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줍는 빗속의 여인
2017.08.20.
정 동철
우두득 우산을 펴니 귀청 울린다.
단지내 공원을 향하는 길 칙칙한 벽돌형 포도 여기저기 헝건한 빗물 피해 어디로 갈까. 숲같은 길 아니면 탄천으로, 숲길 짧고 탄천 냇물 넘실거릴 듯 늘 하는 산책, 이런저런 생각 들락거린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이런 비에 비행기 뜨려나 귀로보고 눈으로 듣는 그래서 있는대로의 자신을 찾아 한 것 신나게 대학 즐기며 작품으로 이어가길... 저장하고 가려나.
숲길로 들어섰다. 숲속으로 가는 빗길 싱그럽다. 껄끄럽던 노안 튕겨오르는 물안개에 젖어든다. 출판사로 가기전 굴귀하나 바꾸려 어제 상대성이론 한권을 읽고 결국 바꾼뒤다. 막다른 담 고속화도로 매연 비로 없으리라 택한 숲길, 되돌아서는데 미끌 여기서 아무도 모르게 가겠군. 언젠가 개에 이끌리는 여인 반려견 눈 높이 맞추려다 머뭇머뭇 걸터앉은 벤치의 나 바로 2미터앞 멋쩍게 눈 마주쳤던 그 자리를 지나 탄천으로 내려간다. 우산울림이 달라졌다. 플라스틱 긴 천정에 우악스래 쏟아지던 빗소리 안단테로 바뀐다. 실제 24시간 고전음악 들려주는 곳 토끼굴, 소름일정도의 손녀 첼로소리로 여울진다.
“할아버지, 교수님들 나이들고 우리세대 이해하지 못하겠죠? 그들 마음을 듣고 보면서 제가 하고싶은 거 할래요, 꼭 할아버지 타임라인에 그림 올려 들일게요, 힘내세요... 사랑해요.”
이미 그의 그림 거실과 침실에 넉점 걸려있다. 전연 예상치못했던 묘하게 잘려진 판화와 그림들 놀랍다. 제목부터 그렇다. 역설-Isn't it Ironic?
초생달같은 탄천다리 중간에 선다. 거세게 울렁거리는 물길 위아래를 물끄럼히 바라본다. 아무생각없이.. 때다. 심무기사(心無機事), 30년전 인사동이 준 선물 추사의 글귀, 아무생각없이 무심할새 책있고 배부르며 잠잘자 몸과 마음 건강하니 바로 상계진인(上界眞人)이라.., 세차게 거품뿜어대며 물줄기에서 솟구치는 이상한 단어들, 진찰실에 걸려있는 목각판서다. 책? 하늘에서 절로 떨어진다? 먹이 누가 줄까? 잠? 가리게 집도 옷도 이불도없이 잘 올까? 한가로운 풍경 추임새 공허하다.
쭉뻗은 눈빛 등속(等速)자전거 길, 올라올 때 찍어야지 이윽고 다리아래 우산 내려놓는다. 촬영창 보니 건널목 태양등 빨청 들락거리는 근처 아스라이 우산든 사람, 찍지 않았다. 뻥뚫린 길만 찍을 참이었으니까. 거의 마주칠 중간지점 스치기전 그는 얼핏 잔디밭넘어 넓은 시멘트공터로 들어선다. 여인이었다. 중년? 아침 평범한 외출차림세 튕기는 빗물 아스라히 뭔가를 줍는다. 이내 가까운 곳에 또하나.
- 뭔가 잃었던 것 찾은모양이네, 다행이군 저럴수도... -
아니다. 물기털어내는 것은 깡통이었다. 깡통 2개 왜지?
불쑥 묻고싶었다. 좀전, 보다젊은 여인 내려가는 냇가길 어찌나 씩씩하고 바뿌게 걷던지 웬일로 이 비를 뚫고, 묻지 않았다. 깡통여인에게 역시 묻지 않았다. 자존심 거슬릴 듯, 형광조끼 입지않았다. 실성한 듯 습관적 바보같이 웃는 나의 입꼬리가 내려앉는다. 언젠가 집게로 단지내 공원정리 하얀 할머니 얼마를 받나 물었다. 70만원, 매일하는 것 아니고 주 오전 두세번.
아내에게 물었다.
깡통? 한 개에 20-30원 쯤 할거라고.
사진 몇장 더 찍었다. 평범한 외출차림의 여인 자꾸 궁금해진다. 왜였을까?
“할아버지, 벤쿠버로 학생뽑겠다 다녀간 미국대학교수님 말했어요. 이건 학생이 그린 그림 아니라고. 그 나이에 이렇게 그릴수 없다고. 학원선생님이 그려준 것에 덧칠했군. 너무 놀랐어요. 아니라고.. 대답 안해줘 메일로 물었어요. 그럴거면 왜 면접을 하죠. 교수님 맞나요. 대답 없었어요.. 너무하죠? 이상해요.”
시카고 어느 예술대학 4년장학금 거절하고 로드아일런드 상류층 대학 의무적 기숙사로 오늘 엄마랑 가려는 중이다. 가는 길에 첼리스트 언니를 만나 며칠지내기로.. 언니의 과정을 빼어밟고 있다. 과(科)는 다르지만 초등하교 일기의 꿈대로...
있는 그대로 되기위해 보고 듣는 사람되어 자신의 것으로 창작된 그림, 나의 타임라인에 올라올 그때를 기다기로 한다. 해라가 아니라 자부심 무지 커진다. 너무..
묻지 못한 것 영 걸린다.
빗속의 깡통을 주어든 여인, 왜였을까? 늙어 20-30원이 아쉬워지는 날이 닥아오고 있어서일까? 그 험한 빗속 식전에... 아니면 ‘깡통 하나’들고 한국찾은 스웨덴 무용단 ‘지스라단스’? 어제 강릉 명주예술마당에서 공연한 제목, ‘깡통하나’때문에? 아이들이 우연히 발견한 깡통하나 서로 가지려고 싸우다 화해한다는 내용이란다. 재미있다.
아니 그건 아니다. 이 글쓰고난 다움에 알게된 것. 어쩜 ‘율리시스의 시선Ulysses Gaze-1995 Harvey Keitel주연 ‘ 영화속 카이텔이 찾으려는 잃어버린 그리스 필름 ‘마나키아 형제’, 실종된 ‘깡통 세 개’를 찾듯 으스스 소름이는 밀교집회 세르비아 다민족 다종교속에 음습한 그때의 멎었던 숨 되살아나서? 아님 LA 이주영할머니 깡통팔아 민족학교 장학금을 냈다는 ‘세개의 깡통1998. 12.24. 한겨레’이 남긴 잔상일까?
비행기 폭우로 뜨지 못했다. 손녀와 통화, 분명 저장되어있었다. 상계진인(上界眞人)이라고? 허허(虛虛)! 나만의 빗속 한가한 상대적 잡상(雜像)일 뿐인데... (2017.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