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게시판 > 수상수필
할머니가 답배를 피운 까닭 덧글 0 | 조회 17,147 | 2009-04-17 00:00:00
정동철  


- 할머니가 담배를 피운 까닭 - 05.09.24.

똥구멍이 간질간질하면 영락없다.
거위가 굼실굼실 바지 속에서 지렁이처럼 하얗게 기어 나온다. 그뿐인가 잠자는 사이 입으로도 기어 나오기도 한다.
대체 뭔 얘기를 하는지 알 까닭이 없는 젊은이들, 말 같지 않은 얘기라 소름이 일지 모른다.
미국을 가려면 대변검사는 필수, X선과 함께 통과여부는 바로 기생충 알이 있느냐 없느냐와 폐결핵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판이 난다. 먼 얘기가 아니다. 내가 1963년 미국으로 갈 때 역시 똥검사는 필수였다.

해방이 되기 전, 1940년대 나의 할머니는 곰방대에 담배를 피웠다. 50대가 넘어가면 아낙들은 담배를 물기 시작했다. 헛구역에다 메슥메슥 거위가 오줌을 싼다는 이유로 생긴 그 증상은 담배가 특효였다. 어린 아낙은 대놓고 필 수가 없었지만 나이 들면 그것은 자연스러웠다. 걱정할 시집살이가 없다는 뜻이다.
시집살이 못 한다고
날 가라네 날 가라네
명지질삼 못 하는 건
배우면 하건마는
아들딸 못 낳는 것
할 수가 없구나
시집살이 못 한다고
날 가라네 날 가라네
가라면 갔지
양궐련 안 피우곤 못 가겠네
주: 신경림 지음 ‘민요기행’에서
말아초(찐 담배 잎)는 향기롭지만 독하고, 권련을 피우면 하늘을 날 것 같다고 한다.


미군이 들어온 후 DDT와 기생충박멸을 위한 약은 이나 회충, 십이지장충, 요충, 편충과 같은 기생충과 석해를 하얗게 까놓는 이(여름엔 빈대, 그리고 벼룩)로 시달리던 겨울 온돌방의 숙제였다. 옷이나 이부자리의 꾐질을 한 자리에 하얗게 깔리 석해를 원숭이처럼 어머니의 이로 아작아작 터트려 죽였던 것이 현실이었으니까 시체말로 원시인 그대로다. 회충은 70년대 조사에 국민 60%가 감염되어있다는 것으로 이어졌으니 불과 사오정이 실업이라는 격랑에 시달리는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엊그제일이다.
대체 왜 그렇게 기생충이 많았을까?

Katrina로 뉴올리언즈는 온통 물바다다. 천명이 죽었다니 그 물난리로 오염된 지경이 어떨 것인지 따져보면 상상이 어렵지 않다.
반포대교와 한남대교 사이쯤 통통배를 타고 잠실이나 천호동으로 가는 길은 여름이면 예외 없이 지금의 탄천이 넘치고 넘쳐 노상 물난리였다. 지금을 사졌지만 뚝섬과 잠실사이의 조그만 모래섬이 물속으로 들락날락 장마가 올때마다 뉴 올리언즈였다. 뒷간(똥 뒷간, 화장실, 해우소, 변소)이라고 해 봤자 밑이라고 닦는데 짚이 고작이다 신문이라면 그건 고급중의 상층이였다. 밭의 채소가 똥과 범벅이 되는 것은 상식이다. 대로변 곳곳에 웅덩이를 파놓고 뒷깐에서 퍼 나른 오즘똥은 소중한 거름이었으니까 지금 시민단체가 말하는 환경오염이라는 말은 가당치도 않던 시절이다.
삼각지 숙명여고 남영동쪽으로 개울 옆에 산 적이 있었다. 적산집(일본인이 살던 2층 목조주택) 앞에 뚝에 올라서면 건너편에 미군이 아침저녁으로 버리는 음식찌꺼기가 버려졌다. 놏질새라 개울로 쏟아진 곳을 휘졌다보면 건지는 것이 있었다. 수가락이며 개인식판이 그것이다. 요즘같으면 냇물오염으로 곤욕깨나 치렀을 오물에서 우리는 청계천 6가 짬빵과 꿀꿀이죽으로 돈벌이를 했으니 아이러니다. 그시절 미군의 쓰레기장 수거권리를 갖는 사람은 떼부자가 되는 길이었으니 세상 변해도 너무 변했다.
하여간 덕택에 전쟁이 터지자 고등리 9.28. 수복 후 미군의 천막주변의 쓰레기구덩이는 주먹질이 오가는 전쟁터였다. 새벽에 힘좋은 친구가 먼저 잡는 것이 임자였기에 우리들의 사춘기는 “헬로, 껌 오케이?”로 시작해서 하루가 그것으로 끝났다. 미군은 벌떼처럼 몰려드는 우리들을 쫓고 구덩이를 묻거나 불을 지르는데 그놈을 죽이고 싶었다. 환경오염이 아니라 쓸만한 것, 우리들의 명이 달려있는 것들이 지천인 그 쓰레기터를 차단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데모는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시민단체가 있었다면 뭐라고 데모를 했을지 궁굼하지만 하여간 그들은 오염을 염두했다. 것도 모르고 우리는 미워했으니 빈부의 양면성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차이다.
사실 미군의 쓰레기는 생존권의 문제였다. 뭣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하꼬방이라는 판자촌, 옷은 물론 꿀꿀이죽이 의미하는 먹이를 포함해 그야말로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일종의 금광과 같은 것이었다.
대한항공이 경인선사이를 잇는 자동차쓰레기로 거창하게 화물운송이라고 자칭한 것이 시발점이라면 믿겠는가?
현대구릅이 미군에서 흘러나오는 버려진 부속품으로 시작된 서비스공장에서 시작되었다면 역시 믿겠는가?
화신백화점의 박흥식이 망한 것은 미군의 쓰레기에 눈을 돌릴만큼 절박한 시절이 아니었다는 데 근거한다면 이해가 가겠는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가 아니라 할머니가 담배를 필 수 밖에 없었던 사연 뒤편에 숨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