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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과잉과 본능 덧글 0 | 조회 16,604 | 2009-04-17 00:00:00
정동철  


- 인구과잉과 본능 -
1980년 전후의 실상

오스트리아 태생 콘라드 로렌츠가 생리 의학 분야에서 73년도 노벨상 수상자가 됐던 것은 물론 우연일 수 없다. (주-1) 덕분에 동물 행태학(動物 行態學, Ethology)에 관한 관심은 커지고 아울러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기아·재생·공격·공포 등에 관한 네 가지 기본적 본능을 통해 생존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을 끌게 하였다. 먹고, 자손을 번식시키려는데 항상 두려움이 수반되니 적절한 공격이 없고서는 살아갈 재간이 없다는 뜻이다.
반론(反論)이 없는 바는 아니다. 숫제 인류학자 A·몽테그는 「인간에게는 본능이 없다」고 까지 한다.
그러나 시시비비가 관심은 아니다. 로렌츠의 저서 《문명화된 인간의 8대 죄악》에서 지적됐듯 지상의 인구과잉(人口過剩)이 과연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나 하는 점이 문제다.
정말 사람은 많다.
어디를 가나 사람과 사람뿐이다. 우선 <내>가 있으니 사람이 많다는 것을 탓해보아야 우스운 노릇이지만 불과 몇 년 전 크리스마스이브의 그 빽빽한 명동(明洞) 인파가 이젠 때와 장소도 없이 어딜 가나 꽉 차 있는 것이다.(주-2)
교통의 혼잡을 피해 지하도를 파놓고 얼마 후 도대체 그 구멍으로는 어찌할 재간이 없어 다시 종로 네거리 보신각과 화신 사이에 차도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만들 판이 아닌가.(주-3)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러나 만원은 서울뿐이 아니다.
그린벨트 너머에도 사람은 꽉 차 있다. 지금은 성남시로 편입되었지만 잠실대교를 지나 판교(板橋)로 이어지는 서울 경계선 가까이 비행장 하나가 있다.(주-4) 그 비행장이 끝나는 옆구리에 <새술막>이란 마을이 있다. 그곳은 내 어버이의 고향이다.
아침 8시 30분 인가보다.
새벽 문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만 그곳에서 낭패를 당했다. 실히 4~50명은 되는 남녀 고등학생 틈에 듬성듬성 어른이 섞여 줄도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꼴 세가 약속된 시간 안에 진찰실에 닿기는 거의 틀려버린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10분인가 지나서 버스가 보이는데 우르르 저마다 그 승강구의 정지(停止)점을 점치며 몰려가 아우성이다. 감히 그 틈새에 끼어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한데 그나마 그놈의 버스는 설 듯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입마다 욕설이 터져 나왔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늦었다고 동동 구르는 학생들이 딱했다. 아침 6시면 더러 밥을 굶고라도 등교 길에 나서는 우리 집 둘째 딸의 그 안달이 실감될 정도다.
서울이나 시골이나 학교 길은 이렇게 힘이 드는 모양이다. 사람이 많다는 증거다.
또 10분인가 되어서 버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다행히 섰다. 그러나 아예 엉뚱한 곳에다 세웠다. 태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릴 사람 때문이었던가 보다. 이젠 필사적이다. 어쩌면 그리도 연약한 여학생의 교복 안에 그렇게 큰 발악적(?) 힘이 숨었을까. 남학생들도 아예 ‘여성’을 의식하지 않고 또한 돌진하는 것이다. 엎치락뒤치락 아수라의 비명이 그 좁디좁은 승강구에서 터져 나왔다.
「인구 조밀한 문명국이나 대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자기들이 보편적이며, 따뜻한 인간애(人間愛)에 어느 정도 결핍되어 있는가를 이제는 전혀 모른다」고 한 로렌츠의 말 그대로다.
삼각지(三角地)에서 정동(貞洞)까지 꼬박 눈·비 가리지 않고 걸어 다닌 중학 시절에 비하면 이들 학생은 사실 불쌍하다. 그때는 그것이 상식이었지만 지금 그들에게 걸어 다닌다는 것이 일종의 망신스런 바보가 된 셈이라 더욱 그렇다.
나에게도 한때 기를 쓰고 차를 타려던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산 피난 시절이다. 다짜고짜 지나가는 트럭에다 똥가방(주-5)을 휙 집어 던져놓고는 힘껏 달리는 트럭에 철봉 올라타기 서커스를 하는 것이다. 밉살스런 조수가 모자를 벗겨 차 밖으로 집어던지지 않는 한 거의 실수란 없었다. 걷기는 싫고 돈 안 드는 편법이었으니까 그것은 일상의 하교(下校)길이었다.
그때 벌써 인구는 늘고 마음은 제법 거칠어지고 있던 중이었던가 보다. 공연히 쳐다본다고 싸움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몇 번째 버스가 지나가고 나약한 몇몇 학생과 비로소 버스를 탔다. 그런데 그때 나는 정말 놀랐다. 그들 학생들의 학교는 바로 한 정거장이었다.
동물을 좁은 공간에 빈틈없이 꽉 차 있게 한다면 예외 없이 공격성이 높아질 뿐 창조적 조화가 시들어버리는 그런 동물로 전락되고만 꼴이다.
하물며 「마지막 수의(壽衣)에 호주머니가 없다」는 끈질긴 교훈에도 불구하고 인간 시장의 갖가지 돛대기에 이르면 가히 교육이 무엇인지 마저 의심될 만큼 인간은 동물적 본능에서 한 치도 벗어날 의지가 없는 느낌이다.
정말 죄는 인구과잉 때문일까?

(주-1): 콘라드 로렌츠( Konrad Lorenz. 1903. 11. 7 오스트리아 빈~1989. 2. 27 알텐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다. 비교 동물학적 방법으로 동물의 행동을 연구한 <현대 행동학>의 창시자다.
(주-2): 1970년대 明洞은 특히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이면 인간의 홍수가 너무 엄청나 언론마다 단골 取材地가 되었다. 명동은 바로 서울의 거울이었으니까. 그것이 7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명동으로 국한되지 않고 종로는 물론 어딜 가나 중심지는 인파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주-3): 지금은 1970년대의 지하인도도 보신각과 화신(현 국세청)앞으로 건너지른 육교도 없어졌다.
(주-4): 2003년 현재의 서울 비행장. 당시 천수답의 평야였던 성남시 고등동은 헐값에 수용되었고 대신 여의도 비행장은 누군가의 엄청난 이익을 남겨주고 이전되었다.
(주-5): 1952년 부산 피난 시절 당시 우리는 책가방을 그렇게 불렀다. 아마도 미군의 방독면 가방을 오늘의 학생들이 궁둥이 아래까지 내려가는 가방을 어깨에 걸쳐 메고 다니는 것처럼 나름의 유행에 따랐지 싶다. 이제 그 방독면 가방은 2001년 10월 현재 아프간 전쟁과 더불어 탄저균의 또 다른 테러로 한국 제품이 그중 우수한 것으로 인정되어 미국에선 없어 팔 수 없는 묘한 형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