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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뭘? 덧글 0 | 조회 11,905 | 2017-10-08 21:04:32
관리자  

기다림, ?

2017.07.03. 정신과의사 정동철



창밖의 파란하늘 그 아래 흐르는 숯내(炭川) 하얀 두르미 두 마리 부디칠 듯 앞지르거니 위로 치솟는 듯 어울리며 날개짓 날렵함 너무 시원하다. 창넘어 미끄러지듯 애무(愛舞)에 취해, 설마할새 난 창살에서 살짝 빠져나온다. 숨 확 트일 듯..

바람 따라 걸어보고 싶어서다. 승강기 부른다. 내려가는 홀로만의 공간 생각 이런것도 저런것도 아니다. 멍하니 에어컨 바람 1층으로 기다린다. 벌린 입에 숨이 걸린다. 문 열리자 조심스런 현관계단 찬찬히 내려간다. 파란 하늘에 구름, 화단을 돌자 후끈 거실의 바람과 다르다. 그 하얀 두르미 날렵한 바람은 어디로? 아니다. 쏟아부을 것 같은 쏘나기 시원함도 아니다. 후덕지븐 숨 가빠진다. 왜지? 여름 유난히 덥다는 여름.

 

거름 센다. 습관 오래다.

아침 식전 백40, 힘겨워 앉던 자리, 창밖의 시원함으로 천보쯤 가리라, 107동 돌아 예의 길 벗어난다. 한 거름 두 거름 뒤꼍 따라 걷는다. 설흔여섯, 주차한 누군가의 차 작은 전조등 켜져있다. 마음뿐 알려줄 여분 없어 가던 걸음, 다시 오른쪽으로 꺽는다. 쉰 셋인가 차 한대가 대로에서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길 어정쩍 서 있다.

아니.. 아니나 다를까 빵빵, 차 지나간 자리 건너 테니스장으로 가는 길 택한다. 오른편에 CCTV작동이라 적혀있는 무슨 수선장비 창고를 막 지나 앞동 아파트 옆길이다. 젊은 부부와 유모차 예쁜 애기, 걸음 구십 다섯인가, 모녀는 남편 한참 앞세우고 느긋하다. 살살 차오르는 숨사이 차근차근 여유로운 표정 웃어본다. 마주침 편하다. 엄두 역시 한계 다시 오른쪽으로 튼다. 산책길처럼 넉넉히 걷는다. 실은 엉금엉금... 바람 있는 듯 없다. 이 동엔 현관앞 주차도 돼있군. 쓰레기 넘쳐 찝찝하다.

백을 넘어 다시 열 넷인가 오른쪽 또 꺾는다. 바람 휙 몰아친다. ! 시원. 곧 쏟아지겠군, 발거름 계속 헤아리며 이윽고 예의 팔각정 정확히 주저앉는다. 헐떡 또 헐떡.

 

놀랐다. 흡연구역이 아니다. 강력한 금연지구다. 폐가 싫어할 담배연기 특히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올 참이면 예외 없이 더는 견딜 수 없어 함에도 숨 고르던 곳 슬며시 화가 오른다. 나라마다 그 국민의 그 대통령 그 반대도 원론적으론 마찬가지, 고른다. 대체 뭘 기다리지? 육신의 고통 잊으려? 그래 불러왔나? 그럴 수도. 고통으로 부터의 자유, “자유로 부터의 도피(逃避)란 것이 다가선다. 자유가 뭔지 솔직히 모르겠다. 자유를 추구하다 지쳐 자유로 부터 아예 도망치고 싶다는 세상,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 편함 더 바랄 것 없는 터라...

들이쉬면 끝자락 예외 없이 기침이 따라붙는다. 뿐인가 거렁 거렁 기도가 걸그럭거렸다하면 영락없다. 막혀버린다. 몸부림, 접착제 같은 하얀 가래 기도에 달라붙어 천지가 뒤집힌다. 숨 넘어가는 고통 이렇게 힘들어서야. 일어섰다. 제기랄...

 

전들 어쩌라고~...”

뭐 좋은 방도 없을까? 주치의 교수가 돌려 준 응답. 의사로서 난 쓴적없는 표현이다.

