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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거울 덧글 0 | 조회 16,924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보이지 않는 거울 -

<이 글은 의사수필집 박달회에 2006.12.에 실리기로 결정된 것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열 댓 명의 수강생이 수영선생을 따라 왼발을 내밀고 오른팔을 돌리며 ‘음~ 파! 음~파!’를 계속한다. 유별나게 늘씬한 몸매, 80을 훨씬 넘어 보이는 키, 보기에 좋다.
아들의 권유로 기초반에 들어간다. 초보자들 사이에서 나는 선생과 똑같이 흉내를 낸다. 자신감으로 미소까지 지으며 따른다. 누군가를 향한 그의 지적은 적어도 나는 아니라 믿고 우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시절 평영으로 한강(지금의 1/3정도)을 건너갔다 오거나, 부산 송도 해수욕장에서 3~4km되는 섬을 갔다 온 경험이 있기에 당연한 결과라 여긴다.
그래서다. 라커룸에서 샤워장을 거처 한층 위에 있는 수영장으로 오르는 계단 난간을 잡고 꾸부정하니 가쁜 보폭(步幅)으로 살살 몸을 옮겨가는 또래의 노인을 보면서 역시 나는 다르다는 자부심이다. 뱃살이 임신 9개월에 해당하는 과체중으로 30대의 아들이 권하는 것이기에 아침마다 이래저래 편한 마음으로 다닌다. 내심 똥배가 나온 것을 제외하고는 아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자신감까지 갖는다.
아들은 늘 별 말이 없다. 체중의 변화에만 관심을 보인다.

2

첫 나들이로 경기도 여주(麗州)가 선택된다.(2006.8.20.)
처자를 캐나다로 보내고(손녀들의 이모가 거기에 살고 있어 유학을 감.) 늙은 부모의 집으로 오면서 궁리했던 모양이다.
“주말을 이용해 당일치기나 무박2일 여행을 가는 게 어떨까요? 나름대로의 글을 남겨 책으로 엮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듣던 중 반갑다. 대찬성이라며 동의를 했다, 이럭저럭 자리가 잡히자 당일치기로 우선 가까운 곳을 택한 것이다.
여주라면 연상되는 것이 있다.
세종대왕, 신륵사, 여주 쌀, 그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했던 강연지에서 예외가 아니었던 곳, 대학동기동창의 골프모임, 정선 아우라지를 출발한 뗏목이나 마포나루를 역류한 황포돛대가 멎던 남한강강변의 사려다 못산 땅, 인상적 환자와 마지막 여인의 고향이라는 정도가 머리를 스친다. 그 이상 그러나 딱히 매력적이라는 느낌은 없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오른다는 것은 아주 느긋한 기분이다. 쾌적한 냉방, 시원스럽게 달리는 차창 밖 파란 하늘과 푸른 산이 30도를 웃돌고 있다는 표시를 사그리 무시한다. 같은 정신과의사여서인지 얘기 끝에 묘한 말이 나온다.
“고속도로의 차선이 평준화되었죠?”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자 뒤범벅이 된다. 아리아리한 표현, 듣는 게 직업이라서인지 우린 별반 말이 없다. 꼭 말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작금 주도권을 쥐고 있는 논리(論理)대로라면 급행열차 같은 차별화는 서민의 적(敵)이기에 추월선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웃긴다고 여긴다.

