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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마음 덧글 0 | 조회 16,307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담담한 마음 =

오히려 이럴 때 담담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
도덕 외교와 수사(공갈)기사가 모순 대립되는 미국 생리 덕분에 박(朴) 아무개(주-1)로 이어지는 돌풍 속에 어금니가 물린다는 몇몇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그 절정에 달했던 지난날의 반항적 의식이 되살아나지 않으니 말이다.
직업이 의사라는 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정신의학을 통해 선악을 조금쯤은 높은 산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탓이라 할 수 있다. 아니면 아예 사회가 원하는 탈(脫)정치화의 덕택인지도 모른다.
하와이의 마지막 파티에서 마치 한국 정신의학을 대표라도 하듯 떠버린 15년 전의 귀국 중「쿠모노 토꾜」(먼지 속의 동경)(주-2) 와 미국인들의 천박한 인정(人情)을 결론짓고 고소해 하던 마음이 그 몇 년 후, 월남 퀴농(Qui Nhon) 모래사장에서 얄궂게도 다시 손바닥만한「환영 맹호 부대」란 피켓과 US란 나의 탄띠가 조우했을 때(주-3) 그 괴상한 모멸감으로 빨개진 피를 경험했던 때와는 달리 하여간 나는 지금 참으로 기이하리 만큼 담담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담담한 기분이 그 정도로 그쳐 있는 것은 아니다.
꽤나 오랜만에 귀국한 한 친구가 돌연 속삭이듯 미국에 예금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을 때, 그 때도 나는 그렁저렁 담담한 기분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날 위해서 한 말임엔 틀림없다. 나의 돈을 사기 쳐 먹을 그런 위인이 아닌 우정(友情)을 잘 알고 있다. 그 점은 염려가 없었다. 그 옛날 남쪽으로 피난 올 때와 같이 어느 날 만일 미국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면 그때 그 예금은 틀림없이 구세주가 되어 줄 것이 아니겠느냐는 논리였으니까 그는 그 나름대로 뼈저린 체험에서 우러난 친구를 위한 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그의 호의(?)를 담담히 끄떡이는 것으로 그쳤다. 돈이 없다는 이유가 첫째이긴 하다. 걸핏하면 가난함이 뭔가 순수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노상 지껄였기에 그런 입장을 강조할 마음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돈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도리는 없었다. 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달러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엄두도 낼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한편 그런 이유 때문만도 아닌 것 같다. 한참 미국 의회에서 한국을 꼬집고 있다. 김 아무개 정보 부장이 몇 십만 달러를 실히 갖고 있다는 것이며,(주-4) 무슨 고위층 누가 재산 도피를 했다던가, 이름깨나 있다 싶으면 그들 자녀가 해외에서 또한 돈깨나 쓸 수 있는 묘안이 연출되는 현실을 보고 젖어버린 나의 두뇌가 평범히 그렇게 받아들이게 했는지도 모른다. 피땀의 1백억 불 수출과 지성인의 노고가 필연적으로 그런 관계가 이루어지게 돼 있는지 하여간 먼 세상사(世上事) 일이라 담담할 수밖에―.
한때 그러고 보니「뉴스위크」표지에서,「타임」지 기사에서「일본보다 더 부지런한 한국인」은 세계 도처 아니 간 곳이 없는 판국이라 새삼 누가 이민을 갔는가는 따질 필요가 없지만, 한가지 묘한 현상이 나의 궁금증을 강박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물론 통계적 의미가 증명된 것이 아니므로 오해가 없기를 전제로 하지만, 고향이 북쪽에 있는 나의 친구일수록 이민을 했거나 수속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 피난 시절에 국제 시장 경제권을 쥔 사람들이 북쪽 사람들이었듯 그들 나의 친구가 가난하거나 못 살아 가는 것은 아니다. 극히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절친한 13명의 고교 동창 중 5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끝냈다. 그 중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고향이 북쪽으로 돼 있는 친구들이다.
