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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별 빛, 언제나 거기에 덧글 0 | 조회 15,121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마음의 별빛, 언제나 거기에 -

습관대로 아내와 고수 부지를 거닐며 가을밤을 즐기고 있었다.
북극성(北極星)이 들어오자 별을 헤아렸다.
좀처럼 별을 볼 수가 없었다. 이미 날은 저물고 가로등이 켜진지 오래다. 약간의 한기가 시원스럽게 뺨을 스치며 겨드랑이로 파고든다. 어둠은 짙어지고 우리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저기 하나, 어디?’하며 고개를 한껏 하늘로 재꼈다.
힘겹게 21개를 찾았다.
중년 막판의 하늘은 그것도 나의 눈에만 보였을 뿐 아내는 착각이라고 우겼다. 말이 중년이지 실은 60대 전후의 초로(初老).
그렇게 총총히 박혀 일일이 셀 수 없었던 그 옛날의 별들은 다 어디로 숨었을까. 목만 끊어질 듯 뻐근했다. 순간 ‘스물 하나’라는 단어에 마음이 황급히 서울로 달려갔다.

꼭 찍어 놓은 입, 그리고 토끼처럼 커다란 눈을 고정한 채 인형같이 전연 미동마저 없는 모습. 아내의 두 손에 우아하게 들려져 있는 숨소리, 바로 나의 손녀다.
태여 난지 이제 겨우 28일이다.
할머니와 손녀 사이를 이어주는 끈끈한 연을 비디오에 정신없이 담으면서 나는 말을 잊고 있었다. 유리 같은 호수의 파문처럼 손녀의 첫 나들이가 넓고 큰 우리 집 구석구석을 꽉 메웠던 탓이다. 새근새근 숨소리는 이내 찰랑찰랑 나의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미소, 하얀 이, 그리고 감탄사… 아내와 나는 마치 알라딘의 주인처럼 반사적으로 화면을 장식하는 자판(字板)에 연결된 듯 말 대신 우리의 입을 다물 수 없게 손녀는 지켜보고 있었다.
서울의 손녀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며느리가 지어준 별명, 코알라처럼 쌕 색은 잠에 취해 있을까?
별을 헤아리다 우리 내외는 어느새 손녀 얘기로 이어지고 말았다.

며느리가 딸을 낳은 것은 97년 7월 19일.
아들은 의사다. 그가 수련 받고 있는 병원에서 두 내외는 그들의 새 생명을 아주 흐뭇하게 맞았다. 며느리는 정말 너무 대견했다. 대체로 우아하다고 말들을 한다. 그녀는 역시 표현에 어긋남이 없었다. 입덧도, 진통의 아픔도 조용히 삼키며 우리에게 신선한 생명을 안겨준 것이다.
아내가 말했다. 순산한 얼마 후의 일이지 싶다.
“여보! 우리 해리 자격 있죠? 대를 이어줄 며느리로서 말이에요. 마음씨도 그렇지만 정말 대견해요. 신통하죠?”

