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성탄절 저녁
2014.12.24.
정 동 철
1. 시든 꽃 정리
2. 쓰레기 버리기
3. 장보기
4. 장본 것 정리
5. 딸기 씻고
6. 마늘 다듬고 찟기
7. 깨소금 만들기
8. 천일염 찧고
9. 야채 씻어 샐러드 준비
10. 닭 정리
11. 가계부 정리
아내의 메모장에 적힌 ‘장 볼 것’의 내용이다. 가장 앞에 고무장갑 3켤레가 적혀있었다.
이른바 크리스마스이브다.
조그만 케이크를 옆에 두고 와인 잔을 부딪는다. 말 대신 웃으며....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와인 따는 세트 어디 있지?”
“나 버리지 않았는데... 거기 있겠지...”
식탁의자를 끌어 올라가 구석진 곳에서 찾았다. 그나마 기대했던 세트가 아니다. 와인마개를 둘러 잘라내는 것이 없다.-한참 뒤에 세훈에게 줬다는 것을 기억한다.
코크를 빼는데 결국 중간에서 부러졌다. 와인 잔의 깊은 향이 코크조각들처럼 식탁 어디론가 나라갔는지 주객이 바뀌었다.
부딪는 두 잔의 소리,
어떤 말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살짝 마시며 아내가 손수 구은 닭고기를 입에 넣으면서 둘이는 거의 동시적으로 웃는다.
“참 오랜만이군... 몇 년 만이지? 이런 날은 거의 없었는데....”
그 흔한 케이크, 아니 귀중한 케이크 주체할 수 없어 벅차기까지 했던 케이크,
“오늘은 빈손이네....”
“입원환자 누가 주겟쑤....”
의원(醫院)시절에 넘쳐 주체하기 힘든 선물 빈손 그러나 아쉬움은 없다.
“손녀들에게 넘겨줄 재테크로 비과세 상품 이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보험회사 직원이 정중하게 권하던 말 매미소리처럼 청청하기만 하다.
세 자녀 다섯 손녀 그러나 그들로부터 아무런 안부가 없다. 평일 그대로...
와인 한 병을 다 비웠다.
병마개 코크가 부서진 이유도 있지만 케이크를 자르기에이르자 비워졌다.
“거실의 크리스마스트리 어둠속에 화려한 모습 끝내 그냥 넘어가는 구료..”
누두도 장식 바로 옆 코드에 꼽을 생각이 없다.
정말 화려했었다.
아내가 평생 처음으로 베란다 벽장에 있던 장식을 준비했다. 보름 전인가 그날 점등 역시 화려한 모습에 금년도 여전하리라 상상했으나 그 후론 한번도 켜진적이 없다.
“당신 손이 아니면 켜지지 않는 트리.... 이렇게 넘어가네요....”
아내가 부딛는 와인잔의 여운처럼 여울져 지나간다.
거실의 어둠 속에 식탁의 조그만 케이크와 와인 잔으로 마음 허공에 묻는다.
팔순과 죽음으로 더 가까이 갈 얼마의 시간을 위해서 아내와 둘이는 그냥 웃음으로 한해를 넘긴다.
기력 떨어지고 아내는 뇌가 어딘가 변하는 듯 깜빡 이내 웃음 보인다. 하기사 그 점에선 나 또한 나 아닌 그 누가 볼 때 같은 모습일 것이다.
무엇을 생각하며 새해를 맞아야 할까?
아내가 적어노은 장보기 메모가 유난히 어른거린다.
해암 뇌 의학연구소 사이트는 쉼표가 길어지고 있다.
논문하나에 본문보다 각주 문헌인용에 시간 너무 쫒긴 탓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원래 멀티태스킹 컴퓨터 윈도우를 닮았기에 아니 컴퓨터가 날 닮았지만 해도 더 했을 것...
조회숫자만 올라갈 뿐 새로운 정보와 소식이 멈추고 있다.
준비된 것 없지 않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