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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의 비밀 덧글 0 | 조회 16,897 | 2009-04-17 00:00:00
정동철  


- 크리스마스 트리의 비밀 -

유럽의 신화(神話), 지(知)와 시(詩), 그리고 군(軍)을 관장하는 신(神) 오딘은 떡갈나무가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8세기 독일에 처음 기독교를 전한 보니페이스가 그래서 <외 전나무>를 선택했다. 그것이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어 집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16세기 루터에 의해서라 한다. 예수 탄생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트리의 의미는 이것이 전부였을까?
새벽 4시, 서재(書齋)에서 내려다보이는 거리는 그 자체가 바로 점등(點燈)하는 크리스마스트리였다.
탄천(炭川)을 사이에 두고 늘어선 가로등(街路燈), 그리고 교차로(交叉路)의 신호등이 규칙적으로 빨간색과 파란색 사이에 노란색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고층 아파트 위에 빨간 불빛 역시 켜진 듯 꺼지고 다시 반짝인다. 시나브로 차들은 빨간 미등(尾燈)과 전조등(前照燈)을 키고는 미끄러지듯 오가고 있었다. 얼어붙은 탄천은 화려하게 반사되는 불꽃들로 장관(壯觀)이었다.
거실의 트리보다 훨씬 멋지다.
밤이기에 더욱 화려했고, 차가운 새벽이기에 더욱 빛났다. 땅에는 평화(平和), 하늘엔 영광(榮光)이 밤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위의 빨간 불이나 교차로에 점등하는 서로 다른 색깔들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땅을 누비는 차와 사람들의 길잡이를 위해 반짝인다. 거실이나 백화점, 그리고 교회에 장식된 불꽃들은 그러나 누구를 위해, 무슨 연유(緣由)로 거기에 깜빡거리고 있는 것일까?
날이 밝아온다. 세상은 환해지고 그 화려했던 불빛들은 희미하게 모습을 감춘다. 햇빛 아래 사람들이 만든 그 찬란한 불빛들은 볼품없이 초라해지기 시작한다. 대신 우리들이 갖고 있는 눈을 통해 세상은 정신없이 바빠진다. 모두가 저마다 오가며 해야 할 일에 미쳐버리는 것이다. 삐끗, 뒤뚱거리며 충돌(衝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이 아니라도 잘도 해낸다.
기도(祈禱)하는 마음, 범사(凡事)에 감사하는 마음, 누가 뭐라 해도 떳떳하고 자랑스런 마음, 그래서 몸소 자선냄비에 밝은 미소로 정성을 담는 마음, 바로 그런 마음이 있기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더욱 빛나고 있는 이유인가 보다. 아니면 그 반대의 뜻인가? 트리가 있기에 넉넉한 마음이 생겼다는.....
1999년 12월 25일,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는 무엇을 했는지 거울 속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거기에 아름답게 반사되는 건강한 얼굴이 있겠거니 자신만은 자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왠지 무력(無力)하기만 하다. 거실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사치스럽게 빛나기 위해 밤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마음이었던 까닭일 것이다.
성경 시편 85:1-13에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그려져 있다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가 떠오른다.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로부터 해방된 과거, 거기엔 억압뿐 아니라 아울러 죄성(罪性)으로 부터의 해방(解放)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과 현재의 용서와 은혜 속에 미래의 샤몽, 바로 화평(和平)과 축복이 뒤따르리라는 강렬한 메씨지가 맴돈다. 언필층 들먹거려왔던 금강경(金剛經)의 과거(過去)와 현재(現在). 그리고 미래(未來)가 다시 스며 들었다.(주: 이미 周박사라는 당나라 國師의 일화는 앞에서 여러 차례 예시된 바 있다.)
불자(佛子)와 역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나에게 시제(時制)는 불가득(不可得)이라 하니 크리스마스트리의 비밀은 미궁 속에 깊어만 가고 있다. 혹시 집착(執着)과 그로부터의 초탈(超脫)을 통해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짚어보지만 맹랑한 짓 걸이다. 어이없고 부질없는 일이다. 오로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어느 쪽도 나는 정확하게 모른다는 사실이다.
결국 새 천년, 2천년 12월 25일에 장식될 내 마음의 크리스마스트리 속엔 어떤 비밀이 담겨져 있을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보는 도리밖에 달리 길이 없는가 싶다.(주-1)

(주-1): 2000. 12. 25.은 우울했다. 醫藥分業이라는 괴물이 덮쳐 전대미문의 의사 파업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연말의 話頭는 <거짓말>이었다. 2001. 12. 25.은 <組暴>이 차지하면서 <五里霧中>이라는 고사성어로 이어져 역시 거실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물 젖은 눈에 축축 늘어진 소나무처럼 초라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아들이 전문의 시험을 보게되어 아예 오해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가능한 모임을 피했기에 더욱 그렇지 싶다. 큰 딸 秀敬이 全州대학 교수로 있어 외손녀를 보아주어야 하는 아내의 묶인 생활로 부부동반 모임엔 홀아비 같아 참석을 피했던 것이 고독한 또 다른 이유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