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게시판 > 수상수필
가 역시 덧글 0 | 조회 15,598 | 2009-04-17 00:00:00
정동철  


- <혹시>가 역시 -

「신랑, 구멍 잃고 밤중에 헤매더니, 다시금 구멍 찾자, 푹 빠져 돌아올 줄 모르네」
서거정(徐居正)이 쓴 골계잡록(滑稽雜錄)에 실린 치랑실혈(癡郞失穴)이란 얘기의 골자다. 어리석은 신랑(新郞)이 진혈(眞穴, 여성의 膣口)을 찾지 못하자 오히려 성질을 내며 어미로 달려갔겠다. 여차 저차 일러듣고 다시 신방(新房)으로 와 당혈(當穴, 여성의 膣口)을 찾으니 그 재미가 실로 기가 막힌지라 본가(本家)로 갈 생각을 털끝만큼도 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줄거리다.
설마 「섹스 맹」이라 한들 요즘 이런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뿐인가 해부학적 정보를 얻었다 뻐기지만 절정의 희열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이럴 수가 있어요? 너무 기가 막힌 거 있죠. 남편의 속뜻을 알 수가 없어요. 배신감이 들어요. 별로 하지도 않지만 불쑥 자기 기분 따라 끝내고는 코를 고는 겁니다. 전 사람이 아닌가요? 여러 차례 운을 띄었죠. 물론 기죽으면 어쩌나 해서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병원에 가 보는 것이 어떠냐고요. 펄쩍 뛰는 바람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이까지 낳은 처지에 무슨 병원이냐며 오히려 저를 이상한 여자로 취급하더군요. 바친다는 거예요. IMF시대라 힘들겠죠. 하지만 전에도 그랬어요. 절 사랑하지 않는 증거 일겁니다. 미워요. 고자가 아닌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면 왜 친구의 남편들처럼 그렇게 못하죠? 아니 안 하는 게 아닐까요? 절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죠. 이혼하려고 해요…”
기자(記者)와 교수(敎授), 상류 사회의 품위와는 걸맞지 않게 성적(性的) 하류사회(下流社會)에 허덕이고 있는 남편을 탓하는 부인의 호소다. 파경이 코앞에 바짝 다가와 있다. 정신병 환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니 정신과 의사를 기피한다는 점은 그럴 만 하다. 막강한 정보를 자랑하는 기자(記者) 남편은 어쩌자는 것일까?
「성 기능장애에 대한 성 치료의 실제적 문제들」이란 임상 보고를 나는 이미 78년에 발표했었다. 정확하게 20년 전, 국내 최초의 성 문제에 관한 종설(綜說)이다. 74년부터 성 치료를 해 오면서 숫한 논문을 발표하는 가운데 임상 경험이 주는 교훈은 컸다. 나의 한국적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기에 보탬이 많았던 것이다. 환자가 의사의 선생이라는 산 증거였다.(주-1)
지난해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7쌍 중 1쌍이 이혼을 한다.(주-2)
한국의 얘기다. 가정법원(家庭法院)에 올려진 이혼 사유는 겉과 속이 다르다. 성 문제에 진한 밑줄이 처져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속 궁합이 맞지 않아 살 수 없다는 얘기다. 앞에 소개된 예비 이혼 부부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성 기능장애는 너무 많다. 조루, 발기 부전증, 지루, 남녀 불감증, 여성의 성교 동통, 질 경직에 의한 성교 불능 상태를 비롯해 매우 다양한 내용들이다. 과연 디지털 첨단 시대에 고금소총(古今笑叢) 같은 이런 얘기들이 어째서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반사적으로 「보신 한국」을 상징하는 민간요법들이 하늘의 불꽃처럼 솟아오른다. 솜사탕 같은 허무감을 달래기 위해 유추(類推) 감정에 매달려 계속 쏘아 올리지만 결국「보신 파국」을 피하지 못한다.
보름을 품고 있다는 뱀의 중탕(重湯),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 견공(犬公)의 보신탕(補身湯), 일단(一團)의 암컷을 거느리는 왕성한 사슴의 뿔과 해구신(海狗腎)은 선망의 대상이다. 매력적이다. 파경에 이른다해도 그야말로 「최신 고금소총」이 건재하게 되는 이유다.
무지개를 통해 햇볕의 일곱 가지 색깔을 알아내듯 원인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섹스 맹」과「연기(演技)불안」이 프리즘을 통해 나오는 첫 번째 이유다.
어리석은 신랑이 각시의 진혈을 찾지 못해 법석을 떠는 사태는 약과다. 도무지 어떻게 생긴 것인지 모른다는 것도 그렇지만 입맞춤만 해도 임신이 될 거라고 벌벌 떠는 일부 여대생의 성 지식, 하물며 오르가즘이라는 가파른 성 생리를 모른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가하면 배우자를 만족시켜야 비로소 뻐길 수 있다는 객기(客氣) 언저리엔 언제나 허둥대는 군상들이 있게 마련이다. 결과는 낭패뿐이다. 배우자의 무대에 올라 작품을 연기(演技)하려니 신바람이 아니라 긴장뿐, 원만한 부부 생활이 이루어질 까닭이 없다. 잔뜩 성났는가 싶었는데 어이없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의 불화가 침실의 적(敵)이란 사실이 그 두 번째로 분광(分光)되어 나온 이유다.
