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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야생오리, 비둘기, 그리고 인간 덧글 0 | 조회 16,156 | 2015-03-01 12:37:36
관리자  

 

물고기, 야생오리, 비둘기, 그리고 인간

2015.03.01.

정 동 철

 

 

예감했다.

야생오리를 어떻게 따돌릴까, 내심 잉어의 기억력을 보려 작심하고 나가 현장이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다.

마침 3.1절 한적한 차도를 태극기가 메우고 있다. 사진기에 나름의 시각으로 담았다. 아내는 교회 혼자 탄천으로 간 것이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기 훨씬 전 이미 야생오리가 다리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카메라를 열고 주머니의 먹이를 물고기떼를 향해 던졌다. 벌렁거리는 입에 비해 코앞의 먹이를 먹지못하는 사이 잽사게 달려든 오리들이 삼켜버렸다. 그들 오리는 서로 싸우기까지 했다.

자리를 옮겨 물고기를 몰고온 후 왼쪽 멀리 식빵부스러기를 던졌다. 오리의 직행, 동시에 오른쪽 물고기들을 향해 듬뿍 먹이를 뿌렸다. 오리를 따돌리려고..

멍청한 것은 잉어들이다. 오리들은 힘찬발로 다시 이쪽으로 맹열히 달려들어 잉어가 입에 넣으려는 순간 나꿔채곤했다.

몇차례 더 실험을 했다. 결과는 같다. 사이에 비둘기들이 모여들었다. 다리위에 그들을 위해 역시 먹이를 주었다. 무척 빨랐다. 날갯짓을 하며 서로 먹이를 쪼아간다.

다리를 건너 잔디밭에 먹이를 뿌린다. 비둘기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어찌나 빠른지 그 경쟁심은 전쟁이다.

아들생각이 났다. 오늘 광복절기념 마라톤대회에 절반코스를 신청했다는데 참가자들의 경쟁 이만하진 못할 것이다. 오늘인가 다음주인가 하여간 스탠트를 박은 친구가 마라톤에 참여한다는 것이 신경에 거슬린다. 그의 선택, 여기 잉어, 야생오리, 그리고 비둘기들 역시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선택이고 그렇게 결정한바엔 먹어야한다. 하나 아들이 입상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참가의 의미, 도전의 의미 뭐 그런 것으로 족하다.

하지만 야생의 이들은 생존과 직결되는 연장선상의 문제, 사치 의식의 문제다.

 

의문이다.

지지난주의 경험을 입원환자들에게 지난주 인성강의제목으로 선택했다. 잉어만한 장기기억도 없이 술을 마시고 또 마셔 술마시는 인간 특유의 의식을 잃었다면 만물의 영장, 과연 인간의 뇌를 가지고 있는 게 맞는가라며... 한수 더 떠 망둥이를 등장시켜 낚시에 걸렸다 떨어져 바로 그 자리에 넣으면 다시 무는 망둥이와 다를바 없는 중독, 과연 그래도 되는건가 물음표를 던졌다.

강의가 끝난 후 개별상담에서 사이사이 하는 말,

망둥이란 걸 알았어요. 내 수준이 망둥이.....”

 

의문은 우선 내가 준 먹이의 맛을 알지 못한채 입에 넣는다는 점이다. 사람은 맛을 보고 확인된 것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잉어의 입속, 야생오리의 부리 그리고 비둘기가 쪼아대는 부리 거기에 각각 맛감각을 감지할 수 있는 미각신경이 발달해있느냐하는 것이다.

인간과 다른 점이다. 맛을 통해 미각중추에 이미 경험된 대상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구분되어있다. 뿐인가 냄새 후각을 통해 곁들어 맛과 함께 대상이 먹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물론 맛있다던가 그저그렇다라는 느낌이 시상이란 뇌속의 기억(記憶)집배(集配)기관을 통해 앞머리 뇌피질을 통해 판단하는 경로를 이용 먹을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게 된다.

잉어, 야생오리, 그리고 비둘기 이들의 미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시각적 판단이 훨씬 더 미각보다 발달되어 선택이 결정되지 싶다. 그런 점에서 잉어들의 장기기억이란 것이 지난해와 달라진 것을 알수가 있다. 덥석먹지 못한다. 시각적 탐색에서 지난 가을의 기억을 잊고 있는 것이다. 물속에서 굴절현상이 오리와 비둘기보단 판단속도에 영향을 주겠지만 나의 뇌는 일단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있다. 역시 인간과 비교될수 없는 뇌, 신피질이 없는 그들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어리석기 그지없는 짓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행태를 이해한다.

스키너(B.F. Skinner,1904~1990)라는 유명한 행동주의 이론학자는 행동자체는 없고 과거의 기억에 대한 반응만이 전부라고 했었는데-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의 먹는 행동은 행동이 아니라 시각적이든 미각적이든 지난 날의 경험을 통한 기억에 의한 반응일뿐 행동이라 할 수 없다는 결론엔 동의한다.

 

문제는 인간이다.

특히 술꾼들 특히 중독자(담배, 마약, 섹스, 도박등)의 경우를 가정해보자.

잉어나 오리 그리고 비둘기와 어떤 차가 있을까?

스키너의 유토피아 소설 월튼 투(Walden Two)의 상벌로 멋진 신세계를 이룰 것이란 배경엔 인간의 의식이 빠져있다. 의식이 없는 인간, 동물이란 점은 맞지만 인간이란 점에선 전연 사실성을 잃고 있다. 물고기나 비둘기와 달리 오관의 진화로 세분화된 감각으로 정밀하게 비교구분한다는 장점이 바로 중독자들에겐 역설적이나 함정이 되고 있다. 세밀한 맛에 빠진 기억이 반자적으로 반응함으로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키너의 반응수준에 머물고 있음이 분명하다.

구분하여 생존을 위해 먹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 그들만이 경험하고 있는 미묘한 차이점 바로 맛감별사의 혀처럼 맛에 노예가된 반응을 미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의식, 자신의 현주소를 자각하는 의식이 없는 한 결국 모든 판단은 지난날의 경험에 의한 반응이상의 수준이 아니기에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은 결코 될 수 없다.

-찬성하면 선, 반대하면 악-

어떤 신문의 표현,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반대하면 선(청춘), 찬성하면 악(꼴통),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대중심리의 회오리바람에 따라 이런 의미를 모르고 있다면 중독수준에서 평생 물고기나 오리 또는 비둘기처럼 사는 도리밖에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다.(201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