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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 춤추던 꾸지나무골 덧글 0 | 조회 15,620 | 2009-04-17 00:00:00
정동철  


- 꿈속에 춤추던 꾸지나무골 -

편곡된 비발디의 사계(四季)가 매우 빠르게 구석구석 나의 서재(書齋)를 가득 채우곤 환상의 날에를 펼쳐가고 있었다. 멘델스존이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했다는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음악은 천국(天國)에서 보낸 선물(膳物)」
육십 평생 길고 먼길을 쏜살같이 달려와 한 숨 돌려본다. 아직도 흙먼지가 체 가라앉지 않은 듯 바뿐 세월이었다는 흔적이 시골길의 풋풋한 내음과 함께 나의 뒤를 뽀얗게 쫓고 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만남과 이별, 그리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숫한 시간의 낙수(落穗)들이 나라를 잃어버린 병사(兵士)의 훈장처럼 얼룩진 군복에 힘겹게 매달려 있기라도 하듯(주-1) 아직도 도회지의 퀴퀴한 냄새가 배어 나온다. 그러나 먼지를 털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이제 그 잔흔(殘痕)들을 모아 모닥불로 조용히 내 후세들을 따스하게 할 불씨가 될 마음의 관솔(송월-흔히 광솔이라 말했다)을 쪼개어 마지막 꿈을 불사르기 위해 나는 꾸지나무골을 선택한 것이다.
태안군 이원면 내리, 활처럼 바위와 모래가 한적하게 어우러진 해안선(海岸線)이 소나무 밭을 향하고 있는 언덕에 바로 그 꿈이 자리하고 있었다. 꾸지 나무 골이다.
선친(先親)의 고향과는 전연 엉뚱한 곳에 정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선산(先山)의 일부가 신작로로 수용(收用)되는 바람에 땅을 소중히 여기던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보상금을 묻어두고 싶었다는 것이 하나다. 올망졸망 산과 들 속의 고향과는 달리 시멘트 숲 속의 짓눌린 중압감(重壓感)에서 바다로 향한 넓은 세계를 조그만 나의 뇌(腦) 속에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의사(醫師)의 생활로 생을 마무리하는데는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다.
사회가 더 이상 나의 도움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미 모두가 전문가(專門家)가 되어있었고, 의료 정책은 의사로 하여금 사기꾼을 만들기에 족하다고 작정을 했다. 노동자 이상의 대우를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겠다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을 보고 있었던 탓이다.(주-2)
정하고 보니 나의 꿈은 춤추듯 바빠졌다.
벌목(伐木)을 하고, 은행나무와 채리 묘목을 심었다. 눈앞엔 초승달 모양의 모래사장이 바위 자락들을 아늑하게 품고있어 보기에 좋았다. 나의 꿈을 다듬기엔 아주 근사한 곳이었다. 언젠가 조그만 통나무집이 언덕 위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 속에 책과 음악, 그리고 아내와 더불어 컴퓨터가 있는 탁 트인 창가를 그려보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천국에 와 있는 환상에 젖어들기에 족했다. 인생의 가을이 아니라 마치 비발디의 봄에 서서 거기에 곁들여진 연구실(硏究室) 하나가 나의 마지막 꿈을 키울 것이라고 희망의 그 관솔을 쪼개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사계처럼 바쁠 수 있다는 것은 따라서 전연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다. 또다시 수용을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여명(餘命)은 시간과 반비례한다. 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열망을 수용이라는 정책으로 하향 조정했던 것도 참기 힘든 일이었는데 이제 세 번째 다가서는 위기 앞에 꿈은 조용히 강렬한 태양 아래 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주-3)
예감이 있었다.
여러 해전의 일이다.
철원 산기슭에 그야말로 조그만 조립식(組立式) 간이(簡易)집을 지었다. 거기엔 책과 컴퓨터뿐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암자(庵子) 같은 곳이다. 세상을 등지고 살기로 작정 한 때였었다. 식구 아무도 그곳을 몰랐고 당연히 나의 의도를 알 리도 없었다. 불자(佛子)도 아닌 처지에 출가(出家)를 의미하므로 모든 연(緣)을 끊겠다는 것이기에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초라한 암자 같은 곳은 지금도 빈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해 본다. 또 생각해 본다.
