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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사는가? 덧글 0 | 조회 16,569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무엇으로 사는가? -
1980년 전후의 글

「새해 새 아침을 대할 때마다 딴에는 제법 비장한 생각에 잠기곤 했지만 막상 그만한 결과가 연말을 장식해 준 그런 적은 없었다. 그렇더라도 오늘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다져본다. 금년을 내가 생각한 그대로 주체(主體)란 이름 아래 지내리라 다짐한다.(주-1) 언제나 너무 쉽게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후회만 남는 생활이었지만 다시 한번 나름대로의 길을 그어보고 싶다는 뜻이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뜻 한데로 살고 싶다. 아니, 난 그렇게 꼭 하고야 말 것이다….」
1961년 정월 초하루. 지금부터 16년 전 내가 쓴 일기의 첫 부분이다. 군의관으로 겨우 반년이 지난 육군 병원 시절, 그때 그 살고 싶다는 부르짖음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총각이었다. 학문? 결혼? 출세?
「……무엇으로 사는 것인가? 무엇을 해야 옳은 것이며, 또 어디로 가는 것인가? 누구와 갈 것이며 거기 목적지란 어떤 곳일까?…… 그러나 사십 불혹(不惑)의 진의(眞意)는 고사하고 그 어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여간 나로선 해답을 알기 힘드나 최선을 다하며 슬퍼하거나, 탓하거나, 괴로워하거나, 당황하거나, 기뻐 떠벌리거나, 비웃거나, 외로워하거나, 웃거나, 척하거나, 탐하거나, 노하거나, 자랑하거나, 머물거나, 뛰거나, 조급하지 않고 다만 걸어가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러기 위해선 아무래도 순간과 순간의 초월이라고 하는 것이 우격다짐으로 될 리 없음을 알아두어야겠고, 더불어 나는 내가 정열(情熱)을 다해 가야 할 길이 어떠한 것인지 또한 알지 않으면 안 되리라. 이것이 매양 쳇 바퀴 돌 듯 지금에 이르렀지만 세상을 있는 대로 긍정할진대 거기 하고 싶으며 가고 싶은 길이 어찌 보이지 않으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십오 년이 지난 바로 지난해 정초의 이 일기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된 역시 나의 것인데 바뀐 것이라곤 불행하게도 고작 수식어의 변화뿐이다.(주-2)
도대체 하고 싶다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마치 역사의 전개가 우리의 종교사에서 기독교로 근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는 듯, 그러나 단군신화의 무교적(巫敎的) 원형이 그 의식구조에 깊이 도사리고 있는 것과 대동소이하지 않은가? 결코 자신의 맹랑함을 억지로 변명하려는 거추장스런 의도에서가 아니다. 오히려 깜짝 놀라 발끈 화낼 그런 모험적 비유일지 모르면서도 그것은 사실인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독교는 칠성각이 사찰에 있어야 하듯 무교를 외면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주-3)
「예수」가 지구상에 태어났을 때 곧 「세상」은 에덴동산이 될 것 같았고, 석가가 또한 중생 구제에 나섰을 때 우리는 탐하지 않는 극락정토에 조용히 살리라 믿었으며, 공자의 말씀이 삼강오륜으로 울려 퍼질 때 불효는 영영 이 땅에서 사라지리라 생각됐지만 수천, 수백 년이 지난 오늘에 웬 까닭인지 말세 심판이 가까웠다며 무엇이 이루어졌는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회의의 눈망울만 크게 굴리고 있다.(주-4)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역시 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간결한 우주 질서를 입증이라도 하듯 예와 오늘은 한줄기 통하는바 그대로다. 하물며 일개 범부(凡夫)인 나의 십 몇 년에서 무엇이 변할 게 있겠는가. 서글프나 한편 그것이 당연한 인간사이겠거니 따라서 눈을 산으로 돌려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정초 중 어느 한 날을 택해 산에 오르는 버릇을 갖게 됐다. 산이라야 늘 백운대가 고작이며, 오른다 해야 또한 거기서 산등성이를 타고 혼자 걷는 것이 전부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는 오직 나에게만 있는 나 자신의 것뿐이다.
태백산 신단수 아래 하늘 가까이 환웅(桓雄)의 강림을 시꺼멓게 그슬린 이름 모를 노파들의 합장 기도 속에 읽어 얻을 수 있는 그런 천신(天神) 강림(降臨) 신앙 때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높은 산정을 정복하려는 욕심과는 전연 관계가 없는 나이기에 별다른 등산 차림이 있을 리 없다. 등산화가 유일한 장비다. 륙색은 물론 스타킹이나 그 획일적 등산복도 아니다. 점심은 아예 준비할 필요가 없는 가벼운 걸음, 오직 생각하기 위한 산행(山行)이기에 되도록 조용한 길을 택하게 된다.(주-5) 나에게 종말론은 없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도선사 가파른 시멘트 길에 울긋불긋 왁자지껄하게 무리 진 등산객들을 가지가지 나무 사이 아래로 내려다보며 한 걸음 한 걸음마다에서 의미를 찾아본다.
