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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薔微 - 옛 이야기 덧글 0 | 조회 20,943 | 2016-02-09 19:01:33
관리자  

황혼의 薔微

2003. 5.

정 동 철

 

삼나무 숲을 갈라치며 흘러 내리는 호젓한 찻길, 2003 5 24 금요일, 제주도.

복판에 차를 세웠다.

의아한 아내의 짧은 쉼표, 우린, 아니 나는 키스를 했다.

결혼을 했던 61 시절, 예외적 대담한 거리의 키스와 전연 다를 바가 없었다. 때마침 맞은 편에서 세차게 내려오는 자가용 운전석 유리창에 반사되는 햇볕을 완전히 무시할 있었기 때문이다

 

강렬한 것도, 쿵쾅거리는 것도, 그렇다고 길고 세찬 포옹도 아닌 키스, 그러나 긴긴 애환이 만장굴 석루(石漏)처럼 빚어낸 대로상의 깜짝 키스, 아내의 놀람 반응은 잠시, 젊은 날의 키스와는 달랐어도 익숙한 점에선 여전했다. 쪽빛 바다에 둘려 싸인 제주의 숲속, 그래서 나는 솟아오르는 데로 작명을 해버렸다.

<황혼의 눈부신 장미>

-- 필경 아내가 글을 읽으면 대경실색, 혼비백산할 것이 뻔하다 --

 

제주도는 익숙한 곳이다.

그날 따라 나는 관행과는 달리 거꾸로 달렸다.

서귀포 KAL호텔에서 성산 일출봉을 거쳐 생대리에서 비자림로(榧子林路)(1112) 꺾어 들어선 것이다. 한라산 동쪽을 가로지르는 5.16도로에 올라타는 코스였다. 바로 제주 공항으로 가는 길이다.

이유가 있었다. 5.16도로 가까이 비자림 끝쯤에 우거진 삼나무 숲이 있다. 거기엔 2차선 도로가 잠간 헤어졌다 만나는 작은 삼나무 섬이 있다. 좌우로 갈라 서자마자 금새 만나게 있는 복판에 () 한대가 있을 만한 장소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 것이다.

바로 거기에 세웠다. 아내는 설마 했다. 운을 떼었기 때문이다.

" 그래요?! 뭐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혼의 키스는 40년을 훌쩍 건너뛰듯 짧게 스쳐갔다. 아내는 주책이라 말할 시간을 찾지 못했다. 대신 젊음의 파도가 와락 밀려왔다.

"당신, 정말 말리는 남자야."

그것은 파안대소로 터졌다. 파격,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종종 있어왔던 나만의 기행(?)이었기에 삼나무 숲의 싱싱한 산소를 둘이는 한동안 마음 들이켰다. 사이에 5천원의 시비가 도시의 찌든 농담과 더불어 훌쩍 날아가 버렸다.

렌터카를 인수 받을 물었다. 예정한 코스로 공항에 갈려면 얼마치의 기름이 들겠느냐 했다. 아가씨는 오천원을 넣으면 된다고 말했다. 세다고 여겼던 나는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 원이면 충분할 텐데"

그게 꼬투리가 되었다. 5천원 때문에 조마조마할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수표로 받은 강연료를 똑똑히 아내는 모처럼 갖게 시간의 여유를 5천원 때문에 제주까지 쫀쫀한 짠돌이로 망가트릴 이유가 뭐냐는 뜻이었다.

"아까워 어쩐담? 어찌하실 가요? 영감님! 천원 이에요.."

언제와도, 보고 숨쉬어도 새롭기만 , 번번히 만년(晩年) 보내고 싶다는 제주의 크고 작은 오름을 이리저리 바라보며 밑도 끝도 없이 뭔가를 얘기하며 달렸다. 그렇다고 누구를 씹어대며 즐기는 그런 얘기들은 아니었다. 친밀도(intimacy) 유별나다는 대부분의 경우 그들 부부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역설적이지만 남의 얘기를 씹어대는데 공감대를 가지는 것으로 장단을 맞춘다. 겸임교수로 있는 어떤 대학원에서 얘기지만 거기엔 우리들만의 얘기뿐이었다. 다만 예의 5천원 짜리 농담이 이사이에 고등어 찜의 가시처럼 다소 떫떠름하게 걸려있었다. 바고 그것이 빠져버린 것이다.

