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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불을 지필 때 덧글 0 | 조회 16,273 | 2009-04-17 00:00:00
정동철  


군불을 지필 때
2007.3.11.

새술막(서울공항 끝의 현재 고등동)을 떠나 숯내를 건너 숯골(성남시 태평로) 큰집 「ㅁ」자 초가집으로 가면 겨울이라 늘 사랑방에 군불이 지펴져 따끈했었다. 반세기 전의 일이다. 세월이 흘러흘러 도시로 변하고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이제 군불이란 단어를 구지 불러올 일은 없다.
그때도 그랬다. 큰집의 군불이라고는 하지만 것도 전쟁 때 피난살이로 연이 가까워져 1.4후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을 때 도령님의 대접으로 따끈한 사랑방에서 한바탕 어울려 놀던 추억의 한 자락 일뿐 지핀 경험은 없다. 그러나 솔가지며 장작이 내뿜는 매콤한 연기는 군불의 의미가 뇌에 구수하게 각인된 것은 사실이다. 거기엔 사람의 숨소리와 냄새가 훈훈한 가족의 정감으로 뒤섞여 있었던 탓일 것이다. 혼합된 일체감, 뭐 그런 것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여섯 개의 방이 있는 아파트, 딱 하나 순전히 난방을 위한 군불이 필요로 한 그런 방이 있다. 두 늙은이가 쓰기엔 너무 넓은 아파트라 적어도 세 개의 방은 없어도 되지만 특히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화장실을 마주보고 있는 방은 컴퓨터가 없어진 곳이라 평소엔 문을 닫아둔다. 아파트의 난방은 예전의 초가집 개념으로 보면 모두가 난방기능뿐이라 따지고 보면 다 군불을 때야하는 방들이지만 바로 컴퓨터가 없어진 방 때문에 느엿느엿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면서 밀려든 것이 이 글의 발단이다.

큰집 안방부엌엔 대식구를 위해 네 개의 가마솥이 있었다. 밥이나 국, 그리고 물을 끓이기 위해 나뭇가지나 장작을 떼다보면 아랫목이 절절 끓게 되어있고, 건너 방 방바닥은 여물을 쑤다보면 역시 그 덤이다. 사랑방은 순전히 난방용 군불이다. 모두가 결국 난방용 군불로 거실과 부엌이 두루 따스하게 지날 수 있게 바뀐 아파트에서 유독 끝 방만은 특히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아들이 쓰던 방으로 개원을 하면서 책상과 의자, 그리고 침대와 책장만이 썰렁하게 주인행세를 하고 주말을 제외하고는 내 서재의 책상이 부족해 책을 펼쳐두고 더러 침대를 이용할 뿐, 그래서 난방을 끄고 있다가 주말이면 올 것이라는 아들에 대한 믿음 때문에 군불이라는 옛 청감이 묻어나온 셈이다.