빵과 공부, 공부와 출세, 출세와 행복, 행복과 사랑, 사랑과 섹스, 섹스와 이별, 이별과 성장, 성장과 결혼, 결혼과 가정, 가정과 빵, 빵과 노동, 노동과 피곤, 피곤과 괴로움, 괴로움과 술, 술과 환락, 환락과 허무, 허무와 재생, 재생과 투쟁, 투쟁과 쟁취, 쟁취와 성공, 성공과 죽음, 죽음과 역사, 역사와 자녀, 자녀와 초월, 초월과 자연, 결국 자연에 이르러 할딱거리는 땀방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또다시 생각은 무량도랑(無量道場)의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백년 동안 쌍아 둔 욕심이 하루아침의 먼지가 되다)이란 쪼임으로 이어져 줄탁지교(주-6) 의 깨우침보다는 오히려 다시 한 번 발자국 자국의 뜻을 되 삭인다. 답답한 마음이다. 지난 일년간 과연 난 무얼 했던가?
이른바 철이 들었다고 했을 때 나는 공부를 했다.
그것은 부산 피난 시절의 고등학교 때다. 그러나 대학을 선택할 때 의학(醫學)이 좋아서가 아니라 「수재(?)가 모인다는 학교」에 가기 위해 시험을 쳤다. 때문에 의예과(醫豫科)를 턱걸이로 넘어야했다. 포르말린 내음의 시신(屍身)앞에서 재시(再試)도 모자라 4시(試)로 톡톡히 값을 치렀다. 그리고도 정신을 못 차려 괴상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젊음을 불태웠다. 여자와 놀아나고 술과 춤으로 빌딩 속을 쏘다닌 것이다.(주-7)
그런데도 번번이 새해가 다가오면 제야(除夜)의 밤새기 파티를 정해놓고 아무 상관도 없는 명동성당에 뛰어들어 엄숙히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이다.
새해는 자신을 지키며 뜻있게 보내자. 공부(의학)를 하고 책(철학, 역사, 문학)을 보며, 그리고 열심히 살아보리라
예의 61년 일기가 말해주듯 그러나 졸업 1년생의 마음은 학생시절의 그것과 하나도 변함이 없는 복사판을 남겨 놓고 있었다.
떠돌이 인생이 결혼(1961년)을 하고 미국(1963년)과 월남(1965년)을 거쳐 전문의(1967년), 박사(1972년)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에 이르러서까지 역시 정초의 마음은 매양 변함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해왔으며 무얼 할 것인가?
등산 걸음과 발자국은 계속된다.
지(知)와 사랑, 죄와 벌, 서울과 시골, 의존과 독립, 본능과 도덕, 파괴와 질서를 딛고 어느 틈엔가 또다시 자신을 잃고 깊고 가파른 오솔길에 빠져 들어갔다. 숨은 턱에 차고 몸은 땀에 젖어 다리는 왕창 무너지는 데 그것은 고통이어야 함에도 고통이 아니라 상쾌하므로 이어지는 엑스타시, 바로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청계천 오만가지 문명의 죄책감이 일시에 토사(吐瀉)되어 환한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그런 것이 된다. 환웅을 만나 굴속의 인고(忍苦)를 치름으로써 재생의 영광을 차지하는 곰의 지모(地母) 곡신(穀神) 신앙이 재현되어 천지(天地) 융합(融合)의 발산과 창조가 반복되듯 거기엔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있을 뿐이다. 나와 산에 아무런 경계가 없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잠깐의 스침이다. 나의 마음은 그 「무엇」으로부터 도시 떨어질 줄 모르고 또 의문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솔직히 정초에 심은 결심은 연말이면 언제나 쭉정이였다.
만족이란 단어커녕 전연 새해를 맞는 원단(元旦)의 다짐과 계획과는 관계없이 그 해가 지나감을 경험했을 뿐이다.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있고, 1년의 계획이 정초에 있다는 옛말이 한 번도 실감된 적이 없었던 불행한 자신을 확인해야 했다. 공연히 마음만 부풀어 영화관 문을 나설 때 흡사 주인공이라도 된 듯 묘한 감정에 흥분됐다간 어느 때라고도 말할 사이도 없이 사라져 가는 그런 쑥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했으니 무슨 말이 가당하겠는가. 그런데도 난 신들린 사람같이 정초의 다짐에 강박적으로 매달려 애원하며 부르짖어 온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달마 스님을 찾아 바야흐로 손을 자르려던 미련퉁이 졸장부가 혜가(慧可)란 스님이었겠다.