시원했다.

얼마나 시원하든지 날아갈 왕년의 청춘이 뒷좌석에 천사처럼 노래하며 내려 앉은 기분이었다.

밀월(蜜月) 아닌 것이 상계진인(上界眞人) 우린 둘만의 천국을 숨쉬고 있었다. 대신할 있는 어떤 것도 세상에선 찾을 없는 순수가 감돌았다. 밝고 시원한 아내의 미소 속에 파란 하늘의 구름들이 바하의 무반주 배경음악처럼 우리의 기쁨을 연주해 주듯 멋졌다. 거기엔 () 없었다. 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의 행복, 불행하게도 우린 이미 알아버려 법의 틀을 벗어날 없는 열려버린 판도라 속에 살아야 하지만 법이 외면당한 세계였다.

시원한 숲이여, 싱싱한 내음이여, 파란 하늘이여, 행복이여, 이상의 바램은 없었다. 그저 그뿐 거기에 있다는 (현존재)만이 참일 뿐이었다.

때에 문득 스쳐가는 생각.

--다시 있을 있는 시간일까?--

 

우린 흔히 말하는 60 후반의 <도깨비> 아니다. 도깨비불이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적이 없다는 60대의 밤들, 젊은이가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고 있었기에 그런 시간들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그것만이 머물다가는 의문 뿐이었다.

하여간 천진스럽게 우린 좋아하면 되었다. 돈이 없다는 , 그것이 흠이라든가,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흔드는 권력의 대장놀이 재미를 모르는 소시민이라든가, 스타와 같이 어딜 가나 자유스러울 없는 명예라든가, 그런 것은 없어도 상관없는 일이다. 우리에겐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으나마 물질적 돕기나 정신적 지식의 재분배라는 봉사(?) 가지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송구스러울 뿐이다. 게다가 아직 우리에게 건강한 재산이 있음이 이유이다.

 

한데 거의 70 이르는 삶을 통해, 특히 근자에 와서 나는 이상한 결론을 하나 내려놓고 있다.

--인간에 있어서 유일한 진리는 '거짓말', 역사가 있는 인간에게 평화는 결코 없을 것이다. 평화를 외치는 역시 거짓말이니까

 

방금도 약간의 거짓말이 있었다. 전쟁은 더욱 그럴 것이다.

나는 세상살이에서 행보가 자유로운 편은 아니다. 제주도건, 뉴욕이건, 하와이 폴리네시아 민속촌이건, 암스테르담이건, 런던이건, 하다못해 고속도 통행료를 내는 곳에서까지 듣는 얘기가 그것이다.

"정박사님 아니세요? 반갑습니다"

없다는 돈도 그렇다.

주변의 친구들에 비하면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정확히 말해 마이너스 통장으로 땜질을 때가 있다 해도 재산세를 형편이라 가난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거짓말이라는 얘기다.

내심 감성과 이성사이에서 부글거리고 있는 세상과의 전쟁도 그렇다.

미국의 세기적 패권주의에 따른 전쟁은 물론 참여정부와 세간의 떠도는 시민들 사이의 시비들은 솔직히 전쟁 이상의 것이다. 정치라는 세계가 워낙 동떨어진 곳이라 진실게임이 무엇인지 안개 같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 만의 현상은 아니다. 정치가 있는 , 역사가 있는 이런 거짓은 세계적이다. 한편 법률이 양심을 재판할 없음에도 그들은 언제나 양심 위에 군림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같은 골목대장들은 우물 개구리처럼 벌이다가 정작 입을 봉하고 있어야 하는 비굴함으로 살아야 한다. 울렁울렁 비위가 거슬린다.

결국 전쟁과 거짓말의 의미는 나에겐 진리라고 확신하기에 족한 이유들이다.

그러함에도 거짓말에 해당되지 않는 예외적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은 일종의 기적적 특혜가 아닐까? 물론 그것도 영원불멸의 법칙에 해당되지 않으리라는 점에선 역시 거짓말일 것이다. 우리는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숲속의 입맞춤은 거기 함께 한라산의 삼나무들이며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증인이 되어 더불어 존재하였기에 참이었다.

느낌은 나만의 것이지만 아내의 것이기도 했기에 마치 쌈밥같이 안의 기쁨이라 행복한 수화(手話) 족했다.

