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게시판 > 수상수필
어린이와 부리망 덧글 0 | 조회 16,299 | 2009-04-17 00:00:00
정동철  


어린이와「부리망」

“제가 들어 들일 게요?”
“.......? 괜찮은데........”
“옆에 사니까 옮겨드려도 되요, 들어 들일 레요?”
“그러겠니?”
같은 층 옆집 어린이 같은가 싶다가 긴가민가해서 머뭇거리는 사이 차곡차곡 화단 돌 위에 내려진 선물꾸러미 하나를 들으려 한다.


원래 아파트 정문에 짐을 내려놓은 후 지하에 차를 대고 올라오려던 참이다. 마침 세울 수 있는 데가 정문에서 10여 m쯤 떨어진 곳이다. 추석이라고 받아온 이런 저런 선물꾸러미를 추스르지 못하는 날 보며 귀엽고 명랑한 어린 소녀가 거들겠다고 뛰어든 얘기다. 초등학교 2~3학년? 더 어린지도 모른다. 반색을 하며 달려오는 나의 손녀들처럼 그렇게 말하는 듯 하다.
-할아~버지!........ 근대 이거 뭐야? 내가 들고 갈게요. 할아버지 그냥 들어가세요!-
내가 무척 힘겨워보였는지 어쩐지 그가 느낀 것은 알 수 없다. 도와주겠다는 것보다 마치 당연한 일처럼 옆집 아이가 아니고선 거들 수 없는 마음이라 기특하지만 이내 손녀도, 옆집 아이도 아니라 당황한 것은 내 쪽이다.
“괜찮~아, 고맙긴 하지만... 어디 사는데?”
“바로 옆에 있어요.”
옆집이 맞구나. 귀여운 미소가 낯익은 듯, 하지만 역시 그 얼굴이 아니다.
불과 1~2분 사이의 일이다.
어린이는 나의 표정 때문인지 상자하나를 들어 올릴 듯 망설인다.
순간 착한 어린이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을까 따르는 것이 도리라 여긴다.
“그럼 들어 줄레?”
활짝 피어나는 나팔꽃처럼 소녀의 얼굴이 환하게 터진다. 나도 웃는다. 나의 것은 시늉이다. 아파트 정문 경비실 앞 의자에 이것저것 선물꾸러미를 올려놓는다.
“고맙구나, 정말 고맙다. 그래 이제 됐구나. 마음 참 예쁘네!”
당연히 같이 들어갈 것이라 여겼던 그녀는 다시 돌아선다.
“아니 어디로 가는 거지?”
“저, 요기 옆 동이에요. 108동. 안녕히 들어가세요.”
“그래!? 이런, 고마워서 어쩐담. 정말 고맙구나.... 고마워! 잘 가렴.”

차를 지하로 옮기는데 활짝 웃던 그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세상에 이렇게 이쁜 아이가 아직도 있구나. 남남의 어린이, 옆집도 아닌데 딱 손녀 같기만 하니....-

지하에서 서둘렀다.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답을 어떻게든 해야겠다며 마주칠 나무사이로 부지런히 올라왔다. 돈을 생각했지만 행여 마음을 다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좌우간 예쁜 마음을 어떻게든 확실하게 고맙다고 다져주고 싶었다. 헐떡이며 올라온 이유다.
없었다.
그녀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허전했다. 천사를 노친 것처럼 두리번거렸지만 허사였다. 밴쿠버에 있는 손녀가 꽉 찬 웃음으로 달려왔다가 사라진 그런 허전함? 귀에 소리가 맴돈다.
-할아~버지! 근대 이거 뭐야? 내가 들고 갈게요. 그냥 따라오세요!-
-못난 할아버지!-

받쳐 든 손과 턱으로 괸 선물꾸러미가 넘어질세라 중심을 잡으며 엘리베이터로 들어선다.
천사같이 맑은 미소가 엘리베이터 안 어딘가 그득 차있는 것만 같다. 머뭇거리며 고맙다는 칭찬을 야무지게 못한 자신의 얼 띤 표현이 와락 몸을 적셔온다.
-왜 이리도 못난 거지?-
집안으로 들어서자 선물꾸러미를 와르르 집어던지듯 내려놓으며 아내에게 정색을 하고 말한다.
“세상에 이렇게 이쁜 마음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몰랐네.....”
마치 수없이 지나가는 예수를 보지 못한 톨스토이의 단편,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의 주인공, 구두장이 마르틴 생각이 들었다. 허탈하다. 그 소녀를 통해 손녀(孫女)들이 다녀간 것만 같다.
칭찬마저 제대로 할 줄, 아니 하지 못할 정도로 길들여진 늙은이가 바로 자신이라 생각되어서다.

