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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리에겐? 덧글 0 | 조회 15,277 | 2009-04-17 00:00:00
정동철  


미국(美國)

만일 미국의 「나라글」이 한글로 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미국을 잘 모른다.
그러나 영어란 마력 때문에 그들의 합리적이며 실용주의적 사고가 한결 돋보이고 경제대국의 기계적 자동화 문명이 우리의 초가 지붕을 후려치면서「유 에스(U.S.)」두 글자는 자못 마술적인 위력을 보이고 있다.
사실 좋다. 화려하고 멋있고 풍요로운 어휘에 그만 넋을 잃은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한글로 번역됐을 때엔 더없이 볼품없고 촌스럽고 싱거운 말로 탈바꿈되는 허무를 알고 나서는 김이 새고 힘살에 맥이 풀렸다.
한때 미군 손에 들렸던 「환영 맹호 부대」란 피켓과 국군 허리에 채워진 「유 에스」탄대(彈帶)가 월남 전장(戰場)에서 엇바뀌어 악수한 지 몇 년이 지나, 이제 겨우 평형대에 뒤뚱거리는 우리를 뒤흔드는 미국 의회의 이기적 태도가 마찬가지로 영어의 위력임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우리의 운명을 놓고 삼자 회담이며, 4강 협상을 해야 한다는 비참한 현실이 어떤 역사의 장난 때문인가를 새삼 따질 처지가 못되지만 도리없이 서글품만큼 영어의 마력에서 그 참된 넋을 직시하고 그 나름대로의 연구를 통해 우리의 분수에 맞는 자리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온 것 같다.
미국은 바로 이런 자극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 최초의 우방으로서 고맙게 생각되어야 할 나라가 된 셈이다.

(주) 폐간 3년 전 1977년 원간 <뿌리깊은 나무>에 실렸던 글이다.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는 1976년 3월 월간 문화 종합지 <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하여 보급하였다.
<뿌리깊은 나무>는 우리말의 어법에 맞지 않거나 일본어 따위의 영향으로 잘못 쓰이고 있는 우리말의 문체를 정갈하게 되살림으로써 한국 출판계에 큰 자취를 남겼다. 아름답고 훌륭한 한글을 두고도 잘못된 인습과 타성에 젖어 한자를 쓰고, 읽기 편하며 읽는 속도도 더 빠른 가로쓰기 대신 무비판적 세로쓰기만 해 온 출판 풍토를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뿌리깊은 나무>는 1980년 8월 강제 폐간될 때까지 군사 독재 정권 아래의 혹독한 정치 상황 속에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목소리들을 전달함으로써 이 땅의 많은 지식인과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발행인이었던 한창기씨는 서울 성북구 성북 2동 13-28에 <뿌리깊은 나무 유물관>을 개설해 두었다.
인터넷 시대에 3차 산업으로 소련의 사회주의가 패망하면서 세계의 경찰 국가로서 패권을 자랑하던 터에 2001년 9월 11일 맨해튼의 쌍둥이 무역 센터가 무너졌다. 구 소련의 10년 전쟁의 대상이었던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미국은 드디어 2001. 10. 7. 방아쇠를 당겼다. 막강한 화력은 구 소련과는 달랐다. 승리였다. 2002년 3월 현재, 그러나 예단은 아직 빠른 듯 보이기도 한다.
그나저나 영어, 특히 미국적 영어는 이제 세계어로 자리를 굳힌 이상 거기에 저항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21세기를 맞았다. 뾰족한 자존심만으로 살기엔 세상은 너무 크고 넓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살 수 있다. 슬프나 슬픔이 아니라 해야한다.

[이규태 코너] 美國과 米國
아메리카가 피렌체 출신의 이탈리아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부치의 이름에서 유래됐음은 알려져 있다. 그는 1499년에 지금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남미 베네수엘라를 탐험했고 1501년에는 브라질을 탐험했었다. 독일의 지리학자 뮤러가 1507년에 출판한 ꡐ세계지(世界誌)서론ꡑ에서 신대륙을 아메리카로 부를 것을 제창, 정착된 것이다. 아메리고의 라틴말 이름 아메리쿠스의 어미를 지명 접미사(接尾 )인 ꡐ아ꡑ로 바꿔 지명으로 삼은 것이다.
이 아메리카가 한문어권에 도입되면서 여러 갈래의 표기가 생겨났다. 중국의 옛 지지(地誌)인 ꡐ해국도지(海國圖誌)ꡑ에 미국은 아묵리가(亞墨利加) 미리가(美理哥) 아미리가(亞美里加) 미리견(美利堅․彌利堅․米利堅)으로 나온다. 철종6년(1855) 통천에 표류한 서양 오랑캐를 중국에 이송했는데 호송관이 북경에 가서야 화기국(花旗國) 사람임을 알았다 했다. 성조기를 성화기(星花旗)라 했고, 이를 줄여 미국을 화기국이라고도 볼렀음을 알 수 있다.
고종3년(1866) 부산진에 들어온 미국 상선에 대한 부산첨사(僉使)의 필담(筆談) 보고에서 미국(美國)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다. 통역관을 뜻하는 미국전어관(美國傳語官)이란 말도 나온다. 그 후 제너럴셔먼호 소각사건 때 실록에 미국인(美國人)이란 말이 나오며, 영의정 김병학이 미국 동양함대가 일으킨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임금에게 보고할 때 ꡐ미리견(彌利堅)은 단지 부락이었던 것을 화성돈(華盛頓)이란 자가 성지(城池)를 만들어…ꡑ 운운했다. 공식문서에 육나사질국(育奈士迭國)이란 호칭도 있는데, 이는 합중국 곧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의 한문표기다. 아미리가나 미리견을 간추린 미국의 한문 표기가 중국과 한국에서 미국(美國)인데 일본에서는 미국(米國)으로 달리 표기해왔다. 미국(米國)은 1854년 미․일수교조약 때 공식호칭으로 아미리가합중국(亞米利加合衆國)으로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순종실록에 ꡐ영로미(英露米) 총영사를 접견했다ꡑ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미국(米國) 표기도 없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 시민단체에서 미국(美國)은 이제 더 이름다운 나라가 아니다 하고 미국(米國)으로 바꿔 쓰자는 제안서를 요료에 제출했다는 보도가 있어 그말들의 궤적을 더듬어보았다. 2003.4.17. 이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