일요일 아침, 전날 토요일오후에 「적정」선을 조금 넘겨 켰던 난방 스위치를 「외출」에 맞추어 놓았다. 해가 퍼진 창밖은 화창하고 스위치의 빨간 불은 이내 꺼졌다.
멀리 네거리의 빨간 신호등처럼 스위치의 불이 꺼지면 그러나 거기엔 파란 불은 없다. 해서 생각은 정지가 아니라 문풍지 소리와 함께 중심을 잃고 한 가닥 희망을 손가락에 끼고 스위치를 좌우로 만지작거린다. 「외출」과 「적정」, 그리고 「30(도)」사이로 빨간 신호등이 들락거리기를 몇 차례, 온다 해도 그 방은 이제 눕기에 적당할거라는 판단이 서자 비로소 손을 뗐다.
어제 토요일은 정말 별났다.
일기예보가 마지막 꽃샘추위라고 하더니 맞았다. 일식처럼 캄캄해지더니 아내와 함께 숯내를 한 시간쯤 돌고 들어서자 억샌 바람은 이내 비와 눈으로 변해 멋대로 훗 날렸다.
그러나 오려는 봄은 거역할 수 없음인지 버들강아지에 매달린 몽우리에 빨갛고 노란 꽃잎들이 선인장을 둘러싸고 처녀의 손으로 한 송이 한 송이 십자수로 몇 년 만에 피어나듯 솜털처럼 촘촘히 타원형으로 매달려 춤추는 것을 디카에 담아왔다. 아내는 놀랐다. 그런 꽃이 버들강아지에 핀다는 것을 처음 봤던 탓이다. 미국친구에게 소식과 함께 첨부파일로 보내고 나니 아내와 나는 할 일이 없어졌다. 휴일의 스물 네 시간-일요일은 아내의 주일이라 무관하지만 「놀토」,는 두 늙은이에겐 솔직히 너무 길다. 날씨에 유별난 반응을 보이는 나의 몸은 한기를 느끼자 난방조절 스위치를 적정선보다 조금 더 높였다. 혹시라도 오면 방바닥은 따스하게 해 두어야겠다고 염두 하면서 우선 끝 방-컴퓨터가 없어진 방이라 사람의 체온마저 사라진 서재, 의 운기를 지펴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른 쪽 스위치만 돌렸던 것이다. 빨간 불이 그의 체취처럼 선명하게 켜졌다.
“오늘은 오겠죠?”
“그러게, 당신 알잖아, 내가 청량리뇌병원에 있을 때... 밤중에 걸려오는 전화에 놀라던 내 모습-그것은 바로 입원환자에 응급사태가 발생했다는 신호라는 사실, 말이요. 지 병원이라 꼼짝하기는 쉽지 않겠지.....”
분당에서 연신네는 거의 두 시간 거리다. 병원 가까운 원룸에서 마치 양떼를 지키는 목동처럼 병원 안팎만을 맴돌고 있을 그림이 떠오른다. 어미라도 의사 자신들만의 외길은 항상 토끼처럼 쫑긋한 대기상태라는 것을 느끼진 못 할 것이다.
“벌서 4주가 되었어요.”
“그렇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엔 난방용 스위치가 정확히 여덟 개가 있다.
세 개는 부엌 싱크대 아래에, 둘은 거실에, 그리고 나의 서재와 안방과 끝 방에 각각 하나씩 있다. 문제의 스위치는 늘 거실에 있는 두 개 중 오른쪽 것이다. 우리 집의 분위기, 특히 주말의 명암이 크게 엇갈리는 주인공이다.
일년이 넘었을 것이다. 거실과 부엌의 난방조절용 레버를 단자로 바꾸어 새로 고친 것이 그렇다. 원래 방마다 있던 스위치는 고장난지 오래다. 편하자고 했는데 단자연결을 옳게 연결하지 못하는 바람에 스위치가 있는 방에서 그 방의 난방을 조정할 수 없게 되었다. 전화를 걸고 직접 만나 제대로 고쳐 달라 했더니 “당연히 그래야죠”할뿐 함흥차사로 지내는 사이에 그 방식에 익숙해져 탈 없이 그냥 쓰고 있는 중이다.
말이 나와서인데 아내와 나는 노상 레버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곤 했었다.
레버를 돌리면 고압온수가 통과하는 소리가 나기마련이다. 그 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아내와 나의 말도 톤이 비례한다. 아내는 덥다며 소리가 너무 크다한다. 마치 돈이 소리를 따라 수채 구멍에라도 흘러나간다고 느끼고 있음이 틀림없다. 나는 늙은 나이에 우선 따듯하게 지나자는 주의다. 결국 말로는 타협이 되지 않아 내가 틀어놓으면 아내는 살짝 잠근다. 발바닥으로 감지되는 온도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는 나는 다시 레버를 올린다. 그러기를 하여간 일주일이면 몇 번은 신갱이를 벌여야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기에 이르렀고-아내의 생각이 옳았기에, 가령 봄인가 하면 덥다고 에어컨을 돌리자든가 가을인가 하면 춥다고 난방을 돌려야 한다며 앞서가는 온도측정기(뇌에 있겠지만)가 적절하게 가동되고 있지 않다고 내심 동의를 하고 있어, 그러는 사이에 저녁마다 그놈의 소리를 조정하느라-마치 철도 정비원이 객차마다 기차바퀴를 망치로 두들기며 뭔가를 알아내듯, 아내가 인정하는 소리에 맞추게 되었다. 하지만 하구한날 저녁마다 꾸부리고 거실과 부엌의 레버뿐 아니라 방과 거실, 복도, 부엌, 식당 등을 따로 조정해야 하는 8개의 레버를 마치 「소리의 달인」-이상한 일이지만 실제론 음치다-으로 만지려면 것도 할 짓이 아니었기에 갈자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신경전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사 주째다. 다녀 간지 한달이 된 셈이다.
