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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자살 덧글 0 | 조회 16,892 | 2009-04-17 00:00:00
정동철  


- IMF 자살 -
비참한 현실로부터의 도피

정신과 의사들은 정말 별난 치료를 한다. `섹스 치료 `이혼 치료 그리고 `안락사 치료까지 해야 한다고 교과서에 실려 있다.
식물인간에게서 산소호흡기를 떼는 결정은 판사가 한다. 냉정히 따지면 의료행위를 법이 대신한다는 묘한 의미가 숨어 있다. 의사들은 반기를 들고 있다. 그것은 치료라는 차원에서 의사가 결정할 일이기 때문이다.
사약이 어명의 뜻으로 비장한 음악에 실려 내려지는 장면을 드라마 속에서 가끔 본다. 그것은 당연히 법이다. 그것은 비인도적이다. 법은 사실 인도적이라는 탈을 쓴 일도양단의 칼이다.
말기 암 환자의 고통 앞에 아무도 치료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을 알면서 원치 않는 고통을 강요하는 치료가 인도적이라고 강조하는 법은 과연 인간의 고뇌를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래서 자살을 도와주는 경우가 있다. 이른 바 안락사다. 정신과 의사의 버거운 몫이다.
유럽에서 안락사가 긍정적으로 검토되더니 법적으로 보증을 받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IMF 이후 나타나는 자살의 증가, 인턴넷에 동반자살을 위한 사이트가 늘어나는 것과는 정황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10대의 동반자살과 가장들이 비참한 최후의 출구를 찾고 있는 현상은 안락사라는 자의적 타살과는 다르다. 현실의 답답함과 참담함을 견디지 못한 수단으로 뛰쳐나가고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자살은 병인가? 우울증이라는 선행된 증상의 필연적 결과만이 자살인가 하는 문제는 복잡하다. 혼돈은 금물이다. 헤밍웨이나 가와바다가 자살을 한 것은 물론 말기 암 환자 같은 고통도 아니고 세상을 비관하여 도피적 방법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도 아니다.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자유라는 권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자유? 그 정체를 아는 사람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싸르트르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시인 릴케를 통해서도 잘 묘사되고 있다.
……………..
삶과 죽음이/ 날줄과 씨줄처럼/우리들의 옷감에 베어있듯/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숨 속에/ 늘 더불어 있으니…….
키게르가 <절망에 이르는 병>을 썼지만 자신은 자살을 했어야 하는 것이나 고흐의 자살은 늘 우리 곁에 있는 우울증의 단편적 표현에 불과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결심은 바로 이 점들이다. 도피인가, 아니면 진정한 자유인가를 자신에게 묻는 절차가 필요하다. 적어도 자살에 앞서 반드시 짚어두어야 할 인간적 번뇌를 극복하는 것이 이 시대의 의무이자 권리다. 주변의 변덕스럽고 수선스러운 사람들은 제발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