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게시판 > 수상수필
왜 사람일까? 덧글 0 | 조회 10,177 | 2017-11-30 15:02:49
관리자  

왜 사람일까?

2017.11.30.

정신과의사 정 동철

 

사람이니까 사람이지! 몰라서? 또 병이 도지는군, 쯧쯧..

그런가? 그렇군.

? 병이라구? 근데 ‘...이니까의 그 사람, 그걸 알면 시원하게 툭 터질 것 같은데 끼리는 아는지 미덥지 않은 세상이라 걸려 영 뚫리질 않네, 병일까?

 

사람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도 그렇고 널려있는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그렇다. 뱅글뱅글 뭐가 사람인지 꽉 막힌다. 알 수가 없다. 모르는 병, 그렇겠지? 어쩐다?

 

아니 당신 참... 웃겨도 너무 웃겨요.. 왜 그렇게 걸어요?”

전연 예상하지 못한 얼굴 웃기는 웃음으로 가깝게 오는 여인, 아내다. 깔깔 어린이처럼. 그렇게 웃던 웃음이 아니라 놀란다. 방금 모퉁이를 돌면서 아내와 마주칠 일 없겠군... 땅만 보고 걷는데 웃기는 웃음 어찌나 웃음 웃기는지 그냥 나도 웃는다.

아니 왜 이리로 와?”

 

꼭 앞으로 넘어질 것 같단다. 급하냐고, 근데 아주 천천히 그렇게 걷는 걸 처음 본다나. 제일 싫어하는 옷차림으로 매무새가 엉켜 더했던 모양이다. 생각이 남루하다고?

 

한 바퀴 돌고 오겠다 말한다. 아내는 집으로 나는 가던 길 운동 한다 걷기로 정한 코스 따라 서로 멀어진다. 아들이 입고 다니던 국방색 코트, 족히 20년은 됐지 싶은 평창 롱 패딩이 아니라 뭐라 하여간 인조털 무겁지만 모자달린 코트로 완정무장, 거기다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아내 늘 말한 것이다. 제발 이제 그만 입고 버립시다. 바로 그 코트다. 한파 방어라고? 나에겐 세상 이래 편할 수가 없는데.. 못 말려 웃긴다며..

걷는다. 세상사 보고 들으며 그냥 걷는다. 침묵만이 금 인양..

당연히 숨이 차다. 전보다 보폭은 커진 듯 앞질러가는 이 보면서 속도도 빨라졌음 느낀다. 차긴 해도 움파움파 내뱉던 숨은 아니다. 걷고 또 걷고 걷는 운동이 전부라 언젠가 했던 철봉에 매달려본다. 땅에서 발을 띠고 매달린 그런 것이 아니라 두발 모아 땅에 집고 낮은 철봉대 두 팔 벌려 잡아 30도쯤 기운 상체를 잡아 다니는 운동이다. 손을 안으로 잡고 수무 번 밖으로 잡고 또 수무 번 한동안 하다 힘겨워 하지 않다 며칠째 다시 한다. 상체 팔의 힘이 너무 약해졌다는 느낌에서다. 하늘이 놀랄 정도로 높고 넓다. 예나 지금이나 꼭 같은 파란 하늘, 가을의 그 짙은 파랑 기분 짱이다. 앞으로도 같을 것, 눈에 들어찬 파란 하늘, 미사일? 안 잡히네. 걱정 말라고?

길을 조금 달리해 돌아온다. 찬 날씨 띄엄띄엄 개를 끌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누런 잔디 벌판을 불규칙적으로 오락가락 움직인다. 나처럼 내가 아니라 개를 위해서..

멀리 보이는 여인이 갑작이 개를 따라 후다닥 달린다. 목줄을 하지 않았는지 이리 갔다 다시 반대로 달리는 개를 따라 쫓는다. 한 마리는 어정쩡하니 아물 아물. 목줄 매고 다니라 요즘 누군가 연예인과 관련된 사망사건으로 견주의 고충 이만저만 아니라 하던데 태평이네.. 저럴 수도.. 널렸는데 나같이 콩알만 한 얼간이 아니고서야..

기계처럼 같은 속도와 보폭으로 차츰 가까워지면서 목줄이 보인다. 안 한 것이 아니다. 그 목줄이 개 목에 걸린 것이 아니라 그녀 손에 감긴 듯 따라가느라 절절 메고 있던 것이다. 말하자면 개를 사람이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개가 사람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셈이다. 그렇지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개라는 사실, 깜빡했다.

잔디밭 풍경을 보다 앞으로 훌쩍 다가 온 또 다른 두 마리의 개, 제왕적 청년에 이끌려 바야흐로 부디 칠 듯 마주친다. 때다. 갑자기 요란하게 짖어대고 달려든다. 울컥 걷어차고 싶은 충동이 뜬다. 나도 똑같이 개가 된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사람인데?

더 이상 소란은 없었다. 한데 청년의 표정이 그게 아니다. 아주 못마땅해 보인다. 대체 왜 개를 놀라게 하느냐는 투다. 그런 복장으로 개를 대하니 개가 가만있을 리 있겠냐고.. 머쓱해 진 것은 나다. 참 세상 변했지? 미안하다 해야 할 사람은 내가 된 꼴, 개의 패션 감각 몰라 상하게 했으니 말이다. 아내가 봤으면 그것보라 했을까?

 

난폭하고 거칠어 다루기 힘든 개, 심리학박사가 가면 언제 그랬더냐 싶을 정도로 조용해진단다. 유명해진 개 박사는 그래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개 치료사로 덕망을 얻었다 한다. 미국 얘기다. 개 박사! 그가 강조한 말이 지나간다.

개가 난폭하거나 순한 것은 개의 문제가 아니라 견주의 문제라고. 기분에 따라 터질 듯 껴안고 입 맞추며 좋아서 어쩔줄 모르다 뭔가 비위 거슬렸다 하면 냅다 혼쭐을 내는 바람에 개가 어느 장단이 옳은 건지 알 수 없어 멋대로 난폭해진다는 것이다.

그렇군, 그래서 애완견이 아니라 반려견이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고들 하는구나. 기분 따라 애완용 장난감이려니 그런 게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뭐 그래야 한다는, 해서 반려견이란 이름 붙었다는 거군. 브리지트 바르도 개고기 먹는 야만족이라며 88올림픽 반대했는데 금년 초복 종로에선 개 식용 반대시민단체 시위, 그렇군..

요즘 청년들 난폭한 것도 같은 이치란다. 지도층의 일관성이 그러니 부모라 다를라?

 

-너를 알고 나를 알고, 너와 나의 다름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문화(기분)를 정확히 사랑하는 자존의 방식이라 믿는다.-(타이포 그래픽 연구자 유지원; 직지-直指에 세 번 놀랐다는 네덜란드 디자이너가 똑똑한 한국인이라 했다는 글에서; 중앙 선데이 559)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다. 아내는 나의 애완용이 아니다. 반려자 그것도 진국에 해당하는 동반자, 사람이란 너와 나를 알고 서로의 개성과 그 다름을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그런 자존방식을 믿는 존재, 까르르 웃던 아내로 사람이 뭔지 그제서야 좀 알 것 같다. 개에 당하지만 개는 자신의 패선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사람은 저항할 정도 그래서 사람인가 보다. 왜 사람일까? 그 사람’, 이런 뜻에 맞겠지? (2017.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