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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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물 덧글 0 | 조회 15,716 | 2009-04-17 00:00:00
정동철  


- 선 물 -
(2007.2.17. 명절 하루 전날의 작품)

신라호텔 면세점.
화요일 오후, 2월 6일.

확 바뀌었다.
옛 모습은 에스컬레이터뿐, 낯선 매장으로 올라간다.
돌아볼 이유는 없었다. 한가한 쇼핑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원하는 매장으로 직행한다. 분명 아래층 출구 가까이 있을 거라 생각한 한국공예품 판매장을 찾는 중이다.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것은 동호대교를 지나면서 알았지만 다행히 늘 동행되는 다이어리 핸드북에 기록된 숫자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도착한 곳이다.
찾았다.
두리번 거리니,
“무엇을 찾으시는대요? 도와드릴까요?”
“아 잠깐, 여기 있군요. 노리개가, 더 앙증맞은 것은 없을까요?”
생각했던 것은 없었다. 구지 구색을 맞추자면 살수도 있을 정도다. 그나저나 문제였다.
“국산품도 공항에서 인수를 받아야 하죠?”
“네, 그렇습니다. 손님.”
언젠가 국산품은 바로 살 수 있었다는 기억이 무의미 해졌다.

유난히 햇볕은 강열했다.
골프모자속의 대머리엔 땀이 영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더웠다. 동시에 멋적었다. 생각없이 달려 온 것이 그랬다.
브레이크와 엑셀을 번가라 밟으며 생각이 번잡스럽게 들락거렸다. 한복에 어울리는 복주머니와 노리개, 예쁘게 차려입고 학교에 들어서서 뻐기는 모습이 떠오르자 더욱 마음은 바빴다. 밴쿠버 초등학교 친구들에 전통의상으로 뻐길 기회, 이미 한복을 선택하기엔 늦었다. 그래서 대신 평생 기념으로 남겨도 좋을 명품 복주머니와 노리개를 생각한 것이다. 가령 유명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 인간문화재의 솜씨라면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에 버금가는 것이라도 무방하다고 여겼다. 물건도 비행편도 없다는 것은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뜻이다.
허탕!

롯데 잠실 호텔 에스컬레이터 앞 공예품점에서 본 듯한 느낌이 스쳤다. 명품은 아니라도 괜찮은 것이 있을 것 같았다. 차들이 유난히 많은 주차장, 좀 아찔하다. 벤츠 SLK라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거기 있다는 보장만 있으면 그래도 갔을 것이다. 아리송한 느낌 때문에 분당 삼성플라자로 갔다. 이미 탐색한 바, 없다는 사실을 점원에게 알아 본 것이긴 하지만 설이 임박하니 혹시나 해서 갔다. VIP라는 주차장 자유출입증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어린이 용품 5층과 1층 가판대를 둘러보면서 결국 목걸이로 대신하겠다는 마음으로 변했다. 복주머니나 매듭은 없다는 것을 재 확인한 뒤다. 악세서리도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았다. 점원이 소개하는 곳으로 갔다. 남북으로 몇 번을 왔다갔다 돌아보며 결국 그녀가 가르친 곳에서 사기로 했다. 네 잎 클로버를 상징적으로 만든 하얀 유리와 자주색 유리로 세팅된 것을 골랐다.
좋아할까? 싸우지는 않겠지? ‘서로 바꾸어 걸면 되니까’라고 생각했다.

-돈과 시간은 인생에 있어 가장 무거운 짐이다. 불행한 사람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를 자신이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많이 소유하고 있다.-

두 가지가 나에겐 모두 적거나 없다. 불행하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내 주변사람들의 불행에 관계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두 개를 합해 3만원을 주고 포장을 했다. 상징적 정성, 그런 마음으로 족할 것이라는 일상의 생각이 여기서도 작동되었다.
집에 들어서니 다행히 아내는 없었다. 부질없는 정성이라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는 터에 내가 생각한 대로 마음놓고 포장을 할 수 있었다.
두 개의 하얀 상자, 거기 Memories라는 은색 글씨가 삭여진 것이 마침 내가 붙이려는 메모지와 딱 맞았다. 세종회관에서 벤츠가 초청한 신영옥의 노래에 참가했다가 받은 예쁜 초콜릿상자였다.

