
“…세탁기를 돌리는데... 좀 이따 사줄게, 우선 그 빵 먹으렴.”
“싫어! 피자가 먹고 싶다니까!”
달래는 엄마의 심정은 아이에게 의미가 없다. 울고 짜증을 내다 급기야 나자빠진다. 막무가내다.
아이들의 욕구엔 특징이 있다. 원하면 원하는 <바로 그것>을 원하는 <바로 그 즉시> 대령해야 한다. 한데 요즘의 세상을 들여다보면 이런 행태는 아이들만의 특징이 아니다. 남녀노소 거의 차별이 없다. 평등주의 때문인가? 별별 격렬한 데모는 젖혀 놓고 라도 반짝하면 사고, 달콤하면 먹고, 시시하면 버린다. 본능이 우선이다. 꿈틀거리면 하여간 그 즉석에서 하고야 마는 형편이 되었다. 인내라는 단어는 늙은이들 사전에만 있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나 원격조정장치와 휴대폰으로 축지법을 만끽한다. 안 되는 것이 없다. 그것도 즉석에서 이루어진다. 그건 젊은이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런 환경에 익숙하게 만든 것은 어른들이다.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이냐고 따지면 할 말이 궁하다. 중,고생의 40%가 인터넷중독증에 걸려있고 역시 같은 정도의 학생이 성 경험을 했다는 마당에 난감할 따름이다.
대체 물 막고 불 끄듯 하라는 말에 씨가 먹힐 여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초행길의 갈림길은 어차피 아무리 소상한 팻말이 붙어있어도 택하는 사람의 권리다. 후회는 나중의 일이므로 운명이라 치면 그뿐이다.
다만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성공적 내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주인을 찾아 씹고 삭혀서 간직할 가치가 있다는 점에 유념할 일이다. 러시아 작가 고르키가 강조한 말, 내일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얘기다.

인간에 있어서 유일한 진리는 <거짓말>
거짓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이 들어 각인이 되어버린 진리지만 세상을 믿지 못해 부정적으로 보자는 얘기도 아니다. 낮이 있는 한 밤이 있다. 악을 알아야 선을 알고, 불행을 알아야 행복을 느낀다.
세상을 보노라면 온통 거짓말 투성이다. 대북사건에 단 1달러도 보낸바 없다더니 억 단위로 갔다 한다. 일면식도 없다더니 100억이 지하에서 옮겨졌고, 청와대 집사는 용돈으로 11억을 썼다고 한다. 진실은 인간에게 처음부터 없던 무지개가 아닌가 한다.
정치얘기는 재미가 없다.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다. 우리는 모두 척하며 잘난 맛에 산다. 그러자니 자신의 눈높이를 몽땅 전당포에 맡기고 돈푼께나 있는 듯 거짓말이 몸짓에 베어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을 지키려니 거짓은 죄악을 낳는다. 허풍의 종말은 결국 밝혀지기 마련이지만 이상과 현실은 예외 없이 다르다.
또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놀린다. 자신의 허황된 잣대로 남을 대하자니 모두 우습다. 의심이 지배하는 삶 속에 인간관계는 땅속을 헤매고 신용불량자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는가 싶다고도 탕감으로 재기하는 듯, 그러나 오래갈 리가 없다. 거짓말을 안 한다고 우길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의 주인을 찾는 또 다른 삶의 중심단어가 될 것이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는 돌지 않는다.
옛날 얘기로 자신의 현재를 미화하지 않고선 배기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요. 같지않은 놈들이 목에 힘주는 꼴 보려니 분통 터져 죽겠어요. 로또 복권으로 꼭 복수하고 말거에요."
주객이 바뀌자 고작 생각하는 것이 로또 복권이고 보면 기가 차다. 대박이 터지게 되어 있다고 믿는 마음, 그 많은 시간을 탓하는데 쓰기가 바쁘다. 피땀의 대가에 대해선 눈도 돌리려 하지 않는다.
"해 봤자 소용없어요. 웬 돌 뿌리가 그리도 많은지… 뭐 될성싶다 하면 딴지를 거는 거에요. 안 되게 되어있어요. 해도 소용없는 짓이죠. 차라리 너 죽고 나 죽는 거죠"
세상에 흘러간 물로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있던가? 과거가 아무리 우아하고 멋졌다 해도, 또는 지지리 궁상 속에 살았다 해도 영원불변의 법칙은 없다. 변한다. 변하는 방향은 운이 아니라 자신의 피와 땀에 의한다. 한데 도무지 운에 매달려 그 끈을 놓지 않는다. 나와 너의 얘기다.
마음의 주인을 찾아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택도 없는 얘기다.

초행길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은 거짓된 자신을 알아 내일 해가 뜬다는 진리를 믿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끈기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마음의 주인이 행세를 하게 되는 때이며, 그때 비로서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다.
남 얘기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바라는 마음이다. (20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