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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통섭(統攝) 덧글 0 | 조회 15,250 | 2015-12-19 09:45:07
관리자  

술의 통섭(統攝)

정 동 철

의사동인 박달회 수필집 제42집(2015.12.14.)에 수록됨

 

 

제정신일리가 없다

약혼을 했다. 둘만의 증표로 서로 낀 백금반지, 해질 무렵 냇가 무성한 숲을 향해 별을 맞추듯 그 반지를 쏘아 던진것이다. 상식이 아니다. 술이었나? 아니 의심과 믿음 숨박꼭질속이라지만 술이 아니었다면 하여간 던질 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던졌다. 버린 것이다.

오십오년전의 일이다.

 

둥글래판 장똘배기골목 선술집, 왜 하필 거기였는지는 모른다.

마시고 또 마셨다. 안주? 딱 하나 소금이다. 몇병째인지 그건 모르겠다. 대체 그렇게 마실일이 아니었다. 자살한 사람 살아날 일 아니었으니까. 주치의? 그때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홀로 마시고 또 마셨다.

삼십대다.

 

여기저기 노여있는 낙엽 애써 설치예술인듯 가을을 떠올린다. 주차장 향해 걷는다. 새벽이라곤 하지만 뿌연 미세먼지, 마스크로 차단하며 두 번째 SUV 하얀 차의 손잡이 버튼을 누른다. 소리가 나지않는다. 반사적으로 뒷문을 연다. 아날로그 가방을 넣으려고. 열리지 않는다. 다시 운전석 손잡이를 누른다. 감이 이상하다. 분명 두 번째였는데, 차 주변 오락가락 그러나 안보인다. 주차된 차 뒤로 간다. 좌우 번호판들을 본다. 정확하게 외우진 못하나 아니다. 없다.

대체 누가 내 차를 바꿔놨을까?

다시 이리저리 낙엽이 밟힌다. 앗차 아파트입구에 널려있던 어제 오후의 낙엽들이 재생되면서 바로 거기 세웠던 생각이 떴다. 아침에 지붕위 낙엽을 상상했던것이 중기(中期)기억(記憶)을 되살린 단서였다.

취하지 않았는데.. 그러나 취해버린 기억의 단절, 대체 어찌된 일? 치매?

오늘 아침 5시반쯤이다.

네시 좀지나 습관적으로 냉수한컵 마시고 출근준비를 한다. 아내의 기척이 없다. 맨발로 가보니 잠이 깊었다. 오랜만이다. 깨고 싶지않았다. 행여깰까 우유한잔마시고 소리없이 나온 것이 바로 그시간이다.

 

분명 취하지 않은 머리, 필림 왜 끊겼지? 그러고 보니 문자보고 놀란 것이 어제다. 수필집 주제가 술이라는 것, 까맣게 잊고 있었다. 취하지 않았는데.... 난 분명 취하지 않았다.

 

잠깐,

저녁이란다. 식탁에 앉으니 낚지볶음이 기다리고 있다. 며느리의 특헌데 그녀는 지금 뱅쿠버에있다. 아내가 준비한 것, 맥주를 달래 마시니 일품이다. 술맛 그건 아는사람만 아는 것, 그 느낌을 말로 옮긴다는 것 일종의 탈선이다.

 

엄청 생각했다. ? , ......

생각 멎어버린다. 엄청난 평생술 막상 할말이 없는 술,. 말로 옮긴다? 나의 능력밖이다. 와인의 향 내를 모르듯 나의 술맛 알지못하는 사람위해 무슨 재주로? 내 뒤통수 뇌 곳곳에 박혀있는 술에 얽힌 기억들 되살릴수있나? 기억의 재생은 비디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창작이라 하던데....

나의 술로해서 숫한 여인들 네로의 눈물단지처럼 그속엔 약혼녀의 눈물도 묵혀 삭아 향그윽할 것이다. 여인의 아버지 목사는 불신자不信者라 못준다, 서울토박 왜 하필 부산처녀? ‘파수꾼’-하퍼 리,의 흑인처럼 상놈이라 모두 반대했기에 둘이서 서로 악물고 다지며 낀 반지.

 

엎어지고 자빠지며 해집다 부딛고 어둠깔려 절망하며 주저않다 다시한번, 천지신명 우린 그 반지를 거기서 찾아낸 것이다. 별까지 가지못한 반지, 그 숲 거기에서 말이다.

기적?

좀전 식탁위의 낚지볶음 맥주 한잔으로 이어진 반세기전의 기적, 약혼녀가 지금의 아내다.

기적, 정말 기적일까?

술로 속 확 뒤집고 까발려 의심과 질투 숨박꼭질속에 왕창털어 날려버린 반지, 그것으로 듣고싶고 보고싶은 것만 서로 골라내지 않게 된 술의 반전反轉.

 

그렇게 좋아하는 낚지보끔 미쳐 몰랐구려...., 다음엔 게장 준비할께요...”

반세기 55년 늙었지만 젊은 그녀와 나의 얘기 술의 통섭統攝이다. (201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