비집어 틀어 처음 들어선 곳은 명성황후(明星皇后 1851~1895)생가다.
미처 몰랐던 곳, 황후의 기념관을 차창 밖을 보듯 둘러보면서 시해(弑害)상황이 홀로그램으로 되어있는 곳에 잠시 멈춘다. 뒤에 중국관광객이 단체로 따라온다. 홀로그램 앞에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버튼이 있다. 「동북정공」을 노골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중국이 이 기념관을 어떻게 해석할지 의문이다. 그 이상의 생각은 그러나 없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노라면 처절한 권력다툼과 청(靑나라, 중국)에 이어 러시아와 손을 잡다 일본에 일격을 당해 세상을 달리한 시대적 상황이 써서다. 역사 이래 「황후(皇后)」라는 거창한 칭호를 택했음에도 뛰어난 이이제이(以夷制夷; 적으로서 적을 치게 함) 외교를 펼쳤으나 정보와 힘없는 오늘의 자주(自主)같은 느낌 때문이다.
생가(生家)는 그야말로 한국의 양반들이 그렇듯 시체말로 친환경적이지만 살았던 사람들은 편하고 좋기만 했을 흔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안분(安分)의 철학이겠거니 해석한다.
놀랍게도 어머니가 여흥 민씨(麗興; 명성황후의 아명 민자영과 본이 같음)라는 사실이 그때 떠오른다. 당시 실세의 가문이라 사돈의 팔촌벌이 된다는 먼 얘기를 근거로 할머니에 관해 아들에게 설명한다. 멋쩍다. 황후라는 단어가 그러하듯 공허하다.
아들은 반응도 말도 없다. 장차 자신의 아이들과 교육적으로 올만하겠다는 것이 전부인 듯, 황후라는 어휘가 남기는 여운을 씹으며 엿본 느낌이다.

영릉(英陵)으로 간다.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
기념관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작품이지만 전시된 아악(雅樂)을 비롯한 내용은 관(館) 밖의 다양한 천문관측기구들을 역설적으로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있는 듯 보인다. 훈민정음과 더불어 「홍천의」같은 천체관측기계는 세계최초의 「측우기(測雨器)」와 함께 중국의 「동북정공」에 반기를 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실록에 보면 천자(天子, 중국)는 하늘의 뜻(별자리)을 헤아려 이웃 변방지역을 다스리던 때라 중국의 천체관측이 조선에 맞지 않았음에도 감히 천자의 심기를 거슬릴 가봐 조아리던 관행을 깼던 이유다. 현 정권의 자주(自主)가 그런 건지 민심은 말이 없다.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국토를 확정지은 세종대왕과 같은 행보인지 몰라서다.
명성황후생가 앞에서 찍은 사진처럼 멀리 능을 뒤로 봉사하는 여학생의 도움으로 복중(伏中) 한 낮의 부자(父子)사진을 디카에 담았다. 그냥 사진이다.
“옛 왕들은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먹거나 듣거나, 여자들? 나 같으면 시켜줘도 하고 싶지 않은 자리 같은데........”
“뒤집어 말하면 혹시 그래서 이런 발명품들을 만든 건 아닐까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있지 않아요, 요즘처럼 민심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그 짜릿한 맛이랄까, 그런 것이 없었으니까 뭔 재미가 있었겠어요. 오죽하면 맏형인 양녕대군이 담 넘어 호색잡기로 책봉된 왕세자를 물렸겠어요. 덕분에 기리 빛날 임금님을 자랑스럽게 갖게 된 행운이 생겼지만, 왕 나름 아니겠어요.”
아는지 모르는지 택리지(擇里志, 저자 李重煥 1690~1752, 본관은 麗州다. 중국 동북공정을 정당화하는 빌미가 되는 내용들이 八道總論에 기록되어 있다. 머리카락이 삐쭉 선다.)가 왕릉 중에 제일이라 했던 술사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봐 풍수지리상 명당자리로 정해저서였을까? 이중환에 따르면 장헌대왕(莊憲大王, 세종을 일컬음)을 모시려 개토할시 거기에 「마땅히 동양의 성인을 장사할 곳이다」라는 표석이 나왔다고 했으니 말이다.
세종대왕도 6명의 부인을 통해 18남 4녀를 두었다. 관행이라 하지만 「왕의 여자」는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31년 6개월(1418~1450)간의 재임동안 왕권중심에서 의정수서사제(분권의 일종)로 이행한 것이 전적으로 소갈증(당뇨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국토를 두 강으로까지 확정하고 대마도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을 보면 대단하다.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그렇고 그러해 현 정권의 준비된 마음이 무엇인지 미궁이다.
더위에 쫓겨 경내를 나오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주문이 아들의 배를 통해 터져 나온다. 기념품 집으로 급히 달려 음료수를 마신다. 요기꺼리를 물었으나 별로다.
“쌀 밥집, 근처에 잘 하는 곳 어디쯤 있을까요?”
들어오던 입구에 있지만 잘 하는지는 모르겠다면서 친절하게 일러준다. 아직 점심때가 아니라 알 수 없다고도 한다. 오뉴월 소불알 늘어지듯 여주라는 한가로움과 함께 식당 문이 열리기엔 시간이 이르다.
김밥을 사들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거울이 무엇인지 발원(發願)자체가 캄캄하다.

