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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나? 덧글 0 | 조회 16,539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내가 미쳤나? -

전공의(專攻醫) 선발에 정신과가 단연 수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97년도 경쟁률이었다. 정신과 의사가 인기직종이 됐다는 것은 말을 바꾸어 머리가 돌아버린 사람이 많다는 뜻이 된다.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술(醫術)도 컴퓨터에게 일자리를 자꾸 뺏기는데 정신과는 아직 그럴 염려가 없다. 매스컴을 타기 쉽다는 점도 있다. 외과의사와는 달리 손이 떨려 늙어서 환자를 보지 못할 일도 없다. 중요한 것은 어찌 되었거나 이상해진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필자는 개업을 할 때 외래환자만 보기로 했다. 동료들은 미쳤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철창 같은 입원실이 없는 정신과는 경영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충고였다. 27년 전의 일이다.
지금의 정신과 의사는 너도나도 입원실을 만들지 않는다. 서재와 응접실이 함께 있는 그런 면담실에서 진솔한 얘기에 빠져들면 그것만으로도 부자(富者)가 부럽지 않다.
인생살이에서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 가는 것은 정말 보람된 일이다. 소련은 일찍이 여자 정신과 의사가 남자보다 많았다. 여의사가 선호하는 것은 자유업 중의 또 자유가 있다는 점이다. 예약 면담제(面談制) 를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정신과 의사는 대개 미쳤다고 기피한 때가 있었다. 미친 사람과 평생을 지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는 것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최근 6∼7년 사이에 변화가 많아졌다. 정말 미쳐서 면담실에 들어서는 사람은 별반 보이지가 않는다. 그야말로 살다 보니 괜스레 울적해지거나 훌쩍 떠나고 싶다는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내 마음 나도 몰라’라며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일일이 공개할 형편이 아니므로 요약하자면 하여간 미친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신문에 일이 터졌다 하면 관련 분석기사를 위해 TV 카메라가 득달같이 달려든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데 병원에 올리는 없다.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세상에 이상해지지 않는다면 어지간히 뻔뻔하지 않고선 불가능할 것이다. 툭하면 살인이요, 탁하면 강간이다. 쿵하면 부도인데 짝하면 국회의원 부인들의 집단 사치 여행이다. 무엇이 무언지 모르고 살다 보니 축에 끼지 못하면 자기만 바보가 된다. 틈바구니에 나타나는 것은 스트레스다. 병으로 직행하는 것은 말할 여지가 없다. 병 같지 않은 병, 겉은 멀쩡한데 속이 무너져 내리는 병을 병으로 여기는 식구들은 없다. 꾀병이라고 한다. 그게 미칠 지경이다.
건강 염려증, 매맞는 아내와 터지는 남편, 의처(부)증, 종교망상, 부부갈등, 성기능장애, 집단 히스테리, 스트레스에 의한 적응장애. 학습장애, 공포증, 혼 외 정사, 청소년의 반항, 불경기나 사정(査正)한판에 따른 불안, 고부갈등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예외 없이 하는 말은 미칠 것 같아 죽을 지경이라 한다. 정말 미쳤는지 알고 싶다고도 한다.
상식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일이 있다. 미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세상에 무엇이 미쳤다는 것인지를 모르면 힘들다. 최소한 아래에 소개되는 증상이 없다면 미친병이 아니라는 사실에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협의의 정신병(미친병)의 특징은 이렇다.
1. 망상(妄想)이 있다.
오해라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늘 오해라는 울타리 속에 살게 되어 있다. 오해는 말 그대로 사실을 잘못 생각하여 오판을 내리는 것이다. 증거를 대고서 설명하면 시인하게 되는 것이 오해다.
망상은 그래 봤자 소용이 없다. 증거라고 내밀면 그 자체가 찔려서 하는 짓이라며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더 굳힌다. 그게 싫어서 아무 설명이 없으면 변명할 여지가 없다며 역시 자신의 생각을 확신한다. 한마디로 망상은 실제로 있지 않는 것을 있다고 믿는 것이고 오해는 있는 일이었지만 해석상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
의부증이 좋은 예일 것이다. 어떤 여자와도 상관이 없는데 있다고 믿는다. 증거를 대면 속이 구려서, 묵묵히 있으면 변명할 거리가 없어서라고 단정한다.
조정(調整)망상, 추적(追跡)망상, 피해망상, 종교망상, 부정(不淨)망상, 도청(盜聽)망상…망상, 망상, 무척이나 종류가 많다.
2. 환각(幻覺)이 있다.
분명히 밖에서 부르는 소리, 하늘의 목소리,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소리는 그만이 듣고 그에 따라 행동을 결정한다. 들리는 것뿐이 아니다. 보이기도 한다. 역시 아무도 볼 수 없었던 것을 본다. 냄새, 촉각, 미각(味覺)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 일이 없다고 해 봤자 소용이 없다.
3. 현실감이 없다.
우리 식으로 말해 분수가 없다. 온통 가상현실 속에 살면서 그것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정신을 차리라고 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그의 눈에는 미쳤다고 보일 것이다.
4. 병식(病識)이 없다.
술이 좀 과하다 싶으면 그만 해야겠다고 한다. 흠뻑 취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취한 것이 아니라며 술을 더 요구한다. 취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결과다. 이상해진 자신의 변화를 전연 모르고 우기는 것이 바로 미친 사람의 주장이다.
전문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이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없으면 결코 미친 사람은 아니라고 재차 보증한다.
자신을 미쳤다고 걱정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니다. 사람마다 때로 미치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속상하고 잊고 싶은 고통 때문이다. 미치지 않았다고 빡빡 우기면서 망상(妄想)이나 환상(幻想) 속에 사는 사람이 수상한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미친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본인도 잘 안다. 그러면서도 걱정하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다. 흔히 노이로제가 그런 특징을 갖고 있다.
건강 염려증이라는 것을 보면 말만 들어도 짐작이 갈 것이다. 의학적으로 전연 걱정할 병이 없다고 의사가 보증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걱정을 안 해도 걱정, 걱정을 너무 해도 걱정, 그러나 걱정해야 할 일에 걱정하지 않는 유행어 ‘안전 불감증’ 같은 것이 미친 증거라고 보면 된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욕심과 관계가 많다. 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해당사항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걱정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의심스럽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운다.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것은 삶의 지혜를 말한다. 여성은 이 점에서 대체로 소견이 넓지 못했다. 화내기 전에 잠시 여성 스스로를 음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대적 철학자나 우리의 세상을 바꾸어 놓을 만한 사상가에 여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가부장적 과거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중의 하나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을까?
작가는 많다. TV드라마 작가를 분명히 여성이 석권하고 있지만 세기적 사상가로 볼 수 없다는 점에 덮어놓고 성질부터 낼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미치지 않으려면 확실한 정체성을 갖지 않고선 불가능하다는 점과 이래저래 맥이 통하기에 곁들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