그는 그 유명한 달마가 중국에 온 것을 절호의 기회로 여겨 이제야 소원 성취, 부처가 되겠거니 부리나케 그를 찾았다. 그러나 연유가 무엇인지 달마는 도통 만나주질 않았다. 때는 겨울이라 문밖에 오도 가도 못하는 난처한 나날이 흐르는데 눈마저 내리니 이젠 얼어 죽을 판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선다는 것은 죽음 바로 그것이었다.
혜가(慧可)는 생각했다. 손이라도 잘라 스스로 가리라. 그는 칼로 자신의 팔뚝을 내리쳤다. 바로 그때다. 달마 스님이 문을 휙 열며 호통을 치지 않는가?
“못된 놈! 하필 남의 집 문지방에서 피를 보일 작정이냐!”
혜가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애원했다. 제발 성불(成佛)할 길을 일러 달라고 매달렸다. 마음을 깨우쳐 달라는 것이다.
달마 스님이 마지못해 말했다.
“그래! 소원이라니 그럼 묻노라. 그 마음을 이리 주게, 내 깨우쳐 주지!”
혜가가 머뭇거리자 다그쳤다.
“이 사람아! 마음을 깨우쳐 달라면서? 그래 그놈의 마음이 어떤 건지 이리 주어야 할 게 아닌가. 얼 핀 주게!”
홀연히 깨달은 것은 그때였다고 한다.
부질없이 보일러야 보일 것도 줄 것도 없는 마음을 움켜잡고 깨우쳐야겠노라 틈만 있으면 뇌까리던 자신의 무모함을 그는 알아차린 것이다.
결국 달마 스님을 이어받아 선종(禪宗)의 2대조(代朝)가 된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의혹에서 오로지 불이공(不二空)의 행동만을 터득한 것이다. 그것은 마틴 부버의 「나」와 「너」의 만남이며, 현존재(現存在)의 실존적 초월이자 무명(無明)을 근본으로 하는 불교적 시간성에 역시 그 모두가 연유되는 것이었다.
찰나는 실로 중요하다.
「찰나란 무엇을 결정하려는 순간이다. 어떤 남자와 평생을 살려고 결정하려는 순간이 찰나다. 이 찰나의 결정이 평생을 지배하기 때문에 찰나 속에 영원(永遠)이 있다고 한다. 사람에게는 한 순간에 영원을 결정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영원을 결정하는 이 순간은 매서운 순간이다. 이 순간이 있기에 사람은 자기의 생명까지도 내놓을 수 있다. 이 순간은 생명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이 순간에 허무한 생이 사라지고 뜻있는 생으로 탈바꿈을 한다. 죽어야 할 인생이 죽지 않는 인생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 순간을 가졌기에 쏘크라테스도 영원하고 바울도 영원하다. 구원은 내일에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순간에 있다.……이 순간이 있는 곳은 어디나 영원이다.……영생(永生)은 장시간(長時間)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재생(再生)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영생은 순간에 있다.……순간이란 시간을 초월한 순간이다. 시간을 초월했다는 말은 진리를 깨달았다는 말이다.……진리란 자기의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자기의 할 일을 안 사람에게는 일하는 것이 그대로 즐거움이다. 일밖에 따로 삶이 있을 수 없다. 일에 짓눌린 인생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준 이가 그리스도다. 아버지는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일 속에 새 것이 있고 새 것 속에 참 삶이 있다. 새해는 일하는 해요, 일하는 해는 내 해요, 내 해는 참 해다. 참회하고 사는 삶이야말로 참 사는 것이다.」(주-8)
중요한 것은 정월 초하루에 계획하고 다짐하고 마음을 부풀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현재라는 순간순간에 정성을 다함으로써 오로지 걸으며 일하는 것이란 뜻이다. 이것은 곧 언제나 준비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이기도 하며, 성급히 찾는데 급급하지 않아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누가 해왔던 길을 가야만 하고 대비해야만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영 때문에 의학을 택하고 그 까닭에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던 낭만(?)이 지금의 정신과 의사로 이끌려 덕분에 나를 찾아 불안과 고독과 실존적 좌절을 의논하는 젊은이들을 대할 수 있게 됐다. 다행이다. 그것은 나에겐 엄청난 행운이다. 나는 문득 그들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는 삶의 본질(本質)을 읽어 배우곤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불신(不信)의 아버지와 길고 긴 투쟁에서 대인 시선 공포증을 앓게 된 훤칠한 청년이 마지막 면담에서 남긴 말이다.