신륵사 길은 더욱 뜨거웠다.
초등학교시절 보이스카웃 복장으로 왔던 기억에 재생을 걸어보지만 아들은 실패한다. 황포돛대를 바라보며 건성건성 절을 둘러보았으나 초행이란다.
“저기 네 기둥에 적힌 뜻 알겠어? 不立文字(불립문자), 敎外別傳(교외별전), 直指人心(직지인심), 見性成佛(견성성불). 불교의 핵심(看話禪;조계종발행, 2005. 참조.)이라 하던데.......”
좀 힘주어 설명하다 표정을 보니 불립문자(不立文字)에 딱 걸리고 만다.
말이란 것이 사람의 심성을 오염시키는 것인가 싶다.

밥집은 스쳐온 곳을 전화로 확인해두고 목아원(木芽園)으로 향한다.
“어머니, 여기 아시면 놀라시겠죠?”
“뭐 그 정도는 아니지.”
권사라는 사람의 두 남자가 찾은 곳이 하필 아내 말대로라면 주일에 우상(불상)을 둘러보고 있으니 불경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나무를 씨앗으로 불교문화의 다양한 작품들을 모아놓았다는 과거와 현재를 보고 빠져나오려는데 거기 하나의 심아(心芽)가 말을 건넨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검스레 세월이 흠뻑 밴 청동 광배, 그리고 앙련, 육계, 나발, 둥견 등을 제외하고는 살결만 화려하게 금색으로 살아있는 듯 불상(佛像)을 디카에 옮겨놓으니 그것이 조화를 부려 거울로 둔갑한다.
뭔가를 할 듯 말 듯, 말(言)의 씨(芽)를 보여주는 듯 하다.
고속도로까지 평등이 번지는데, 급행열차나 추월선이 아직도 있다는 결과에 관해 무엇인가 반사된다. 교육이나 의료의 평준화를 통해 다같이 완행열차가 되어보자고 하기라도 하 듯 잘 해 보라는 것처럼..........
디카속의 거울(불상)이 정말 일러주는 것일까?
용케도 옛 시골냄새가 풍기는 쌀 밥집, 감자 술(黍酒)을 나누니 말없는 부자간의 거울은 아내 쪽으로 옮겨간다.
“어머니 오셨으면 좋아하셨을 텐데, 이런 한식 좋아 하시잖아요.”
수무가지 정도의 찬, 그것도 깔끔하게 나오니 아내가 정말 좋아할 밥집이다.
감자 술을 반쯤 남겨 맛과 분위기를 전하기로 이제 집을 향한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

