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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화장실」 바람과 함께 춤추다 덧글 0 | 조회 10,922 | 2018-02-10 21:54:40
관리자  

지난 번에 이어 1편의 수필(논설이 아님)을 동시에 올립니다.

살며 생각하는 오늘에 쓰여진 글에 이어,

이미 인쇄 공개된 지난 날의 수상중에서 입니다.

어제가 오늘을 관통하면서 내일로 이어지게 될 먼 리래를 그려며..

보잘 것 없는 개인적 수상들, 그래서 후미진 구석에 실게되는 이유가 됩니다.

게다가 시간이 없기에.

 

 

 

안전한 화장실바람과 함께 춤추다

2018.02.03.

정신과의사 정 동철

  

급히 큰 볼일을 끝내고 나니 화장지가 없다. 난처하다. 세면대까지 가는데 두리번 애먹는다. 다행히 탈은 없었다. 안전한 화장실그건 맞는 푯말이다. 공중화장실, 안전한 화장실 바람과 함께 춤춘다. 시원하다.

매무세를 추스리는데 초등학생 꼬마가 들어왔다. 화장지를 들쳐보더니 없다. 머뭇거린다. 옆의 여자 화장실에 가서 말아오라 일러준다.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안전한 화장실, 꼬마의 망설임속엔 그 말 많은 미투건을 아는지 남자가 들어가면 안 되는 곳, 안절부절이다. 망을 봐주겠다 해 주려다 그 안에 이미 있을지 모르는 여자? 역시 나도 엄두가 나질 않는다. 꼬만데 아무렴 어떤가, 그러나 법은 하나, 걸리면 벌은 벗어날 수가 없다. 안전한 화장실왜 이런 이름이 붙었겠나.

법은 물론 하나다. 같은 내용이지만 1심에선 유죄, 2심에선 무죄 그 반대도 그렇고 어른들 얘긴데 꼬마 왜 겁을 먹고 있을까? 와해됐던 우리법출신 복귀, 우에서 좌로 사법권력 대 이동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그것 역시 어른들의 얘기다. 급한데 있어야 할 화장지 없다는 것 책임은 관청에 있으련만 꼬마는 아니다. 내가 망을 서줄터이니 다시 권하지만 남자화장실로 들락거리기만 한다. 대신 갔다 줄까? 아니지, 아무리 노인이라도 남자는 남자니까 그건 아니다. 고의성이 없으면 괜찮다 하던데, 그러나 오히려 노인과 어린이가 작정을 하고 여화장실로 들이닥쳤다고 펄쩍 뛰면 반증할 길이 없다. 지켜볼테니.. 그러나 역시 아니다. 그냥 물러 설 수밖에.. ? 무섭구나.. “여자의 몸을 국가가 관리하나?” 육아정책으로 뿔란데 미투사태, 자유까지 없어진다 하니, 어리버리 꼬마 얼씬거리지만 정신이 헷갈린다. 잊기로한다. 나왔다.

아파트를 본다. 시원하다. 앗차 정신이 든다. 어제 패이스북에 올린 글이 떠 올랐다. 늘 하던 운동이긴 해도 그래서 둘러보며 확인하고는 결론을 얻기에 이르렀다.

세계인이 집중한 대한민국, 평창 겨울 올림픽 개막일 29, 베란다에 자랑스런 태극기를 걸었다. 창넘어 당연히 있으리 여겼던 차도의 국기는 없다. 정적이다. 왜일까? 나만 취한 것일까?

 

내가 미친 것이다. 청와대로 가는 효자동 가로등에 태극기 펄펄 나브끼는데 거기야 어찌됐던 여긴 사정이 완전히 달라서다. 사방 어디에도 없다. 아내마져 떼자고 한다.

30년 전 나는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에서 살았다. 1988년 잠실 하계올림픽때 오륜기와 태극기 요란하던 그때와 지금은 왜 달라야하는지 촛불없는 어둠속에 헛딛는 심정, 분명 신주처럼 믿는 통계적 예외적 인간 나는 정상이 아니다. 바로 정신이상자? 미친 것이 분명하다. 탄천 주변 그 많은 아파트 어딜 봐도 태극기는 볼수가 없다. 순박하게도 그 옛날 그 시절 그 때의 축제만 생각했나? 뭔가 어금니 사이에 까시가 낀다.