“성급하게 감 떨어지기만 바란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전 이적까지 준비 완료 상태라고 믿어 왔기 때문에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곤 했는데 역시 큰 실수였습니다. 대학을 나왔다고 준비가 끝났겠습니까? 이제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욕하진 마십시오. 당분간 책은 안 보기로 했습니다. 온갖 교양 잡지와 지식인의 글이란 것이 노상 헐뜯고 비판하고 안 된다는 것뿐이니 결국 저만 바보가 되고 맙니다. 남들은그런 책을 보지 않는 더 많은 사람들은 이것저것 체면 없이 의리(義理)나 정(情) 따위는 짓밟고 세상을 소신껏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 뭡니까? 역시 정의(正義)니 의리니 하는 것은 약자의 변에 불과합니다. 무려 삼백여 개의 요식업소를 찾아다녔습니다. 분수에 맞게 조그만 중국집을 해보기로 작정한 것이죠. 짜장면이라고 우습게 보라면 보라지요. 이것이 저의 현실인 걸요.”
하긴 혼돈(混沌)의 죽음이란 장자(莊子)의 얘기도 있다.
남해(南海)의 제왕은 숙(儵), 북해(北海)의 제왕은 홀(忽), 중앙(中央)의 제왕은 혼돈(混沌)이었다. 숙과 홀이 혼돈의 후대(厚待)를 받아 뭔가 보답하려고 서로 상의를 했겠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 인간은 누구나 눈과 귀와 코와 입이 있어 일곱 구멍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혼돈에게만 그 구멍이 없으니 뚫어 줍시다.”
숙과 홀은 혼돈의 몸에 매일 하나씩 구멍을 뚫어 나갔다. 웬 걸 그러나 혼돈은 칠일 째 박장대소 기뻐할 새 죽었다는 것이다.
순간이 영원으로 되기 위한 끊임없는 준비의 과정에서 우리는 고정관념의 눈, 코, 입, 귀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대학엘 가야할 이유는 없다. 사랑을 부러워한 나머지 초조할 것도 아니며, 연애를 한다고 우습게보아서도 안 될 것이다. 선악(善惡)의 구별이 분명해야 한다고 해서 악의 존재를 홀로 부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악(惡)은 낮과 밤같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오히려 그를 담담히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것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태도와 통한다.
떠들석 건들거리는 술꾼이 싫어 산에 못 간다는 사람, 공순(公順)이 취급이 두려워 데이트를 피하는 처녀, 잘난 척 눈꼴사나워 동창회에 가지 않는 사람, 파벌 싸움의 강요가 싫어 교회에 안가는 사람, 이것은 세상을 잘못 보고 있는 태도임에 분명하다. 누구를 위해서 누구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이 인생을 그렇게 탓만 하고 살수는 없다. 산과 바다, 하늘과 땅, 밤과 낮, 여름과 겨울, 남자와 여자는 누가 뭐라 해도 공존하고 있다. 어느 쪽에서 어느 편을 부정해 봐도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는 이제 자기 자신에 충실한 길을 마련해야 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봐야 할 것이며, 순간과 순간의 영원성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순간순간의 초월을 위해 끊임없는 준비, 일이 항상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그 속에 새것을 찾고 참 삶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성인이 되려는 길이 아니라, 자기다운 자기 특유의 사람으로 성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곧 정신적으로 건강한 현대인이라 할 것이다.
과연 나는 무엇을 했으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해답은 명료하다.
항상 천제(天際)와 같이 반복되는 이 영원한 정초의 의문에서 분명히 알게 된 것은 그 태도의 중요성이다.
따라서 한 해를 호들갑스럽게 보내고 맞이하지 않을 수 있게 작정된 내가 이제 다행이라면 큰 다행일 뿐이다.(주-9)

(주-1): 김일성 주체 사상과는 물론 다르다. 소박한 정신의학적 의미일 뿐이다.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황장엽 저, 월간 조선사간, 2001. 9. 1.)에 따르면 김일성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조선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독자적 노선과 정책을 내놓았다. 사상에서 주체,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은 이 시기에 제기된 것이었으며, 창조적 입장을 근본으로 선포하였다. 스탈린주의가 노동계급을 대표하여 정당을 영도할 자격을 갖는다는 것과는 달리 북한이 창안한 수령 절대주의는 노동계급이나 인민 대중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오직 수령만이 출발점으로 되어있다. 마치 하나님의 창세기를 연상하게 하는 절대주의다. 당연히 나의 주체가 거기에 해당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어는 같아도 뜻이 이렇게 크게 다른 것은 불행하게도 없어야 하지만 2001년 서울의 일각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 원수의 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시사되고 있는 진실은 읽기가 매우 어렵다. 2002년 2월 부쉬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 햇볕 정책의 실효성을 의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3년 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주변의 진보적 사상에 어떤 주체성이 있는지 또한 세계의 눈이 집중되어있다. 옳고 그름에 앞서 혼란스런 것이 바로 ‘주체사상’이다.
