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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사춘기 덧글 0 | 조회 16,005 | 2009-04-17 00:00:00
정동철  


- 직장 사춘기 -

살만하니 우환(憂患)이라는 말이 있다.
복통을 치고 환장할 일이다. 훈련병으로 입대하여 온갖 고생을 다 해도 좀처럼 병은 안 생긴다. 배치(配置)를 받고 6개월쯤 지나 신참(新參)을 면할 때쯤 요상스런 병이 생긴다.
병도 병 같지 않은 것이 축축 늘어져 몸은 천근이고 입맛이 없다. 쏟아지던 잠도 오지 않고 오락가락 쓰잘 때 없는 잡념만 시계불알처럼 눈앞에 어른거린다. 불만은 커지고 한심하기만 하다. 대체 아무 것도 집중 할 수가 없다. 영락없이 정신나간 사람이다. 군기가 빠졌다고 기합을 받아가면서도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치적으로 치 면 혹독한 훈련에다 조교(助敎)로부터 인간 이하의 갖은 수모를 당하던 훈련 때 병이 생겨도 생겼어야 맞는 얘기다. 내둥 그 때는 아무스럽지 않다가 짬밥 그릇이 제법 허리까지 올라와 눈치로 지날 만 할 때 병이 생기는 것은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전방(前方) 3개 군단(軍團)의 정신 건강을 책임지고 참모(參謀) 방문을 다니던 정신치료대(精神治療隊) 대장(隊長) 시절의 일이다.(주-1) 안전사고도 겸사겸사 예방하느라 예하(隷下) 사단(師團)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그 정체를 알려고 애썼다. 알고 보니 살만하니 우환이었다. 지낼만하니 꾀가 생기는 것이다. 권태기라 비유될 수 있을 법하다.
직장에 입사(入社)할 때는 그야말로 천하를 얻은 듯 신바람이 나서 무엇이고 못할 것이 없겠다는 패기(覇氣)와 자신감이 압도한다. 선배는 물론 상사와의 관계에서 더러 수모를 당해도 깍듯이 조아려 오히려 그들의 혀처럼 일한다. 어려울 것이 없었다. 사실 그 때는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일을 알만 하자 짜증과 불만뿐이다. 마치 급성장에 따르는 사춘기(思春期)의 미묘한 심정처럼 정서(情緖)상의 뿔딱증이 나는 것이다. 호기심과 해야할 일은 많은 데 채워지는 것은 없고 억매여 따분하기만 한 것이다. 그뿐인가, 체 바퀴 속에 뜀박질 같은 일에다 좌우(左右) 위아래가 칠면조처럼 예고 없이 변하는 사람 틈에 끼어 숨이 콱콱 막힌다. 신세타령이 절로 폭포처럼 쏟아진다.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다. 해봤자 그거고, 그래봤자 줄서기에서 밀리기 일쑤다. 남는 것은 사춘기적 방황뿐이다.
대개 입사 후 2-3년 때의 심정이다. 한 가닥 위로라면 요즘 바늘구멍 같은 입사 경쟁을 보는 세태가 위로(慰勞)의 울타리를 둘러줄 뿐이다.
멍청한 직장인의 얘기다.
스마트한 사고(思考)의 빈곤(貧困) 때문이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사춘기적 신경질을 다시 씹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병이 아니고선 내일을 모르는 식충(食蟲)일 뿐이다. 잠깐!
불난 데 부채질이냐 면서 덮어 버리려는 울화(鬱火)를 사양(辭讓)하겠다. 스마트(SMART)가 도시 무엇인지 알고 나 팽개치는 것이 어떨까 싶어서다.
멋 내기 생쥐 얘기가 아니다.
‘Specific Measurable Acting oriented Realistic Thinking manage라는 말이다. 이 정도의 해독력(解讀力)은 있을 것이다. 내연의 뜻은 간단치 않다. 측정(測定) 가능한 행동, 현실적 사고방식에 바탕을 둔 특정 사안(事案)에, 행동으로 이어지는 그런 직장인이 되지 않고선 쫓겨나기 십상이라는 암시다.
아리송하다?
