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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산의 전설 덧글 0 | 조회 15,547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달래 산의 전설 -

미칠 듯 터져 나오는 함성과 열기, 차라리 저 유명한 남미의 사육제를 닮을 것이다. 백년 묵은 체중이 뚫리고 파격적(破格的) 「오빠!」의 발광(發狂)이 찬란하게 빛나리라.
「서 태지」가 자취를 감추자 PC통신에 수천 건의 아우성이 떴다. 삽시간의 일이다. 가히 당대의 꼬마 「대통령」이다.(주-1)
X세대, 그 중의 오빠 부대는 비단 가수에 국한하지 않는다. 농구, 배구, 그리고 또 없나? 하여간 썰렁한 한기를 뒷자락에 남길 망정 유별난 열화 같은 함성은 도대체 어디서 치솟는 힘일까?
옛날, 옛날, 어느 옛날, 오누이 둘이서 밭에 나갔다. 벼란 간 먹구름이 소나기를 몰고 그들의 옷을 무용지물로 적셔 버렸다. 혼비백산하여 집을 향해 앞에서 달리던 여동생의 배 적삼이 흠뻑 젖어 알몸이 되어버렸다. 뒤따르던 오빠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청순 요염한 육체에 끓어오르는 욕정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되겠다. 내가 앞으로 갈 테니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게 낫겠다.”
“싫어! 무서워 그냥 내가 빨리 뛸 테니까 오빤 뒤에서 와!”
옥신각신 얼마 후, 뒤따르던 소리가 자취를 감추었다. 덜컥 겁이 났다. 오빠가 없었다. 무서웠다. 뒤돌아 불이 나게 두리번거리며 「오빠!」를 목매어 불렀다.
그런데 무슨 날벼락인가.
오빠가 죽은 거이다. 그것도 자신의 성기를 짓 이겨 자살을 한 것이다. 동생은 뒤 미쳐 울며, 울며 오빠를 흔들었다.
“죽긴 왜 죽어 바보처럼. 차리라 달래나 보지.... 오빠!.....”
그후 「달래 산의 전설」은 아이랑 고개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비슷한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달래 고개」,「달래나 강」, 이름도 다양하다.(주-2)
오빠를 목 매이듯 불러대는 신세대의 합창 소리 속에 하필 이런 전설이 왜 연상되었을까. 정신과 의사의 별난 상상력 때문일까?
「누나 부대」가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같은 10대들임에도 「오빠 부대」는 있는데 왜지? 그 연유는 과연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집단 히스테리라는 용어를 빌어 오빠 부대를 매도해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우상화(偶像化)된 존재에 동일시(同一視)됨으로서 그가 무너질 때 더불어 극단적 발작이 연극적(演劇的)으로 집단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기인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속 더 깊은 곳에 금기(禁忌)시 된 성적(性的) 욕구가 약간의 각색(脚色)을 통해 탈을 쓰고 그렇게 나타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끼어 든다. 집단 무의식(無意識)에 「달래 산의 전설」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해석이다. 집단적 달래 산의 의미가 문명사회의 신세대에게 그대로 재현(再現)되고 있다는 의미다.
까닭은 불확실한 미래 속에 오늘, 이 순간의 모든 해방감만이 의미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 가운데 자신이 이루지 못한 거리의 관객(觀客)을 끌어 모아 우화(寓話)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을 스타라는 우상(偶像)을 통해 대리(代理) 만족함으로서 그들과 자신 사이에 그어야 할 선(線)을 뭉개 버려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는 심정이 짙게 배어 있음에서다. 예고된 필연적 결과라 함이 옳을 것이다.
긍정(肯定)과 부정(否定)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 본시 그것은 같은 얼굴에 화장(化粧)을 달리했을 뿐이다. 적어도 신세대들의 입장은 그렇다. 보는 사람들의 입장이 다를 뿐이다.
어떤 길이 그들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일까? 관심의 핵심이 머무는 구석이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자신과 어머니와의 경계(境界)가 없다. 세상과의 경계도 없다. 내가 어머니이자 어머니가 바로 나다. 아니 나라는 주체(主體)도 없다. 젖이 필요할 때 울고, 배가 부를 때 옹알거리거나 자기만 하면 된다. 미숙(未熟)한 어린이라고 부른다.
오빠 부대의 주인공들이 거의 차별화(差別化)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가 없는 것이다. 「서 태지」의 은퇴 선언 속엔 이런 말이 있다.
「자유와 도전의 정신을 억누르는 모든 것과 싸웠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한다. 그것이 필요 없다고 믿는 세대! 그러나 X세대가 주장하는 「해방」을 위해 「자신의 색깔」은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할 의향을 포기할 젊은이는 없을 것이다.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해야할 일이 아닐까?

(주-1): 1992. 3. 21. 시나위에서 ‘서태지와 아이들’로 바뀐 앨범 1집을 낸 후 1996. 1. 31. 성균관대학교 유림관에서 은퇴 선언. 2001. 6. 현재 인터넷에 서태지를 상대로 한 사이트가 다양하게 널려있다.
(주-2): 근친상간의 전설은 프로이트가 인용한 오이디푸스 신화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나라에 국한 된 것도 아니며 범세계적이다. 그 중에 현실적으로 오누이 사이의 근친상간은 생각보다 많다. 그렇다고 노이로제를 프로이트의 이론에 온통 맡겨도 좋다는데 동의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