3

병원엔 한 방향거울(one way mirror)이 있다.
면담실의 스크린을 내려놓으면 뒤편 검사실 쪽도 거울이 된다.
우유를 마시러 들어갔다가 아침에 배웠던 수영선생의 흉내를 낸다. 비록 배우기보다는 운동을 위해 다닌다지만 기지개하듯 그 날렵한 코치를 생각하며 그와 똑같은 모습이려니 그래서 거울을 향해 ‘~파!’하면서 수영하듯 우측으로 돌아본다.
‘아니! 이게 뭐야!?’
거기에 거만스럽게 상상하던 나의 모습은 없다. 전연 딴 사람이 튀어나온다. 뿐인가, 만년(晩年)의 마오쩌둥(모택동)처럼 구부정한 팔과 몸매가 거울 속에서 웅얼거린다.
「너야, 너!」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천정을 향해 두 손을 쭉 뻗는다. 수영코치처럼 몸을 막 돌릴 참이다. 어이없게도 거울에 반사된 모습은 그 마오쩌둥의 형상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허허! 너라니까, 너!」
화장실로 간다.
작은 일을 마치고 그곳 거울에 비친 나의 정면은 의외로 위풍당당한 모습.
‘그러면 그렇지........‘
검사실로 들어가 다시 수영 동작을 한다. 분명 젊은 선생의 모습 그대로가 반사되리라 다지며 고쳐 세운다.
아~! 역시 아니다.
거기엔 몸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오랜 친구나, 수영장의 노인, 그리고 예의 마오쩌둥의 파킨슨병자 옆모습이 동시에 다중단층연속동영상처럼 거울 속에 밀랍작품과 진배없이 굳어있을 뿐이다.
동시적이다.
‘거울이 드디어 말까지 하는구나! 너라고...’
뒤미처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 가소롭게 밀려온다.
지독한 착각, 돌이킬 수 없는 거만, 취향대로 조작이 가능하다는 혁명적 아집, 이제 말까지 들린다니 귀신이 나왔나?
때다.
맥이 풀리는 듯 마치 허우적거리던 몸이 물에 뜨더니 야릇하게도 무아의 경지로 떨어진다. 시원하게 체증(滯症)이 텅 비워진 기분, 교외별전(敎外別傳)인가? 웃음이 터진다.
-준비된 마음만 점(占)치는 새처럼 꼭 찍어 말해주는 거울-
그것은 나에게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뒤미처 들러붙는 생각들.
-대체 마음의 거울을 자처하며 뭇 환자를 대해온 내가 과연 거울이었나?-
그러고 보니 택도 없는 얘기다.
거울이 아니라 엉터리 유리조각, 그것은 투사(投射 projection; 내 얘기를 하면서 “나라면”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그건 거울이 할 일이 아니다.)가 둔갑한 사금파리다. 옹졸하게 현미경처럼 마음 어딘가 의시 대는 곳만 보라며 번쩍이는 고급차의 철판, 아니면 망원경처럼 어리버리 버무린 도시의 창틀에 갇힌 유리였다.
그때 뜬금없이 심봉사가 불쑥 나타난다.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공양미 삼백 석을 약속하는 바람에 팔려간 심청이를 불러대며 통탄하지만 이미 버스가 지나간 뒤의 얘기다.
차를 바꾸고 우쭐대려는 마음, 당장 병원을 그만두면 연금도 없는 처지에 대체 뭐하는 짓인가?
감히 마음의 거울이 된 치료자라 자처하다니.........
프로이드가 보면 기절할거다. 돌부처(Stone Face)처럼 미동도 하지 말고 환자의 마음 저변의 꿈틀거리는 갈등을 불러내게 하라는 거울, 웃지 않을 수 없다. 인지행동요법이라는 장르로 변명을 해 보지만 웃기긴 마찬가지다.
「명성황후생가」나 「영릉」과 「신륵사」를 돌아보며 정확한 진가를 알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알려하지도 않았으니 본질을 볼 내야 볼 수가 없다.
미욱한 자신의 모습이다.
기막힌 착각 속에 엄청난 허세로 살아왔다는 얘기다.
거듭 다행스런 대가(代價)라면 순간, 속이 확 뚫려 껄껄거리는 마음이 분수처럼 솟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어설프게나마 어른거리는 거울을 볼 수 있었던 탓이지 싶지만 모르는 일이다.


