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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울어야 하는 새 덧글 0 | 조회 15,565 | 2009-04-17 00:00:00
정동철  


- 저녁에 울어야 하는 새 -

신라 49대 헌강(憲康)대왕 때, 처용가(處容歌)의 내용.

동경 밝은 달에
밤드러(새어)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라히(다리) 네히러라
둘은 내해었고 둘은 누해언고
본대 내해다만은 뺏겼으니 어찌하리꼬

헌강(憲康)대왕은 용의 아들 중 처용(處容)을 선택했다. 관직에 앉히려고 미녀와 결혼을 시켰다. 어느 날 일에 지쳐 노닐다 귀가하니 아내는 역신(疫神)과 간통을 하고 있었다. 처용은 못 본 척 물러났다. 역신이 감동하여 장차 처용의 모습을 보면 결코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엎드려 맹세했다. 인하여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대문에 그려 부쳐 사귀(邪鬼)를 미리 방비할 수 있었다. 삼국유사, 처용가에 얽힌 내력이다.
웃기는 일이다. 아니 얼간이 같은 남편,
도대체 아내와 간통을 하는 네 개의 발을 보면서 물러서다니, 간 적기로 처용 만한 인물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헨리 밀러가 쓴 ‘섹서스’에나 나오는 소설이라면 몰라도 현실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신라인의 피를 이어받은 남자들은 그들의 인생(人生) 극(劇)에 유사한 사건을 받아들이고 있다. 놀랍게도 나의 면담 실에선 어쩌다 있는 일이 아니다. 마음씨가 바다같이 넓어서가 아니다. 기가 콩알처럼 작아서다. 쓰리다. 울화가 머리카락까지 치솟는다. 다만 못 본 척 주저앉고 마는 이유가 따로 있을 뿐이다.
준비된 아내의 열정이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처럼 찬란하게 폭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밤의 침실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솔직하게 말했어요. 제발 인생을 소꿉장난하듯 그렇게는 살 수 없다고 했죠. 저같이 젊은 여자가 이렇게만 있을 수 있겠어요? 결혼 8년에 단 세 번의 오르가즘을 경험했어요. 그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에요. 남편은 무력합니다. 욕정의 뇌관을 터뜨릴 그런 힘이 아예 없는 거예요. 항상 방아쇠 주변을 맴돌 뿐이죠. 누구라도 좋아요. 뭐라고 불러도 좋아요. 결국은 남자를 찾을 거예요. 용납되지 않는다면 이혼하겠어요. 한 가닥 희망은 선생님이 남자의 능력을 살려줄 수 잇다는 TV를 보고 왔어요. 남편을 비참하게 만들고 싶은 것은 저의 목적이 아니니까요. 가능할 까요?”
약사의 애절한 호소다. 남편은 변호사, 품의 유지를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이 억울하다고 했다.
일차적으로 ‘여성의 오르가즘 장애’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성적 욕구는 넘친다. 주체하기 힘들 지경이다. 흥분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발갛게 상기된 열기가 온몸을 뒤틀게 한다. 마지막 불꽃이 하늘에 화려하게 터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남편이 무던히 애를 썼다. 결혼 초기엔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생리적 배설 욕(慾)에 충실하였고, 그래서 아이를 셋이나 키우고 있다. 둘째를 낳고부터 일이다. 아내의 불만을 알게 된 남편은 자가 치료를 위해 자존심을 버렸다. 기분을 살펴 애무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성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참다못해 먼저 노크를 한 것은 아내다. 그녀의 남편이 장차 처용과 같은 처지가 되리라는 예감이 들이닥쳤다.
몇 가지 방안을 소개해야겠다.(주-1) 전문의를 찾으면 곧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렇게 오랜 동안 허리띠를 잔뜩 조이고 살아왔던 체면이 어이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선 후회한다. 그것은 즐거운 후회다. 그러나 현실은 선뜻 그렇게 나서지 못하는 예비 처용과 극단적 처방을 마음속에 준비하고 있는 아내가 많다. 비극이다. 성 치료는 다른 병과는 달리 입 소문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험자의 얘기를 모르는 입장에선 회의가 앞서기 일쑤다. 비극으로 향한 굴렁쇠가 좀처럼 멎지 못하는 이유다.
이제 최소한의 상황을 알아두어야 할 때다.