공연한 흥미에 대학 동기 동창 명부를 헤아려 봤다. 역시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 있었다. 졸업 1백43명중 72명이 해외 이주 중인데(50%), 그 중 24명의 본적이 북녘이다(33%). 모두 37명의 북쪽 본적 중 24명(65%)이 한국을 떴으니 비교컨대 결과는 비슷한 셈이다.
왜 그럴까? 어차피 고향이 아닌 바에야 미국에서 살자는 뜻일까? 쓰라린 피난살이의 재현이 두려워서일까? 공산 세계가 싫어 탈출한 까닭에 누구보다 전쟁의 잔인한 희생자가 될 염려 때문인가? 병역 의무를 교묘히 피해 빠져나가는 그 저변에 아무도 알 수 없는 어떤 다른 까닭이 도사리고 있어서인가?
고향이 아스팔트 서울로 되어 있는 나에겐 인색한 채점자 같이 외국의 점수를 가능한 한 깎아 내리는 개인 감정으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됐기에 외국으로 눈을 돌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멍청이가 되어 미국에 비밀 구좌 하나 갖고 있지 못한데도 너무나 바보스럽게도 담담한 것을 뭐 그리 썩 잘 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담담하기로 치면 또 있다. 파카 만년필 한 자루에 두 놈이 외상으로 한 방에서 씩씩거리며 배설에 열중했던 코흘리개 친구가 바야흐로 세상을 떠나야 할 병에 걸려 있는데도 나는 그 진실을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괴로운 이유 때문에 그를 자주 찾지 못하는 형편에까지 이르렀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결국 담담한 것이 아니라 아예 인간 로봇이 되는 증거가 아닐까? 지금까지 살아온 수다(數多)한 경험들의 연속에 의해 기억 저장된 조건에 오로지 컴퓨터같이 해답을 얻고「예스」아니면「노」라는 극과 극의 세계에서 어중간한 일들일랑 그럴싸한 거부반응을 핑계로 거들떠보려 하지 않는 기계 말이다. 작곡을 하고 난수표의 조작같이 그림을 그려내는 예술적 창조를 처리하는 가짜 인간, 즉 인간 같은 로봇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느낌이 없는 세계, 한데 언제부터인지 그들이 나를 덮쳐 버리게 내버려 둔 것이다.
담담하다. 얼굴이 굳어 있다. 그러나 나의 혀와 심장은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으니 그것이 그런 가운데도 정말 괴상하다면 괴이할 뿐이다.
참담한 울분이 설사로 막 쏟아질 것 같은데도 용케 참고 있다는 느낌이 아무래도 담담할 순 없다는 증거가 아닐까?(주-5)

(주-1): 박동선 스캔들로 미국의 양면성과 우리의 미숙한 면이 결국은 못난 로비로 드러났다. 그것은 언제나 정정당당하지 못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주-2): 1963년 6월 하와이 트리플러 육군 종합병원 정신과 수학을 끝내고 귀국하는 길에 하계 올림픽 준비에 한참이던 동경의 모습을 보고 한 말이다.
(주-3): 1965년 파월 전투 사단 1진 맹호부대에 속해 군의관으로 갔다. 그 때 이미 전투에 참가하고 있던 미군은 우방을 환영한다는 정책상의 입장이 필요했다. 그들의 환영은 傭兵을 맞이하는 노골적 표정이었다. 사실이 그러하긴 했었지만....
(주-4): 김형욱씨는 제3공화국 시절에 중앙정보부 부장을 지냈던 사람이다. 찬사와 혹평이 엇갈리는 평가를 받은 사람이었다. 나중에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주-5): 군사 독재에 대한 은유적 표현을 월간 신동아에 1978년 실린 수필이지만 입이 있으되 말을 해선 안 되었고, 손이 있으되 써서도 안 되었던 답답증을 표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