 

선명한 위치를 봤다. 폐암(肺癌)이란걸 알았다. 거의 1년전 지난 8월이다. 고민, 죽음이 아니다. 아내와 아들 가족에 언제 어떻게 알린것인가다. 살만큼 살았기에 허우대 멀쩡 누구도 눈치체지 못했다. 적어도 말기 3개월 전쯤 알리리라 작정했다. 진행과정 알려 조직검사, 때에 마침 손녀가 귀국했다. 솔직하지 않을수없었다. 원하는 과(), 원하는 대학 장학금 마다며 선택한 손녀에 대한 엄청난 자긍심 아들과 터놓지않을수 없었다.

본심은 그러나 제자리, 추적검사 솔직히 그만두고 싶다. 다시는 수술받지 않을 것이다. 가족 희망, 1/4제거수술 4월 말이다. 이제 한은 없을 것, ()대로 족하리라.

 

깨져라 머리, 텀벙 침대에 눕는다. 짧지만 그중 편한 자세, 올라오니 숨 대안 없음에,

나무숲 아담한 정자 단지를 관통하는 길 좌로 우로 오가는 차를 바라보며 기둥에 몸 기댔다. 일할 시간인데, 침대가 펺다니. 아낸 전연 모르고 있다. 필사(筆寫) 때문에...

숨 소리 잦아들며 밀려오는 생각, 살거나 죽어야겠다는 의식(意識), 자유와 교차하면서 그 의미를 더듬는다. 내가 기다리는 건 뭐지? 자유? 맞나?

누구도 늙음을 피해 자유에 이르진 못할 것이다. 한가닥 희망이다. 왜 자유를? 도피? “무지개 희망, 어디로?” 폐에서 나올 이 주() 인성강의 제목이다. 도피라니?

복잡하지 않기가 자연법칙이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민음사,2016)으로부터 “35년생 정동철을 그려본다. 집단적으로 총질할 자유 그것은 정동철의 과거다. 전쟁, 그리고 인생사 눈물겨운 고통 씹어 삼키는 인내와 전업주부 아내, 씹할 개인적 자유도있었다. ‘김지영은 예외? 개인적으로 일진의 씨발 자유가 있고 도도히 갚음아닌 외칠 자유, 사회(집단)적으로 들러엎을 자유도 있다. 둘의 표현 배합률(配合率)과 시차(時差)만 다를뿐 개인과 사회는 그렇게 공존한다. 유토피아 같은 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자유, 참여, 숙의, 그리고 직접민주주의... 정치학자만큼이나 많다는 민주주의 어떤 것도 처음과 끝이 같은 평등 평화 이상적인 경우는 없다. 그것은 분명하다. 마치 우주의 시간과 공간과 장소 그리고 암흑물질(양양의 양수발전소 지하 700m)을 포함환 소립자(素粒子)가 그렇듯 거기에도 의식이란 소인(素因)은 있을 것이다. 확률적(確率的)이라는 의미가 그렇다. 인간이 경험하고 있는 의식 그것만 의식이 아니다. 인간적 의미의 의식 0에 가까울지 그건 몰라도 하여간 있을 것이다. 뭔 소리? 당연히 자유에 의식이란 소인은 엄존할 것. 뇌의 연결고리가 어떻게 된건지 그걸 모르고 있을뿐이다.

들러엎을까? 씨발, 알아들을까? 자유란 의식은 그 이전의 확률적 배합의 결과일 거라 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E. Fromm 1900~1980. "Escape from Freedomm" 1941. Owl Books Edition, 1994) 대체 난 뭘 기다리고 있나! 잠든 가운데 자유를 느껴본적 없다. 도망갔었나? 나는 범심론(汎心論)자는 아니다. 숨 멎으면 혹 보이려나? 사자(死者)의 의식은 표현방식의 공식이 산자의 그것과 같지 않다. 없음이 아니라 분명 그럴 것이다.

왕창 깨진 숨 콜록콜록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한다? 그래서였구나. 유난히 창창하고 화사한 아침 있어선 안될 내일, ~ 또 눈을 떴네, 어쩌지! ? (2017.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