4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걸핏하면 뭔가를 탓한다. 대표적 대상이 언론이다.
독자가 많은 언론일수록 그렇다. 기준치고는 이상하지만 독자가 적은 언론은 오히려 지원금을 준다. 가진 자와 더불어 수구(守舊)세력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없는 사람들을 위한 홍길동들도 아니다. 「바다이야기」를 통해 서민의 저자거리를 진공청소기로 몽땅 빨아드려 누군가의 주머니를 채우면서 복지를 제1로 한다는 슬로건이 애드벌룬에 걸려있으니 우습다. 지난 정권말기의 로또를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게임이라고 사람들이 웅성거리지만 쉰 소리라 무시하는듯하다.
GDP 7%의 약속은 애교였고, 일본과 미국에 대한 자주는 엄중하다. 중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외교, 고구려연구재단은 과거사를 파헤치는데 쓴 돈(2518억)의 1/10도 안되는 지원금을, 그마저 자진 폐쇄하는 사이에 중국의 「동북공정」은 백두산을 휘어 감고 있다.
“대포동 실험은 미국까지 가기엔 너무 초라하다. 무력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발사한 것을 문제 삼아 복잡하게 만든다. ......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언제 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징후나 단서를 갖고 있지 않다. 근거 없이 계속 가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 사람을 불안하게 할뿐더러 남북관계도 해롭게 만들 우려가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핀란드기자단에게 말한 내용이다.(2006.9.7.)
정치적 목적이라 하자. 1995년부터 2006년까지 12년 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가 북한에 지원한 금액은 총 6조5899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경수로지원금을 빼면 64%가 현 정권에 의한 것이란다. 과연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지원해야 할 만큼 우리 내 서민들은 배가 부르며 안보는 태평성대인가? 복지를 위해 적자예산을 짜야한다면서..........
불바다 운운하며 툭하면 협박(주)을 하는 북한을 왜 대변(?)하는 지도 그렇지만 지방선거에 완전히 패하고 별것 아니라 하니 민심을 싹 무시하는 듯 하다. 바다이야기가 시끄러우니 되묻기를 이 조그만 문제 말고 임기 중 무엇이 문제였는가 하는 것은 대선 당시 불법자금 1/10론으로 차떼기 한나라당과 비교할진데 죄도 아니라는 입장과 비슷한 느낌이다.
결국 어느 신문의 사설처럼 온갖 궤변, 현실왜곡, 통계조작 등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낙하산을 위한 일자리와 수당을 한 것 늘려 놓기만 하고 무슨 속이기 씨리지가 아니냐고 할 정도다. 대체 ‘비전 2030년’에 드는 1600조원에 500조원을 삭제했다니 그 창작소설(?)을 쓰는데 든 비용은 또 얼마나 될까?
자주를 강조한 「작통권」환수를 위해 돈 한 푼 안들이고 2009년에 가능하다지만 백두산은 고사하고 급기야 한강유역 이북까지 중국 땅이라는 발표가 「동북공정」에 요지가 되고 있다. 동경에 나도는 한국괴담에 「중국 위성론(衛星論)」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니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2006. 9. 16. 조선일보.)
시정(市井)에 회자되고 있는 민망스런 말들이 많다.
「짓지 못하는 풍산 개 3마리」, ‘으악 새’를 새로 안다는 「바보 시리즈」, 예행연습 때 잘 치던 박수가 정작 쳐야할 때 조용해 이유를 알고 보니 그때만은 정신이 멀쩡해진다는 「정신병동 이야기」, 하늘에서 천 원짜리를 뿌리면 국민이 좋아하겠다하니 돈이 아니라 사람이 뛰어내리면 제일 좋아 할 거라는 등 그저 우스개 소리치곤 너무 맹랑한 얘기들이다. 미국을 비롯해 나라마다 거북한 패러디가 판치는 형편이라 넘기면 그뿐이지만 입맛이 쓰다. 민심의 단면들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 반대편의 정당한 주장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가령 어찌되었든 6.25전쟁 같은 끔찍한 참극은 여기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위해서 당장은 말이 많아도 저변의 복선은 그런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방업이 있지 싶은데 눈높이가 다른 이념이 앞서니 탈이다.

탓할 일은 아니다.
성질 낼 일은 아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고 한탄할 일도 아니다. 대체 거울이 없다고 한탄할 일이 아닌 것이다. 볼 의향이 없는 곳에 거울이 있을 까닭도 없으려니와 칠흑 같은 혼란 속에선 있다 해도 없는 셈이다.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 전적으로 책임질 일이다.
원래 준비된 마음이 없는 한, 거울은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거울이 없거나 무시되는 정치는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이다.
힘든 것은 국민이지만 자업자득이다.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때문에 설사 어떤 무시무시한 음모가 진행된다 해도 명성황후처럼 시해될 일 같은 것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만사가 그렇다. 시비(是非), 정오(正誤), 찬반(贊反), 빈부(貧富), 선악(善惡)의 2중 잣대가 아니라 성숙으로 가는 거울이 필요하고 그 거울을 통해 가야 한다고 아무리 삿대질을 한들 오히려 준비된 마음은커녕 이미 궤(軌)를 모두 외면한 형국에 대 음모는 쾌재를 부르며 진행될 거라는 의구심뿐이다.
민심은 평면거울, 언론은 볼록 아니면 오목렌즈다. 정치는 무슨 거울일까?
있으나 보이지 않는 거울, 그것이 나 같은 사이비꼴통을 겁주고 있으니 도리가 없다. 이태백이처럼 낚시를 드리는 수밖에........