서류를 정리하다 우연히 아들에게 쓴 편지를 발견했다. 4년 전 학기 초에 보낸 것이었다. <글 1.5판>으로 찍은 애벌 편지의 내용은 고민과 번뇌의 선택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우리 부자(父子)는 그때 어느 카페에서 술잔 속의 빙산 같은 얼음을 흔들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괴로운 심정을 자신의 철학에 싣고 또박또박 토해내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다.
당연히 말해준 것이 있었지만 다시 편지로 띄운 심정은 못 다한 아버지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우연이지만 1년만에 다시 편지를 쓰는구나.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개학(開學) 전에 말했었지. 아마 rhythm이 주변의 녀석들하고 잘 맞지 않는 것이 문제인데다 너 자신의 마음이 때맞추어 어디론가 움직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리 밝혀두기로 하자. 이 글은 말보다 좋을 것 같아 택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너의 행로(行路)에 어떤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목적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화라는 것은 본시 어떤 대답을 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당연히 무슨 결론이 나야 될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지. 그러나 어떤 소재에 대한 서로의 감정,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런 시각에서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다.
내 생각이다 만서도 ‘살고 보니 인생은 싸움’이더라.
이것은 내가 그 동안 경험한 현실이고 어쩌면 불행하게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인간의 고민이자 숙제라고 여겨진다.
그렇다. 언젠가는 너에게도 반드시 불어닥칠 일, 그러기에 ‘선택’의 고민이 너에게 다가오리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그런 첫 파도(波濤)가 너를 향해 밀려오는 때가 지금이 아닌가 한다.
물론 ‘첫 번째’라는 단어에 다소 의견을 달리할 소지는 있다. ‘생활인’으로서의 뜻이다. 따라서 첫 번째가 있다면 반드시 두 번째, 세 번째… 하여간 몇 번째의 경험을 딛고 넘어서야 할지 알 수 없는 넘고 넘어야 할 언덕이 있을 것이라는 것 또한 진리(眞理)일 것이다. 문제와 고민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지간히 멍청한 친구가 아니고선 불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그것을 통해 선대(先代)보다 나은 성공과 발전이 있게 될 것이다.
문제는 ‘싸움’이라는 의미이다.
하나의 목표를 놓고 서로 경쟁적으로 선점(先占)하려는 싸움이 보편적인 것이겠지. 감투가 그렇고 1등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내용에 따라 선악(善惡)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게 바로 삶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게다.
이성(異性) 선택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싸움’은 이 모든 것이 시사(示唆)하는 것처럼 이미 상대가 있기 때문에 만만치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너’라는 ‘인간’과의 싸움은 힘겹고 까다롭고 변덕스러우며 예측 불허 속에 있다는 것을 이미 경험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 힘겨운 싸움은 진로(進路)를 포함한 삶의 형식이나 양식, 또는 여건(조건)을 선택하는 자신과의 싸움일 것이다.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이치는 바로 찰나적 선택이 그 사람의 영원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니라는 뜻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본다.
인간의 심성(心性)에 모두 ‘투쟁 본능’이 있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의 입장인 듯 하다. 새삼스럽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투쟁’이란 단어를 들먹거리는데 다소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싸움’이라고 바꾸었지만 그게 그거니까 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셈이지. 중요한 것은 결국 ‘싸움’앞에 너와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오늘로 2주간의 연속 강연을 끝내고, 어제 1주분 방송을 녹음하고 나니 다소 시간이 생겼다. 네가 월요일 아침 6시에 가는 줄 알고 밤 2시 반에 깨어 새벽까지 쓰던 편지를 마무리해서 보내는 것이다.
방법에 대해서 조언할 생각은 없다. 모든 것은 너의 의사(意思) 결정력으로 충분히 정할 수 있는 일종의 고민(?)이라 보고 있을 뿐 아니라, 동시의 너의 판단력을 의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엄마의 마음을 한 번쯤 고려해 보고 ‘선택’에 임하는 습성을 갖는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싶다. 엄마가 너의 삶을 대신해 줄 수 있겠다는 뜻이 아니라 모자간(母子間)의 관계는 네가 헤아리기 어려운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하는 말이다. 지난 일요일 너의 tone이 왠지 높아지는 것까지 감지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구속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좀 예가 빗나간다만 언젠가는 나와 너의 어머니는 네 곁에 계속 있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네가 분석하고, 판단하고, 그리고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연한 사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이 현실에서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때가 온다. 다만 그 때가 되면 너의 마음속에 준비되어 있는 해답이 너무 빈곤하여 답답하게 될 것이지만 역시 그것은 도리 없이 너의 몫이 된다.
싸움에서이기는 방법이 뭐냐고? 어떻게 싸워야 하느냐고? 왜 싸워야 하냐고?
그것은 우리의 얼굴에 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있느냐는 질문과 같다.
나는 너의 1학기에 맞추어 논문(論文)을 예정대로 쓸 작정이다. 컴퓨터 학원도 다닌다는 계획은 변함이 없다.
즐겁게, 신나게, 멋지게, 그리고 화끈하게 지나기를 바란다. 어떤 경우라도 밀린다 느꼈다면 스스로 어금니를 물고 재기(再起)하는 마음을 너의 재산으로 삼기를 기원한다. 선택의 어려움이 있다면 고민을 피하지 마라. 질겅질겅 씹으며 생각하면 마지막 한 수가 거기에 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경험이다.
다음 주에 환한 얼굴로 만나자구나.
1993. 3. 5 아빠가 썼다.」

번뇌(煩惱)의 아픔을 통해 결정된 선택은 빗나가지 않았다.
사람이 갖는 욕심의 끝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땅을 얼마나 가져야 하는가?’의 주인공처럼 죽음과 맞바꿀 정도로 끈질긴 것이다. 그 기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는 것은 저마다 다를 것이기에 일단 접어두기로 한다. 그저 아들과 나, 그리고 아내와 며느리의 입장에서 엇나가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그것이 어느 훗날까지 유효할 것인지에 관해 선 지금 거론할 문제는 아니다.
새 생명 앞에서 별스럽게 밀려오는 감회(感懷)로 한가위처럼 더도 덜도 아닌 바로 그런 족함뿐이다. 그래서 일게다. 전에 없던 노욕(老慾)이 불거진 것이다.