그렇다.
식히는 대로 일만 했을 뿐 먹고 싶은 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며 살아온 소, 자칭 지식인이라면서 법과 권력의 눈치에 익숙했을 뿐, 다섯 부리를 조심하라는 중에 주둥이부리를 망으로 가려놓은 그 「소 부리망(網)」에 갇혀 우악스런 이중섭의 소처럼 게거품 같은 욕만 내뱉던 못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입부리에 재갈처럼 물려있는 「부리망(網)」, 소가 쟁기를 힘겹게 끌면서 먹지도, 되 색임도, 말해서도 안 되는 그 「소 부리망(網)」의 멍에가 무겁게 짓눌려온 것이다.
급기야 그놈의 눈치 때문에 찬미(讚美)의 속내마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기계 같은 바보 늙은이, 노인은 현자(賢者)라 누가 말했던가? 뉘우치듯 어림없는 자신에게 속으로 다진다. 「부리망(網)」이 없는 망아지, 그래서 맑고 밝은 어린 소녀가 되듯 냅다 집어던져 버리기로 한다. 부리망을....

-꼭 만나야지, 예쁜 마음을 꼭 껴안고 확실하게 말해주어야지. 마음의 선물을 안겨주며 한바탕 웃으리라!-
(2006. 9. 30.)






정 동철(鄭 東哲)

ㅇ 아호: 海岩, 서울
ㅇ 학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1960)
미국 트리플러 육군종합병원 정신과 수학(1963)
신경정신과 전문의취득(1967)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수료(의학박사, 1972)
ㅇ 경력(전): 서울의대 외래교수/ 대한 신경정신의학회 이사/ 한국임상 성 학회 창립회장/ 여성의 전화 창립위원/ 서울YMCA 청소년상담실 자문위원장/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 서울의대 신경정신과 동문회장/ 서울여자대학교 특수치료전문 대학원 겸임교수
ㅇ 현재: 정동철 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海岩뇌과학硏究所소장
한국성학회 고문
WhosWho in the World 19th Ed., 2002 등재
ㅇ 병원주소: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본동 196번지, 올림피아 빌딩 301호
정동철 신경정신과 의원
ㅇ 통신: Tel: 병원: (02)424-5464 연구소: (02)6425-2564
FAX: (02)424-2059 Email: cdc35@hanafos.com
Website: www.braintech.co.kr(한글 키워드 정신과상담/정신과@정신과)
ㅇ 방송 및 강연(전/현): 동아방송 행복의 구름다리, MBC-TV 어떻게 할까요?, 두산 TV 열린 성교실, MBC-R 사랑의 교실, 별이 빛나는 밤에, PBC-R 사랑의 샘터 등 진행 또는 고정출연, KBS-3R 건강365‘(현)/ 일간스포츠, 주간한국, 월간 예향 등 다수 연재/ 최고경영자, 직장인, 주부 등을 위한 대소기업 및 전국 방송사주간 강연
ㅇ 저서: 정동철의 사람보기/ 여성의 정신건강/ 사랑과 성, 그리고 갈등/ 삶의 디딤돌(기죽지않고 사는 49가지 방법)/ 먹통과 첼로(속 궁합이 좋아야 집안이 평안하다)/ 어떻게 할까요?(콘돔이 뭐예요?)/ 성과 성교육/ 가르쳐주세요/ 섹스 닷 한국: 바람난 솜사탕/ 아름다운 터치(번역)/ 불면증 완치법/ 박달회 수필집(공저) 등 다수.



- 어린이와「부리망」-
<이 글은 의사수필집 박달회에 2006.12.에 실리기로 결정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