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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 할 수 없는 대한민국 덧글 0 | 조회 16,116 | 2015-01-16 17:55:21
관리자  

 

미워 할 수 없는 대한민국

2014.05.30. 

정 동 철 

 

모든 환자를 둘러보며 상담을 마치고 차팅을 끝냈다.

아내에게 전화,

재미있게 잘 놀다 오지? 거기 평창 날씨 오후엔 34도가 된다던데, 선크림 알아서 하겠지만 잘 챙기고... 안 간다 언잖게 여기지 맙시다....?”

아이들이 서운해 해서 그렇죠, 아빠를 위해서 정한 것인데..... 상황이 그렇다고 이해는 해요.... 잘 갔다 올게요.”

 

오늘 내일 이틀간 평창에 가기로 했었다. 어제 퇴근하면서 병원에 나오지 못할 것을 알리고, 이런저런 지시, 오늘 아침에 떠날 준비를 다 해 두었지만, 도저히 환자들이 걸려 내키지 않아 결심을 했다.

모처럼의 외출, 걱정되는 것은 아내의 마음이다.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결국 한마디...

이제, 우린 이것으로 더는 기회가 없어져가네요...”

 

병원, 정신병원이라는 특수성, 게다가 마구 터지는 사회적 안전사고들, 환자를 위한 안전교육을 모두 마쳤지만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놀러갈 형편이 아니라는 것, 당국의 조사기준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흡족한가가 핵심이다. 결과적으로 아무 일이 없어야한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과연 흡족할 정도인가? 강박적 마음이 편치 않다. 이른바 하드웨어나 시스템 모두가 적정수준이다. 문제는 그것을 다루는 사람, 직원들의 자세가 양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지 않기로 결단을 내린 이유다. 무조건 있어야만 한다. 환자들을 위한 의사로서, 장으로서 적어도 간접살인이 되어선 안 된다는 점,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제주 평화와 번영 포롬이 진행 중이다.

선진국, 그것은 백두산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선진적 측면을 갖춘 나라가 있을 뿐 절대적 실체는 없다는 다니엘의 기조 연설요지, 그럼에도 그 환상에 매달려 비교하는데 급급하는 한국인들, ‘기적을 이루었지만 평화를 잃었다는 그의 책, , 우리 병원은 기적도 얻지 못한 마당에 마음의 평화만 잃어가고 있다.

지키려고 애써 노력하려는 결과가 아니다. 나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알펜시아를 포기하게 된다. 도리(道理)이자 의무라 여길 뿐, 그러나 완벽이란 환상을 쫓는 허상에 매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정체가 그럴 뿐이다. 오래전에 계획된 딸들과 아내와의 약속, 오늘 면담예약을 두 사람 모두 취소했지만.......... 오히려 병원에 더 일찍 나와야 했다.

 

세상은 어수선하다. 무척이나 그렇다.

불확정성원리Uncertainty Principle, 양자물리학에서 하에젠베르크가 내 놓은 자연의 원리, 우리들 보통 사람의 입장에선 이해가 쉽지 않다.

지구상, 아니 우주만물은 원자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들 사람만 해도 그렇다. 산소, 탄소, 수소 그리고 질소가 우리 몸의 90%이상을 차지하는 원소들이다. 단백질, 탄수화물, 그리고 지방이라고 하는 3대영양소가 이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원소들, 뉴턴의 중력이론을 무력화시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빛이 직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태양에 가까워지면 그 중력에 따라 직선이 아니라 태양 쪽으로 휘어간다)을 거쳐 파인만Richar Fyenman 따르면 미시세계에서 볼 때, 입자들은 결코 가만히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요동치는 입자들, 한데 그들의 정확한 위치(위치에너지)와 정확한 양의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하게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재강조하고 있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슨 뜻일까?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더욱 그의 결론은 나의 사고방식을 흔든다.

불확정성원리는 인간의 지적능력에 그어진 한계가 아니라, 자연자체가 원래부터 그런 이치로 내재되어있는 본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뿐인가, 현대물리학이 어떤 정해진 환경 하에서 앞으로 발생할 사건을 정확하게 예견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놀랍게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확률뿐이라는 것이다.

확률?