- 얼마나 힘들까? 지금까지 물정모르고 천진스럽게 자라 헌출한 순동이로 살다가 진흙구덩이 세파 중심에 서서 쉼표를 잊고 환자들과 동거 동락한다는 것은 사실 버거운 일이 아닌가? 한다면 끝장을 보여주겠다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 대견스럽긴 하지만 가령 독감이나 갑작스런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혼자 감당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
나도 그 시절엔 쉼표를 모르고 일했다고 스스로 자위를 하지만, 지난 12월 1일자로 시작된 「해암정신과의원」-해암(海岩)은 대학동기 곽대희가 로터리클럽에 가입할 때 지워준 나의 호, 로 시작되자 나는 바로 「이중결속」(double bind, by Bateson(1956)-성장과정에서 부모의 상반된 이중적 태도가 정신분열병 부모의 특징적 의사전달방식으로 자녀를 헷갈리게 한다는 주장인데 지금에 보면 정상가정의 부모도 상용하는 방식, 을 경험하고 있으니 성숙도의 한계가 어딘지 가늠하기 어렵다. 크리스마스, 연말, 명절 등 들뜨기 쉬울 때 흔히 사고가 잘 생기므로 특별히 주의(상주해야 된다는 뜻)해야 한다면서 막상 그런 날 집에 오지 않는다고-섭한 마음을 품고 처음으로 금년엔 세배마저 생략된 것에,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우리 내외는 내심 웅크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네 번째 주말을 맞았으니 늙은 부모를 생각해서라도 불쑥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대체로 늘 그런 편이었기에, 월요일면 원주로 가는 버스를 위해 새벽길 차 뒷좌석을 따스하게 하듯 그렇게 생각하며 더욱 신경을 쓰며 불을 지폈다. 물론 아들도 어미를 닮아선지 더운 것은 질색인 듯 하여 「적정」이라는 표시가 있지만 체감온도까지 알아내지 못하는 기계의 한계로 나는 아들의 체감온도에 맞추어 조정했다. 특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끝 방-컴퓨터가 없어진 방, 에 있는 조절 스위치는 내 서재 방을 위한 것으로 바뀌어 있어 당연히 빨간 불이 늘 켜지게 되어있으므로 그것을 덥다고 끌 것이기에 그러면 내 서재가 추워질 거라 신경을 써야했다. 내방의 스위치는 늘 열려있는 문에 가려 아내마저 잘 모를 뿐 아니라 그것이 거실의 좌우 어느 한쪽 조절용이라는 것은 나도 헷갈리지만 노상 적정선 이상으로 빨간 불을 켜둔다. 그래야 거실의 메인 레버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방지하면서 내가 원하는 최소한의 상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내를 살짝 속이는 셈이지만 그래서인지 아내의 친지들이 찾아오면 찜질 방 같다며 우리 집은 별나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한다.
“오늘도 오지 않는 건 아니겠죠?”
“내 얘긴데, 우리, 그 나이 때 어른들에게 안부전화 솔직히 얼마나 했었는지 기억돼? 뭐 생각은 하고 있겠지.........”
“하기야 별 일 아니겠거니 여기고 있을 거겠죠?”
내심 나라고 꿍꿍거리는 강아지 심정으로부터 예외는 아니다. 의사라는 직업의 고충을 아는 터에 마치 학습이라도 해야 하는 무슨 어록이라도 되듯 아들이 뱉은 얘기들의 조각들을 모아 이리저리 추리를 하며 막상 겉으론 호수 같은 바다처럼 말을 더 이상 끄집어내지 않고 넘어갔다. 나쁜 추측이 혹 여라도 맞아떨어지면 그때 겪어야 하는 사나운 심정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것이 확인되는 것을 피하고 싶은 그런 심정에서 일 것이다.