첫째, 오르가즘을 경험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우선 찾아야 한다. 부부간의 성적 만족도는 상대적이다. 남편의 강력한 능력에 관계없이 궁합이 잘 맞는 경우도 있다. 남편의 발기력(勃起力)과 지구력(持久力)이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불변의 법칙은 아니다. 강하고 길어도 아내가 전연 반응을 일으키지 못할 때가 있는가 하면 별반 길지 않고 강도 역시 다소 약해도 아내가 폭죽을 터뜨려 환희를 만끽하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남편의 문제가 핵심인데 아내만 탓한다면 대안이 막연하다. 아내가 문제라면 남편의 기교만 원망할 때 역시 효과적 대책은 없다. 두 사람이 동시에 풀어 가는 자세가 첫째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둘째, 성생활은 부부 사이의 일상적 생활의 연속선상에 있다. 밤 따로 낮 따로 일수는 없다. 밤이건 낮이건 기본적으로 서로를 위해 배려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많은 부부들은 이 점에서 솔직하지 않은 경우가 의외로 많다. 해결책이 출발점에서부터 삐걱거리게 될 것이다.
셋째, 비슷한말로 들리겠지만 두 사람 사이의 생활 습성과 태도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피동적으로 한 쪽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대등하게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상적 생활이 뒤틀리면 침실은 자연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흔히 사랑이라고 한다.
넷째, 정확한 성 정보와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 놀랍게도 서로가 다른 정보에 바탕을 두고 배우자에게 일방적 요구만 한다. 의견을 달리하는 배우자는 동의하지 않게 됨으로서 억지가 껄끄럽게 끼어 든다. 특히 아내 쪽에 이런 경향이 크다. 책이 필요할 수 있다. 매스컴이 제공하는 정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배우자 어느 한쪽만 알고 그것이 절대적이라며 희망 사항을 강요하는 경우다. 함께 보고 들으며 두 사람 사이의 문제점을 편안하게 따져 개선해 가는 태도가 대단히 중요하다. 아무래도 책이 좋을 것이다.(주-2)
다섯째, 구체적 방법을 선택하고 두 사람이 쾌히 동참해야 한다. 성행위는 남자가 알아서 하는 일이겠거니 목석(木石)처럼 누워서 불꽃을 꿈꾼다면 하늘은 언제나 불발탄으로 캄캄하기만 할 것이다.
서로의 성감대를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정상(頂上)으로 향하는 길은 사람마다 같지 않다. 아내가 원하는 길을 알려해야 하고, 알려주어야 한다. 이때 응용되는 방법은 공식화된 규정이 없다. 두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던 무관하다. 처음엔 다소 거부감이 생길만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스스럼없이 극복해야 할 일이다. 두 사람이 아예 나체가 되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부부가 아직도 허다하다는 점은 신기한 일이다.
자신과의 교감으로부터 그 이상의 어떤 애무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렇더라도 배우자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터에 책이나 전문가의 말이라면서 당장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일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어떻거나 남편은 아내의 성 생리와 반응을 자세히 알려는 마음과 더불어 필요한 요구에 응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큰 밭이라 풋고추는
독도 잘도 오르건만
이내 영감 그것은
약오를 줄도 모르나
에 해~해

영감의 문제라고만 할 것이 아니다. 부부 두 사람의 책임이 처용가를 읊게 한 연유라는 점을 알 일이다. 얼굴 마주보며 조용히 마음을 다스려, 미소 속에 잔잔히 젖어드는 눈빛을 볼 수 있는 그런 배려가 있다면 울분에 찬 예의 여인은 의사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여의치 않다면 정신과 의사가 충분히 도와줄 것이다. 비뇨기과나 산부인과 의사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성적 문제가 남편이나 아내의 육체적 고장에 의한 것이라면 모르지만 그들은 부부 심리를 잘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녁에 님이 그리워 울어야 하는 새는 그만큼 없어지리라는 기대다.

(주-1): 저자는 1974년 개원 후 바로 미국에서 행동요법적 성 치료가 시작된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한국 최초로 성 치료를 시도했다. 1978년 그 임상 실제를 정신과 의사를 위해 발표했다.
(주-2): <속 궁합이 놓아야 집안이 평안하다>(먹통과 첼로, 정동철 지음)를 비롯해 <한국 섹스 닷 컴/바람난 솜사탕, 정동철 지음, 펴냄 홍, 2001>이 이미 출간되었다. 참고될 수 있는 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