(주-2): 1977년 1월 1일, 나의 일기장에 적혀있는 부분을 보며 느낀 것이다.
(주-3): 나의 박사 학위 논문 <精神分裂症 憑依환자에 대한 정신의학적 연구>-신경정신의학, 1972. 7.-에서 거론된 내용으로 당시 이정균 교수를 대신하여 지도하고 있던 한동세 부교수(작고)는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워낙 敎勢가 막강하니 표현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빼지 않았다.
(주-4): 급기야 새 천년에 앞서 광란의 휴거가 한국의 일부 종교를 휩쓸며 1999년 말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그것은 요한의 묵시록 (The Revelation to John)-신약성서의 마지막 책-에 근거한다.
그리스도가 가장 사랑하던 제자 요한이 파트모스(밧모)섬에서 받은 다분히 幻想的 啓示를 적은 것이다. 요한 계시록 또는 줄여서 계시록이라고도 한다. ‘묵시록’이란, 여러 가지 환상적 이야기를 통하여 非인간적 세계의 사건들을 묘사한 문학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계시 문학서가 바로 이 《요한의 묵시록》이다.
1세기 80년대, 小아시아의 에페수스(에베소) 부근에서 쓴 것으로 추정된 22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내용은, 1장은 머리말이고, 2장에는 소아시아의 7교회 앞으로 보낸 박해를 받을 때, 신앙의 자세와 반성을 적은 편지가 들어 있다. 4∼22장은 4마리의 동물, 밀봉된 7개의 두루마리의 봉인을 떼는 어린양(그리스도)의 이미지 등을 통하여 바빌론(로마)의 함락, 그리스도의 再臨, 교회의 마지막 승리, 즉 그리스도의 1,000년 통치, 사탄의 결정적인 패배, 최후의 심판, 새로운 천지의 출현을 예언하고, 거기 참례하려거든 소망을 굳히고 모든 괴로움을 극복하라고 타이른다. “오소서, 주 예수여!”라는 맺음말에는, 알파요 오메가인 샛별 같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는 애절한 마음이 강렬하게 나타나 있다.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시대의 박해를 받은 교회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고난당하는 신도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쓰여 진 것이나 환상적 신비 체험 속에 본 것들을 적어 내려간 내용이어서 매우 난해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주-5): 1977년 당시 주말이면 산은 온통 특유의 등산복과 등산화, 그리고 강렬한 스타킹 색깔로 물들여져 있었고 무엇보다 스위스 제품의 버너를 멋진 배낭에 짊어지고 올라가는 산행이 대부분의 모습이었다. 지금 2003년처럼 산의 안식년제는 물론, 제한된 길마저 없어 마음대로 발 가는 곳으로 갈 수가 있었다. 꾸역꾸역 기왕의 난 길은 숨소리로 꽉 차지만 이상하리만큼 조금만 비켜서면 사람을 보기가 어려웠다. 으레 물이 있는 산 여기저기엔 김치찌개며, 불고기 냄새가 요란했고 술로 떠들썩한 것은 물론이었다.
(주-6): 병아리가 부화될 때 어미는 밖에서, 병아리는 안에서 동시에 껍질을 쪼아 나오게 된다는 교훈적 의미다. 아무리 일러도 때를 맞추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주-7): 의과대학에 처음으로-1956년- 쿼터 제도가 적용되었다. 시험이 뻔질나게 다가오는 판국에 타이프라이터 학원, 국화빵 장사, 그리곤 종암동 뚝방에-지금은 복개되어 보이지 않지만-연탄 찍는 기계를 돌리다 왕창 망했다.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고, 돈은 그때부터 나와 악연의 연속이 되었다.
(주-8): 김흥호 편집, 이화여대 출간, <思索> 제 39호, 머리말 중에 있던 내용이다. 전두환 군부에 의해 <思索>은 강제 폐간되었다.
(주-9): 1977년 개업 3년 후, 山에 오르내리며 겨우 보일 듯 말 듯 나의 방황을 살며시 엿본 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