좌우간 휴일의 24시간은 우리에게 너무 길다.
모니터와 글 읽기중독에 걸려있는 나에겐 백내장수술 이후 계속되는 눈의 피로감으로 먼 하늘을 멍청히 바라보거나 걷기로 대신하려니 그 여백은 가혹 하리 만큼 지루하다. 정말 너무 긴 시간이다. 어쩌랴 삼켜야지. 봉직의사로 있던 그가 나의 꼬챙이로-그가 몸담고 있던 병원을 처음 찾아 초라한 원장실을 보고 이건 아니구나 했던 말로, 입원실이 있는 자신의 병원(의원)원장이 되고 보니 오로지 생활 모두가 환자 쪽으로 돌변한 셈에다, 마침 그의 아내와 두 딸을 밴쿠버로 보낸 기러기아빠가-철따라 갈 수 있는 그런 처지도 아니니 기러기아빠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지만, 되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고 있는 처지일 것이다.
- 그나저나 별 탈이야 없겠지? -
거 무슨 환자가 말썽을 부렸다든가 응급사태가 생겼다던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들이 공연히 거실을 왔다갔다 차분할 수 없게 하였다. 내가 개원을 하고 있는 심정이다.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싶다.

온갖 변덕을 부리던 날씨는 어제와는 달라 빨간 스위치를 끄는 아침하늘엔 드높은 가을처럼 파랗게 햇살을 삼켰다간 상큼한 훈기를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의 문풍지소리는 그대로다. 그것은 원망이 아니다. 다음 주 토요일 오후면 또 다시 반복될 상동증(常同症)-같은 행위를 분위기와 상관없이 반복하는 증상, 이라는 정신병자가 되기로 상관없는 일이다.
- 일주일, 그쯤기다리마! 그저 의사가 겪어야 하는 고뇌, 고독, 그리고 가슴을 예이는 아픔만 없으면 되지...... 그래만 지날 수 있도록 되 다오. 우리의 기다림이나 섭 함쯤이야 비교가 되랴....... 환자가 어떻게 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소름이 이니......-
오후에 올지 모른다는 미련의 꼬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 온다 해도 이젠 햇살로 충분하기에 필요 없을 빨간 불을 끄며 탈이 없겠거니, 아니 오후엔 꼭 올지도 모른다면서 일상으로 돌아선다.

발로 걸어요,
손으로 먹어요,
그럼
살 수 있는 거죠?
그러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귀로
들지 못하면 살 수가 없지요.
그리고
포옹에 담긴
맛과 체온을 잊고선 살 수가 없네요.- 여기까진 손녀나 며느리의 심정? -

발로 걷고, 손으로 먹으면 살 수 있다지만
눈으로 글을 보지 못하면 살 수가 없음.
나에겐
불행하게도
눈의 피로가 글을 보기 힘든 가성 장님이 되어
정말,
숨 살아있으나 마음 죽어있네요.

치료자가 되어 삶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사건과 현상(fact)으로 인생이 이루저지는 것이 아님을 모를 리 있겠는 가 만서도, 오지 않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으로 인생이 전부인 듯 마음 조이고 있다는 것, 그게 캐나다에 있는 어린 손녀와 며느리, 그리고 우리 모두의 숙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그런 사실들(facts)이 아니라 그런 사건들로 해서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치솟는 생각들로 이런저런 번뇌가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우르지 못하니 내 인생의 희비가 답답할 뿐이다.
어쩌랴, 다음 토요일 오후가 되면 다시 거실 오른쪽 빨간 불을 켜 군불을 지피기로 마음을 달랜다. 혹 날씨 봄기운 꽉 차면 뛰어넘을 수는 있어도 컴퓨터가 없는 책상에 펼쳐진 뇌과학(Neural Science)에 관한 나의 책들을 한 켠에 챙기는 것만은 잊지 않을 것이다.
책상 쓸 일 편하게 하기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