 

공항에 도착했다.

기름은 만원어치를 넣었어야 정답이었다. 너무 많이 남았다.

"당신, 너무 좋아하지 말아요. 그렇게틀림 없다는 얄밉단 말이에요."

예약 시간보다 빨랐다. 비행편을 땅겨 받았다. 어린 소년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 제주도 면세점은 북새통이다.

"세상에 돈들이 이렇게 많담.."

때에 돌발사태가 생겼다.

땅긴 비행기가 갑작스런 안개로 결항이 것이다.

다시 티켓 창구로 뛰어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오자 힘이 빠졌다.

--이게 무슨 짓이지. 나이 70 젊은이들과 경주를 하다니,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걸었다. 아내가 따라왔다.

"당신 미쳤어요? 그러다 쓸어지면 어쩌려고. 제발 편하게 생각하세요."

비즈니스라 다음 비행기로 좌석을 받고 'REFRESHMFNT MEAL COUPON' (식사권) 장을 받았다. 식당으로 올라갔다. Refresh 아니라 호떡집이었다. 북새통을 뚫고 들어가려는 아내가 뒤에서 말렸다.

"들어가시려고요? 곳으로 갑시다. 당신 편한 곳에 앉아야 해요..."

아내의 현명한 권유, 자리에 앉아 맥주잔을 부딪치며 비로서 다른 여유가 아내의 화사한 얼굴을 통해 전염병처럼 옮아왔다. 너무 시원했다.

"! 이렇게 시원하고 편한걸. 뜀박질을 했었지? 걱정하고 있었나? 따지고 보면 걱정할 일도 없는데 당신이 있잖아.."

이미 문명인이라는 그럴듯한 복제인간이 된지 오래되어 자신만의 색깔을 강조하며 우쭐대지만 기계처럼 반사적 행태가 우선하는 자화상이 우스꽝스러웠다. 법의 노예가 되었음이 떠오르자 힘살이 멍청해졌다.

--대체 안다고 나는 강연을 다니고 있는 것일까?--

 

비행기에 올라 2 일등 석에 앉았다. 잠시 몸을 쉬는가 싶었지만 김포공항은 이미 11시가 가까워졌다. 택시를 탈까 했지만 아내의 눈치는 아까와는 달랐다. 버스를 타자는 것이다. 분당행 리무진에 올라서자 제주 공항에서 뜀박질 치던 피로가 몰려왔다. 만석이라 통로에 앉은 어떤 50대의 핸드폰이 그때 차내의 침묵을 깼다.

- , 도착했다. 지금 간다 서현역까지 40분은 걸릴게다. 도착했다니까 -

대답은 들을 없었지만 탁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짐작이 왔다.

- 못나온다 그거지. 알았어! -

뚝배기를 내던지듯 깨지는 소리가 예감을 명중했다.

우린 그나마 전화를 데가 없었다. 데가 없는 아니라 걸려는 생각자체를 하지 않았다. 결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편한 기분은 어떻거나 우리 편이었다.

찬란한 열정, 신선한 여유, 느긋한 평온, 이건 궁합 탓인가?

나이 들수록 남자들의 소갈딱지는 쪼라 들고 여자의 마음은 대법해 진다고 한다. 아내는 그러고 보니 제주도 바닷가 횟집 같은 넉넉한 여유로 나의 조급한 혈기를 조율하고 있었던 셈이다.

팔푼인가?

아내 자랑만 늘어놓다니. 그런들 어떠랴, 내가 좋은 것을.....

 

다음 아침 출근길.

신부처럼 화사했던 철쭉꽃이 추하게 떨어진 자리에 넝쿨 장미가 아파트 주변과 거리를 하나 빨갛게 장식하고 있었다. 가뿐했다. 겨드랑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한결 상큼했다.

2003 5, 가정의 .

어버이날의 카네이션, 스승의 날의 넥타이와 향수,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둘만의 귀중한 이틀간의 여행은 서울행 출근버스정거장의 가방을 한결 가볍게 들어 작품이었다.