5

사서(四書)중 대학(大學) 경문(經文) 제1에 명명덕(明明德)이라는 말이 있다.
본시 사람의 심성은 맑은 덕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각종 욕망이라는 중독으로 오염된 마음의 거울을 깨끗하게 닦기만 하면 되리라는 뜻인가 보다. 불교의 심시명경(心是明鏡)과 같은 말이지 싶다.
탓하거나, 탓할 짓을 한 사람 모두 맑은 심성을 가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좋은 말로 이념(理念), 다르게 말하면 욕심이라는 떡고물에 문제가 있을 따름이라 그것만 닦아내면 「너」(있다)와 「나」(없다)라는 구분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왜 살 수 없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제4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나노시대에 웬 잠꼬대냐고?
그러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꿈속의 잠꼬대가 맞다.
간밤의 꾼 꿈의 얘기였으니까.
여주(麗州), 목아원(木芽園)에서 본 불상(佛像)이 주제넘게 화근이 되었던가 싶다. 불상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거울은 무슨 거울, 시끄럽다!-
「거울 뉴론(Mirror Neuron)」이란 것이 뇌에 있다는 연구는 제법 된다. 뇌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몸짓을 보고 그 사람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신경세포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뇌의 좌측과 우축 사이에 「거울현상」이 있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앞의 「거울 뉴론」의 존재는 사회생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공감하며 살 수 있는 것은 이 신경세포가 있기 때문이다. 없다면 사회생활에서 왕따를 당한다. 자폐아나 정신분열병은 이 신경세포가 망가져 다른 사람과 교감하지 못한 결과일 거라는 가설을 증명하려고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거울을 치워버리라’는 것인지 아예 다른 사람들과 교감할 의사가 없는 「거울 뉴론」의 존재를 제거해야 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연상 작용이 스쳐간다. 「대형(大兄; 조지 오웰 1984)」처럼 「거울 뉴론」을 제거하기 위한 세뇌공작이 진행되고 있는 끔찍한 생각까지 든다는 것은 관계망상이이지 싶다. 공유기로 판치는 인터넷처럼 국민 개개인에 설치된 머릿속의 방어벽을 넘나들며 삭제 또는 끼어 넣기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현실적 상황이 혹시나 해서다.
백성은 빵으로 살고 권력자는 이념으로 산다안하던가? 생전의 마오쩌둥의 얘기인데「내배 째라」는 식의 막말이 시원한 사람도 있겠으나 나같이 빵만 먹고 사는 사람들은 아예 그런 것이 없었으면 「거울 뉴론」의 덕으로 함께 공감하며 편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설마 죽기 전에 안 오지는 않겠지?-

다음 목적지가 궁금해진다.
거기엔 뭔가 맑고 신선한 새로운 풍경이 있지 싶어서다.
(2006/ 8.22.~9.20.)

(주): 결국 협박이 아니라 북한외무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연구부문에서는 앞으로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시험(실험)을 하게 된다”는 성명을 냈다.(2006. 10. 3.) 이어 핵실험에 대한 근거도 증후도 없다는 대한민국의 정보력을 시험이라도 하듯 드디어 2006.10.9. 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하고 말았다. 6자회담에서 북한은 「한반도비핵지대화(Nuclear Free Zone)」를 촉구했던 사실(2005.7.)을 고려하면 이상하기만 하다. 2005. 10., 제37차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 우리정부는 미국의 핵우산(Nuclear Umbrella)을 제거하자는 검토가 있었다는 뉴스까지 감안하면 그야말로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결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10월25일 “남조선 당국이 끝끝내 미국의 반공화국 제재책동에 가담한다면 우리는 6.15공동선언에 대한 전면부정으로 종족에 대한 대결선언으로 간주하고 해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우산 아래로 들어오라는 뜻이라 난감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드디어 김정일은 대외비연설에서 말했다고 한다.(신동아 통권 566호) 끔찍한 얘기다.
“남조선 경제가 장성했으나 언제든지 결심만 하면 남조선을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