주어진 목표를 향해 현실적 감각으로 뛰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면(裏面)엔 ‘레이저 사고(Laser Thinking)’라는 집중력이 도사리고 있다.
레이저로 칼 없이 수술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상식이다. 경쟁력에서 승부를 내려니 가공(加工)되지 않은 정보 때문에 산만(散漫)한 것을 볼록 렌즈로 검정 옷을 태우는 태양 빛처럼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스틸 컬러의 반도체 인간은 어차피 미시(微視)세계의 도전 없이 설자리를 지키기는 어렵다. 그것도 계량화(計量化)된 코딩이 없으면 전연 의미가 없다. 사이버 시대라고 하지만 그것은 현실 속의 가상(假像)이다. 사고방식의 새로운 틀(paradigm)이 없다면 물 건너간 얘기이다.
한가롭게 담배나 뻐끔거리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탓하는 사람은 불가능하다. 눈치나 보는 사람은 근처에도 갈 수 없다. 묘수(妙手)를 찾는 사람은 헛 바퀴로 땀께나 흘리겠지만 그 자리가 그 자리다.
“정 선생! 어때요. 동문들이 똘똘하지 않아요? 눈빛이 살아있어요. 내가 지금 의예과(醫豫科)에 들어갔다면 정말 좋겠어요”
60대 중반의 선배가 ‘기분 장애’라는 특별 강좌를 듣다 점심을 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왜 아니에요. 인생을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권태감은 전환점(轉換點)을 강조하는 하나의 신호다. 머리를 굴릴 때가 됐으니 발에 땀이 나도록 뛰라는 뜻이다.
배가 아프면 위(胃)에 고장이 난 징조다. 사춘기의 무력감은 욕구 충족을 채우지 못한 결과다. 당사자는 괴롭지만 술과 음식을 삼가 하고, 폭발적 반항을 휘두르지 말아야 된다는 역설적(逆說的) 보호 장치다. 그것은 의미 있는 신호다. 권태와 고통이 그 사람을 보호해주는 장치가 된다는 묘한 뜻을 알아차리는 직장인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급기야 위(胃)에 펑크가 나고, 사춘기는 가출과 탈선으로 신세를 망친다. 직장인이 그런 지경에 이르면 영영 설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신바람’이 유행이다. ‘배짱’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선택은 자유지만 집중적 사고방식으로 스마트 직장인이 되는 길은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동서남북(東西南北)을 아는 일이다. 불로소득은 있지도 않지만 설사 있다해도 무지개처럼 영원히 손에 잡히지도 않을 것이다.
배짱 없는 사람이 있는가? 신바람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미친 사람처럼 신바람 난다고 배짱을 부리며 설치고 다니면 권태감이 과연 사라질까?
갈 곳은 많고 세상은 넓은 데 시간은 너무 짧다.
걸핏하면 술잔에 담배 연기만 내뿜는 ‘타임 킬러’에게 묘수를 알려주면 생사람 잡기 십상이다. 아시아권 노동력(勞動力) 최하위(最下位)를 자랑하는 우리의 현실은 달래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불로소득과 묘수, 그리고 요령에 익숙한 것이 이유다.
자신과 먼 거리에 있는 화두(話頭)쯤으로 여긴다면 착각이다.

(주-1): 1963년 당시 전방에는 2개의 정신 치료대가 있었다. 동부의 3개 군단을 커버하고 있던 춘천에서 대장노릇을 했었다. 군에서 경험한 18개월간의 전방 생활이었다. 원주에 있는 1군사령부에서 정신 치료대의 역할과 결과를 요약 브리핑을 장군들에게 했었다. 하극상이 왜 생기며 그것이 군의 사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가 주된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