세월호를 필두로 다양한 안전사고들, 윤 일병으로 상징되는 사건에 이어 이른바 관심병사의 자살사건 등이 왜 예방되지 못하냐고 언론은 정부와 군의 정체를 마치 융단 폭격하듯 퍼붓는다. 쑥대밭으로 변한 후의 대한민국 그때의 모습은 지금 고려의 대상이 아닌 듯 확정성원리이어야만 한 듯 거침없이 전개되는 논리전개 방식, 그것은 수학적 확률 “1”을 전제로 펼쳐지고 있기에 어떤 가치관으로 이해해야 할지 답을 모르겠다. 다시 강조한다. 인권문제와 관련된 사건 자체들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태도를 보면서 그 확률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스스로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어진다는 것, 불확정성원리와 확률 대체 현대물리학이 강조하는 것과 지금의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논리의 전개방식은 별안간 날라 오는 혹성과 충돌할 어느날의 사건을 왜 예방하지 못하고 있었느냐고 질책해도 맞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소름이 인다. 정체를 알수 없는 그 혹성이 나를 덮칠 때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후대에게 물려줄 해석방식을 확률이 아니라 단정적 확률 ‘1’을 기준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리더들은 무조건 악을 대변하는 존재로 이해하는 결과에 행여 오류가 해당되지 않을 것인지 걱정스러워서다. 같은 류의 사안에 어떤 때는 그렇고 또 같은 경우라도 대상에 따라 확률적 오차범위 안에 있다고 하기에 어지럽다.

시사평론가도 아닌 주제에 잡스런 생각인지라 자신을 스스로 적용해 본다.

병원의 안전과 인권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그대로, 언론에서 의도하고 있는 정도로 사건예방이 100% 적용 보장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거다. 분명한 것은 24시간 365일 병원에 상주하고 있다 해도 완전수 6’에 해당할 만한 소수(素數)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최선을 다하라는 뜻은 이해한다. 조용히 이성적으로 풀어낼 방법은 없을까? 죄인 다루듯 고성불패는 언론만의 특권일까? 겁난다.

그들의 세계 과연 정의롭고 떳떳한가? 이해관계가 있는 뒷거래가 없으며, 녹화장내의 언어폭력은 물론 그 이상의 대가성 문제는 과연 전무한가? 확률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그런 일은 ‘0’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언필칭 민심은 천심이라며 국민의 의식은 국내용과 국외용이 다른가? 지도자가 한일관계에 부정적 민심을 만든 주범이라고 해석하는 국민의식, 전문가 70%에 비해 국민 5%만이 한일관계개선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결과(중앙일보 2014.08.13. 참조) 지도자가 만든 결과라면 얼마 전 지도자에 대한 지지율이 긍정에서 부정으로 역전될 때는 어떻게 해석을 했었나?

솔직히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빨간 마침표’-일본국기의 종말,를 오래전부터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다. 지도자의 요구때문이 아니라 독도가 우리의 영토가 아니라고 뻔뻔하게 주장함에서 자발적 표현이 새겨진 것이다.

입맛대로, 편리한대로, 전문가라는 명사들의 외곡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그것은 고려할 여지가 없다는 것일까?

개밥바라기 황혼의 별이 아침에 샛별로 불린다. 금성이 그것이다. 같은 별을 보고 각기 달리 보는 우리들의 사고방식, 양자역학의 자연관이 마음에 안든다고 자연의 이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

전방 초소에 핸드폰이 울린다? 운전 중 전화는 벌을 받는다. 전쟁 중 전화는 괜찮다는 의미? 어차피 통제를 할 것이다. 그건 또 누가 맡아서 해야 하나? 핸도폰의 해킹 과연 언론이 책임지고 막아줄 수 있을까?

 

 

누군가 예술과 같은 인생을 살라!’고한다.

살수도 없거니와 설령 그렇게 산다면 예술은 없어질 것이다. ‘A 즉비(卽非) A, 시명(是名) A’ 산시산 수시수를 터득한 처지가 아닌 이상 이것도 저것도 아닌 혼돈세계에서 헤매는 방랑자, 그것이 나의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그래도 대한민국이라 뇌이면서 빨간 마침표를 상상해 본다. 당연히 그런 현상은 있을 수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현재의 국제정치체계가 살아있는 한, 그리고 우리가 미국 정도의 국력을 갖지 않는 한 다만 심정적 입장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도 민심 중의 하나고 결국 천심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