나는 죽음에 대한 입장을 제법 정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글로서도 여기저기 그려지곤 했다. 가감(加減) 없이 순응하겠다는 것이 요점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임종(臨終) 심리가 나의 현실과 전연 상관도 없이 별안간 끼어 든 것이다. 그 세 번째 단계인 ‘흥정’이라는 것이 부정(否定)과 울분(鬱憤)의 두 과정을 생략하고 넌지시 잠입(潛入)한 것이다. 질량(質量) 불변의 법칙을 신봉하듯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선 한 생명의 종말은 지극히 당연한 섭리로 믿어왔던 나에게 불쑥 나타난 ‘흥정의 심리’는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나의 마음속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갓 태어난 손녀가 우아하게 성장하여 자신의 능력을 한껏 누리는 과정을 그려보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다. 출발점에서부터 아름답고 고고하게 시작하여 20대로 이어지는 단아한 품위와 아름다움이 환상처럼 떠오르자 그만 왈칵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20세가 된다해도 그 때 나는 80대다. 우리 집 식탁 한편 벽에 걸려있는 사진 속엔 그의 어머니와 아빠가 밝고 우아한 면사포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바로 그 자리에 손녀가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걸릴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어느 훗날의 현실이라고 여기고 있던 자신에게 그것은 여명(餘命)의 법칙상(法則上)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되고선 돌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이럴 때 나는 대체로 까라지지 않는 습성이 있다. 물론 여명과 관계된 것을 포기하는 마음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여긴다.
분당 탄천 고수 부지에서 하늘을 향해 별을 헤아리는 마음은 그러나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는 ‘여기’에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예전처럼 북두칠성(北斗七星)은 쉬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의 하늘은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21개의별은 미처 보이지 않았을 뿐 언제나 거기에 빛나고 있는 세월처럼 재가되어 흩날리는 듯 아물거렸다.
“하늘의 별을 나처럼 여기저기 찾아보면 그만큼 오래 건강하게 살 것이니까 잘 찾아보구려…”
“거짓말, 희망 사항에 착각은 금물이란 걸 몰라요?”
나는 착각이 아니었다.
쳐다볼수록 더 많은 별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아내는 분명 나보다 눈이 나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병원에 가봐야겠구나
아들이 준 안약(眼藥)이 냉장고와 아내의 가방에 각각 별개의 의미로 있다.

한데 연상(聯想) 작용은 손녀 곁을 떠나지 못했다.
나희(娜熙)가 21세가 되는 해에 살아있겠느냐는 것도 문제지만 살아있으되 추하지 않는 모습으로 식탁에 앉아 넉넉히 즐거운 얘기를 나눌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아내의 말처럼 그것은 물론 아들과 며느리의 몫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깨끗하고 듬직하게 자랑스런 배경을 얼마나 근사하게 장식해 줄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야겠다는 현실로 접어드니 또다시 시간의 공백을 메울 수가 없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35년 생을 늘 35세로 착각하였기에 별안간 62세라는 사실이 망각의 여로에서 깨어난 듯 별빛이 새삼스럽게 거기 더욱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별이면 별마다 사연이 있겠지
생명은 생명마다 뻗어나갈 저만의 길이 있으리라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아내 둘
별 셋 너 셋……
아내와 나
별빛 잡기에 목이 아프지만
그 빗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 뿐
별과 나희(娜熙)는
초롱초롱
우리를 향해 까르르 반짝이거늘
그것을
보지 못할 뿐
언제나 거기에 마음의 별빛
생명의 순환(循環) 법칙을 알림이리라……

우아한 선택, 우아한 탄생, 우아한 성장, 거기 우아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저 희망 사항뿐일까?
보다 젊게, 보다 싱싱하게, 보다 멋있게 살아야겠다는 심지에 불꽃이 다시 인다. 그것을 지펴 준 것은 귀엽고 아름다운 바로 나의 손녀, 그것은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해도 별처럼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빛나고 있을 것이다.

주: 나의 분당 시대가 1995년 10월 환갑 생일을 치르자 바로 시작되었다. 명분이 어떠했던 서울을 향한 마음은 이어졌고 무엇보다 삼 남매의 아쉬움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후를 위한 대안이라는 명분은 일단 가난의 의미로 다가섰기에 得은 그늘에 가려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