내가 머무를 곳은 결국 삼척(三尺)보다 훨씬 큰 곳이기에 너무 과분(過分)한 것이 아닐까?
불행하게도 그곳을 식구들이 알게 되었다.(주-4) 초가(草家) 삼 칸 등 따스하고 배부르면 더 바랄 것이 없음을 입으로 지절대지만 아직도 욕심스런 희망의 관솔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어디로 가야 옳은 것인가?
꾸지나무골의 내력을 나는 모른다.(주-5)
다만 꿈이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바램으로 말뚝을 박은 것이 전부였을 따름이다. 이제 음악도 생존의 의미도 그리고 희망의 불씨가 될 관솔도 구태여 쪼갤 필요가 없어졌다. 다가선 현실을 우직하게 받아들이기로 하는 도리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소득이라면 알아차려 받아드리는데 이력이 생겼다는 것뿐이다. 단순한 슬픔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천국(天國)에서 보낸 선물(膳物)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주-1): ‘89년 여름 나는 레닌그라드 네바강변에 2차대전 참전 소련 용사의 훈장이 낡은 군복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음을 보며 텅빈 웃음을 먹음은 적이 있었다.
(주-2): 2000년 7월 1일로 의약 분업이 법적으로 정해지자 그 우려는 현실로 적중하고 말았다.(2001. 7.)
(주-3):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고등리 선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드넓은 벌판이 여의도 비행장이 옮겨오는 바람에 수용 당했다. 어린 꿈이 풍선을 놓진 심정이었다. 첫 번째 실망이다. ‘93년 강남구 일원동 준주거지 400평을 사면서 연구소를 차리겠다고 단단히 작정을 했던 것이 탄천 하수처리장으로 수용되면서 허탈감은 컸다. 이제 꾸지나무골에서 조용히 작은 꿈으로 여생을 지낼까 했지만 다시 핵발전소로 수용될 위기에 있었다. 다행히 그것은 2001년 현재 비켜가긴 했다.
(주-4): ‘92년 나의 집이 유행의 소용돌이로 외제 인테리어가 시작되자 홀로 出家를 결심하고 철원 후미진 골짜기에 2개의 방이 있는 간이 집을 지었다. 후에 가족이 알고 별장이라 착각을 하고 갔으니 그 실망감에 쓴 미소를 지을 수가 없다.
(주-5):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뽕나무과의 낙엽활엽 소교목. 산기슭의 양지쪽에서 자란다. 높이는 12m이며 작은 가지에 털이 빽빽이 난다. 잎은 어긋나거나 또는 마주나고 넓은 달걀 모양 또는 원 모양으로 끝이 꼬리처럼 길며 대개 가장자리가 깊이 패어 들어간 모양이다. 잎 길이는 7~20cm이고,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표면은 털이 있고 거칠며, 뒷면도 잎자루와 더불어 털이 있다. 턱 잎은 달걀 모양으로 자줏빛이다. 꽃은 단성화로 암수딴그루이고 수꽃은 4개로 갈라진 화피와 4개의 수술이 있다. 암꽃의 화피는 통 모양이고 3~4개로 갈라지며 암술대는 실 모양으로 길다. 열매는 핵과이고 외과피는 붉은 색이며 내과피는 단단하고 갈색이고 9월에 익는다. 열매들이 모여 덩어리를 이룬 열매 이삭은 둥글고 지름이 2cm 정도이다. 나무껍질은 종이의 원료로 각종 한지를 만들고, 열매는 약으로 쓰거나 맛이 좋아 그냥 먹는다. 어린잎도 식용한다. 한방에서 신체 허약․시력 감퇴․수종(水腫) 등에 약으로 쓴다. 나는 2001. 7. 내력을 알아 꾸지나무를 모으기로 했다. 동시에 아들의 명의로 상속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