코앞이 올림픽경기장이었다. 으쓱한 기분 이제사 여기는 평창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됐다. 의문은 그러나 다시 인다. 올림픽이 한 마을의 행사? 그건 아니다. 국가적 엄청난 축제가 아닌가. 무엇이 맞는 말인가. 달뜬 30년전 서울 올림픽때의 그 태극기와 지금의 태극기는 다른 것인가? 대한민국의 영광, 잠실에서 직접 경험한 나로선 어린 꼬마처럼 화장실에서 머뭇거리며 두근두근 가슴이 조용하지 않다. 대형(大兄)에 의한 손가락질, 잡혀갈까? 내가 사는 동 나의 베란다의 태극기, 바람과 함께 춤추는 모습 펄럭이는 것은 마치 외국 어딘가 한국영사관 숙소같다. 외국에서 만나는 대극기 찡하니 애국자 된다는 눈시울 나의 심장은 지금 뭔가? 한참 늙은 노인이, 아 그러니까 아예 그런 짓은 하질 말아야 한다고? 마음만 젊은이 기력도 되지 못하는 주제인데?

핵심은 소심한 나머지 자신이 무엇이며 누구인지도 모르는 정체성 상실자라는 데 문제가 꽂힌다. 마치 정신병자로 가는 길로 접어든 게 분명해 보인다. 그 꼬마와 나 말이다. 왜 소신대로 당당하지 못할까? 두근거리며 주변만 살펴야 하다니. 수없이 많은 정신감정(3심제, 대법원 판사 필요에 따라 감정, 수없이 섰던 증인석. 정신과의사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니다.)을 했던 경험,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몰라 스스로 하지 못하는 천치, 바로 무능하니까.. (형법 제10-심신장애인;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두근 거리는 어린이는 어려서 그렇다치고 나는 철이 들어도 몇 십번은 더 들었을 테니 하는 말이다.

구 쏘련 정치범은 정신병원에 갇히곤 했다. 북한의 헌법 566조에 해당하는 정신병자는 투표권도 받을 권리도 없는 것으로 되어있다.(5장 공민의 기본 권리와 의무/66 17살이상의 모든 공민은 성별, 민족별, 직업, 거주기간, 재산과 지식정도, 당별, 정견, 신앙에 관계없이 선거할 권리와 선거받을 권리를 가진다. 군대에 복무하는 공민도 선거할 권리와 선거받을 권리를 가진다. 재판소의 판결에 의하여 선거할 권리를 빼앗긴자, 정신병자는 선거할 권리와 선거받을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19721227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에서 채택. 위키백과 문서위키데이터 항목. 201792() 15:18에 마지막으로 편집.)출처:

https://ko.wikisource.org/wiki/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_사회주의헌법) 대한민국도?

 

꼬마와 나는 소심, 의사결정을 못하는 것은 같아도 그는 법적 보호 소아다, 나는 아니다. 정신병으로 정신감정을 받아 책임 무능력자라는 판결을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다르다는 것? 나도 어린이 처럼 마찬가지 수준인데 의사결정권의 문제다. 뭘 할 것이며, 어떤 때,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는, 거기다 왜 되고 안되는 것을 모른다? 소신이 없는 것이다. 햇갈리는 것과 정신병자는 물론 차원이 전연 다른 얘기다. 그러나 남과 달라 이상하다는 건 역시 이상한 것이다.

