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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구 -따라가지 말고 홀로 가라- 덧글 0 | 조회 9,537 | 2018-04-09 20:54:56
관리자  

친 구

-따라가지 말고 홀로 가라-

2018.04.09.

정신과의사 정동철

 

친구가 없다. 따라가지 말고 홀로 가라는 말 때문?

오늘 미국에서 대학진구 내외가 왔다. 친구들을 초대했다. 불행히도 나는 참석할 수 없었다. 오늘 따라 상담을 마치자 바로 집으로 왔어야했다. 어쩌다있는 별난 증상, 결코 모처럼의 분위기를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당당한 체구, 자신감 점치는 외과의사, 흉부외과 심장수술이 전공이다. 엣얘기로 회포를 한참 풀며 웃고들 있을 시간, 동참할 수 없다는 것, 갑자기 친구가 없어진 듯 미묘한 심정이다. 나의 행동반경이 줄어든 것을 극적으로 감지한 것이 오늘이다.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데.. 그 수술이란 것 때문에.. 동기회 수첩을 보나 절반이 떴다.

 

긱별한 친구라 말하긴 그렇다. 미국에 동창 절반 이상이 있는 나의 현실, 그러나 그는 대학시절 남달리 말이 통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가려는 취향에서.,

마침 그제 메일을 보낸 역시 미국에 있는 동기 여자친구, 오늘의 형편을 말하며 그에 대한 얘기를 했다. 물론 그녀는 한 지역에 살아 알고 있을 것이다.

 

원래 미국으로 갈 때 그는 정형외과를 하기로 결심했었다. 흉부외과를 경험하게 되는 전문의 과정에서 생각을 바꿨다. 이유는 상식과 달랐다.

심장수술은 성공률이 높지 않다. 결과 사망하는 환자를 더 봐야했다. 놀랍게도 바로 그것이 이유였다. 지금 의과대학생들이 선호하는 과()선정과는 전연 다른 이치다.

 

나는 본시 의사를 원하지 않았다. 의과대학이 아니라 공과대학을 가려했다. 집에서 반대했다. 딱 밥 굶기라고. 졌다. 대신 나도 의시댈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합리화됐다. 하지만 예과를 다니면서 역시 아니었다. 지금의 대학로, 거기 대학 종합도서관에 둥지를 틀다싶이 엉뚱한 책을 보고있었다.

-, 너 뭐하는거야.,

-?

-왜라니 어이 없네.

난대없이 국어, 역사, 그리고 철학을 하고있었다. 고교의 연장에 해당하는 의예과, 생물학이며 화학에다 영불독 그리고 그리스어까지 배우는 형편에 너무 엇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본과 턱걸이로 올라가 결심한 것은 결고 청진기를 들지 않을 것이다였다.

타이프라이터학원을 시작했다. 들끓는 여자, 망했다. 국화빵, 연탄찍기 이 둘은 물론 내가 직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엉뚱했다. 될 리가 없다.

본과 4학년에 열명이 한조가 되어 정신과를 돌았다. 교수님이 대표로 환자와 얘기를 해 보라고 했다. 상담하란 뜻이다.

놀랍게도 그것이 나의 운명을 갈랐다. 청진기 없는 의사, 맞다. 놀랍게도 지금은 청진기와 해머를 꼭 가운에 넣고 있다. 다른 정신과의사와는 다르다. 역설적이지만..

 

친구가 선택한 이유는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겠다는 사실 거기에 꽂혔던 것이다.

결과는 역시였다.

심장수술의 필수 심폐순환기가 없는 방법을 찾아나섰다. 찾았다. 보조적 그 거창한 기구의 도움없이 심장이 뛰는 그대로를 수술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BHS (beating heart surgery), 놀랐다. 그는 성공했다. 개업을 하면서 이젠 수술한 뒤 혈관을 꾀매는 대신 접착제를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나섰다. 마누질 않고 양복을 만든다? 1970년대 그의 집념은 강했다.