IMF가 수없이 토해내는 풀죽은 남자들의 심정, 그것은 비참하다. 한마디로 울분과 의욕 상실뿐이다.(주-3)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성적 욕구가 끼어 들 틈새가 없다. 평소 부부 사이에 불화가 안개처럼 자욱히 서려있었다면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침실이 뜨거워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땅이 꺼지라고 한숨 짖는 남자들이 부쩍 느는 판국에 남녀평등이라는 덫에 걸려들기 십상이라 성 생리와 어긋나는 거센 파도를 감당한다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본시 남성의 상징은 낯가림이 심하다. 수줍음도 크다. 노여움 또한 많다. 때에 발기가 된다는 것이 이상하다. 행위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여성이라고 불화로부터 안전지대가 있을 턱이 없다. 행위야 되겠지만 마음은 이미 남남이기에 목석(木石)이 된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유는 그리고도 엄청 많다. 거두절미하고 ‘치랑실혈(癡郞失穴)’을 구하는 법이 급하다.
「행동요법적(行動療法的) 성치료(性治療)」라는 프로그램이 활용되는 것은 수술이나 번거로운 주사 요법과는 전연 유형이 다르다. 부부가 함께 참여하는 가운데 치료용 비디오필름을 통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회의(懷疑)와 실망(失望)이라는 우여곡절 속에 결국 정상에 오른다. 10명 중 7~8명 꼴의 얘기다. 비아그라도 부부 치료의 앞자리에 서지는 못한다.(주-4)
“왜 진작 허리띠를 풀고 살지 못했었는지 그게 우습군요.”
가끔 아기를 안고 찾아와 하는 얘기라 그러기에 함박 웃음은 더욱 밝고 크다. 으쓱해지는 것은 나의 몫이다.
삼성(三誠)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치료자와 환자, 그리고 그 배우자의 정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사실은 철칙이다.
정신치료(精神治療), 부부치료(夫婦治療), 그리고 행동요법적(行動療法的) 치료에 익숙한 사람은 정신과 의사다. 성(性) 기능장애(機能障礙)가 앞에 거론한 두 가지 원인에 따르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날의 복잡한 성적 상흔(傷痕)들, 그리고 정신 내적(內的) 갈등이라는 매우 난해(難解)한 분석(分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자가 아님에도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이유다.
배우자의 정성과 인내가 절대적이라는 것은 놀랍게도 외면 당하기 일쑤다. 특히 남편의 자존심은 요란한 억지다. 스스로 청춘인데 무슨 넋 나간 얘기냐고 성질이 앞선다. 정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넘기 힘겨운 고개다. 내심 청춘의 열정을 잃었음을 알고 있으나 장승같은 반발이다.
인생을 살아온 횟수는 피부를 주름지게 할 것이다. 하지만 영혼(靈魂)을 주름지게 하는 것은 연륜(年輪)이 아니라 열정의 포기에 의한다. 청춘은 곧 삶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일컫는다는 사무엘 울만의 시「청춘」이 강조하고 있다.(주-5)
남편이든 아내든 배워서 당당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와 더불어 정성을 다 할 수 있는 열정의 관솔에 불을 지펴야 하리라는 것이다. 그때 비로써 골계잡록 같은 얘기는 사라질 것이다.
파안대소 오히려 ‘언제나 역시’라는 당당한 즐거움이 품에 흥건히 안겨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주-1): 미국 산부인과 의사 마스터즈(Masters W.H. 1916~2001)가 존슨과 함께 1966년 ‘인간의 성적 반응’을 발표한 후 1970년대 시작된 행동요법적 성치료가 역사의 획을 긋자 바로 뒤미처 나는 1974년 개원과 더불어 그해 출판된 ‘최신 성치료’(Kaplan H.S.)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성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결과 1978년 처음으로 치료의 실제를 발표하고 그후 1987년 한국 임성성의학회를 창립하고 많은 의과대학에서 해당 교육을 담당했다. 그 최근의 저서가 <한국 섹스 닷컴/바람난 솜사탕, 2001>이다.
(주-2): 2001년 12월 현재 한국의 이혼율은 OECD 국가 중 8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3): 1997. 11. 21. 김영삼 문민의 정부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다. 결과 질곡의 터널에서 특히 가장의 퇴출이 속출하여 암울한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부부간의 불화로 이어졌고 성생활은 초췌하기에 이르렀다.
(주-4): 원래는 미국 파이저 제약회사에서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된 것이었으나 임상실험 과정 중 남성 발기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발기부전 치료제로 쓰이게 된 것이 비아그라다.
비아그라가 발기를 돕는 원리는 비아그라의 원료인 실데나필이 남성이 성적으로 흥분할 때 활성화되는ꡐ사이클릭 GMPꡑ라는 화학 물질의 분비를 돕는 동시에 발기 저해 물질인 ‘PDE 5(포스포디에스테라아제)ꡑ를 분해하기 때문이다.
(주-5): 맥아더 장군의 사무실에는 늘 울만의 시 ’청춘‘이 걸려있었고, 파나소닉 부분을 개발할 당시 70세의 나이로 망설이던 마쓰시다 고노스케로 하여금 결단을 내리게 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