 

걸으며 둘러본다. 엉뚱하게도 난데없이 봄을 만난다. 나뭇가지를 타고 봄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버드나무엔 엷은 초록이 완연하다. 개울 건너편 뚝에 시선을 잡아 끄는 아주 연한 회색나무가지가 아담하게 다가선다. 커다란 무슨 솜꽃처럼 번져있다. 대체 하얀 쪽으로 나뭇가지 잎이 물들 그런 나무가 있나? 힘들게 걷고 숨쉬며 가까이 갔다. 이리보고 저리보며 올려보지만 건너편에서 봤던 그 나무가 맞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옆의 나무들과 차이가 없다. 분명 건너편에서 볼때는 하얀 회색에 가까운 나무, 어찌된 건가? 힘들지만 다시 거너와 숨 고르고 무거워진 몸 이끌고 개울따라 내려왔다. 나무 벤치에 앉아 찬찬히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역시 보기에 너무 아름답다. 분명하다. 엷은 회색, 왜 가까이에선 보이지 않지? 작정을 하고 왔기에 사진을 찍으려는데 이게 웬일 전지가 나갔다. 내일이라도 와야겠군! 어제의 얘기다.

홀로 건 태극기, 엷은 회색으로 봄이 오른 나무, 모두 사람들에게 말하면 이상하다 하겠지? 세상에 그런 나무가 어디있냐고, 증거사진이 없다. 홀로 단 태극기 강릉에서도 달지 못해 옥신각신하던 태극기라 하나 하여간 여기 그 수많은 집에서 찾아볼 수 없으니 통계적으로 정신나간 증거는 분명하다. 콱 뭉친다. 가슴에 멍이 든다.

 

봄은 그러나 분명 올 것이다. 봄이 오면 좀 나아지겠지? 봄은 사람이 만들 수 없다. 바람과 함께 춤추던 태극기, 바람과 함께 춤추던 그 안전한 화장실에 얽힌 생각들, 바람과 함께 모두 살아질 것이다. 어쩌나 평창을 상징하던 롱코트의 꼬마는 이미 가고 없다. (2018.02.10.)


 

 

 

나의 뇌는 어떤 것으로 입력 저장되어 있었을까 2주저 경포 바닷가

파란 지평선,경포대 본래 터 여꾸리 아파트생활 시절

역시 첨삭 수정은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2009.7.21. 7:21

정신과의사 정동철

 

강열한 태양을 본다. 지평선 저 끝에서 솟아오른 태양은

홀로의 열기를 감당할 수 없어 자신의 모습 그대로의 불덩이를

바다위에 드린다. 길게,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도록 그렇게.

그러나 그뿐이다.

Sun, 바다 Sea, 모래 Sand 그리고 하늘 Sky

모든 것이 사진기처럼 찍혀지는 것뿐이다.

 

피톤치드가 불안과 우울함을 치유해 준다는 안내판,

솔 향과 바다의 만남?이라는 제목에 그려진 그림에

솔 내움은 안현 마을, 대로 건너편 인공폭포가 꺼져있듯

나의 후각 정전(停電)된 상태, 감흥이 없다.

모래사장 휩쓸고 밀려오는 파도소리, 그리고 바닷바람의 진동파

유리위에 알알이 미끄러지듯 경포호수위의 갈매기 운다.

구슬처럼 굴러 오가지만

역시 소리 녹음기 기계적 진동일 뿐 의미가 없다.

 

늦은 봄 경포대 옛터에 올라

해돋이를 찍는다. 솔 향 피톤치드를 한 것 들이키며 산딸기 입에 넣고

전신에 퍼져있는 말초신경 자극하던 그 표현할 수 없던 적막함

화랑(花郞)들이 느꼈을 아침바람의 싱싱한 촉감이

또한 모두가 디지털로 바뀌어 감동이 없다.

유안이비설신(有眼耳鼻舌身), 하지만 무색성향미촉(無色聲香味觸)

뜻이 없으니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이어서인가?

기계적 디지털 이외 나의 심신은 한 치의 느낌도 없다.

 

인간 디지털, 다만 석물처럼 존재할 뿐이다.

 

예외 한 가지,

작은 집 아늑한 촛불 향속에

아내, 눈에 띄지 않으면

쓸쓸함,

그것만은 어이할 수 없는 유일한 오감의 생동.

아내가 있기에 작은 집의 행복이란 단어 잊지 않음에.

사람, 오로지 그것만이 다행이라 출렁거린다.

사십대에 불혹(不惑)을 몰랐고 이제 칠십대 종심(從心) 또한 알지 못함이라.

2009.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