From the desk of
Dong Chul Chung
이라는 글이 왼쪽 위에 인쇄된-시티은행이 만들어 준, 메모지 여백에 손 글씨를 썼다.

My Lovely Grand-daughter
Nahee!
Happy,
The Year of Pig.

그리고 날짜와 사인을 했다.
똑같은 글을 또 쓰곤 사인을 했다.

My Lovely Grand-daughter
Cheehee!
Happy,
The Year of Pig.

그 상자 안에 다시 앙증맞은 상자 속에 포장된 목걸이를 스카치테이프로 부쳐놓고 넣었다. 꼭 맞춤포장 같았다.

지희생일, 지난 10월 탄천을 걸어 삼성플라자 옆 문구점에서 생일카드를 산 것과 같이 크리스마스 때도 역시 거기서 카드를 샀다. 생일 때는 땀에 흠뻑 젖었지만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두 번째 것은 전연 낌새를 모르게, 그리고 이번 선물은 말도 꺼내지 않고 실행했다. 아내에게.... 아내가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힘들게 하는 나이를 안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피하기 위해서다.

꼬마 천사들이 목에 걸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혹시 시시하다고 처박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상상은 전연 없다. 등기우면으로 보낼 때 값을 써야하는데 US$40을 80으로 고쳤지만 만일 40불이라면 혹시나 해서다.

그러나 알 수가 없었다.
내일은 설날.
처음으로 세배를 받지 못하는 해, 2007년, 그보다 답답한 것은 손녀들의 반응이 모두 없었다는 점이다. 지희 생일과 크리스마스 카드는 뒤에 전화로 겨우 안 것이었고 이번엔 영영 모를지도 모른다.

2월 3일,
1월 31일에 이어 오른 쪽 눈마저 백내장수술을 받고 검진 차 갔을 때 에쿠스를 인터호텔에 세웠다. 현대백화점에는 있지 않을까 해서, 아니면 호텔이나, 백화점과 호텔사이 지하상가엔 적어도 그런 기념품이 있지 싶어 역시 숨을 몰아쉬며 게다가 수술 후의 부신 눈 때문인지 늙은 뇌 탓인지 묻고 물어도 헤매는 지하도를 왔다갔다 오로지 그 복주머니와 노리개를 찾을까 싶어 발걸음을 재촉하다 허탕만 치고 주차료금만 9천원을 내야했던 기억이 스쳤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거의 상투적 표현을 들으며 하여간 그렇게 믿기로 하고 허전했던 마음, 지금은 그 수많은 email중에서 밴쿠버에 있는 세 사람의 이름이 나오기만을 마치 로또 숫자처럼 고대하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인가? 불행이 아니라 걱정이 이어지기만 한다. 그게 바로 그게 아닌가? 불행이라는 것.
그래도 고개를 흔든다. 좌우로 마음은 쩔래쩔래 흔드는 것이다.

세훈이 탄천을 돌고 오니 와 있었다. 밴쿠버와 연결이 되고 나희와 지희는 목걸이를 오늘 받았다며 막 걸고 있는 중이라 했다.
“하얀 게 제거죠?”
“그래, 언니랑 바꾸어 써도 좋지.”
“안 바꿀래요.”
“그래 그럼 좋을 대로, 하얀 게 네 것이니까.... 마음에 들어?”
“좋아요. 마음에 들어요. 할아버지 고마워요.”
지희의 얘기다.
나희 역시 인사를 또박또박 잊지 않았다.
오랜만에 며느리와 통화.
작품을 쓰냐고 하니 겨울잠이란다.

결국 모두가 눈 녹듯 사라졌다.
내 식구.
아들과 그의 엄마, 삼성플라자는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거듭되고 반복되는 희망과 절망을 누구나처럼 당연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하련만 그게 여의치 않아 속옷 깊숙이 챙겨두었던 섭함이 모두 날아가니 저간의 마음고생만 원망스러웠다.
오후 3시 7분..............

바쁘게 챙기던 시간은 모두 허공에 물 풍선처럼 날아간 자리엔 미소뿐이다.
때만 되면 비록 작지만 넘어갈 수 없는 선물과 글,
그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못할 병일까?