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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의사의 노후 덧글 0 | 조회 15,340 | 2009-04-17 00:00:00
정동철  


- 개업 의사의 노후 -

동래 의원들이 폐업(閉業)을 서두르고 있다.
입원실은 이미 폐쇄(閉鎖)된 지 오래다. 적어도 현재의 여건이 지속된다면 이 같은 추세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당장 경영이 적자(赤子) 쪽으로 기울고 있는 판국에 노후를 생각하면 끔찍하므로 뭔가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에 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거침없이 말한다.
“....녀석들! 너희들 앞날이 불쌍하다. 뼈빠지게 공부를 해봤자 모두가 교수가 될 것도 아니고 개업을 한들 의사의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실정이니 한심해서 하는 말이다.”
직업의 귀천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구두닦이가 체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2천 원을 받는다. 그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의사의 진찰료는 2,460원이다.(주-1)
투자한 건물(建物)과 시설(施設)에다 인건비(人件費)를 합쳐서 이런 수가(酬價)로 적자가 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당연히 동래 의원은 살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흔히 인술(仁術)이라고 해서 봉사 정신으로 버틴다고 치자. 30~40년의 개업을 하고 은퇴를 했을 때 보장되는 연금(年金)이란 것이 있다면 모르지만 아예 논외(論外)로 취급되고 있다. 자영 업자의 연금은 개인 사정이라는 이치다. 철저한 자유(自由) 시장(市場) 개념이다. 같은 시기에 봉직(奉職) 생활을 한 의사는 물론 연금을 받는다.
노후(老後)가 걱정되는 의사는 생각보다 많다.
걸핏하면 지도급(指導級) 인사로 의사를 지목하거나 마치 윤택한 생활을 독점(獨占)하고 있다고 여기는지, 의료보험 수가(酬價)가 가령 7.5% 올랐다면 일간지(日刊紙) 사회면(社會面)에 대문짝 만하게 실리는 제목이 신문마다 1면 머리 기사(記事)로 옮겨간다.
「또 의료보험 수가 인상」
신문(新聞) 구독료(購讀料)가 50% 오를 때 사고(社告)라는 조그만 박스 기사 하나로 그치고 또 뒤 미쳐 25%를 올려도 같다. 아무도 거기에 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한자리수의 인상에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시민에게 불러일으키는 저의(底意)는 무엇일까?
독일 속담에 있는 말이다.
「힘이 주인(主人)인 곳에선 정의(正義)는 하인(下人)이다」
의사와 기자(記者) 사이의 게임은 처음부터 성립이 되지 않는다. 제4의 권부(權府)라고 하는 언론과의 싸움은 엄두도 낼 수가 없다. 의사가 병든 개인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기자(記者)는 사회의 병리를 치료하고 예방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우선하는 전제는 정의(正義)다.
지금 정의라는 단어가 이 사회에 당당하고 멋지게 자리잡고 있다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도처에서 정의는커녕 속임수의 횡포라는 단어 속에 하인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그나마도 그게 거짓인지조차 모르고 사는 것이 대부분의 시민이다.
나의 나이는 정확하게 만 61세를 향하고 있다.(1996년)
의료보험의 월간(月間) 총 외형(外形)은 6백 만원을 넘지 못한다. 간호 조무사와 관리비, 그리고 약대(藥代)나 병원 운영비를 제외하면 먹고 살 것이 없다. 도리 없이 원고를 쓰고 강연을 다니며 PC통신 등 가외 수입으로 유지한다. 하지만 의사 모두가 이런 기회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 의사들은 사실 심각하다. 우리는 그래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보험 제도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는 뜻이다.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보험 제도가 나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사라고 반대하는 사람 역시 없다. 문제는 그 제도가 자본주의(資本主義) 시장 개념을 철저하게 무시한 일방적 강제(强制) 계약(契約)이라는 데 있다. 의사가 되기까지 그 험난했던 인고(忍苦)의 대가(代價)로 진찰료 2,460원을 손에 쥐게 해주면서 그 계약을 거부하면 개업을 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의사의 선택권은 있을 수가 없다. 적어도 의료 보험 제도에 관한 한 완벽한 사회주의(社會主義) 강권(强權) 속에 하인(下人) 노릇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백 보를 양보해서 거기까지는 그렇다하자. 일방적 계약에 서명을 강요하고서도 그 노후(老後)에 대해선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흥(興)하고 망하는 것은 시장성(市場性)에 의한 것이므로 고려(考慮)의 가치(價値)조차 없다는 논리(論理)다. 과연 복지국가(福祉國家)를 지향(指向)하는 나라의 처사(處事)라 볼 수 있는 것일까? 자유계약(自由契約) 제도라면 할말이 있을 수 없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오늘의 개업 의사는 모두 국가에 집단적으로 취업(就業)되어 있는 것과 거의 다름이 없다. 공무원처럼 국가 통제하에 봉급을 받고 생활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나마 공무원을 자청(自請)한 것이 아니라 의사(醫師)가 되었다는 죄(罪)로 자유가 몰수되어 버린 것이다. 이름은 자영업이지만 국가가 정한 저임금(低賃金)을 획일적(劃一的)으로 강제 계약에 의해 가두어놓은 것이다.
자유 계약 제도로 운영하던가. 연금(年金)을 보장하던가 택일(擇一)이 있어야 의사들은 진료에 열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몫은 양질(良質)의 진료(診療)를 통해 국민 복지로 환원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불행하게도 저임금 공무원의 노른자위가 뇌물의 먹이사슬이 되듯 의사가 도둑이 되는 것을 키우게 될 소지만 커질 가능성이 조성되어가고 있다.(주-2)
그렇고 그렇게 살면 되지 않느냐고 비웃는 사람들이 많다. 의사 자신마저 사회의 총체적(總體的) 비리(非理)에 익숙해지니 대답할 말이 궁해졌다.
장차 피치 못할 그 가능성에 덜미가 잡히게 될 것을 생각하면 더욱 맥이 풀릴 뿐이다.(주-3)

(주-1): ‘96. 6. 당시 강제로 가입된 의료보험이 정한 의사의 초진료.
(주-2): 2000. 7. 1. 시행된 의약 분업이 국민을 위한 정부를 자처한 김대중 대통령의 사과로 이어졌지만 그것은 바로 이듬해인 2001. 3. 의약 분업의 적자가 4조를 넘어가는 심각한 문제를 맞자 교묘하게도 의사의 부당, 과잉 청구가 책임의 핵심인 듯 매도당하게 되었다. 결과 나 역시 2001. 7. 정기 조사라는 명목으로 세무 조사를 받아야 했다.
(주-3): 앞에서 지적한 대로 그것은 현실로 ‘물이 서서 온다’는 무시무시한 물난리를 맞이하게 됐다. 2001. 12. 현재 어처구니없게도 개원 의사들이 떼돈을 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경영진단결과 현 의료수가가 원가를 9% 상회한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엄청난 개원 투자와 인고의 대가로 10%의 마진이 부당하다고 시민 단체와 더불어 장구를 치는 모습은 사실 가관이다. 실제 원가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 기준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