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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할 수 있다. 덧글 0 | 조회 16,566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나도 할 수 있다 -

프레스 센터 97년 5월 30일, 재벌기업의 회장이 경영인상(經營人賞)을 받는 날, 30년 남짓 과거로 거슬러 옛날을 생각해 본다.
건국대학 근처. 땡볕을 가릴 만한 나무 하나 없는 전형적 70년대 슬라브 주택에 왕진을 갔었다. 여고 졸업반의 딸이 자살기도를 했고 식구들 중엔 딸의 마음을 어루만질 어떤 사람도 없었다. 그녀의 방에 들어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그녀는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어머니의 소리만 들어도 자지러지는 마음, 그 속엔 언제나 고양이의 눈이 번득이며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은 적어도 그녀에겐 고양이 눈과 같았다.
그녀는 지금 미국에 산다. 두 아이의 어머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불굴의 정신으로 반도체산업을 일구어 재벌이 되어 옛날에 살던 바로 그 집 주변에 거대한 공장과 더불어 회사 본부를 조성했다.
“나도 국회의원을 해 봤지만 정치로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허구죠. 누가 나라를 생각합니까. 우리가 살길은 노동력을 이용해서 발돋움하는 길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노동자의 마음이 문제예요. 나는 아들딸들에게 물려줄 것이 정말 없습니다. 물려줄 생각도 없고요. 왜 요즘 아이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죠. 안타깝습니다. 선생님이 하여간 도와주세요.”
미국으로 건너간 딸은 신문배달을 했다. 도와 줄 생각도 안 했고 도움을 받을 마음도 없었다.
“시큐어리티 넘버(신용자 번호)를 얻기까지 고생이 말이 아니었죠. 신문배달은 물론 망치를 휘두르며 대장장이 같은 일도 했습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여자의 일, 정말 그렇게 고된 일은 없을 거예요. 연락도 하지 않고 그저 일했어요. 편하더군요. 어찌하다 미국 남자와 결혼을 했어요. 그가 사랑한다고 했죠. 아이를 낳고 궁색하게 살았지만 문제는 아니었어요. 마음이 통하지 않더군요. 이혼을 결심했어요. 이게 저의 전부예요. 이제 저도 옛날의 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선생님이 절 구해 주고 저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그래서 일시 귀국하면 선생님을 찾나 봐요. 미국식 인사는 어색하겠죠?”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저녁을 함께 하고 예의 그 재벌 집 문 앞에서 그녀는 나를 포옹했다. 그냥 가겠느냐고 했다. 왕진료를 한 푼도 받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녀의 삶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한 대가라고 여겼던 그 옛날, 그녀가 이렇게 당당하고 의지하지 않으며 독립해서 살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으로, 그녀의 부모를 만나 나눌 얘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우리의 젊은 여성들,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독립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은 분명하다. 스스로 벌어서 살겠다는 생각은 별로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시작하여 거기서 번 돈으로 빚을 갚아 당당하게 살겠다는 것이 대개의 발상이다.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훤히 보이는데 밑천을 대주지 않는 부모와 원수가 되는 처녀가 꽤 있다. 언니나 오빠와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믿지 못하는 그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이래저래 원하는 것을 시작한다. 대개 망하는 것이 현실이다.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몸으로 때우는 길밖에 없다. 홍등가로 가는 길이 열려 있다.
“오빠가 정말 잘 해주어요. 아주 착하죠. 때가 되면 가게를 차려준다고 해요. 지금은 1주일에 한 두 번씩 만나 밥 먹고 그리고 잠시 즐겨요. 후회하지 않아요. 쓸 만큼 돈이 있으니까 됐죠. 더 욕심을 내면 나쁜 여자가 아니겠어요. 부인이 있는데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안되죠. 저도 또래의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때가 있으니까 그럴 시간이 있어서도 좋고요. 정말 큰 욕심 없어요. 쇼핑 몰에 가게를 내준다고 했으니까 때를 기다리는 거죠.”
불과 25세, 까르르 금방 비명에 갈 것 같은 긴박한 응급상태가 인연이 되어 면담을 하다 보니 알아선 안될 것들은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 더는 얘기할 생각이 없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홍등가가 아니지만 다른 여인의 가정파괴라는 짐을 지고 있다. 못할 짓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뜻은 아니니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자신의 내일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펼쳐가겠다는 의지가 어째서 아예 없는지 그것이 이상하다. 재벌의 딸은 그 어려운 노동판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고도 지금도 부모에 도움을 거부한다.
오늘, 대부분의 여성은 부모가 아니면 외간 남자, 보통 오빠라고 부르는 아저씨라도 좋다. 자신이 치를 수 있는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체뿐이다. 그것을 밑천으로 호의호식 성공하겠다는 발상이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다. 독신녀 중엔 그런 흑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야 노래방이나 유흥업소가 한결 편해서 좋다는 주부들의 벌이가 보편화(?)되어 가고 있는 마당인지라 당연할 것이다.
피나는 땀으로 얻은 대가가 아무리 적다 해도 그것은 알몸을 비틀며 얻어낸 호화로운 대가로선 비길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 있다. 신세대가 새로운 패러다임(틀)을 갖지 않고선 썩어 가는 몸을 지탱할 수 없는 날이 조만간 들이닥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남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내용이 다른 것뿐이다. 밝게 웃는 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여성이 된다는 것, 그럴 때 사회는 밝고 명랑해질 것이다.
목의 힘줄을 세우고 허세 드높은 억지로 당분간 위기를 넘기거나 잘 사는 모양을 조작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정말 할 수 있는 일은 혼신의 땀과 인내로 풀어내지 못하는 부귀영화는 결코 길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여성은 눈물과 미소작전의 한계를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