비즈니스 클래스, 스위트 , 강연료 2백만원, 풍족한 예우에 내가 써야 돈은 서울에서 공항왕복 리무진 버스료와 제주 횟값, 그리고 렌터카와 맥주가 전부였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어떤 것으로도 환산할 없는 이틀간의 여유가 빚어준 젊은 날의 환희가 아직도 곁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 눈부시도록 찬란한 황혼의 장미여! (2003. 5.)

 

 

: 2003-06-04

통상 제주도는 2~3 간다. 당일치기다. 십번의 제주강연에 아내가 따라 나선 경우는 고작 2~3, 이번은 오랜만이다. 사이사이에 모든 가족이 함께 휴가지로 선택하곤 했던 탓이다. 때마다 파라다이스 호텔을 택했고 렌터카를 이용했다. 손녀들과 시간대는 달랐어도 스페인 풍의 아담한 분위기를 즐겨왔다. 호텔 로비의 벽난로 앞에서 손녀와의 춤이라든가 앞들 잔디와 어우러진 금붕어들과의 이야기들은 사진 속의 추억으로 시간을 정지시켜놓기에 족했다.

제주도의 동쪽을 택할 때는 서귀포에서 5.16도로를 통해 삼굼부리 쪽을 선택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요세밋과 견줄 형편은 아니지만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 숲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도 신선한 설렘을 배반한 적이 없는 내리막길, 헤리포터의 요정 같은 나무들에 포로가 되곤 했었다. 물론 세계적 비자림 군락을 빼놓지 않고 들려 열매를 사오지 않고선 견딜 없는 이유도 있었다. 만장굴은 번번히 들리는 곳은 아니지만 언제 가도 晩年 묻고 싶다는 생각이 이는 제주도, 서쪽을 택하는 날은 마라도를 있다는 절벽을 좋아했다. 아드리아해 드보르니크와 같은 쪽빛 옥색 바다에 감탄하며 부서지는 파도와 날아갈 거센 해풍으로 바다갈매기에 몸을 실으며 환성을 즐겼다.

 

구지 방향을 거꾸로 정한 것은 둘만의 드라이브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좀처럼 가질 없는 둘만의 여유를 自然 맡기고 싶었다. 희망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점심을 망설였다. 천지연폭포의 오분작 된장찌개가 올랐다. 한데 간밤의 회에 곁들여 나온 '자리돔' 젊은 아낙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당겼다. 호텔 바다쪽 오른편에 있는 횟집은 며느리가 아내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다금바리를 사줬던 곳이다. '현재의 결정은 지난 날의 총체적 체험의 총화'라는 결과였는지 서귀포 시내로 이유가 없겠다는 이유를 찾았다. 마침 렌터카가 있었다는 것이 우리의 결정을 쉽게 했다. 바닷가 무덤에 부서지는 파도가 입맛을 돋구는 곳이기에 결국 역행의 길은 망설일 겨를도 없이 확정되고 말았다.

일상에서 벗어난 여유, 그것은 우리에겐 황금보다 것이다. 두둑해진 주머니는 의미가 없었다. 저녁 8 비행기를 예약한 넉넉한 시간이 푹신할 따름이었다. 그것은 일에 쪼들리는 나의 성격으로선 일종의 파격, 자체였으나 다시 맛볼 없는 시간이기에 예외는 그만큼 더욱 신났다.

 

서울을 떠나기 전부터 작정을 했었다.

호텔은 나의 선택사양이 아니다. 파라다이스 바로 KAL호텔이라 서운했지만 스위트 룸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과일과 메모를 겨를도 없이 커튼아래 펼쳐진 바다쪽 잔디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파도, 지난 여름 아들 내외와 손녀들이 만난 발리 하야트 호텔 해변의 환희가 밀려왔다. 흡족했다.

문득 10여년 명을 달리한 친구의 피칭 모습이 떠올랐다. 거기 잔디에서 그는 단장같이 생긴 이상한 장미뿌리 퍼터와 피칭 웨지로 하얀 공을 이리저리 쳤었다. 아내와 그에 대한 마디 애도의 감정은 사람의 권리를 압도할 수는 없었다. 감상뿐 이내 마음은 환몽에 빠져들었다. 백만장자로 변신한 소박한 흥분이 마음을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모처럼의 여행에서 사소한 시비로 망쳐버리는 많은 부부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일상의 아내에 감사한다. 거기엔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힘들게 사는 나를 거들어주는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는 가고 세월은 흘렀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자연과 우리들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