당당하고 늠늠한 그의 이미지, 35주년 동기동창회(1995LA, 나는 동기회회장이었고 그제 보낸 여자친구는 미국 동기들을 대표하고 있었다. 자그마치 부부동반 2백여명)에서 그는 성공한 심장외과의사였다.

 

그와 나는 성향이 달랐다. 물리와 수학을 좋아해 말이 통하긴 했지만 그는 행동파 나는 반대였다. 그렇다고 꽁생원으로 있진 않았다.

개업의사가 학회를 창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 교실의 인적 자원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임상성학회를 만들었다. 1987, 그 이듬해엔 학회 학술지를 창간했다. 나는 임상적으로 정신과적 성치료를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비뇨기과 일색에 산부인과가 끼어들어 물리적 또는 약물치료로 정면승부를 한다기에 물량을 당할 수 없었다. 그치료법은 중독치료로 전환 활용하는 곳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화자찬, 도를 넘었나?

따라가지 말고 홀로 가라

 

사람은 눈을 믿고 산다. 자신이 본 것을 믿는다. 개나 쥐는 코를 믿고 산다. 그들이 맡는 냄새로 산다. 박쥐는 귀를 믿고 산다. 되돌아오는 자신의 음파를 듣고 구석구석을 누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거울의 비친 나의 모습 오늘 따라 무겁다. 그게 사실일까? 이미 뇌 뒷부분에 입력저장된 정동철의 다양한 모습과 비교 판단한 것일 뿐이다. 내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뇌가 비교 검토 판단하여 보고 있다.

세상만사룰 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보는 것도 역시 그렇다. 아내를 보는 것도 다르지 않다.

나도 그랬지만 청춘 남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자기 자신이 선호하는 특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자이크로 만들어진다. 상대방을 보면서 바로 그 모자이크의 하나가 닮았다고 뇌가 판단하면 그것을 전체라 여겨 사랑에 빠진다.

결혼을 통해 배우자에게 초지일관 같은 아름다움과 똑 같은 사랑의 밀도를 지니고 가는 사람이 있을까? 이혼률이 늘어간다. 아예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예상되는 추리가 이어질 것이다. 다른 모양의 모자이크가 놀랍게도 한 둘이 아니라는 것, 초심이 끝까지 간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어려운 확률이다. 적어도 뇌의 입장에선 그렇다.

 

친구가 없다.

성향은 같으나 밤을 지새며 내가 들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을까? 나의 얘기를 하품없이 들어줄 친구는 있을까? 아내는?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은?

하물며 세상사는 전연 수학적이지 않다. 정치, 심지언 법까지도 같은 사건에 같은 해석 같은 판결이 나지 않는다. 법은 하나인데 왜 답은 다를까?

수학적으로 살아야한다고? 천만에, 그건 아니다. 은행통장만 보고 그것만 믿고 산다고? 나에게 하는 말이다. 답답한 숨통이 콱 막힐 것이다. 그렇게는 살수가 없다.

물리학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AI, 인공지능의 로봇이 되자고? 아예 질식하고 말 것이다. 앓는니 죽지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수학자나 물리학자도 아닌 터에 자신은 수학적으로 물리학적으로 살고 있다며 책잡힐 것 없으니 제발 너, 너희들은 문학적이고 법치적으로만 살지 말라 강요 한다면 친구가 없다는 것과는 달리 차라리 살지 말라는 결과가 된다. 지금의 세상사가 그렇다.

나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 따라가지 않고 홀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행히도 졸립다며 찐히 들어줄 팔순의 아내는 아니지만 같이 웃고 성질을 낸다는 것 그보다 더 큰 친구가 또 있을까? 행운?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필경 미국에서 온 친구도 그럴 것이다. 은퇴한지 오래지만 그러면서 홀로 가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은퇴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이미 일년전부터 시작되고 있다. 따라가지 않고 혼자 가는 길, 적어도 그런 점에선 우린 친구인 셈이다. (2018.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