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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취해 저승으로 가는 길 덧글 0 | 조회 16,076 | 2015-01-16 17:33:55
관리자  

달에 취해 저승으로 가는 길

2014.06.01.

정 동 철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떠납니다. 그게 인생이더군요.

그들과의 기억, 그것을 품에 안고 당신의 삶을 살아가는 거죠.

다들 그렇게 삽니다.

당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떠나간 사람들도 그것을 원할 겁니다.

- James Paul McCartney(1942.6.18.~, 영국) -

 

잠실 운동장으로 갈 생각은 없다. 아시아 선수촌에 아직 산다 해도 가서 직접 그의 노래를 들을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 전 이미 매진된 그의 공연이 신병으로 취소되기 전 중앙일보와 나눈 얘기를 읽은 내용이다. 세월호참사로 피멍이 든 사람들을 위해 한국을 찾는 길에 위로하고 싶다는 기사였다.

와 닿는 그리고도 남의 얘기가 아닌 바로 나의 일상을 확인한 듯 노래를 부르고 싶다. 어떤 곡으로 불러야할까? 폴은 자신의 어머니를 유방암으로 잃었다. 그 후 아내도 같은 병으로 잃었다. 비틀스의 두 멤버도 먼저 보냈다. 존 레넌, 그리고 제임스 해리슨, 때마다 슬픔과 아픔 그 크기는 알 수가 없다. 바로 자신의 얘기, 그러기에 세월호 피해가족에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진솔함으로..... 내가 같은 얘기를 글로 남겼다면 아마도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지난해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 어느 날의 일기를 더듬는다.

 

2013.11.18. 07:57 월요일 달에 취해 저승으로/ 병원

달이 너무 아름답다.

확 뚫린 미등의 행렬 따라 반대편 전조등의 찬란한 고속화 도로, 2시 방향 앞창으로 만월이 너무나 유혹적이다. 이른 새벽이란 상대적 의미가 밀려난 상태, 오늘 따라 차들이 속도를 줄인다. 1차선도 가급적 피하고 있다.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 바닥이 행여 미끄러질까 발에 힘을 자제하는 모양이다.

달은 10시 방향으로 다시 3시 방향, 그러다간 산 뒤에 숨고.... 나 자신의 차 방향을 전연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작심을 했다.

사진을 찍어야겠다. 운전석 사이드 미러에 그 찬란했던 해 빛을 찍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되어 이번만은....

기회를 보다 경인 제2고속화도로에 들면서 시도, 뒷 차들이 황급히 뱀처럼 좌우로 춤을 추며 빠져나가고 나의 차는 차선을 이탈한다.

결국 분당-인천 고속화 도로에서 나의 인생을 끝내지 싶었던 예감이 왈칵 밀려왔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환자의 전화가 잠든 날 깨웠다. 때에 아내의 그 무슨 개그방송 소리로 다시는 잠 들 수 없음을 알아 차렸다. 오늘이 없었다면 모르지만 병원으로 가는 길은 내 인생의 업보다. 불완전한 눈의 힘을 부릅뜨고 여느 날보다 더 일찍 나섰다. 달빛에 취하게 된 연유, 이게 그 마지막 날이 되나....?

 

살았다.

죽지 않았다.

삶과 죽음 거기 놓여있는 실체 무엇이 있는지 그것은 모른다. 태어나 다들 그렇게 살다 갔는데..... 나만 달라야할 그 무엇이 있을 리가 없다. 하니 다들 그렇게 살았다는 것에서 뭔가 있음직한 것을 찾아본다. 돈과 지위 그리고 기억들에 관한 소유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 중에도 기억은 특히 그렇다. 나만의 기억, 추억이라 금이야 옥이야 소중히 간직했던 것 잘났다 여겼다. 그 결과가 바로 달에 취한 배경이다.

 

참으로 넋 나간 짓이었다.

제주도에서 평화와 번영 포롬이 열렸다. 20145월 하순, 9번째다.

선진국, 그것은 백두산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선진적 요건을 갖춘 나라가 있을 뿐 절대적 선진국은 없다는 다니엘 튜더의 기조 연설요지,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 환상에 매달려 비교하는데 급급한 한국인들, ‘기적을 이루었지만 기쁨을 잃은 나라의 저자는 불가사의한 나라로 아시아의 균형자를 강조한다. 난 기적도 얻지 못한 형편에 마음의 기쁨 잃을 것 있는가 싶다. ’촌각의 스타그것은 번개처럼 스쳐갔다.

대체 난 무엇을 비교하며 허수아비처럼 시간을 땜질하고 있었을까? 필요로 하는 의사? 완벽한 의사가 있다고 여겼다는 허구, 그래도 놓고 싶진 않다. 평형수(平衡水)로 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바다 같은 환자들의 부력으로 침몰되지 않기 위해 평형수(平衡水ballast water)의 존재와 역할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그것은 사활 이상의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인 제2고속화도로의 달빛에 취해 적어도 조반 전이나 식사중의 환자들과 일상의 얘기를 웃으며 나누는 눈길로 아침 6시 전 운전석 의자에 앉았을 때가 하루 중 가장 편한 시간이란 맛에 그여이 종말을 맞는다.

 

힘이 빠진다.

그것도 아주 쭉 빠진다.

존경은커녕 서들고 앞질러가는 바람에 모두가 피곤한 병원식구들, 사실인들 내가 버틸 정론(正論) 없어서가 아니다. 잠시나마 대한민국 어디서나 존경까진 아니더라도 인정받아왔던 경력을 통해 전연 가부의 가늠자가 될 수 없음을 알아서다. 다만 사실이라 하니까 결국 살았지만 죽은 셈, 때문에 아들의 아픔이 밀려온 까닭일 뿐이다. 존경받아야할 아버지를 시궁창에 몰아넣고 피곤하다 볼 맨 소리 듣게 되기에 이른 아들, 그 마음이 오죽 쓰릴까 맥이 풀렸을까 그래서 힘이 빠져나간 것이다. 여꾸리에서 터져 나온 아들의 폭발적 목청으로 아뿔사 달에 취한 나의 차선이탈은 다행스럽게도 막혀졌다.

 

이러저런 기억들 그것을 품에 안고 너의 삶을 살아가는 것, 자유인 의사(醫師)로서 함께하는 삶을 말이다. 떠나가는 사람 또한 그것을 원할 것이다.”

우리들 가족 그리고 나의 마지막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